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도전하는 자세 (5)
갑작스런 혜정이의 등장에 우르르 현관으로 몰려갔다.
"뭐야!? 너 진짜로 마하네 온 거 맞어?"
"맞어. 애들도 여기로 오라고 했는데."
"애들?"
"친구들 불렀어?"
"그래야지. 혼자 있긴 좀 그렇잖아..."
"하하! 잘했어! 들어와 들어와! 우리도 막 도착했거든."
"너 간다는 거 아녔냐?"
"뭐래 병신아. 문 열어주려고 왔지."
버럭버럭 성질내던 녀석이 활짝 웃으며 손님을 맞이한다.
다른 애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과 목소리가 밝아졌다.
태윤이는 애들 더 오면 먹을 거 부족하지 않겠냐며 시끌시끌 반 친구 두 녀석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혜정이는 소파 구석에 자리해 모든 게 처음인냥 어색하게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뭐하는 거야...?"
"나중에 얘기해. 애들 있잖아."
"..."
"친구들 부르는 거 같은데 안 가봐도 돼?"
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길 다시 온 건지...
아무튼, 분위기는 반전시켰으니 다행이긴 한데.
남수와 정석이가 있는 부엌으로 갔다.
식어버린 치킨 어떻게 데우는지 물어보는데, 진짜 관심은 음식보다 거실에 있는 거 같다.
정석이는 흘깃흘깃 혜정이를 훔쳐보고 남수가 후라이펜을 꺼내들며 물었다.
"언제 불렀냐? 오늘 약속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까 니네 오기 전에. 혹시 취소되면 오라고."
"잘했다. 잘했네. 잘했구만."
"어이 구마하. 너 그래서 그랬냐?"
"뭘?"
"여자애들 온다고. 혜정이도 오니까 미리 좀 빼고 있던거야?"
"개새끼가 진짜 가만 있으니까. 씨발놈아 너 맨날 우리가 뭐만 하면 걸어 돈 내놔라 그러지. 쓰레기통 뒤집어서 냄새 맡아 보자. 목숨 걸어. 그래서 오늘 너 나 둘 중 하나는 이 지긋지긋한 인생을 끝내자."
"알았어 흥분해서 지랄이야. 지가 잠수 타놓고..."
남수가 우리만 있는 거 아닌데 왜 이러냐며 정석이를 끌고갔다.
애들이 거실로 넘어가니 혜정이가 부엌으로 온다.
"도와줄 거 없어?"
"잠깐만 접시 좀 꺼내줄게."
덜그럭 덜그럭 싱크대 구석을 뒤지며 다시 조용히 물었다.
"왜 왔어?"
"나중에 얘기하자니까."
"진짜 놀고 가려고? 친구들 부른 건 맞어?"
"응."
"언제? 언제 그런 연락을 했어?"
"방금. 여기 현관 앞에서."
"방금?"
"그냥. 싸우는 거 같길래, 분위기 심상치 않구나 싶어 바로 문자 돌렸지..."
어느정도는 자기 책임도 있고. 안 그래도 날이 날이니만큼 심심하다고 모이자고 하는 애들이 있었단다.
우리집이라고 알려줬냐니 걔들도 너네 집이니까 온다고 그랬다는데.
"우와..."
"또 왜?"
"그냥. 신기해서."
이게 그 유명한 크리스마스의 기적인가?
아까는 둘이 하기 직전까지 가더니 이제는 우리 집에 여자애들이 놀러온다고?
다시 남수와 정석이가 다가오자 혜정이가 그릇들을 챙겨 거실로 체인지.
"방금 뭐냐?"
"저기... 내가 쟤랑 뭐 할 때마다 그 '뭐냐?'는 질문 좀 안 하면 안 될까...?"
"둘이 존나 속닥거리더만 뭐라고 한 거야?"
"별 거 없어 그냥 누구누구 오냐고."
"누구 온데? 누구래? 혜정이 친구면 예쁜 애들 몇 명 있잖아."
