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105화 (105/401)

< 신촌에 내려온 운석 (5) >

"어? 뭐야 이건?"

혜정이와 아줌마를 배웅해드리다 문자를 봤다.

"뭐야... 이런 건 언제 왔어?"

"왜? 뭐 있어?"

"무슨 일 생겼니?"

"아니요. 저 죄송한데 먼저 좀 가볼게요. 혜정아 미안. 학교로 가봐야 될 거 같애."

"그래. 안녕."

"어서 가봐. 우리 걱정하지 말고."

뭐지? 모든 1학년 집합이라면 학교 밖에 있는 사람들도 오라는 건가?

과 친구들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질 않는다.

"..."

그래서 익범이한테 물어보니 자기도 문자는 받았는데 가진 않았단다.

"왜? 모든 1학년인데?"

"마하야. 집합이잖아. 우린 농구부야. 우리가 거길 왜 가."

"으음."

"선배들 중에 누가 괜히 시비거는 거라고, 농구부 선배들이 굳이 갈 필요 없다고 그랬어."

"누가 불렀는지는 알어?"

"몰라. 무슨 스키타는 사람이라던데. 체육과에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니까."

박상택이 집합을 걸었다라.

"알겠어. 고맙다."

"가려고? 가지말지. 기합 받는다는데."

"난 어디 소속된 팀이 없으니까"

"그래. 끝나고 전화 해."

택시를 붙잡으며 정준이 형한테도 전화를 걸었다.

"어. 그래 마하야."

"형. 저 혹시 박상택이라고 아세요?"

"알지. 너희 선배잖아"

"어떤 사람이에요?"

"질문의 의도가 뭐지?"

"아... 아니요 그게."

"오해하지말고, 나한테 상택이는 오래 지내온 친한 동생이라 쉽게 말하기가 어려워서 그래."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질문을 했네요."

"물론, 그 녀석이 조금 까다로운 부분이 있다고 나도 듣긴 했지만."

정준이 형은 사적인 영역에서 박상택을 뭐라 말해주긴 어렵다고 하셨다.

"암튼 왜? 무슨 문제 있어?"

"아니요. 그냥..."

"마하야 혹시나 상택이가 너한테 무슨 짓 하면 형한테 바로 얘기해라."

"왜요?"

"야. 내 선수 내가 지켜야지. 그런 상황에서의 공과 사는 또 바뀌는 거라고."

"하하! 형 근데 고대생이 저 지켜주시면 학교에서 제 입지는 어떻게 되라고요."

"후후후. 서로 죽이든가 살든가 되겠지."

마침 오랜만에 통화라며 학교 생활은 어떤지 물어보신다.

"안 그래도 지금 박상택 선배가 애들 집합 걸어가지고요..."

"그래? 니네는 그런 거 좀 약하다고 들었는데."

"고려대 정도는 아니지만, 있긴 있더라고요."

"워허허~ 디스하는 거냐?"

"모르겠습니다. 그냥 들은 이야기라."

정준이 형도 종목 특성 상 학생 땐 아웃사이더로 지내느라 그런 걸 잘 못 느껴보셨다고 하셨다.

"케바케가 좀 있지. 무도 쪽이 특히 심하고."

"저희는 팀 종목 아닌 데가 좀 그런 거 같아요. 일반 사체과 애들이나."

"마하야. 할 짓 없는 놈들이라 생각하고. 피할 건 피하고 다녀도 돼. 형 보니까 그런 거 다 부질없더라."

"감독님도 그러시긴 하는데."

"근데 또 그렇게 말하고 보니까... 상택이 놈이 왜 집합을 거는 걸까?"

"..."

"그 자식은 선수잖아."

아무 답변 안 드리고 있으니 정준이 형도 조용히 물어보신다.

"혹시, 둘이 무슨 일 있었어?"

"그게 저와의 일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는데요."

택시를 타고 움직인터라 마포에서 학교까지 단숨에 도착했다.

"형. 내려야 돼서 통화 할 시간이 될 지 모르겠지만..."

"뭔데? 키워드만 말해 봐."

"그냥 스키어의 한 사람으로서 절 싫어하는 거 같아요. 이것저것 굴지말고 선택해서 행동하라 그러더라고요."

