< 노을 앞의 그림자. (8) >
서울 청담동. 한수빈의 개인 빌라.
그녀가 멍한 표정으로 연인에게 선물 받은 크리스탈 곰인형과 장미꽃을 보고 있었다.
"..."
차가워진 눈빛과 다르게 손에 쥔 핸드폰은 이리저리 바쁘게 흔들리고 있어 마치 그녀의 갈등이 표정이 아닌 몸짓에서 표출되고 있는 것 같았다.
전화를 걸어볼까 말까. 그의 말을 믿어줄까 말까...
이런저런 고민 끝에 한수빈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네. 교수님. 제가 오늘 몸이 안 좋아서 그러는데."
성악도 체육 못지않게 닫혀있는 세계였다.
그들의 세상에서 지도교수는 권력이자 종교요 태양왕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높은 존재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후원자라는 존재들.
자본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예술 특성상. 한수빈은 제자가 아닌 신의 자재 취급을 받는다.
특히 그녀는 입학까진 부정이 섞이지 않은 자신의 실력으로 명문대학의 문턱을 넘어섰다. 실제로 큰 재능을 가지고 있고 무대에 올랐을 때 관중들의 호응도 나쁘지 않다.
한수빈은 교수들의 머리 위에 있는 존재였다.
"죄송해요. 오늘 하루는 쉴 게요."
"아니야. 요즘 열심히 했었잖아. 그럴 수 있어. 목 관리도 중요하니까."
"아 참. 아빠가 언제 시간 되시냐고 한번 여쭤보던데."
"회장님이 나를? 왜?"
"뭔가 구상하시는 그림이 있으신가 봐요. 전 잘 모르겠어요. 말씀만 전해 들은 거라."
"어 그렇구나. 그럼 회장님께 꼭 안부 전해드리고."
"네. 말씀 전해드리겠습니다."
지도교수와 통화를 마친 한수빈이 아버지 한권석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어 그래 수빈아."
"뭐해? 바뻐?"
"아니. 조금 한가하다."
"아빠. 이번에 홀에서 하는 가을 공연에 우리 교수님 추천해드리면 안돼?"
"후후. 왜? 점수라도 잘 주셨어?"
"그럴 리가. 그냥 너무 대단하신분인데 요즘 무대가 잘 없어서."
"그래. 알았다. 우리 딸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아빠가 전화해서 얘기해."
"이 녀석아. 아빠가 그럴 시간이 어딨다고. 사람들한테 얘기해 놓을게."
"응. 고마워요."
"우리 딸. 안 그래도 전화 잘 했다."
"왜요?"
"너 요즘 누구 만난다며?"
"..."
"아빠도 한번 보여줘라. 아빠도 스포츠 좋아하는데."
한 회장이 구마하를 언급하자 한수빈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알고 있었어."
"그럼. 먼저 저기 S그룹 회장님 만났는데 어찌나 자랑을 하시던지."
"맞어. 그 얘기 들었어."
"아빠도 보여 줘. 아 우리 딸 남자친군 줄 알았으면 내가 그때 옆에서 웃고만 있었겠어."
"그러고 싶은데, 지금 해외로 훈련갔어. 오면 얘기해 줄게."
"후후후. 열심히 하는 친구구나."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지. 아빠 나 얘랑 결혼하면 안돼?"
"서두르지 말고. 그럼 지금 남자친구도 없겠다. 오늘 밤 아빠랑 데이트나 갈까?"
"엄마도 부르는 거야."
"둘이 보자. 아빠도 예쁜 딸이랑 오붓한 시간 좀 보내고 싶다."
"그럼 오늘 말고. 집에서 봐요."
"그래. 녀석. 들어가라."
통화를 마친 한수빈이 길고 고요한 한숨을 내쉰다.
"후우..."
그녀의 앞에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탈 곰인형이 웃어주고 있다.
한수빈도 씩 함께 웃으며 손가락으로 곰인형의 콧등을 쓰다듬는다.
"그래. 자기를 믿어줄게. 이것만 해결된다면."
한수빈이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 옷장을 열어 보았다.
"보자. 뭘 입고 갈까."
남수의 여자친구 은정이도 그들과 동창이었다.
모든 진실은 그녀에게서 듣기로 한다.
이 과정만 넘어선다면 한수빈은 이혜정도 구마하의 친구로 기쁘게 반겨줄 마음을 먹었다.
경원대로 갈 생각이었다.
최대한 차려 입고서.
* * *
"네? 선배님. 누가 왔다고요?"
"어... 어떤 분인데. 한수빈이라면 알 거라고."
"수빈이 언니??"
