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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기로 가버렷-149화 (149/401)

< 불타는 청춘 (4) >

"역시 괜히 얘기 하라고 한 거 같애요..."

"왜?"

"뭔가 언니랑 오빠랑 절 대하는 게 조금 달라지시는 거 같아서..."

"놀란 건 있어도, 우리가 널 보는데 크게 달라지는 건 없어. 그런 걱정 하지 마."

"근데 오빠는 왜 굳이 멀리 떨어져서..."

"마윤 씨? 원래 저래."

"...원래 같이 안 있는다고요?"

"응. 어딜 가도 대화도 잘 안 하고 놀러가도 그냥 자기 구경하기 바쁘고. 나도 그냥 돌아다녀라 하는 편이야."

"그러다 누가 데려가기라도 하면..."

"하하하! 마윤 씨가 무슨 반려견이니? 누가 데려가. 다 큰 성인 남자를."

"보세요."

혼자 멀찌감치 여의도 빌딩들을 올려다보고 있는 구마윤에게 어떤 여성들이 다가가 말을 걸고 있었다.

"뭐 어때. 생기기를 그렇게 생겼는데. 감수해야지."

"언니는 불안하지 않으세요?"

"글쎄다. 저거 봐. 알아서 커트하네."

원수정이 구마윤을 보며 말한다.

"마윤 씨는 세상이 궁금한 사람이야. 늘 가게만 붙어있으니까. 이럴 때라도 숨 좀 쉬게 해주는 게 좋아."

"..."

"넌 마하가 너만 봤으면 좋겠어?"

"네... 전 못 견뎌요."

"후후. 그래 그게 여자의 마음이겠지."

구마윤이 이제는 행사가 준비되는 단상을 구경하고 있었다.

무대를 준비하는 사람들. 마이크를 세팅하는 사람들. 다양한 직업을 둘러보는 구마윤에게 또 한 무리의 여성들이 다가가 괜히 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하지만 이번에도 은은한 미소만 지어보일 뿐이다.

"그래. 그래. 좋지 이것들아? 많이 보고 가. 언니가 오늘 선심 쓸 게."

"...저도 이거 해봤는데, 전 되게 초조했는데."

"하하! 마하 시험해봤어?"

"아니요 그게 아니라. 얘가 자신을 너무 모르더라고요. 자각하라는 의미에서."

"뭘? 어떤 걸 몰라?"

"지가 멋있다는 걸..."

"후후. 모를 거야. 모르지. 솔직히 나도 마하 보면 좀 낯설은 건 있어. 갑자기 애가 확 변해가지고."

"..."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깨달으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야. 마윤 씨도 처음엔 그랬어."

원수정은 주제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아무튼 걱정하지 마. 재벌이든 뭐든, 우리가 널 특별하게 생각하고 그럴 일은 없어. 우리도 살아온 인생이 있는데 한 순간에 사람을 달리 보거나 하진 않어."

"다행이네요..."

"정말이야. 언니 말 못 믿니?"

"아니요 그런 건 아니지만..."

"나도 그렇고, 마하나 마윤 씨도 그래. 특히 저 형제는 누구보다 널 받아들인 사람들이야."

"마하는 그렇다쳐도. 오빠는 왜요? 제가 뭘 어쨌는데요?"

"어제 저 형제가 부모님 이야기를 꺼냈잖아."

"아. 네."

"솔직히 조금 놀랬어. 마윤 씨가 자기 이야기를 꺼내다니. 절대 어디서도 그런 말 잘 안 하는 사람이거든."

"아픈 이야긴가요?"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지."

원수정은 구 씨 형제 이야기를 들려준다.

탈북자라는 배경만 다를 뿐. 차원을 넘어오고 난 뒤의 상황은 다를 게 없었다.

한수빈도 두 사람의 성장 배경에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 정말요?"

"응. 그래서 형제들만 국경을 넘어왔데. 부모님 생사는 아무것도 모르고."

"..."

"마윤 씨는 학교도 못 다녔어. 초중고 전부 다."

덤덤하게 연인을 바라보는 원수정의 목소리에 한수빈의 상식이 부서지는 것 같다.

마하도 그렇고 구마윤도 그렇고. 저들 형제는 그녀와는 너무 먼 인생을 걸어왔다.