"하하! 정석아..."
"야 잠깐만. 구마하 너 진짜 쟤랑 사귀냐?"
"아니라니깐."
남수가 진짜 아니냐고 또 한번 물어보는데.
나도 모르겠다고. 아까 그런 일이 있었는데 우린 어떤 관계가 된 건지.
혜정이가 다시 집에 온 이유를 알면 명확해 지겠지만, 크리스마스 파티가 모든 이슈를 삼켰다.
어쨌든 지금은 친구들이 있었다.
이것저것 먹을 걸 준비하고 있으니 나갔던 애들이 과자나 음료수와 함께 혜정이 친구들을 인솔해 돌아왔다.
"어서 와."
"야. 이혜! 너 뭐냐? 안방마님이냐? 남의 집에서 '어서 와'가 뭐야."
"되게 웃긴다. 니가 불렀으면 니가 나와야지 왜 남자애들을 시켜."
"시끄럽게 하지말고 빨리 들어오라고."
"야 니네들 얘 얼굴 보고 속으면 안돼. 이혜정 완전 허당이야."
이름이나 얼굴만 알던 여자애들이 집에 들어와 수다스럽게 떠들고 있다.
혜정이도 혼자보단 친구들과 있으니 더 장난스럽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여자애들 셋이 쪼르륵 소파에 자리하고, 반 친구 한 녀석이 혜정이 친구와도 가까운 사이라며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우리 머저리 사총사는 좁은 부엌에 옹기종기 모여 나름의 감상을 남겼다.
"얘들아. 한 마디만 해도 될까?"
"해."
"지금 마하네 집에 여자애들이 있고, 술이 있고. 그리고 파티를 할 분위기가 마련되어 있어."
"나도. 언젠가 졸업 전에 이런 날이 올 거라 상상은 했었지만... 훗. 그게 오늘이 될 줄은."
"야. 니네 뭐하냐?"
"박남수 조용해. 태윤아. 정석아. 계속해라."
"모르겠다 그냥 가슴이 울컥한다..."
"구마하. 씨발놈아 그동안 내가 놀려서 속상했지? 미안했다."
"됐어. 난 진심을 아니까."
"병신들. 지랄들을 해요..."
여자애들이랑 술 먹고 뭐 할 거냐고?
아무것도. 그냥 학창시절에 이런 걸 한번만 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고2 마지막 크리스마스 파티. 내년엔 똑같은 고3 마지막 크리스마스 파티가 되기를.
"일단 먹자. 아우 배고파."
"근데 뭐 되게 많다. 고기는 언제 구웠어?"
"마하 운동하잖아. 얘네 집 고기 많어."
"야. 근데 진짜 오해하면 안된다. 우리도 이런 거 처음이라 술 잘 몰라."
"보통 저렇게 말하는 애들이 제대로 양아치 같이 놀던데..."
"근데 얘네는 딱히 이상한 소문있는 것도 아니긴 하니까."
"걱정마. 그건 우리가 보장하는데. 마하나 태윤이나 그냥 지들끼리 낄낄 거리고 노느라 정신 없는 애들이야."
"정석이는?"
"정석이는..."
"이 새끼는..."
"왜? 뭐? 나도 안전한 놈이잖아."
태윤이는 큰 체구에 비해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놈이고.
정석이는 미쳤지만 여차할 땐 가장 진지한 성격을 보여준다.
남수도 얼핏 만만하다 볼 수 있는데, 똑부러지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줄 아는 놈이었다.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친구들 덕분에 즐거운 분위기가 이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놈들과 어울리고 있는 나도 생각보다 다채로운 매력을 인정받는다.
"마하야. 너 올해 갑자기 확 컸지?"
"어? 어."
"역시 남자애들은 크면 금방 큰다더니."
아무래도 혜정이 친구들이 여러모로 질문이 많았다.