"아는 분 맞어?"
"네. 알긴 하는데..."
"니 연락처 알려줄 수 있냐고 하시는데. 전해드릴까?"
"아. 아니요. 제가 동방으로 갈게요. 저 지금 도서관이에요."
"그. 그래! 그럼 천천히 와!!"
뭐지? 무슨 상황이지? 마지막엔 오히려 좋아하는 목소리던데.
수빈이 언니? 그 언니가 여기까지 왜 왔지?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일단 가보긴 하겠는데...
김은정은 남자친구 박남수에게 전화를 걸어보는데, 친구들과 PC방이라도 갔는지 연락이 닿질 않았다.
"흠."
호기심을 갖고 동방의 문을 연 김은정의 앞에 순진무구한 부원들의 혼을 빼놓고 있는 한수빈이 있었다.
"음. 이런 영화도 보면 재밌겠다."
"네. 프랑스 영화가 나름 깊이가 있어서요."
"어. 은정이 왔어."
"언니... 우리 학교엔 어쩐 일로?"
"후후. 그냥 지나가다가. 은정이 보고싶어서."
"저요? 마하도 같이 왔어요?"
"아니. 얜 지금 전지훈련 갔어."
한수빈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한다.
"고마워요.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있었어."
"아. 네."
"저... 저희도."
"은정아. 나 나가 있을게. 밖에서 얘기하자."
"네..."
한수빈이 먼저 사라지자 부원들이 달려들어 성화다.
"은정아! 저분 누구시냐!!"
"사... 사진 한번만 같이 찍어주시면 안 될까...?"
"제발. 나 제발 소개시켜줘... 진짜 니가 하라는 거 다 할게! 니 과제! 니가 해야 될 시험! 내가 다 해줄게!!"
"저 언니 남자친구 있어요..."
먼저도 엄청 화려했던 사람이지만, 오늘은 그와는 다른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 같다.
평범한 남자 선배들이 아주 짧은 시간에 이 언니한테 마음이 뺏긴 것 같다.
여자인 나도 그런데. 남자 선배들이야...
"..."
건물 밖으로 나오니 한수빈이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이 짧은 시간에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었다.
괜히 설렌다. 저런 사람이 나를 보러 여기까지 왔다고?
진짜 무슨 일일까? 친해지고 싶어서? 그게 말이 돼? 뭐지? 왜 왔지?
김은정도 일단 한수빈의 옆에 자리를 잡는다.
"니네 학교 좋다."
"..."
"외각타고 가다가 보이는게 여기였구나. 처음 알았어."
"언니. 근데 진짜 무슨 일로..."
"그냥 심심해서."
"..."
"왜? 우리 그때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아. 그. 그렇긴 한데..."
"내가 보기와 다르게 여자친구들이 많이 없어."
"..."
"그날 진짜 좋았어. 은정이랑 화장 이야기 하고. 웃고 떠들고."
나라는 존재감이 이런 상대에게 어떤 큰 인식을 주었다는 것에 김은정의 마음이 두근 거린다.
한수빈이 그녀의 얼굴을 꼼꼼히 살피며 말했다.
"화장 잘 했다. 내가 알려준 걸로 한 거야?"
"아. 네. 친구들도 많이들 물어봐요. 어디서 배웠냐고."
"후후후. 그래. 잘 됐다."
"자기들도 해달라고 하는데. 제 얼굴은 몰라도, 애들 얼굴은 뭔가 해줘도 어색한 거 같고."
"아직은 조금 경험이 필요하지. 언니도 처음엔 그랬어."
평범한 대학생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나누는 주제는 너무나도 평범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매력적으로 의심없이 다가온다.
김은정은 자연스레 벽을 허물고 있었다.
"그! 그럼 진짜로 그냥 저 보러 오신 거라고요? 언니가?"
"그렇다니까. 왜? 그렇게 싫어? 나 갈까?"
"아... 아니요."
"남수도 부르지 마. 그냥 정말 지나가다가 혹시 있나? 잠깐 이야기 나눠볼까? 싶어서 왔어."
"..."
누군가가 나를 보고싶어 일부러 찾아온다. 평생 한번도 그런 일을 겪어보지 못한 김은정은 이미 한수빈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먼저 은정이 동아리도 기억이 나서."
"아. 네. 우리 그런 이야기도 했었죠."
"후후후 그러니까."
이런 사람이 나를...
이런 예쁘고 화려한 사람이 날...
김은정은 모든 벽이 무너져 내렸다.
"은정아."
"네."
그리고 그런 마음의 무장이 해제되는 걸 감지한 한수빈이 태연하게 물어본다.
