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이기에. 처음이니까. 처음이라서. (4) >
한수빈의 첫 사랑은 열 다섯에 만난 서울대 법학과 과외선생으로 어딜가나 당당하고 지적인 매력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공식을 대입해 보면)
(선생님.)
(뭐 이해 안 되는 거 있어 수빈아?)
(선생님도 야한 거 봐요?)
(뭐...! 가. 갑자기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지금!!)
청소년이 된 한수빈은 자신의 사회적 파워를 깨달으며 상대방을 조종하는 법을 알아가고 있었다.
(선생님 저 좋아하죠?)
(아. 아니 내가 왜...)
(으음~ 난 선생님 좋아하는데.)
(...)
(저 예쁘지 않아요? 솔직하게?)
(예... 예뻐...)
(후후후. 선생님 여자친구 있어요?)
(그 그럼... 있지...)
(그럼 그 언니랑 키스도 하고 그래요?)
(수... 수빈아 너 왜 이래...?)
(후후. 나한테도 키스 해줘요.)
(...)
(빨리. 안 하면 엄마한테 선생님이 나 이상하게 쳐다본다고 말 할 거야.)
(이... 이러지 마. 응?)
(후후후. 그럼 빨리 해줘요. 자 여기.)
한수빈은 그와 3년의 줄다리기 끝에 처음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바로 입대를 선택. 좋아한다고 내 곁에 있으라 했지만, 그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사법고시를 앞두고 있음에도 그녀에게서 도망쳐 버렸다.
그 후로도 한수빈은 수많은 상대를 만나 자기 기분대로 휘두르고 다녔다.
절대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해주지 않았다. 섹스든 연애든, 애무는 물론이고, 오럴도 용납하지 않았다. 심지어 뒤로 하는 자세도 어딘가 굴욕적이란 기분에 요구하는 자가 있으면 뺨을 때리고 내쫓아 버렸다.
그럼에도 섹스는 즐거웠다.
알게 모르게 강요되는 반듯한 삶에서 그것들은 족쇄를 풀어놓는 즐거운 오락이었다.
그렇게 7년 뒤. 스물 두 살의 성인이 된 한수빈은 자신이 알고 있는 성적인 경험 그 이상의 것을 전해주는 남자를 만났다.
"자기야 아직도 그래?"
"만지지 마... 진짜 온몸이 몸살 걸린 거 같이 예민하단 말야 지금..."
"오래가네..."
자존심 세우고 일방적인 관계는 그에게 통하지 않았다.
이런 멀티 오르가즘도 처음이었다.
아직도 수빈은 맥박이 두근두근 뛰고 있다.
십 분이 지났는데도 진정 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그곳도 그의 감각이 남아 얼얼하게 두드리는 것 같다.
가벼운 콧바람이 스쳐도 온 몸이 민감해지는 기분.
하얀 패브릭 소파 여기저기 두 사람의 사랑의 흔적이 얼룩져 모든 감각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주고 있다.
"근데 자기야 나 궁금한 게 있는데."
"뭐...?"
"엄청 예민하단 사람이 왜 안겨있어...?"
"..."
양 무릎을 끌어안은 채 가만히 안겨있는 연인을 보며 구마하가 물었다.
몸이 닿는 게 민감하면 혼자 있는 게 낫잖아? 왜 내 위에 올라와 있지?
그러자 한수빈은 조용히 원망 가득한 표정으로 소파를 돌아본다.
구마하도 눅눅하게 젖어있는 소파를 보며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하하하... 미안."
"그러니까 내가 그만하랄때 그만 했어야지."
"좋아하는 거 같길래..."
"아니라고!"
구마하는 오르가즘이 꼭 그렇게 좋은 게 아니라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너무 단 걸 먹으면 혀가 마비되듯, 감당하기 어려운 쾌락이 조금 고통스러웠다는 말에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래? 몰랐어."
이 무슨 단순하고 무책임한 놈이란 말인가...
한수빈은 막막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분명하게 경고한다.
"다음부턴 내가 그만 하라면 거기서 멈춰 알겠어?"
"응."
"다음에도 아까같이 그 그렇게 막 하면..."
"하면?"
"그... 그러면..."
그녀는 지금 자신이 어떤 시선으로 그를 보는지 알고 있을까?