"으음..."

"쫄거나 싸우지는 않았어요."

"어른스럽게 대처했네."

저벅저벅 운동장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마하야. 우리 그때 했던 이야기 기억하지?"

"네."

"너도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고?"

"그럼요."

어느덧 운동장 앞. 소란스런 분위기 속에서 동기들이 오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너도 사회가 있으니 쉽게 말 할 순 없지만, 난 그때 니가 말해준 각오라면 지금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본다."

"역시 기합 받고 있네요... 박상택도 있고요."

"나와 그 녀석의 관계는 잊어라. 너의 시각에서 개새끼면 그건 개새끼다."

"알겠습니다. 형 전화 끊을게요."

"그래도 싸우지 말고. 니 덩치에 맞고 다니지야 않겠지만, 그 놈이 제법 있는 집 자식이라 이겨도 골치 아파진다."

"하하! 걱정마세요."

핸드폰을 접고 웃음을 거두며 후배들을 기합주는 선배들에게 다가갔다.

박상택이 아니라 다른 선배가 먼저 날 알아봤다.

"어? 야. 상택아."

"음?"

"죄송합니다. 05학번 구마하. 연락을 늦게 받았습니다."

"..."

그러자 박상택이 가만히 쳐다보며 물었다.

"너 뭐야?"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 내 말은 니가 여기 왜 왔냐는 거야."

"1학년 다 모이라고 하셔서..."

"마하야. 넌 선수잖아. 안 와도 돼. 가."

"..."

다른 선배가 친절하게 말을 건네며 가라고 슬쩍 밀어주는데, 뻘뻘 땀을 흘리던 애들이 하나 둘 돌아본다.

스무살 성인이, 첫 춘계대회 때 보았던 감독한테 매 맞던 중학생들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억울하면서 벗어날 수 없는 강압적인 분위기에 겁에 질린 듯한 그런 얼굴들을.

"..."

"야. 가라잖아. 얘 말 안 들려?"

"저. 선배님."

"뭐?"

"무슨 이유로 이런 자리를 만드셨는지 여쭤봐도..."

"이 새끼가. 너 지금 미쳤냐? 메달 땄다고 선배고 뭐고 안 보여?"

"야. 상택아!"

주변에서 말려도 박상택이 다가와 얼굴을 들이민다.

"꺼지라고. 상관하지 말고."

"선배님도 선수시지 않으십니까."

"뭐?"

"선수면 선수답게 학과 일에 나서지 않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 씨발놈이 말하는 거 봐라? 야. 내가 니 친구로 보이냐? 어?"

이 사람은 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까지 삐뚤어진 걸까?

싸움은 하지 말라고 들었지만 친다면 맞설 수 밖에 없는데...

"가. 꺼져. 뒤지고 싶지 않으면."

"..."

"상택아! 그리고 마하 너도! 신입생이 선배들 일에 이렇게 나서는 거"

"어이? 니네들 거기서 뭐하냐?"

그때 양민구 선배가 찾아오셨다.

"뭐야? 이건? 전원 기상."

"후우... 양민구 신경끄고 니 갈 길 가라."

"기상하라고 새끼들아. 일어나란 말 안 들려!!!"

양민구 선배의 큰 소리에 분위기가 바뀐다.

바로 일어나라고 한들 쭈그리고 걷던 애들이 몸이 움직여지나.

다들 자리에 주저앉아 눈치나 보고 있었다.

박상택도 고개를 돌리며 애들을 본다.

"오오~ 그래? 그런다?"

"야. 너 뭐하냐? 복학했으면 학교나 다닐 것이지 지금 뭐하는 건데?"

"뭐하긴. 애들 교육한다."

"여기가 무슨 씨발 군대야? 고대야? 넌 군대도 안 갔다 온 놈이 왜 이지랄 하고있냐?"

"양민구 닥치라고."

"야. 내가 볼 땐 얘가 아니라, 너야말로 한번 뒤져봐야 정신을 차릴 놈이야."

"이게 진짜..."

