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117화 (117/401)

< 여왕의 시선 (2) >

"아니요!"

"그럼 저희랑 같이 노실래요?"

"야. 근데 이 분 어디서 많이 본 사람 같지 않어?"

"하하하 저요? 어디서요?"

"저. 잠시만요. 마하야."

"음?"

"잠깐만."

여성분들과 진지한 대화를 이어가려는데 승우 형이 목을 끌어안고 돌려 세운다.

"그냥 보내자."

"왜요?"

"그냥 보내. 형 말 들어."

"..."

넌 누가 좋냐? 이런 거 물어볼 줄 알았는데 어 이거 뭐지?

승우 형이 돌아서서 여성분들을 보며 말했다.

"아. 근데 저희는 일단 들어가 보고 그리고 결정할게요."

"으음. 네."

"그러세요..."

뭐지? 진짜 튕긴다고? 여기서?

그러자 여자들도 자존심이 있는지, 우리는 쳐다도 안 보고 자기들끼리 속닥거렸다.

뭐야? 이 형 뭘 어쩌려고 이러는 거야? 줄 때 받아야지...

역시나 지나가던 외제차가 멈추며 그녀들을 태워가 버렸다.

멀리 가지도 않는다.

한 30미터 가서 클럽 입구에서 내려서 먼저 입장해 들어간다.

"아... 형... 갔잖아요..."

"야. 형 말 믿어. 형이 사회과잖아."

"그래서요?"

"오늘은 된다. 굳이 여기서 저런 애들한테 코 꿰이지 않아도 돼."

뭔데. 아무 설득력이 없잖아...

"들어가면 더 이쁜 애들 많을 거야."

"오오~ 역시 사회과. 논리적인데요?"

"음. 날 믿어 봐. 아까 입장한 애들이 더 예뻤어."

아무튼, 여자들은 갔고 둘이 다시 수다나 떨며 긴 줄을 기다려야 했다.

"근데 진짜 안 들여보내주네. 장난 아니다... 그치?"

"미니스커트였어요... 형. 힐 신고 있었다고요..."

"야. 갔어. 아직도 걔들 생각하냐?"

"그거 아세요? 아까 그분들 가방 되게 조그만 거 들고 계셨잖아요..."

"근데?"

"여자들이 클럽 올 때 챙기는 준비물이 세 개가 있는데."

핸드폰 립스틱. 그리고 콘돔이었다.

"뭐야? 아무 것도 모른다면서. 넌 그런 걸 어떻게 알어?"

"그냥 머리 하러 가면 여자들 잡지 있는 거, 거기 뒤 코너에서 봤어요. 내 몸은 내가 지킨다 뭐 이런 내용으로."

"하하하! 새끼. 그런 걸 보고있냐?"

"알아둬서 나쁠 건 없잖아요."

적어도 오스트리아 애들은 그러고 다니더라고. 여기도 똑같겠지.

아. 뒤늦게 마음이 조급해지네.

예쁜 애들은 어떻게든 들어가고, 남자들은 걸러진다.

기다리는 여자애들도 입구에서 돌려보내는 애들도 있다.

들어갈 수 있을까? 오늘 할 수 있을까?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튼, 떠난 기차 그리워하긴 뭐하고, 다시 주섬주섬 둘이서 잡담이나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형도 운동 하시면"

"어. 마하야 잠깐만."

"음?"

"저기."

승우 형이 고개를 끄덕 하며 돌아보라는데.

클럽 직원 같은 사람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네. 왜요?"

"저 혹시 구마하 선수 아니십니까?"

"네. 맞는데요."

이름이 밝혀지자 주변에서 하나 둘 쳐다보면서 환호해준다.

"어머 어머!! 진짜야 이 사람!!"

"오! 씨발 바로 앞에 있었는데!"

와우 유명세가 이 신나는 클럽까지도?

"같이 가시죠."

"어딜요?"

"입장하시면 됩니다."

"줄 안 서고요?"

"모셔오라는 전달이 들어왔습니다."

* * *

클럽 VIP 룸 안. 이도형이 한수빈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진짜? 진짜로 왔어?"

"응. 오는 길에 보니까 줄 서 있더라고."

"왜 줄을 세워!! 당장 들어와 있으라고 안 하고!!"