원망 가득한 눈빛에 감출 수 없는 애정이 피어나고 있었다.
다음에도 또 그런 섹스가 된다고?
앞으로 매번 이 사람과 할 땐 그런 기분이 될 수 있다고?
그걸 거부할 수 있나...?
구마하는 수빈의 동공이 떨리는 걸 보며 무한한 애정이 솟아오른다.
집안도 그렇고 씀씀이도 그렇고, 배짱 좋고 대범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 은근 소박한 면이 있구나.
"자기야."
"나 아직 말 안 끝났어."
"농담 아니라 진짜 너무 예쁜 거 알어?"
"뭐... 뭘? 내가 뭘 어쨌는데...?"
"방금 그렇게 화내면서 나 딱 쳐다보는데 눈빛이 어우~"
"..."
내적 갈등을 겪는 그녀의 이중적인 표정에 다 죽은 줄 알았던 구마하의 몸이 네 번째 기지개를 펼쳐 수빈의 엉덩이를 찔렀다.
한수빈은 깜짝 놀라 목소리가 커졌다.
"이... 이건 또! 가 갑자기 왜 서!!"
"하하하~ 나한테 뭐라고 하지 마."
"자기 몸이잖아!!"
"내 몸인데, 이 자식은 나와는 다른 지휘계통을 따르는 놈이라."
"후우..."
한수빈이 구마하를 돌아보며 양 볼을 찰싹 붙잡는다.
"우?"
"너 내 눈 보고 똑바로 말해. 그동안 여자 몇 명 만났어?"
"구. 구뤃게 묺이 문눈 구 우니루구 주눈 분에도"
"똑발로 말하라고. 뭐라는 거야."
"불울 줌..."
한수빈이 양 볼을 놔주자 구마하가 뻘쭘하게 웃으며 답한다.
"먼저도 얘기해 줬는데? 많이 안 만났다니까?"
"근데 왜 이래...?"
"그냥 자기가 좋으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제일 기분 좋게 해주려고 그랬지."
"..."
너무나 귀엽고 깜찍한 순수한 마음이 아닐 수 없는데.
근데 왜 행동은 그렇게 짐승같이 굴었던 걸까...
서로 맨 몸이 닿아있어 구마하도 그녀의 고동을 알 수 있었다.
한수빈의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며 온 몸으로 퍼져간다.
그럼 앞으로도 매번 할 때마다 아까 같은 쾌감을 느껴야 한다는 거야...?
이걸 좋아해야 돼, 말아야 돼...
세상에 두려울 것 없는 사람이 보여주는 연약한 표정에 구마하는 기사도를 발휘했다.
"알았어. 다음부턴 살살 할 게."
"진짜?"
"응! 자기가 싫다면 안 해. 약속. 난 절대 상대방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섹스는 하지 않어."
"...정말이지?"
"물론이지! 내 여자친구 내가 지켜주는 건 당연한 거야!!"
"..."
"근데 나 이렇게 크게 얘기해도 돼? 옆 집에 울리는 거 아냐?"
"괜찮아. 우리 집 방음 잘 돼."
"오오~ 확실히 조용하긴 하다."
마침내 한수빈의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두 사람은 몸을 씻고자 샤워실로 이동했다.
아까와 달리 이번엔 구마하가 그녀의 몸을 구석구석 씻겨주고 있었다.
"따뜻하지 그치?"
"응."
"다리 벌려 봐."
"아 됐어! 여긴 내가 씻어도 돼!!"
"왜? 내가 해줄게?"
"다 씻었으면 나가있어."
"이상하게 갑자기 부끄러워하고 그러지?"
"아하하... 그냥 좀 비켜 제발!"
한수빈이 뜨거운 물 아래서 곰곰이 계산을 해본다.
클럽에서 첫 만남에 1200만원. 그 다음 음악회와 뒤풀이에 또 1000만원 가까운 금액이 나갔고. 세계선수권 응원도 무시할 수 없지. 그때는 도형이 오빠도 같이 있어 여행 경비가 더블로 들어갔다.
거의 1억에 가까운 돈이 쓰였다...
아무리 재벌가라 하더라도, 남자 하나 만나는데 1억을 쓴다는 건 조금 어질어질해지는 기분이다.
"후후.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라."
