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3화 〉데이트를 즐겨보자. (83/198)



〈 83화 〉데이트를 즐겨보자.

[그 대신 보너스 능력을 추가해주마! 힘내렴!]

대충 넘기려는 창세신. 당장에라도 욕을 한 바가지 내뱉고 싶지만, 눈앞에 서 있는 천마 탓에 그러지 못하겠다.

갑작스러운 천마의 등장에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무협 세계관엔 가본 적이 없다.

무협 세계의 인물을 만나본 적이 없는 건 아니다. 첫 번째 세계를 필두로 간간이 무협 세계 출신의 사림들을 만났었다.

그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때면 단 하나의 이름은 꼭 나왔다.

하늘과 땅을 통틀어 가장 강대한 존재이며 마교의 수장으로서 피의 나라를 만들려는 희대의 악마이자 괴물.

천상천하 유아독족, 자기밖에 모르며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사이코패스.

그것이 내가 들어온 천마다.

무협 세계를 가긴커녕 시스템, 판타지, SF 세계나 갔었기에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상대가 무림인, 그것도 천마라는 것을 알았으나 자세한 실력까지는 가늠하기 힘들었다.

지금은 내 뛰어난 혜안으로 어림짐작할 뿐이다.

"유쾌하군! 이봐 이곳의 마족이여! 본좌는 저 용사라는 자를 놔주고 싶다!"

"이미 놔주기로 이야기 나눴는데 뒷북이구나 천마야."

"에에잇! 본좌가 멋지게 말하면 가만히 듣고 있을 것이지 건방지다!"

"훗! 우리는 마족. 우리가 호응해 드리는 건 마왕님뿐이다!"

마족들은 천마에게 반말하며 웃었다. 이에 천마도 털털하게 웃었다. 뭐지? 저 새끼 내가 아는 천마 맞나?

"보통 천마 하면 마교의 수장으로서 살육과 파괴를 반복하는 존재 아닌가? 아무리 봐도 너는 내가 아는 그 천마랑 다른 것 같은데..."

무엇보다 저 천마에게선 진득한 살기는 느껴지지 않고 마의 기운은 극도로 정제되어 있었다. 그런 그녀가 내뿜는 기운은 나를 향한 순수한 호승심과 투기뿐이다.

그렇기에 더 의아하다. 내가 알기로 천마는 미치광이 사이코패스 같은 인물인데. 결코, 타인과 사이좋게 대화할 인물이 아니었다.

"뭐? 그렇군. 용사여 너는 따분하고 재미없고 약해 빠진 위선자들인 정파를 만나본 적이 있나 보구나."

천마가 딱딱해진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는 기분 나쁘다는 것을 보여주듯 발로 탁탁 땅을 두드리며 나를 묘한 눈으로 보았다.

그 눈에 깃든 것은 진한 흥미와 따분함, 그리고 짙은 살기. 이윽고 천마의 몸에서 검붉은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와 주변을 잠식하듯 채워나갔다.

마기와 비슷하나 그것보다 위험하다!

"아리스, 유벨! 내 뒤로 모여!"

"어? 아, 알았어!"

내 말에 여태까지 가만히 있던 둘이 내 등 뒤로 달라붙었다. 나는 마력을 내뿜어 서서히 다가오던 검붉은 기운을 밀어냈다.

"쯧. 우리는 이쯤에서 가보겠다."

한편 마족과 거래 중이던 사제들은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거기에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

뿌득! 뿌드, 뿌드득!

마력이 부서진다. 당연하다는 듯이 모든 곳을 채워나가는 기운 앞에 내 마력이 밀리기 시작했다.

"끄으읏!"

빠르게 마력이 소모되고 있다. 처음 느끼는 기운 앞에 필사적으로 방어하며 그 원리를 파헤치려 했으나 너무나도 어렵다.

"하, 하하하. 이것 참 신기한 기운이네!"

콰득!

그래서 그냥 밀어버리기로 했다. 성스러운 신의 힘을 끌어내어 나의 마력에 덮어씌운다.

파츠츳!

밀리기만 하던 마력이 역으로 기운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천재가 아니다. 오히려 범인 측에 속하는 인간이었다. 이렇게나 강해지고 기술과 지식이 쌓인 것도 전부 압도적인 경험과 시간 덕분이다.