"그나마 먼저 함께하던 사장님이 어디가서 무시 받지 말라고 검정고시 치루라고 해서 졸업장은 땄는데. 은근 속에선 걸리는 게 있었나 봐. 마하 대학가고 누구보다 마윤 씨가 좋아한 걸 보면."

"근데, 이런 이야기 언니가 하셔도..."

"그럼. 너도 마하한테 니 이야기 우리한테 해주라고 했다면서. 연인이면 서로 알 건 조금씩 알고 있어야지."

"아. 네."

"참고로 나는 굉장히 평범한 집안 딸이야. 하하~"

"하하하..."

한수빈도 멀리 구마윤을 한번 돌아본다.

"오빠 누구보다 지적인신데..."

"부모님한테 받은 지혜를 간직하면서 사람들을 겪고 배웠다고 하더라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회에서 깨우친 거지."

"사람이 멋있는 이유가 있네요..."

"잘 생겨서 좋아하느냐? 물론이지. 하지만 내가 저 사람을 사랑하는 건 단지 외모만이 전부는 아니었어."

"그럼요?"

"그런 사람이니까. 저런 아픔이 있는 사람이니까. 그에게 의미가 있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어지는 순간 사랑에 빠졌던 거 같애."

늦여름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공원에서. 한수빈이 사랑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얻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픔이 많은 사람이야. 마하도 그렇고. 마하가 자기 자신을 모른다고 해도 너무 그렇게 대하지는 말아 줘. 쟤야말로 자기 자신을 알기 전에 너무 빠르게 많은 것들이 변해버렸어."

집안 이야기 하기 싫다더니 숨기고 싶은 이유가 있었구나...

일본 엄마라고 놀림 받은 건 문제도 아니었네...

나를 배려해준 게 아니야. 그에게 아픔이 있었던 거다.

한수빈이 묘한 동질감과 연민을 느끼며 물었다.

"언니... 마하는 어떤 애였어요?"

"조용했지. 운동하기 전에는 얼굴도 잘 안 들고 다녔어. 자신감도 없고. 그래서 마윤 씨도 걱정 많이 하고."

"지금 모습을 보면 상상이 안 가요..."

"노력을 많이 했어. 진짜 가끔 한 번씩 볼 때마다 애가 달라지는데. 뼈를 깎고 있구나 싶은 게 보였어."

"..."

원수정은 구마하의 과거에 대해서도 큰 얼개로 알려주었다.

외모 자존감이라든지, 그럼에도 곁을 지켜준 세 사람의 친구들이라든지.

한상률 이주영 선생과의 만남. 그리고 자신과의 만남.

"아. 정말요? 원래는 오빠 여자친구 만나는 것도 싫어했었다고요?"

"응. 그래도 마하가 나는 많이 좋아해줬던 거 같애. 그래서 마윤 씨도 다른 여자들과 다르게 나한테 더 믿음을 준 거 같고."

"언니."

"응?"

"저 언니 전화번호 알려주시면 안 돼요?"

"정말? 그럼 나도 너 연락처 알게 되는데?"

"제가 더 전화 많이 할 거 같은데요."

그녀는 이미 그들과 가족이었다.

친분이 깊어질수록 두 사람의 대화도 깊어진다.

한수빈은 원수정에게 결혼에 관하여 물었다.

"방금 해준 이야기들 같은 게 있어서. 어른들이 마윤 씨를 조금 탐탁치 않게 보는 시선이 있어."

"마하가 스포츠 영웅인데도요?"

"아무리 마하가 국민영웅이여도 어른들 시각엔 동생이 아닌 형을 보니까."

"그게 뭐라고..."

"후후. 나도 그래서 그냥 다 무시하고 둘이 식 올리자고 했는데. 마윤 씨가 절대 그래선 안 된다고. 그래서 그냥 마하도 나갔고. 둘이 같이 지내고 있어. 나름 신혼 같애."

"외국에선 동거들 많이 하잖아요."

"그렇지. 드레스를 안 입으면 어때. 이미 드라마 같은 사람과 함께 있는데. 그 정도는 감수할 거야."

"잘 되실 거에요. 언니 결혼 때 제가 꼭 드레스랑 다 맞춰 드릴게요!"

"얘. 부담 돼. 그런 거 하지 마."

사랑받고 싶었다. 너가 나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주었다.