정말이지 역설적인 애인이 아닐 수 없구나.
* * *
한수빈이 샤워 가운을 몸에 걸고, 뽀얀 김을 모락모락 내며 머리에 수건을 올려 붙이고 나오는데, 구마하가 소파에 달라붙어 혼자 뭔가를 열심히 문지르고 있었다.
"자기야 뭐해?"
"어. 소파 닦는데."
"그게 지워져?"
"아니... 이걸 어떻게 닦지?"
후후후. 정말 쟤를 뭐라고 해야 되는 걸까...?
"버려야지 뭐. 놔둬 사람들 불러서 치우면 돼."
"버려? 소파를?? 이 큰 걸???"
"그럼 어떡해. 빨 수도 없고. 얼룩진 거 지워지지도 않을 건데."
"천만 갈면 되지 않나?"
"그래서? 나더러 오줌 눈 소파에서 지내라고?"
"그게 오줌이야?"
"그럼 오줌이지..."
"..."
뭔가 둘 다 얼굴이 빨개져 그 이상의 이야기는 하지 않고 식탁으로 넘어가 케잌을 먹었다.
"근데, 집 진짜 조용하다. 어떻게 이렇게 소리가 안 들릴 수 있어?"
"공사할 때 신경 썼어. 집에서 레슨 받을 때가 있어서."
"오오~ 오~ 그럼 피아노 이런 것도 있어?"
"있지. 저쪽 방에."
"으음."
"왜? 피아노 치고 싶어?"
"아니. 그냥. 신기해서."
구마하가 주섬주섬 케잌을 먹으면서 집을 둘러보는데, 한수빈이 숟가락을 깨짝깨짝 거리고 있었다.
"왜? 맛이 별로야?"
"아니. 맛있어."
"근데 잘 안 먹네."
"다이어트도 있고. 아직도 혀 끝에 자기 정액 맛이 느껴지기도 하고."
"..."
찌릿하게 쳐다보는 시선에 구마하는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물었다.
"근데 그게 오줌이라고...?"
"그럼 뭔 줄 알았어?"
"그냥. 여자도 어떤 그... 흥분에 따르는 뭐랄까? 사정액?"
"여자가 남자랑 같애? 야동 같은 거랑 착각하지 마."
"자기는 그런 걸 어떻게 알어?"
"여성학 시간에 배웠지."
"대학에서 그런 것도 배워?"
"여대잖아. 다양한 걸 가르쳐 주지."
"오~ 2학기 땐 나도 신청해 볼까? 우리도 이대 수업 들을 수 있다고 그랬지?"
"하하하... 자기야..."
한수빈이 숟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물었다.
"자기야. 대체 입에 손은 왜 집어 넣은 거야?"
"하하... 하하하... 알았어. 다시는 안 그럴 게."
"자기 먼저 사귄 애랑도 이렇게 했어?"
"아니. 그땐 둘 다 학생이라 조용히 지나갔지."
"근데 나는 왜...?"
"그러니까.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어떻게 하다보니 분위기란 것도 있고."
"그럼 자기는 걔가 처음이야?"
"허허허. 제발 그냥 케잌이나 먹자. 이상한 거 좀 묻지 말고..."
"정말 이해가 안 돼서 그래. 이제 겨우 스무살 된 애가 어디서 뭘 하고 다녔길래 그런 짓을 해...?"
"하하... 아 이거 참..."
구마하는 더 큰 오해를 막기 위해, 겸사겸사 자신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 해줬다.
"그럼 여자친구가 처음은 아니었네?"
"그렇지. 그래서 걔랑 어떻게 파트너 관계를 오래 이어 왔는데."
"걔가 자기한테 할 때 입에 손가락 집어 넣으래?"
"하하! 아. 진짜. 아무렴 그런 짓을 하라고 시킬까!"
"근데 나는 왜...?"
"뭐. 다양한 표정을 보고 싶고. 반응도 궁금하고. 느끼는 얼굴이 너무 야해보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까."
"..."
"좋아서 그랬어. 안 그럴 게. 미안."
힘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다뤄야 하나 싶었는데, 솔직하게 말을 건네니 수긍하고 받아 들여준다.
한수빈은 처음으로 한권석 회장의 금지옥엽 귀한 딸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구마하와 소통을 나누고 있었다.
