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타는 청춘 (7) >
아차. 감독님 때도 이런 농담 싫어한다고 대놓고 정색하던 수빈인데.
어떻게 해야하나. 너무 편한 나머지 들뜨고 말았구나.
"자기 학생 땐 인기 없었구나?"
"어...? 어. 말했었잖아."
"은정 씨 얘 어땠어요? 진짜 인기 없었어요?"
"네? 아. 마하 인기가. 하하..."
"은정아 학교에 나 아는 애들 거의 없었지. 그치?"
"음. 나도 그때 운동회 때 걔가 너라는 거 나중에 올림픽 끝나고 나서 알았어."
"운동회는 뭐야? 자기 뭐 했었어?"
"아. 운동회는 그러니까..."
"하하하! 누나 그건 제가 말씀드릴게요."
어떻게 자연스럽게 넘어간 건가? 감독님이 아니라 친구라 이해해주는 건가?
"자기 진짜로 안 유명했구나..."
"몇 번을 말해. 나 조용했다니까. 얘네랑만 놀았어."
"인간적으로 니가 조용했다고 하기는 어렵지 않냐..."
"그럼 내가 설치고 다녔냐? 나중에도 운동만 했지."
"그래. 그것도 뭐 사실이긴하지."
생각보다 재미난 시간이었다.
수빈이도 남수나 은정이를 대하는데 까딸스럽거나 이상한 반응을 보이질 않았다.
확실히 감독님을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친근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들을수록 고마운 친구들이네."
"고맙지. 앞에서 지랄하는 게 문제라 그렇지만..."
"니 하는 행동을 보면 지랄을 안 하게 생겼냐고. 누나 진짜 얘 우리가 사람 만들었어요. 그건 누나도 인정해주셔야 돼요."
"그때 자기 만났으면 달랐으려나?"
"하하하... 그때라... 완전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지..."
"이야~ 상상이 안 간다. 누나가 그때의 마하를 보셨다면..."
둘이 최대한 긍정적인 시뮬레이션을 그려보며 장난스레 떠들고 있으니, 수빈이가 은정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미안. 너무 우리끼리 떠들었죠? 나도 마하 친구들 보는 게 처음이라."
"아. 아니요. 괜찮아요. 이야기 듣는 게 재밌어서."
"다음엔 우리가 성남으로 갈게요."
"아 네... 저 근데요 언니. 저도 아까부터 하나 궁금했었는데."
"뭐?"
"화장 어떻게 하세요...? 눈이 너무 예쁘셔서..."
"후후. 화장 궁금해?"
"네... 배운 적이 없어서."
수빈이가 은정이 손을 잡고 일어섰다.
"음? 갑자기 어디 가?"
"화장실. 은정이 화장해주러."
"화장하러 화장실을 가...?"
"자기야. 썰렁한 농담하지 말라고 아까도 분명히 말했어."
"아니... 어. 어~ 오오~ 그렇구나."
"야. 나도 방금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그게 맞네."
"그러니까. 여자들은 또 그렇게 되는구나."
화장을 하는 곳이니까 화장실이 되는구나.
우리한텐 그냥 똥싸고 오줌누는 곳인데.
"갔다올게."
"누나 우리 은정이 좀 부탁드려요."
두 사람이 사라지고 남수와 둘이 남았다.
"신기하다. 처음 본 사람끼리 저럴 수 있나?"
"그러니까. 여자들이라 그런가? 바로 친해지네."
"미친 새끼. 근데 우리 은정이는 뭐냐?"
"그러는 넌 병신아. 자기야는 뭔데?"
"연상이잖아. 이름으로는 차마 못 부르겠더라고."
"아무튼, 보기 좋다."
"너네도."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십 분 이십 분. 남수와 둘 사이의 주제거리도 떨어지는데, 수빈이도 은정이도 돌아올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오래 걸리네. 누나 은정이 데리고 어디 갔나?"
"원래 여자들 화장하면 오래 걸리는 거 아냐?"
"짜증나는 새끼. 존나 여유있게 말하니까 더 재수없어."
"특히, 수빈이 화장하면 진짜 오래 걸려. 한 한 시간 잡는 거 같애."
"야. 근데..."
"뭐?"
"으음. 아니다."
"뭐? 얘기 해. 수빈이 얘기야?"
"그... 너네는 했지?"
"뭐야 이건 또... 진짜 황당해서 욕도 안 나온다..."
"아니. 그냥 둘이 여행 갈까 하고 있는데. 언제쯤 가는 게 좋을까 싶어서."
"꺼져 병신아. 너 이거 은정이 오면 다 얘기할 거야."
"아 좀 알려줘 봐. 난 그런 데 트라우마가 있잖아."
"너희가 사귄 지 얼마나 됐지?"
"지금 세 달 좀 지났어."