"혹시 혜정이라고 알어?"
"네. 알죠."
"어떤 애야?"
"그냥 뭐. 인기좋던 애죠. 왜요? 언니 이혜정 보셨어요?"
"어. 예쁘더라. 뭔가 분위기 여신이던데?"
"전 언니가 더 나은 거 같은데."
"하하... 고마워. 근데 진짜 어떤 애야? 연예인 지망생인 줄 알았어. 깜짝 놀랬어."
"음. 이혜정 남자애들한테 인기 좋았죠."
"그럼. 여자애들이 싫어하는 그런 스타일?"
"아니요. 딱히 여자애들도 그렇게 싫어하는 애들은 없었을 걸요. 뭐 그냥 예뻐서 질투하고 그러는 정도는 있었어도."
"..."
"왜요? 갑자기 혜정이는 왜?"
"그냥. 좀... 마하랑 친한 거 같아서."
"아. 으음. 뭔지 알겠다."
김은정은 그녀에게 받은 게 있었다.
무엇보다 큰 호감을 얻고 있었다.
그녀의 입장에서 공감해주고 그녀의 고민을 해결해주고 싶었다.
"별로 신경쓰지 않으셔도 될 거에요."
"신경 쓸 뭐가... 있었어?"
"구마하랑 이혜정 이야기는 우리 학교 졸업생이면 모르는 애들이 없는데."
십년을 짝사랑하다 고3 들어 갑자기 엄청 가까워 진 두 사람의 스토리를 한수빈도 듣게 된다.
"..."
"다들 이혜정이 마하 갑자기 멋있어지니까 사귀는 거라고 했는데. 그래서 저도 남수 만나면서 궁금해서 한번 물어봤거든요."
"어... 남수는 뭐래?"
"남수가 절대 아니라고. 마하 걔 무슨 여자친구 사귀면서 둘이 아무 사이 아니라는 거 입증 됐는데. 그냥 둘이 애들 몰래 잠깐 만났다가 헤어졌다고 그러더라고요."
한수빈의 마음에 짙은 어둠이 차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표정에는 그늘 한 점 드러나지 않는다.
"어어~. 그렇구나."
"네. 그리고 우리 학교 졸업할 때 걔네들 단체로 스키장 여행도 가고 그랬는데. 거기 민서라고 또 하나 있었거든요?"
"응."
"얘도 막 마하 올림픽 나가서 메달 따고 이런 다음부터 걔랑 엄청 친한 척 하더니. 또 알고보니까 혜정이랑 친구라고 그러고. 남수가 스키장 여행사진 보여줬는데. 그냥 다 친한 거 같더라고요."
"..."
"걔네들 진짜 아무 사이 아니에요."
"후후. 그렇구나."
"언니. 저도 언니 만나면 하나 물어보고 싶었던 거 있는데.."
"어. 뭔데? 말해."
용건을 마친 한수빈이 가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김은정은 갑자기 냉담하게 변한 그녀의 모습에 약간 서운함을 느끼지만, 그래도 궁금한 게 있으니 용기내어 입을 연다.
"먼저 거기 주소 좀 알려주실수 있으세요?"
"어디?"
"언니 우리들 데리고 갔던데. 그냥 따라가서 어딘지 모르겠더라고요. 친구들이랑 같이 가보기로 했거든요."
"으음. 가지 마."
"네? 아... 가격이 좀 비싸긴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
한수빈이 김은정을 가엾다는 듯이 보았다.
"그런데 가면 너 상처입게 돼."
"왜요...?"
"은정아. 언니 말 잘 들어. 이거 진짜 내가 은정이니까 해주는 얘기야."
한수빈이 김은정에게 진심을 담아 전해준다.
"먼저 우리 갔던 그런 펍. 혹은 클럽들. 한번은 가도 돼. 하지만 두 번 세 번 드나들다 보면 누군가 너한테 다가올 거야."
"누가 저한테 와요...?"
"모르지. 하지만 굉장히 멋있고 젠틀하고. 그리고 널 정말 화려한 세계로 끌고 가 줄 수 있는 사람들이야."
"..."
"걔들을 보게 되면 넌 벗어날 수 없게 돼."
"...저 남자친구 있어요 언니."
"걔네는 그런 걸 신경쓰지 않어. 나도 그렇고."
"..."
"그리고 너만 상처입게 돼. 정말이야. 언니 말 믿어. 그런 데 가지 마. 너 같은 애들이 제일 위험해."
"언니...?"
"갈게. 정말 고마웠어 오늘. 그리고 내 말 명심 해. 절대 가지마. 그냥 여기서 놀아."