"수빈아. 그래서 오빠가 지금 사람들 보내서 들어오라고 했잖아."

"아 진짜..."

"어딘데?"

"다 와 가. 이 동넨 뭐 있다고 맨날 이렇게 차가 막혀..."

"차 가져왔냐?"

"그럼. 그래야 데리고 나가지."

"하여간 기집애... 집도 가까운 녀석이."

"오빠. 나 오늘 샵 갔다 왔어."

"하하하! 먹을라고 작정을 했구나."

강세준과 김원석도 속속들이 도착한다.

상이 부러져라 차려진 음식과 술들을 보며 두 사람이 놀란다.

"뭐야? 사람도 없는데, 뭘 벌써 이렇게 준비를 해 놨어?"

"어. 애들. 그래. 우리가 데리고 있을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와. 사람들 많아서 잘못하단 사고 나니까."

이도형이 통화를 마치자 두 사람이 각자 자기 위치에 앉으며 술병을 들었다.

"건드리지 마라. 너도 포크 내려놓고. 니네 먹으라고 차린 음식들 아냐."

"왜? 목마른데?"

"그래. 왜 지랄이야?"

"수빈이가 이 친구 오기 전까진 아무것도 손대지 말란다. 지가 계산한다고."

"와... 걘 대체 뭐 때문에 그래?"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씌였구만..."

강세준과 김원석이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착실하게 자리에 앉는다.

이도형이 훗 하며 코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언제 본가 갔다 오는 길에 연세대를 지나왔나 봐."

"그래서?"

"뭐? 멀리서 보고 반했대? 한수빈이?"

"그랬다는 거 같애."

이도형이 그녀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구마하의 시범 경기 날이었다. 우연히 연세대를 가로질러 학교로 가던 한수빈.

무슨 행사라도 있는지 대운동장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을 지켜보다 구마하가 뛰는 모습을 보았다.

야구부와 이벤트 승부를 겨루는 그를 보며, 한수빈은 처음으로 남자의 힘이라는 것을 느꼈단다.

"하여간 음흉한 년. 생각하는 거 하고는."

"원석아."

"어... 미안."

"새끼 말 조심 하라니까. 너 그러다 애 앞에서도 실수해라! 어?"

"..."

이도형의 흘겨보는 눈빛에 김원석이 뻘쭘하게 시선을 피한다.

"만나보면 알겠지."

"나까지 궁금해지네."

"그러게. 대체 뭐하는 놈이길래..."

* * *

그 시각. 클럽 직원들을 따라 시끌벅적 계단을 내려가는 구마하와 정승우.

조명이 어두워지며 음악 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정승우도 뒤늦게 상황을 이해하며 조용히 말했다.

"걔가 말한 게 이거였구나... 진짜로 그냥 너 왔다고 하면 되는 걸."

"괜히 줄 서고 있었네요..."

"그러니까... 한 시간 반은 기다렸는데... 바로 말하면 입장이었다니..."

피차 이쪽 문화에 아는 것 하나 없음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라 둘은 서로를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직원을 따라가다 넓은 홀을 지나치는데, 수많은 청춘들이 검은 형체를 이루어 몸을 흔들고 있었다.

열기가 아테네 스타디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뜨겁다.

정승우가 놀라며 말했다.

"와... 이게 클럽이구나..."

"꽤 넓은데요?"

"은근 떨리네..."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보는 시각이 너무 다른 곳.

어째서 다들 기를 쓰고 줄을 서서 들어오고 싶어하는지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이곳은 흥겨움이 있었다.

"누가 우리를 이런 데로 불렀지?"

"마하야. 정확하겐 '우리'가 아냐. '너'를 불렀지."

"흠."

"저긴가 보다."

앞서가던 직원이 깊은 방 앞에 멈춰 꾸벅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요."

구마하와 정승우는 또 한번 서로 눈을 마주치며 문을 열었다.

세 사람이 있었다.

그들을 보며 구마하가 속으로 탄식을 내뱉는다.

이런 씨 뭐야. 남자잖아...

"아이고! 오셨네!!"

"반갑습니다! 아니 왜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 그냥 다 기다리고 있길래..."

"지나오는데 구마하 선수 같던데? 맞나? 싶어서 사람들 보냈어요."