"피임 잘 해라. 혹시 모르니 생리 날짜 알아두고."
"미친놈아! 한번에 건너뛰지 말고!"
"니가 알아서 해 새끼야 하하!"
잠시 뒤 수빈이와 은정이가 돌아왔다.
우리도 아무 일도 없던 듯 두 사람을 맞아줬다.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자기는 모르지. 남수는 어때? 달라진 거 알겠어?"
"오~ 확실히 그러네요."
"어디가? 뭐가? 화장을 한 거야?"
"가만히 있어."
수빈이가 옆에 와서 앉고 남수와 은정이가 서로를 보며 수줍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네. 확실히 괜찮네. 느낌이 달라지긴 했다. 자연스러워."
"그래? 니가 봐도 괜찮은 거 같애?"
"어. 예뻐."
"됐어. 넌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오 저게 섹스하지 않은 남녀의 대화란 건가? 순애 적이다. 뭔가 간질간질한 게 있어.
그나저나 수빈이가 남을 꾸며주는 능력이 있었구나. 놀랍네.
"진짜 자기가 해준 거야?"
"응. 왜? 아닌 거 같애?"
"너무 오래 걸리길래 뭐했나 싶어서."
"아. 파우치가 차에 있었거든. 차에 갔다왔어. 겸사겸사 앉아서 화장 고쳐줬고."
차에서 화장했다는 말에 은정이가 나랑 남수를 보면서 뭔가 움찔움찔 거리고 있다.
"은정아 왜?"
"어? 어... 아니야."
카페를 나와 저녁을 먹고. 마지막으로 맥주 한 잔만 더 먹고 가자며 이동하고 있었다.
"어? 강남에 여기가 있었네. 은정아?"
"네?"
"이리로 와 봐. 아까 언니가 말한 거 알려줄 게."
"아. 네..."
갑자기 수빈이가 은정이 팔을 붙잡더니 화장품 가게로 들어가 쇼핑을 한다.
"진짜 여자들 화장에 관심 많구나. 아까도 둘이 화장 이야기 하니까 우리는 쳐다도 안 보더만."
"은정이 요즘 꾸미는데 관심이 많어. 쟤도 조용히 학교 다니던 애라."
"수빈이 화장품 진짜 많은데. 화장대 보면 무슨 막 화가야 화가..."
"넌 벌써 누나네 집에도 갔었냐?"
"하하하. 아 새끼 진짜 이상한데 관심 가지지 말고."
"역시 구마하... 역시..."
주제도 바꿀 겸 쇼핑 중인 두 사람을 보면서 말했다.
"아무튼, 쟤가 은정이구나. 농담 아니라 진짜로 오늘 처음 봤어. 애 괜찮네."
"누나도 생각이랑 좀 다르긴 하다. 굉장히 뭔가 도도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야. 다 좋은데, 그 누나라는 호칭은 어떻게 안 되냐?"
"누나는 누나지. 초면에 씨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그러니까 누가 연상 만나래?"
"흠. 이런 게 조금 걸리네."
여자들의 쇼핑은 끝날 줄 모르지만, 오랜만에 만난 우리도 시시껄렁한 농담을 즐기느라 지루한 틈이 없었다.
"진짜! 정석이도? 누구?"
"몰라. 나도 형한테 들었어. 수정이 누나도 봤다고 그러는데."
"아 이 새끼 나 어제도 만났는데, 그런 말 없었는데?"
"둘 중 하나지. 상대가 앞을 못 보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게이."
"미친 놈. 게이가 정석이를 상대나 해주겠냐?"
"그럼 앞을 못 보는 사람이구나... 아 이 새끼. 아픈 사람을 그렇게..."
"어어 어! 마하야. 걔다 걔!"
"누구? 너 뭐 의심가는 애 있어?"
"선아. 김선아!"
"선아? 스키장 멤버?"
"어!"
지난 여름. 내가 대회 때문에 나가 있는 동안 친구들은 거의 매일같이 형네 모여 저녁마다 술 마시고 고기 먹고 했는데, 그때 이상하게 선아가 자주 보이더란다.
"에이. 그거 가지고 무슨..."
"아니 진짜야! 정석이 이 새끼 은근 그쪽으로 뭘 엄청 많이 줘."
"하하! 야. 그거 가지고 둘이 사귄다고 하기엔."
"아니냐? 우리한텐 칼같이 돈 받는데 거긴 왜 줘? 무엇보다 지 여자친구 사귀는 건 왜 숨기는데. 우리가 아는 애들이니까 숨기는 거잖아."
"그런가? 듣고 보니 나름 그럴싸한데?"
선아라. 선아도 귀엽게 생겼지.
무엇보다 혜정이랑 베스트 프렌드 민혜, 선아가 아니던가.