한수빈이 또각또각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간다.
김은정은 뭔가 불쾌하지만, 어디서 무엇이 불쾌한지는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 한다.
* * *
"후우. 후우. 아니야. 아니라고."
차로 돌아온 한수빈은 조용히 핸들에 머리를 기대고 씩씩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후우..."
떨리는 손. 점점 가빠지는 호흡.
그렇게 된 건가...
이혜정과 했던 많은 것들이 지금 우리 사랑의 바탕이 된 건가...
"아니야!! 아니라고!! 마하가 아니라고 했어!!!"
쿵쿵! 자꾸만 부정한 생각이 떠오르는 한수빈이 핸들에 머리를 찍는다.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아닌 그 애를 다정하게 쳐다보고 만지는 손길이 마치 내 몸에 느껴지는 것 같다.
"아악! 아아악!!!"
성대를 아껴야 할 가희가 미친듯이 고함을 질렀다.
"아니야... 아닐 거야... 진정해 한수빈..."
이마가 얼얼하고 눈에선 핏발이 서리는 기분이다.
목소리가 갈라지고 있었다.
당연하다. 그럴 수 있어. 그에게 여자가 있던 건 알고 있었잖아.
나도 남자가 있었어. 애시당초 우리는 그런 걸 따지고 시작한 사람들이 아니니까.
하지만...
"흑... 흐윽..."
그 사람이 아직도 옆에 있다는 건 다른 이야기잖아...
"니가 날 속였어..."
한수빈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 * *
서울대 도서관.
이어폰을 꽂은 채 조용히 공부에 집중하는 이도형에게 누군가 다가와 툭툭 건드려 주의를 준다.
"네? 왜요?"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가방을 가리켰다.
진동이 울리고 있어 그 소리가 온 도서관에 울려퍼지고 있다.
"아. 미안합니다."
번호를 확인할 새도 없이 이도형이 밖으로 나와 핸드폰을 꺼내보는데.
"또 뭐야..."
수빈이가 전화가 왔다. 지난 번과 같이 받을까 말까 고민하지만, 잠깐 바람이라도 쐬자는 마음에 이도형은 수신 버튼을 눌렀다.
"뭐 하는데... 왜 이렇게 늦게 받어..."
"여전히 맘대로구나. 용건 있어 전화를 걸었으면, 그정도는 기다릴 줄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언제는 안 그랬어..."
"너 목소리 왜 그래?"
"오빠... 어디야...?"
"도서관. 왜?"
"..."
"왜 그래? 너 지금 울어?"
혹시 둘이 헤어졌나? 하는 마음에 통화에 집중하는 이도형에게 한수빈이 말한다.
"오빠.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돼?"
"뭔데?"
"여자애 하나만 내 앞에서 치워 줘."
"..."
그럼 그렇지. 꼭 이럴 때만 전화하지...
녀석들이나 얘나. 왜 주변엔 하나같이 다 이런 놈들만...
아니. 어쩌면... 얘네는 그런 목적으로 나와 어울렸던 건가.
처음부터 난 그런 존재였던 건가...
우리 아버진 돈이 없으니까...
"나 이제 그런 짓 안 해. 끊어."
"오빠."
"안 한다고."
"나 어쩌면 오늘 아빠랑 저녁 먹을지도 몰라. 단 둘이."
"..."
"아저씨 여의도로 가셔야지."
"야. 너..."
이 썩을 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너까지 이렇게 내 자존심을...
"야. 끊어. 다시는 전화하지 마."
"제발 오빠 한번만."
"..."
"진짜 한번만 도와 줘... 제발... 너무 힘들어서 그래..."
지난 십여년 간 이도형은 한번도 그녀가 이런 절박한 목소리를 내는 걸 들어본 일이 없다.
한수빈의 간절한 부탁에 그의 마음이 약해지고 있었다.
"...일단 말해 봐."
"잠깐만..."
"그리고 니가 모르나 본데, 지금 세준이랑 원석이 다 한국 나가고 없어."
"오빠가 있잖아."
"하하하... 하하..."
"아니야. 오빠도 실망할 애 아니야. 애는 예뻐."
"뭔데? 대체?"
"오빠 동국대에 아는 친구들 있지?"
"뭐 찾아보면 있겠지..."
"이혜정이라고. 스무살이야. 애는 진짜 예뻐. 어떻게 보면 오빠가 좋아할 스타일이야."
"..."
"걔 좀 내 앞에서 치워 줘. 제발. 너무 싫어..."
그림자가 가장 길게 드리워지는 시각이었다.
한수빈의 어둠이 더 없이 넓게 뻗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