운동은 언제부터 했어? 운동회 때 진짜 빠르고 멋있었는데 계속 운동으로 갈 거야?
평판이 좋다고 듣긴 들었지만 직접 이렇게 마주하니 조금 쑥쓰러운 기분이다.
"오~ 구마하. 인기 좋은데"
"닥쳐..."
"근데 어른들 언제오셔? 우리 진짜 이러고 있어도 돼?"
"괜찮아. 형한테 허락 받았어. 오늘 명절이라 늦게 들어올 거야."
"형?"
"아. 우리 부모님 안 계셔."
"어? 어... 미안."
"아니야 아니야. 그런 걸로 미안해 하지 마. 니네 잘못도 아니고."
반 친구들도 조심스럽게 그럼 돌아가신거야? 하면서 물었다.
안 그래도 애들도 늘 그 부분에 있어 조심하는 모습이라 이번 기회에 한번 말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나도 최근에 형한테 들었는데."
이해 못 할 이야기는 빼고 알려줬다. 그 정도만 하더라도 충분히 충격적일 수 있는 내용이니까. 역시나 반응이 격하게 돌아온다.
"그럼 너 북한 사람이었어??"
"아니지. 난 태어나자마자 형이 데리고 왔는데, 난 한국 사람이지."
"와... 이 새끼 존나 충격인데?"
"태윤아. 넌 알았냐?"
"아니... 처음 들어."
"쟤도 몰라. 나도 올 여름에 알았다니까."
갑작스런 출생의 비밀에 분위기가 또 확 살아나는데, 나도 잘 모르니까 궁금한 사람이 우리 형 찾아가서 물어보라고 넘겨버렸다.
혜정이 친구는 또 한번 놀랍다는 듯 말했다.
"마하는 이름만 독특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까 되게 신비로운 면이 많았구나."
"하하... 고맙다. 불쌍하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야. 이혜. 넌 왜 이런 앨 혼자 독점하고 있었냐?"
"쟤도 몰랐다잖아. 그리고 누가 누굴 독점해..."
"맞어. 우리 서로 인사 안 하고 다녔어. 오피셜로 모르는 사이였지."
세 녀석은 당연하고, 이제는 반 애들도 아는 이야기.
혜정이 친구들도 얼핏 우리가 무슨 관계였는지 들었는가 분위기가 뒤집혀져 웃음이 터져나온다.
"야. 니네는 웃을 자격 없어."
"그래. 우리가 진짜 존나 피곤했지..."
"심지어 우린 맨날 마하한테 혜정이 얘기 듣느라 니가 아는 앤 줄 알았어."
"난 그걸 중학교부터 들었다..."
미친놈들 또 지랄이네...
"진짜? 마하가 혜정이 무슨 얘기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
"별 것도 없어. 아침에 같이 엘리베이터 타고왔다 그거 하나야."
"아니지. 크지. 엘리베이터 타고 오는 날은 하루종일 쟤 얘기만 하니까."
"아 좀 그만하라고..."
"오죽하면 우리끼리 그랬는데. 혜정이를 찾아가자. 가서 제발 마하한테 인사 한번만 해주면 안되겠냐고 부탁을 하자."
한번 입이 열리자 멈추지 않는 친구들. 녀석들이 결국 올 여름을 꺼내들었다.
"그때도 진짜 대단했지."
"언제?"
"이 새끼 아파서 한달만에 학교 왔을 때. 그때 혜정이가 먼저 말 걸었다고."
"아! 어! 어 맞어 그때! 맞다 그게 있었지!!"
"크하하! 그때 구마하 완전 눈 뒤집어 졌었는데."
"야 이 씨! 진짜 그만하라니까."
"먼저 말 걸었다고. 그게 지한테 관심 있는 거라고. 혼자 막 미쳐가지고."
"야!!"
입을 막으려면 주먹을 써라. 제발 좀 닥치라고 애들한테 몸을 던졌다.