"왜? 싸워줘? 한판 붙어? 니 말대로 난 선수 아냐 맞아서 손해 볼 건 없어. 근데 너는? 넌 대체 뭐 믿고 이러냐? 어디 한 군데 부러지면 막상 피 보는 건 너 아닌가? 몸 좀 사려야 되는 거 아녔어?"

결국 박상택 주변에 있던 선배들이 말리고 나섰다.

"민구야 우리도 그냥 이러는 거 아냐."

"그래. 애들이 개념도 없고 기강도 없어서 그랬던 거지."

"무슨 기강? 대학에 기강이 뭐가 필요한데? 그리고 쟤네 기강 잡아서 니네가 뭐 할 건데?"

"..."

"한심한 짓 좀 그만해 새끼들아. 쪽팔린다고."

"야. 가자."

박상택이 바닥에 침을 퉤! 뱉으며 사람들을 끌고 가는데, 양민구 선배가 그들을 향해 소리치셨다.

"어디가? 니네 애들 인생 끝까지 책임 질 거 아니었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학이 왜 이런 분위기를 내고 있는지.

그것도 씨발 소위 스카이라 불리는 명문대가...

"야. 넌 여길 왜 왔냐?"

"그냥 신입생들 다 부르길래 왔습니다."

"어이고... 왔으면 조용히 기합이나 받든가. 와서 선배를 들이받어? 너 나 안 왔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죄송합니다..."

민구 선배가 애들을 보면서도 물으셨다.

"뭔 짓을 했길래 선배들이 저렇게 야마 돌게 만든거야. 얘기해 봐. 과대?"

과대가 정리해서 말하는데.

"몇 사람이 선배님인 거 모르고 인사 안 하면서 담배 피고 있었고..."

"그리고?"

"어떤 애들은 여자애들 얘기 하고 있었고, 그리고. 제가 차 끌고 왔다고... 그런 이유들로 집합 부르셨습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애들을 이렇게 굴린다고...?

그것도 체대생들을... 무릎 작살나라고 오리걸음을 시켜...?

이런 미친 새끼가...

"선배님. 전 신입생 차 끌고오면 안 되는 줄 몰랐어요..."

"허... 미친 새끼들. 그리고 박상택 저 새낀 지도 차 끌고 다니면서 왜 애들한테..."

"저 선배님..."

"왜."

"지금 애들이 말한 게 그렇게 잘못된 행동인가요?"

"마하야. 아니지. 얘들아 형이랑 술 마시러 갈 사람?"

많은 애들이 약속이나 다른 이유로 빠지는데, 과대를 비롯 두 세명 정도가 남았다.

"오케이. 형이 돈은 없지만 오늘은 내가 책임진다. 가자."

"선배님. 그럼 제가"

"마하야. 이런 거 때문에라도 너도 확실하게 들어두는 게 좋겠다. 따라와."

다들 우울한 자리를 찾아온 건 이유를 알고 싶어서 였던 거 같다.

민구 선배는 그런 우리의 마음을 꿰뚫으며 말씀하셨다.

"OT도 그럴고. 대학이 생각이랑 많이 다르지?"

"네..."

"이 정도인 줄 몰랐습니다."

"그냥 고등학교 연장선 같습니다."

"그러면서 마하나 다른 농구부 야구부 이런 애들은 못 건드리고. 그치?"

"..."

"군기문화에 대해서 먼저 말을 해줘야 할 거 같은데. 형은 군필자 입장에서 결론은 하난 거 같애. 다들 존나 할 짓들이 없어서 저러는 거야."

정준이 형이랑 똑같은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그 말이 정답이라는 건데.

그걸 알면서도 왜 방치 하는지.

무엇보다 왜 그걸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들한테...

"그래도 지금은 많이 풀린거다. 형 1학년 땐 더 했어."

다들 이게요? 라는 시선으로 고개를 돌렸다.

민구 선배도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신다.

"저기 경기도 어디 체육과에서 사람 죽은 거 알지?"

"사람이 죽어요?! 아. 아니 죽었습니까?"

"마하는 모르냐?"

"처... 처음 듣습니다."

"야. 됐고. 내 앞에선 다나까 이런 거 하지마. 너희도. 알겠지? 편하게 일단 짠하면서 듣자."