그 말의 진의를 알게 되면서 한수빈의 애정이 또 한번 커져가고 있었다.

"아무튼, 둘 다 대단한 형제들이야. 인물도 그렇고. 능력도 그렇고. 마윤 씨는 자기 집 열 아홉인가 샀어."

"정말 어떤 부모님인지 한번 꼭 뵙고 싶네요."

"우리보다 저 둘이 더 보고 싶겠지."

"전 절대 안 놓칠 거에요."

"그래. 언니도 응원할게."

"네!"

행사가 시작되었다. 우선 구마하와 브라운 제임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국을 첫 방문하신 브라운 제임스에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한국에 대한 첫 인상은 어떠신가요?"

브라운이 미소를 지으며 옆에 앉은 구마하를 돌아보며 답해준다.

"코리아에 대한 첫 인상을 말하기에 앞서. 우선 나의 형제에게 이 말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이번 육상세계선수권 우승을 축하한다고."

구마하도 마이크를 잡으며 답해준다.

"어. 저는 브라운에게 다음엔 너도 꼭 NBA 우승을 할 거란 말을 전해줄게요."

"하하하! 헤이 맨?! 왓 더?"

"요 브라더. 땡큐."

"구. 영어가 많이 늘었는데?"

"공부 많이 했지. 나 너한테 보내는 이메일도 내가 쓰는 거야."

"그래서? 기껏 공부해서 먼 나라까지 와서 만나는 친구에게 한다는 말이 겨우 그거냐?"

두 사람이 장난스레 티격태격 거리는 모습에 구경하던 관중들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기자들도 신이나서 질문을 이어가고, 브라운과 악수를 나눈 구마하가 해명발언을 이어갔다.

"장난이죠. 브라운은 원체 대단한 선수니까요. 농구가 팀 경기가 아닌 개인종목이었다면 늘 우승을 했을 겁니다."

"땡큐. 브로."

"하지만 농구는 팀 경기라는 게 문제죠."

"셧 업!!"

브라운 제임스가 마이크를 잡고 말한다.

"기자님. 한국에 대한 첫인상을 물으셨죠? 이곳은 최악의 나라입니다."

"하하하! 구마하 선수? 이 책임을 어떻게 감당하실지 여쭤봐도 될까요?"

"음. 국민 여러분들게 사죄드리겠습니다. 경솔한 언행으로 나라의 위신을 깎아먹었네요."

기자회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고 있는 구마하를 대학 동문 고익범과 서재민이 지켜보고 있었다.

"와... 쟤는 안 떨리나?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

"뭐 떨려. 이거보다 더 많은 관중들 앞에서 우승도 하는데."

"저렇게 보니까 진짜 다르구나..."

"후우..."

"익범아 왜 그래?"

"재민아. 내가 농구로 마하 정도 인기 얻으려면 대체 뭘 해야 될까...?"

"글쎄다. 프로 우승?"

"작년 한국 프로농구 우승팀이 어딘지 알어?"

"몰라."

"후후. 멋지다. 멋진 놈이야. 쟤나 너나."

"그럼 넌 올해 윔블던 우승자가 누군지 알어?"

"페더러."

"에이 씨. 거긴 유명하잖아..."

"한국 농구는 안 유명하냐? 서장훈 선배는 아시아 최고의 선수셔!"

고익범 서재민 옆에는 이도형도 자리하고 있었다.

"..."

진짜 배짱이 다른 놈이구나...

수빈이도 그런 모습에 반했던 거겠지...

행사는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원래는 구마하의 육상 시범도 같이 펼쳐질 예정이었으나, 공간 활용도나 브라운 제임스라는 멀리서 온 손님을 생각해 모든 포커스를 농구 경기로 맞췄다.

여의도 공원에 마련 된 NICE 농구 코트에서 브라운 제임스가 참가자들과 가벼운 슈팅 경기를 펼치고 있는데. 서너명의 주한미군이 다가가 그에게 인사를 건넨다.

"아 그래? 친구가 군대에 있었어?"

"어! 여기는 나랑 같이 주니어 스쿨 때 운동하던 친군데. 군인이 됐다곤 들었지만, 설마 한국에 와 있을 줄이야. 인사 해 브로. 알지? 챔피언."

"헤이 맨."