시끄럽게 웃던 혜정이와 친구들도 웃음이 잦아들더니 안타깝다는 듯 목소리가 변했다.
"어떻게 보면 되게 안타깝다. 초중고 같이 다녔는데."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친해지고 싶었으면 아는 척을 하지. 이혜. 너도 너무한 거 아니냐?"
"아니. 난 쟤가 나 싫어하는 줄 알았다니까."
반 친구들도 그 정도인 줄 몰랐다면서 왜 그렇게까지 멍청하게 굴었냐는데.
아니야. 우리 충분히 친해졌다고... 서로 벗은 몸도 본 사이야.
"후우우. 아니 생긴 게 이따군데, 무슨 아는 척을 해..."
"마하야.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난 너 생긴 거 별 상관 안 했다니까."
"..."
"그래. 그리고 생긴 게 뭐 어때서? 남자애들 다 그렇게 생겼잖아."
"야. 너네들 지금 마하 보면서 놀리고 있는데. 너네중에 쟤보다 키 크고 몸 좋은 애 있어?"
"난 마하보다 큰데?"
"나도 마하랑 키 똑같은데."
"그래서? 쟤만큼 몸 좋고 운동 잘해?"
악마같은 놈들에게 여자애들이 조목조목 반박해준다.
키 작고 그랬던 시절이면 몰라도 지금은 누가봐도 운동하는 애 같이 보이고 실제로 몸도 많이 컸기 때문에 얼굴은 크게 따질 이유가 안 된단다.
"어우. 무서워라..."
"살벌해서 이제 구마하도 못 놀리겠네..."
"너 멋있어. 그치 이혜?"
"응. 나도 말해줬어. 괜찮다고."
"마하야. 이제 그런 생각 하지마. 학교에 너 좋게 보는 애들 많은데 왜 그래."
"..."
친구들이 오~ 이 새끼 하면서 툭툭 건드리는데, 남수가 여자애한테 말했다.
"야. 니네 그런 말 하지마."
"왜?"
"맞어. 우린 그냥 느낀 그대로 말해주는 건데."
"너네나 놀리지 마. 그래도 쟤는 바뀌려고 엄청 노력하고 있잖아."
"그게 아니라. 마하 이 새끼 그런 얘기 들으면 울어."
빌어먹을 박남수 같으니라고. 겨우 참고 있었는데 너 때문에 눈물 날 거 같잖아.
하지만 나에겐 김태윤과 이정석이란 또라이들이 있었다.
"구마하. 참아라. 여기서 울면 좆된다."
"병신아 우리끼리 있는 거 아니라고. 정 뭐하면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줘?"
"하하! 미친놈들!"
"정석이 쟤는 말 참 재밌게 한다."
"괜찮지? 학교에 나 좋다는 애들은 없어?"
"없어."
"응. 아직 못 봤어."
수다가 끊이질 않는다.
한 젓가락 먹었는데 케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치킨도 누가 다 먹었는지 지저분한 빈 박스만 굴러다녔다.
고기는 굽는 족족 입으로 들어가고, 과자를 뜯고, 술은 원래 마실 줄 몰라 병만 따놓고 굴러다닌다.
그냥 동그랗게 둘러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밤이 깊어갔다.
"벌써 10시야?"
"슬슬 가야 되겠는데. 이혜 너는?"
"너네들 가면 나도 올라가야지."
"가려고?!"
"야. 안돼. 오늘 이 분위기 너네들 있어서 가능했던 건데."
"얘들아. 우리 딱 12시까지 이 멤버로 노래방 한 시간만 갔다가 가면 안 될까?"
남수가 슥 다가와 김태윤 저 새끼는 무슨 노래 못 해 죽은 귀신이 붙였냐는데, 진짜 나도 궁금하다.
"태윤아. 다"
"너 이 씨! 다음이라고 하기만 해봐! 죽여버릴거야!!"
"다. 다..."
다 치우고 얘기하자고 그럴려고 했는데...