크리스마스도 함께 보내고 스키장 여행도 다녀오고. 접점이 있다보니, 또 어떻게 그렇게 연결 될 수도 있겠구나.
"야."
"아 이 새끼. 이따 전화해야겠네. 선아랑 정석이라고?"
"남수야. 그럼 선아 올 때 거기 혜정이도 있어?"
"혜정이는 안 와. 선아도 우리 모르는 애들이랑 있었어."
"음. 그렇구나."
"진짜 아까 혜정이 이야기 나올까 식급했는데, 누나도 좀 민감하게 반응하던 거 맞냐?"
"모르겠어. 여자 농담 이런 거 싫어해."
"조심해 새끼야."
"내가 했냐? 니가 했잖아 병신아!"
그 순간 뒤에서 수빈이 목소리가 들렸다.
"둘이 왜 싸우고 있어?"
"어? 왔어."
"오래 기다리는 거 같아 서둘렀더니. 다행히 재밌게 있었네."
"오래 기다리니까 재밌게 있지. 살 건 다 샀어?"
"응."
살 거 다 샀다는 사람은 빈손이고. 끌려가 들어갔다 나온 은정이는 큰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다.
수빈이는 늘 그렇듯 혼자 싱글벙글이고, 은정이만 조금 당황스런 얼굴로 남수한테 쇼핑백을 보여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건넸다.
내가 생각하는 게 맞구나. 남수도 바로 놀라서 물어본다.
"진짜로? 아 누나 왜 그러셨어요."
"뭘?"
"누나가 이거 다 사주셨다면서요?"
"그냥 선물 해준 거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괜찮아. 은정아 너도 괜찮다며?"
"아. 그냥 남수가 물어보길래..."
선물이란다. 화장품도 처음에 준비하려면 이것저것 살 게 많아서 좋은 마음에 해줬단다.
뭔가 선물인데, 내 호의를 거절하지 말라는 식으로 들리는 모습이다.
수빈이가 은정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감사한데, 그래도 너무 큰 돈 쓰신 거 아닌가 싶어서..."
"괜찮아. 부담 안 가져도 돼. 싫으니?"
"아. 그건 아니고요..."
"남수가 먼저 마하한테 잘해준 게 많으니까. 정말 부담가지지 않아도 돼."
"..."
어. 음. 흐음. 아 모르겠네. 이걸 뭐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그래. 받어. 남수가 줬다고 생각해."
"자기야. 좋은 생각이다?"
"너도 괜찮지?"
"어? 어. 뭐 그럼. 하하! 들었어? 사람이 착하게 사니까 이런 일이 있네."
"응. 으음..."
남수가 나한테 해준 고마움을 왜 주변에...? 아니. 그걸 왜 자기가...?
아 모르겠네. 물론 수빈이가 그렇게 생각해주는 건 좋은데.
은정이도 마냥 좋아하긴 부담되는 거 같고...
뭐라고 해야되나...? 애매해서 모르겠다.
조금 남수와 은정이 눈치를 보고 있는데, 수빈이가 다가와 와락 팔짱을 끼며 말했다.
"가자 자기야! 3차는 내가 살게."
"어어? 누나 안 그러셔도 돼요! 제가 낼게요."
"괜찮아. 내가 사주고 싶어서 그래."
한수빈이 안내하니 그 분위기가 어디 평범한 대학생들이 쉽게 받아들일 만한 곳이겠는가.
나도 좀 눈이 휘둥그려지는 멋진 펍에 들어왔다.
"..."
"와~ 마하야... 여기는 또 뭐냐..."
"멋있네.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장소 같은데?"
"분위기 좋지? 그치? 은정이는 어때?"
"네. 좋아요..."
"후후 가서 앉자."
좌석도 펍에서 제일 좋은 곳으로 안내받는다.
자리에 앉아 슬쩍 메뉴판을 보는데. 어이고야...
"저기... 자기야?"
"이리 줘."
수빈이가 메뉴판을 보면서 먼저 은정이한테 물어보았다.
"은정이는 술 뭐 좋아해?"
"저... 저요? 저 술 그렇게 많이 안 마셔봐서."
"그럼 칵테일로 할래? 언니가 추천해 주는 거 마셔 봐."
그럭저럭 어떠한 순간에 한수빈이 기분이 좋고 아닌지를 알 수 있었다.
왜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수빈이는 나름 지금 순간을 최대로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건?"
"어... 모르겠어요. 처음 보는 거라..."
"그럼 먹어 봐. 이거 맛있어. 은정이는 이렇게 마시고, 남수는?"
"전 그냥 맥주로 할 게요."
"자기는?"
"골라 줘. 나도 몰라."
"으음. 자기 취향은- 흑맥주로 할까?"
"그래. 근데 잠깐만. 나 화장실 좀."
"갔다 와."