"여. 땡큐 포 서비스. 군인들 만나면 이렇게 인사하는 거라고 들었는데."

"오~ 땡큐."

"헤이 마하. 그런 리스펙을 왜 나한테는 안 보여주는거야?"

"하하! 장난이었다니까."

브라운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기쁨의 포옹을 나누며 구마하에게도 그들을 소개시켜주었다.

오가는 정다운 인사 속에 브라운과 미군 친구는 서로에 대한 디스를 아끼지 않는다.

"그때도 잘하긴 했지만, 너가 NBA 선수가 될 줄이야... NBA도 이제 끝났군."

"하하! 난 너 같은 놈이 군인이 됐다는 게 더 세계에 위험할 거 같은데?"

동양이나 서양이나 우정은 어쩔 수 없구나.

구마하가 브라운과 미군 친구의 대화를 들으며 웃는데 그들이 물어본다.

"진짜로? 시리어스리?"

"슈어."

"하하! 어이 마하! 이 친구가 시합으로 승부를 보자는데?"

"뭐야? 나도?"

"어떠십니까? 3:3으로. 브라운과 미스터 구. 그리고 다른 한분이 붙으면. 게임이 될 거 같은데."

미군 친구는 자기들도 부대 내에서 계속해 농구를 하고 있다며 브라운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음. 근데."

"하세요! 구마하 선수! 꼭 승낙하세요!!"

"네?"

곁에서 그들의 대화를 엿든던 NICE 관계자가 적극적으로 이 시합이 성사되도록 밀어붙이고 있었다.

"근데... 내가 농구를 몰라서. 신발도 그냥 운동화고."

"구마하 선수 발 몇이죠? 이봐! 준비 된 신발 다 가지고 와."

"..."

"구. 돈 워리. 내가 있잖아."

"음. 그럼 잠깐만. 나도 농구하는 친구가 오늘 여기 찾아와서. 데리고 올게."

구마하가 멀리 지켜보던 고익범을 찾아가 사정을 설명했다.

"에이 됐어! 내가 어떻게?"

"야. 나는 그럼 어떻게? 축구는 몰라도 난 농구 진짜 몰라. 거의 해본 적이 없어."

"와... 브라운도 브라운이지만... 미군들이면 저쪽도 몸 장난 아닐 건데."

"익범아 가 봐! 너도 미국에서 농구 했었잖아! 뭐 어때!"

"그래. 나도 하나 정도는 좀 편한 친구가 있어야 마음이 놓이지. 같이 하자."

"아니... 그렇긴 한데..."

서재민까지 적극적으로 응원 해줘 고익범이 구마하를 따라 나선다.

"여기는 내 친구. 영어 잘해. 미국에서 운동했었어."

"오~ 헤이 맨."

"하하... 반갑습니다. 우와... 진짜 브라운... 콜 미 저스트 고."

"고?"

"라스트 네임이 고에요."

"하하! 오케이. 고."

고익범은 미국 고교팀까지 진학했으나 주전 경쟁에 밀려 한국에 들어온 선수였다.

브라운이 관심있게 지켜보며 물었다.

"그럼 다닌 학교는?"

"5A였어요."

"음. 포지션은 가드?"

"네. 지금은 포워드를 맡고 있지만."

"가드를 부탁해. 됐군. 우리가 이겼어. 구. 잘 데리고 왔어. 팀이 딱 좋게 짜였어. 센터와 가드가 준비되다니. 해볼만 해."

"왜? 뭐가? 익범아 뭔데? 난 뭐하면 돼?"

"브라운도 너가 센터 보면 되겠다고 말하네. 넌 점프력도 좋고 몸도 튼튼하니까."

"아니. 난 농구 문외한이라니까."

"센터 몰라? 채치수."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수비야? 뭐야? 그냥 골밑에 있으면 되는 거야?"

"..."

브라운은 고익범에게 설명해주라 말하고 상대방 진영을 찾아가 규칙을 논한다.

"너 진짜 몰라? 슬램덩크 안 봤어?"

"봤는데. 나 대충 해남? 윤대협? 걔네 나오는 데부터 봤는데."

"후우... 마하야..."

농구의 초심자가 알아야 할 내용은 대부분 앞부분에 있건만...

미국 출신 농구 선수 다섯 사람이 있는 경기에 뛰어들게 된 구마하.

과연 승부의 향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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