남자라는 것만 빼면 생각보단 매너 있게 대해주는 모습이 나쁘진 않았다.

넓고 화려한 공간에 반짝이는 술병과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이 깔려 있었다.

그런들 뭐하냐고. 내가 남자들 보러 왜 여기까지... 동대문 가서 옷은 왜 사입었지?

구마하가 속으로 불만을 삼키고 있는데 이도형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요."

"네?"

"구마하 선수 보자고 한 건 우리가 아니니까."

"하하... 제가 표정에 감정이 좀 드러나는 편이죠..."

"후후. 인사해요. 여긴 우리 친구들."

이도형이 하나씩 소개를 해줬다.

강세준과 김원석. 그리고 자신.

구마하도 서로 악수를 나누며 말한다.

"여긴 저희 선배님이요."

"반갑습니다."

정승우도 악수를 건네자, 김원석이 여긴 누구야? 라는 표정으로 이도형을 본다.

짧게 오가는 그들의 시선에 두 사람이 당황하는데, 뒤늦게 강세준이 뭔가 떠올랐다는 듯 호들갑스레 입을 열었다.

"어어~! 맞다. 하나 같이 온다고 했었어! 얘구나!"

정승우도 강세준에게 묻는다.

"제 친구 연락 받으셨어요...?"

"응. 왜?"

"아. 아니요. 그냥..."

두 사람에게 이곳은 낯설고 신기한 장소였다. 그래서도 기묘한 느낌을 빠르게 캐치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다 치자. 승우 형은 초면인데 왜 말을 놓지?'

'이 새끼들 뭐하자는 거지? 사람 병신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면전에서...?'

구마하와 정승우의 긴장하는 눈빛을 읽으며 이도형이 말했다.

"99학번이라고 들었는데."

"네."

"동갑이야. 우리 다. 너도 편하게 말 놔."

"아. 그렇구나..."

"미안하다. 우리는 먼저 이야기를 들어서. 애들이 편하게 생각한 거 같애."

따지기도 뭐하고, 그렇다면 그렇구나 하고 일단 자리에 앉았다.

멀뚱멀뚱 구마하는 룸을 둘러보고, 정승우는 그들의 차림새를 보았다.

"..."

김원석이 강세준에게 뭐라뭐라 귓속말을 하고 있었다.

잘은 몰라도 그의 팔에 걸린 시계가 엄청 비싸 보이는 것 같다.

머리 스타일이나 옷 차림. 구두나 벨트 등.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차 키. 이질적인 라이터까지.

보통의 동년배와 있을 땐 보기 어려운 아이템들이 어딘가 멋지다기 보단 혐오스럽게 느껴진다. 별로 좋은 애들 같다고 못 느끼는 건 부에 대한 선입관일까...?

어쨌든, 마하를 여기까지 불러온 건 자신이니 어느 정도는 책임감을 가져가야 할 거 같다.

"도형아."

"어?"

"마하 부른 건 너네가 아니라고 했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

갑작스레 찌르고 들어온 정승우를 보며 이도형이 살짝 당황한다.

정승우는 연신 웃으며 말했다.

"왜? 갑이라며? 말 놓으라고 하지 않았어?"

"아. 그래. 맞다. 미안."

"하하하. 야 이거 마셔도 되는 거야? 우리 기다리다와서 목 마른데."

"어? 그럼... 먹어."

정승우의 당당한 모습에 세 사람이 뭐라 할 말이 없다.

구마하도 멀뚱멀뚱 지켜보다 물었다.

"저희는 오늘 이대 무용과가 여기 있다고..."

"아~ 그건 우리 부탁을 들어준 친구고."

"그래요? 형 아셨어요?"

"뭐. 대충은."

"근데 왜 무용과라고 하셨어요??"

"아니. 난 내 친구도 오늘 여기 오는 줄 알았거든... 같이 있는 줄 알았어."

친구라는 말에 강세준과 김원석이 씩 미소를 지어보이지만, 정승우가 그들의 웃음에 담긴 뜻을 알기는 어렵다.

이도형이 구마하를 보면서 말했다.

"방금 말했지만, 구마하 선수 보고 싶다고 한 건 우리가 아니에요. 우리가 진짜 아끼는 동생인데."