남수가 자기도 같이 가자며 성크성큼 따라 나섰다.
"여자들도 아니고 뭔 남자가 화장실을 같이 가냐."
"야. 이렇게까지 안 해줘도 돼."
"뭘...? 내가 해주는 게 뭐가 있는데? 지금 다 수빈이가 하고 있구만."
"아니. 그러니까. 이것도 니가 내는 거 아냐? 너 아까 그 메뉴판 봤어?"
"남수야. 그냥 즐겨. 괜찮아."
"새끼야 니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못 들었어? 자기가 산다잖아."
"..."
"내가 내는 게 아냐. 아까 화장품도 여기도. 다 수빈이가 사는 거야."
"..."
남수도 놀란 듯 우리가 있던 자리를 돌아보았다.
"누나가 왜?"
"모르지. 너네가 마음에 들었나 보지."
"...칵테일 한 잔이 아까 우리 먹은 밥 값이야."
"수빈이 처음 만났을 때 어땠는지 기억 안 나냐?"
"..."
"그러니까. 그냥 신경쓰지 말고 즐겨. 보니까 지금 저렇게 해주고 싶어 저러는 거야."
"왜? 우리가 뭘 어쨌다고?"
"말하잖아. 너가 나한테 잘해준게 많다고. 그게 고맙다잖아."
"그걸 왜 누나가 그래? 니가 아니라?"
"날 너무 사랑해서 그러나보지..."
남수도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뭔가 감동적이면서 무서운데?"
"무서울 것도 많다. 아무튼 오줌이나 누자. 쌀 거 같애."
둘이 쪼르륵 거리고 오줌을 누는데 남수가 물어본다.
"야."
"어."
"저 누나는 대체 돈이 얼마나 많은 거냐?"
"...많어. 우리가 아는 그 이상으로."
부담되는 것들 빼곤 나쁘지 않은 순간이었다.
어찌됐든 남수나 은정이도 이런 분위기나 장소를 싫어하지 않았고, 나도 덕분에 좋은 데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끝나는 시간엔 알게 모르게 둘이 작은 다툼을 해야만 했다.
11시 정도에 끝났는데, 애들과 헤어지는 과정에서 수빈이가 끝끝내 택시를 태워 보내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늦었으니까 그러지. 택시비도 내가 먼저 카드로 계산하면 되고."
"그러니까. 뭐하러 계산을 먼저 하냐고 얼마 나올지도 모르는 거. 무엇보다 아직 버스가 있는데."
"자기야 말로 왜 애들한테 힘들게 버스를 타고 가라고 그러는데."
"괜찮아요 누나! 성남이 여기서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고."
"정말요 언니. 둘이 갈 게요. 진짜 괜찮아요!!"
"..."
결국 어찌어찌 두 사람을 보내고 우리도 수빈이 차를 타고 돌아가고 있었다.
올 때와 똑같이 수빈이가 운전중이었다.
"그게 이상해? 내가 실수한 거야?"
"고마운데. 일단 애들이 싫다잖아. 자꾸 왜 그래..."
"싫어...? 그게 왜 싫어? 난 편하게 가라고 하는 거잖아. 나야말로 지금 술도 못 먹고 하루종일 운전이나 하고..."
"자기야 봐 봐. 이건 편하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부담이 된다고. 아까 술집이나 은정이 선물해 준 화장품이나."
"그거 얼마 안 했어."
"자기한테나 그렇겠지!"
"알았어... 그만 얘기해... 싸우고 싶지 않어."
좋은데. 아 주변을 챙겨주는 건 너무 좋은데...
다른 사람의 감정을 모르는 건가?
부담이 된다는 걸 왜 못 느끼지?
그날 밤 남수에게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으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잘 갔냐."
"어. 은정이 데려다주고 지금 집에 걸어가는 중."
"커플끼리 같은 동네 사니까 좋네."
"그런 맛에 동창 만나는 거지."
"오늘 재밌었다. 뭔가 마지막이 좀 다이나믹 했지만..."
"하하하. 야 근데 수빈이 누나 페라리 타? 은정이가 아까 화장 고치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고 그러던데."
"페라리 아냐."
"말 그림 있었다고 그러던데? 스포츠카 같이 생겨서."
"포르쉐야. 페라리 아냐."
"하하하... 누나 진짜 정체가 뭐야?"
"남수야. 오늘 재밌었어?"
"어. 재미는 있었다. 진짜 재밌었어. 그 누나는 만날 때마다 사람을 놀래키네."
"그래. 재밌었으면 됐어. 쉬어라."
모르겠다. 마냥 좋아하기엔 그녀의 감정이나 행동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형 말이 생각난다.
마르지 않는 샘이 사람을 풍족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너무 어렵다.
이런 식이면 시간이 갈수록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 왠지 더 멀어질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