* * *
"노래방 갈 거야?"
"가도 치우고 가야지. 우리 형 새벽에 와서 이꼴 보면 피곤한 사람 더 피곤해질 거 아냐."
"후후. 착한 동생이네."
시간이 늦은만큼 태윤이가 먼저 애들을 데리고 노래방으로 빠져나갔다.
혜정이는 집에서 바로 내려와 옷도 가볍고 치우는 걸 돕고 가겠다며 남아 있었다.
"애들 뭔가 생각이랑 다르다. 재밌었어."
"얘기했잖아. 병신들이라고."
"근데 너무 놀리더라."
"안 그래도 묻어버릴 기회만 노리고 있어."
덜그럭 덜그럭 접시들을 싱크대에 모으고 혜정이가 행주를 가져다 상을 치웠다.
뭔가 손님 집들이 한 부부같기도 하고...
그래. 물어보자. 이제는 누구 방해받을 사람도 없잖아.
"왜 왔어?"
"아직도 그 소리니?"
"아니... 아까 그러고 다시 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후드티를 입고있던 혜정이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뭔가를 슬쩍 꺼내보여준다.
"집에 갔는데 속옷이 없길래."
"아. 아~ 아!"
"서두르다 보니까..."
"하하. 아아~ 다행이네. 그거 들켰으면 또 얼마나 뒤집어 졌을지..."
속옷도 챙기고. 올라가니 아무도 없길래 혼자 있다간 더 우울해질 거 같아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필요했었단다.
"겸사겸사 와봤어. 와서 같이 있길 잘했다 싶고. 진짜 엄청 웃었거든."
"이제는 좀 괜찮아?"
"응. 괜찮지."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고 혜정이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단 둘이라는 상황.
뭔가 엄청 자연스러운데 그렇기에 묘한 흥분이 느껴졌다.
"저기. 다른 데 좀 보고 있으면 안 될까?"
"왜?"
"의식되거든..."
"후후. 너 근데 진짜로 그렇게 내 얘기 많이 했어?"
"아냐. 애들이 오버한 거야..."
"흠."
안된다. 안돼. 진정해라.
하지만 참으려 하면 할수록 지금의 혜정이와 아까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겹쳐진다.
"..."
"..."
그리고 역시나 지 혼자 미친듯이 커지기 시작하는 두개의 심장.
젠장. 하필 또 옷을 츄리닝을 입고 있어서 숨길수도 없고...
바지가 막 커지는 모습에 혜정이가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후훗 아 뭐야 또... 갑자기 왜?"
"야. 웃지마! 진짜 어쩔 수 없는거야 이건. 아까 그런 일도 있었고."
"미안. 오늘 고마웠어. 너 없었으면 최악의 이브가 될 뻔 했는데"
가나? 가는 건가? 하는 말이 꼭 인삿말같이 들리는데.
정말 혜정이를 이렇게 보내줘도 되는 거냐?
"힘든 날. 정말 좋은 선물을 받은 거 같애."
"..."
선물? 그래. 그런 게 있었지. 오늘은 12월 24일 이니까.
"혜정아."
"응?"
"나도 그럼 선물 하나만 해주면 안 될까?"
"뭐?"
용기를 가져라. 난 선수니까.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보여주는 거다.
"손으로 한번만 해주라. 입으로 해주면 더 좋고."
"..."
역시 오늘을 그냥 넘길 순 없다.
이 좋은 분위기를 순순히 흘릴 수 없다고.
밑져야 본전이다. 무엇보다 이미 매너있게 지켜줬잖아.
"제발. 미칠 거 같애."
"야..."
"한번만. 응? 이미 너도 볼 건 다 봤잖아."
이제와서 가슴 보여주면서 해달라는 옵션을 붙이면 조금 그렇겠지?
모르겠다. 밤은 계속된다. 파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그렇죠 산타 할아버지? 아까는 욕해서 죄송해요. 제가 어르신의 큰 뜻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