"뭐 하는 친구야?"
"누구?"
"그 파트너라는 애."
그리고 사람 대 사람으로 그의 과거가 궁금해졌다.
"그냥 학생이지. 평범한 애야."
"평범한 애가 그런 관계를 맺어?"
"자기는? 자기도 평범한 대학생이 클럽 다니고 처음 본 남자한테 섹스 하자고 그러고 다녔잖아."
내가 평범한 대학생인가? 정말 비범한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별 거 없었어. 섹스도. 그냥 너무 깊게 하면 아프다라든지, 여자 반응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을 해준 게 많다 보니까. 사람들 만나는데 있어서도 조심하게 되고."
"근데, 왜 걔랑은 안 사겼어?"
"몰라. 사귀자고 했는데, 내가 무섭다고 싫대."
"무슨 뜻인지 너무 이해가 간다..."
"하하하! 그래서 그냥 끝났지 뭐. 그 다음부터는 그냥. 이렇게 저렇게 짧은 만남도 있고. 여자친구도 한번 사겨보고. 나 진짜 여자 많이 안 만나봤어."
"예뻐?"
"누구?"
"그 파트너라는 애."
"왜 이렇게 관심이 많어."
"그냥. 궁금하니까."
"별 거 없어. 그냥 학생이라니까."
좋아했구나. 첫사랑이다. 반응 보면 칼 같이 알 수 있지.
"한번 보고 싶다. 어떻게 생긴 앤가."
"하하하! 볼 일 없어."
"그럴까? 뭔가 여자의 감이라고 해야 하나? 자기랑 굉장히 가까이 있는 애일 거 같은데."
"아 진짜 무섭네. 좋아. 그럼 나도 뭐 하나 물어봐도 돼?"
"첫 사랑은 과외 하던 오빠. 1년 정도 만나다가 나 피해서 군대갔어."
"아니. 그런 거 말고."
"그럼 뭐?"
"자기는 제모를 어떻게 하는 거야? 겨드랑이나 거기나."
한수빈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하하하... 정말 미치겠다... 대체 뭘 물어보는 거야...?"
"사람 겨드랑이가 어떻게 그렇게 매끈할 수가 있어?"
"몰라! 이상한 것 좀 물어보지 마!"
"뭐. 그게 뭐가 이상하다고? 자기는 막 사람 과거 꼬치꼬치 캐물어 보면서."
"보통 궁금한 게 있으면, 그런 거 아냐?"
"그런가? 난 별로 상대방 과거에 집착하는 편이 아니라."
"집착하면 피곤해지니까 그런 거 아니고?"
"뭐. 그런 것도 있지. 근데 말했었잖아. 과거의 연습을 통해 지금이 있다고."
구마하가 한수빈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난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이 자기라는 게 좋아."
한수빈도 그의 손을 꾹 웅켜쥐며 말한다.
"자기야 그거 알어?"
"뭐?"
"내가 만났던 남자들 중에. 이 집에 들어온 사람은 자기가 처음이다?"
"어 진짜?"
"응. 나 절대 내 공간에 사람들 안 들여보내."
"허허... 와~ 영광이네."
"그리고 난 절대 섹스는 해도 같이 밤을 보내진 않어. 잠은 꼭 집에 와서 자는 편이야."
"..."
"자고 가. 내일 아침 나랑 같이 있어. 나도 자기 같은 사람 만나서 너무 좋아."
구마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수빈에게 다가가 키스를 해줬다.
"으음~"
"와... 진짜 너무 예쁘다."
"후후. 그 말도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한테 들으니까 다르다."
"자기야 침대로 갈까?"
"어?"
"나 아무래도 안 되겠어."
"..."
"진짜 마지막 한번만. 진짜 딱 한번만 더 하면 안 될까?"
"세 번을 했는데... 또 한다고?"
"호나우딩요는 여덟 번을 했어. 난 겨우 세 번인데."
"..."
"나도 최고는 여섯 번 정도 밖에 안 돼."
사랑이 솟아날수록 섹스에 대한 욕망도 강해지는 구마하.
한수빈은 마음으로 기도를 올린다.
신이시여... 이게 그동안 남자들을 가볍게 대한 벌이라면 달게 받겠지만...
조금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