"저 근데 형님들이라고 하셨는데. 말 편하게 하셔도 돼요. 승우 형이랑 동갑이면 저한테도 형님들인데."

"음. 그래도 될까?"

말 편하게 하라니, 김원석이 바로 나섰다.

"여자애야."

"오~?"

"하하하! 좋아? 걔 진짜 예뻐."

"저... 정말요? 뭐하는 분이신데요?"

구마하는 한수빈에 대해 들었다.

나이는 그보다 두 살 많은 84년생 쥐띠.

"얘도 이대생이야."

"서... 설마 무용?"

"아니. 이쪽은 성악."

"하하! 무용 아니라고 아쉬운 거 아니지?"

"아우 그럼요. 근데 절 왜 보자고 한 거죠?"

"팬심이지. 얘가 언제 너네 학교 지나가다가 뭔가 하는 걸 봤다는데."

"으음. 그때 말하나 보다. 너 시범 경기 한 날."

"그날. 허허... 이대생들도 볼 줄 이야."

정승우가 그들의 말을 듣고 판단한다.

팬심에 당사자를 '부른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

그 정도로 파워가 있다는 건가? 뭐하는 놈들인지 나중에 친구한테 꼭 연락해봐야 겠다.

아무튼, 들어 온 거 물러 설 순 없고. 어떤 상황이든 조금의 긴장감은 가져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가 술병을 들었다.

"마시자. 아니면 수빈 씨라는 분 올 때까지 기다려야 되나?"

"아니야. 먹어. 우리도 먹자."

"그래. 먼저 마셔."

"얘도 다 왔다고 했어."

일단은 즐겨보고 걱정은 다음이다.

정승우가 마하를 돌아보며 병을 들었다.

"재밌게 놀자. 너 뭐 마실래?"

"형. 저 그냥 주스 마실게요."

구마하도 눈 앞에 놓인 주스병을 들며 말했다.

그 모습에 강세준이 웃으며 묻는다.

"하하하! 비싼 술 많은데, 왜 그런 걸 먹어?"

"저 양주는 처음이라."

"진짜?"

"한번도?"

"형님들. 저 올해 스무살이에요."

"좋아! 그럼 형들이 양주 마시는 걸 알려줄게."

"아냐 아냐! 일단 섞어! 섞어야지!"

구마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한수빈에 대해 생각했다.

대체 누굴까? 뭐하는 사람일까? 왜 보자고 했지? 성악과면 문화회관 이런 데서 노래하고 그러나?

그 순간,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구두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

"꺄악! 진짜 있어!! 어떡해 어떡해!!"

구마하는 잔을 든 채로 굳어버린다.

그의 머릿속에 빅토리아 다음으로, 아니 그 이상으로 이혜정을 지우는 여인이 눈앞에서 방방 뛰며 좋아하고 있다.

미친... 말도 안 돼... 이런 사람이 나를 보고 싶어 했다고...?

"어떡해! 정말 와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저도요... 살면서 이 순간만을 기다렸던 거 같네요..."

"하하하~! 왔으면 빨리 앉어 수빈아."

"아... 진짜 떨려... 오빠 나 어떡하지...? 나 얼굴 빨개?"

"앉아서 이야기 해. 호들갑 좀 그만 떨고."

한수빈을 바라보는 구마하도 상상의 나래에 빠져들었다.

수빈 씨. 사랑합니다.

차원 너머 고향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 나 결혼해.

얘들아 왔어? 신부 어딨냐고? 혜정이도 와줘서 고맙다. 밥 먹고 가.

신랑 신부를 사랑합니까?

여보. 주말엔 좀 쉬면 안 될까. 내가 운동하는 사람인데 주말에도 애들 데리고 나가서 운동해야 돼? 뭐? 음식물 쓰레기나 버리고 오라고?

여보... 어디 아퍼? 병원은 가봤어?

당신 그동안 나랑 사느라 고생 많았지... 고마워...

"마하 씨 왜 그러세요? 어디 안 좋으세요?"

"아. 아니요... 와 진짜... 너무 아름다우시네요..."

"하하! 정말요?"

"네... 정말요..."

치명적인 미모였다.

말로는 담을 수 없는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치장한 여인이 나타났다.

한수빈을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지는 구마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