하던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어느 대학에서 군기를 잡겠다고 기합 받다가 매를 들었는데, 한 사람이 맞다가 죽어 버렸단다.

"..."

"그때 이후로 교수님들이 막 선배들 뭐라고 하고 그래서 지금은 풀린 상황이긴 한데, 1~2년 지나니까 또 슬슬 군기문화가 기어나오는 거지."

체육인들 가운데 이런 문화는 누군가 의식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뿌리를 뽑을 수가 없다고 하신다.

"아마, 뿌리를 뽑았다고 생각해도 결국 또 어디선가 터져 나올 걸? 두고 봐."

"선배님. 왜 그러는 걸까요?"

"후후후. 좋은 질문이다. 근데 의사하는 친구도 그러는데 암이 왜 생기는지는 모른데. 치료법만 알지."

"선배님. 암 치료법이 뭔지 아십니까?"

"암이 전이된 부위를 도려내는 거."

그건 치료법이 아니잖아. 그냥 문제를 도려내 버리는 거지...

조용히 술잔만 들고 있는데, 한 친구가 나를 보면서 물었다.

"마하야. 넌 이런 거 잘 모르지?"

"어... 난... 어... 한번도..."

다들 내 기사를 읽어서 그런가, 내가 어떤 환경에서 운동하고 아테네를 다녀왔는지 알고 있었다.

"이런 놈이 진짜 엘리트 선수지."

"그러니까요. 부럽다."

"...부러울 건 없어. 나도 그냥 좋은 감독님들을 만났을 뿐이야."

사람이 죽도록 때린다고?

말도 안 되는 사소한 이유들로 선수 생명을 갉아먹는다고?

단지 선배란 이유 하나로?

왜...? 왜? 아니 왜? 어디서 그런 권한이 대체...?

그 순간 한상률 감독님의 말씀이 가슴에서 울렸다.

난 엘리트 체육의 그림자를 뿌리뽑고 싶다.

그게 이런 뜻이었단 말인가...

"후우..."

"한숨 쉬지말고, 짠하자 얘들아."

"네."

"고맙습니다 선배님."

"됐어. 그리고 너희도 어찌됐든 선배들 눈 밖에 나는 일은 눈치껏 피해."

민구 선배가 그나마 동기들이나 선배들 입장을 옹호하자면, 남들이 볼 때 불량되고 되바라진 행동을 하면 그게 다 운동하는 사람들이라는 편견으로 이어지기에 그런 걸 방지하는 거라고 하셨다.

"담배는 다른 과 학생들도 다들 피잖아요..."

"야?"

"됐어. 놔둬. 구마하 편하게 얘기해라."

"죄송합니다... 근데 차 타고 다니는 애들도 있고. 그리고 과에 사람이 몇인데, 선밴 줄 모르고 인사 못 할 수도 있고."

"그래. 맞어."

"결국 운동하는 사람들이란 편견은 누가 만들고 있는 건지..."

"마하야. 형 봐 봐."

"..."

"그걸 알면 명심해라. 너희도 마찬가지야. 겪어보니까 좆같지? 그럼 너희가 선배가 돼서 안 그럴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반드시. 알겠냐?"

저들을 변화 시킬 순 없다.

문제의 해결은 그들이 아닌, 나중에 우리가 되어야 한다.

"군대도 그렇고, 참 쉽지 않을 거다."

"선배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는 내가 낸다. 구마하. 잘 들어. 선배 앞에서 후배가 함부로 돈 쓰는 거 아니야."

"...네."

이런 것도 일종의 장유유서라는 개념으로 봐야 하는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어.

운동하는 사람들은 순수한 사람들이 아닌가?

아니. 순수하기 때문에 그런 게 나쁘다는 걸 모르는 건가?

젠장. 그럼 진짜 운동하는 놈들이니까 무식하단 말 밖에 안 되는 소리잖아.

"..."

한구 스포츠 사무실에 돌아와 누워있었다.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그러지 않을 수 있는 문화를 너희가 만들어라.

나는 엘리트 체육을 바꾸고 싶다.

니가 봤을 때 개새끼면 그건 개새끼다.

"후우..."

뒤척뒤척 한숨만 쉬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동민이. 반가운 마음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동민아."

"뭐하냐 대학생?"

"그냥 누워있지."

"하하! 여자랑?"

"아니야. 여자친구 만날 시간도 없어..."

"왜? 구마하라면 알아서들 벌리고 다가올 건데."

"미친새끼. 크하하~"

역시 우울하고 힘들 땐 친구들과의 트래쉬 토크만한 힐링이 없는 것 같다.

동민이네 팀에서 회식하는데, 내 이야기가 나와서 한참 자랑을 했단다.

"이동민이면 인정이지. 구마하 성장기를 지켜봤는데."

"하하하! 내가 친구를 잘 뒀어."

"동민아. 너넨 분위기 어때?"

"뭐 어때. 그냥 운동하고 또 운동하고. 계속 운동하고. 하하~ 학교랑 다를 게 없어."

"...좋겠네."

"정 뭐하면 너도 우리 팀 와. 감독님이 안 그래도 너 부를 수 있냐고 하시더라."

"정말 그럴까...?"

"뭐야 농담이지. 미친놈 니가 여기가 어디라고 와."

"아 씨발 몰라. 좆같애. 다 때려치고 싶어."

"왜 그래?"

이런 일 저런 일 이런 인간 저런 인간 들려주니 동민이도 묵묵히 들으면서 말한다.

"꼭 우리 1학년 때 같네."

"맞다. 한주 고도 3학년들이 좆같다고 했었지."

"그래 씨발놈들. 그런 새끼들이 커서도 그지랄 하겠지. 물론, 우리 학교에서 지 성적으로 연대 간 형은 없겠지만."

동민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조리의 뿌리가 대학에서 시작된 게 아님을 알겠다.

더 깊다. 아마도 고등학교 중학교... 어쩌면 더 그 전부터.

"근데 마하야. 어쨌든 선배들이잖아. 가오 있지 맞서지 마. 더 골치 아파져."

"넌 3학년 때 애들 잘 해줬는데 난 지민이 형 보다 니가 더 주장 같았어."

"새끼야. 그건 니 있으니까 그랬지."

"왜? 내가 왜?"

"야. 존나 잘 하는 놈 옆에 있는데 실력도 없는 새끼가 지랄하면 모양 빠지잖아."

"..."

그런가? 그래서 아까 박상택이 그냥 간 건가?

"아무튼. 누가 뭐라든 넌 구마하니까. 널 누가 건드리냐. 쫄지마 병신아. 알겠지? 나 들어간다."

"그래. 술 작작 쳐마시고."

"시간 되면 한번 내려와라. 우리 집에서 자고 가도 되니까."

"응. 꼭 갈게."

박상택이 나를 싫어하는 이유.

내가 그보다 더 잘났기 때문에. 내가 그보다 더 명성이 있고 실력이 있기 때문에.

그렇구나. 그런 이유였어.

와 이 새끼 생각보다 악랄한 인간이네.

기합에서 나 빼고 가라고 한 것도 어떻게 보면 과에서 고립시키려고.

"하하하. 개새끼 같으니라고. 아까도 민구 선배에 나까지 2:1이 되니까 지 모양 빠지기 싫어서 그냥 간 거야."

동민아. 아무래도 선배들과 안 맞설 수 없을 거 같다.

나도 이런 좆같은 문화를 뿌리 뽑고 싶거든.

나야말로 운동하는 사람들 편견을 박살내고 싶다.

"오케이 알겠어 뭘 해야 하는지 알겠다."

결론은 하나다.

내가 잘나면 된다.

조개구이집 이론이다.

잘 나가는 집이 있으면 결국 따라오게 되어있다.

감독님의 꿈을 '그냥 어른들 일이니까 따라가면 되겠지.'였다면. 이번 일을 계기로 나에게도 그것은 하나의 목표가 되었다.

운동은 섹스와 같다.

즐거운 섹스는 기쁨이지만, 일방적이고 가학적인 섹스는 끔찍한 폭력이다.

섹스가 즐거워야 하듯 운동도 즐거워야 한다.

그릇되고 비뚤어진 엘리트 체육을 박살내 주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