그덕에 나는 반신의 영역에 올랐으니 경험이 아직 미천할 저 애송이한테 밀릴 정도로 나는 약하지 않다.

주변을 잠식하듯 뿜어져 나왔으나 그래 봤자 기운일 뿐인 것도 있고, 마력이든 뭐든 체외로 나온 상태에서는 역시 약해질 수밖에 없다.

아마 천마도 상당한 기운을 소비했을 것이다.

"하앗!"

기함 소리와 함께 기운이 완전히 깨져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이 기운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분석하고 싶지만…

짝- 짝-

"역시 너는 정파 녀석들과 다르구나!"

"대체 뭐가 다르다는 거지. 애초에 난데없이 공격해 놓고 뭔 개소리를 하는 거야!"

"공격? 공격이라고? 그래 공격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의 눈을 보아라. 너의 눈동자는 내가 가진 힘에 대한 흥미로 반짝거리지 있지 않으냐!"

마교는 환희로 얼룩진 얼굴로 양팔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몸에서 진득한 기운이 요동치며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내가 생각한 대로 그녀의 기운은 약해져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마라는 이름값에 맞게 기세는 여전했지만.

"마교의 요사스런 술법이니 더러운 어둠의 힘이니 따지지 않고 모든 힘에 목말라하며 흥미를 느낀다. 너는 나와 같다고 할 수 있어! 그렇지 않은가!"

"아니 왜 자꾸 급발진이야 이 미친년아!"

아까전에 정교 이야기하면서 다짜고짜 공격하더니 이번에는 자신과 내가 같다며 난데없이 동질감을 표한다.

매우 당황스럽다. 물론 천마가 가진 기운에 흥미가 있는 건 맞지만 모든 힘에 목말라 하지는 않는다.

[니가? 마법, 암기, 사냥 기술, 무기술, 온갖 잡기를 닥치는 대로 배웠던 네가?]

'닥쳐 창세신. 그렇다고 내가 마기나 악마의 힘같이 선을 씨게 넘는 짓을 안 하잖아.'

[대신 마신의 힘을 먹거나 마왕의 시체를 무장으로 가공해서 써먹은 적은 있지 않나.]

"하여튼 네가 원하는 게 뭐지?"

뒤에있던 아리스와 유벨을 다독이며 천마를 노려봤다. 둘은 나와 천마의 압도적인 기 싸움에 벌벌 떨고 있었다. 아마 둘은 커다란 산을 마주한 기분일 것이다.

그걸 넘어야만 둘은 더욱 성장할 수 있다.

[말 돌리는 거 보소. 인성 수준...아참, 상태창이랑 시스템 업데이트했다. 알아둬!]

'뭐? 이 미친 새끼가! 그런 건 미리 말했어야!'

[그러면 난 이만! ㅅㄱ]

이제는 아예 나한테 달라붙어 조잘대던 창세신은 빠르게 튀었다.

동시에 업데이트 관련 상태창이 대량으로 생겼다. 거슬리니까 지금은 닥쳐봐 새꺄!

손을 휘저어 떠오르던 시스템 칸을 꺼버렸다. 천마는 그런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 등을 돌렸다.

"본좌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다. 은인이라 할 수 있는 마족을 도와 마왕이란 자를 부활시키는 것. 그리고 이번에 또 하나 생겼군. 네놈...지금 약해진 상태지? 최대한 힘을 되찾아라! 그리고 완벽해진 너를 죽이겠다!"

"미친. 살인 선언이냐..."

"훗. 기뻐해라! 이 천마가 네놈을 인정한 거니까!"

"뭐래. 아무런 이득도 없는 싸움 따위를 누가 좋아한다고."

나, 내가 좋아한다! 물론 귀찮고 싫어할 때도 있지만!

그런 생각을 마음속으로 집어넣으며 천마를 보았다. 저 천마라면!

"이득인가. 정의니 선이니 하면서 위선 떨며 싸우는 정파와 확연히 다르군. 좋다, 대가를 원하나? 만일 이 천마를 그대가 이긴다면 나는 기꺼이 그대의 것이 되어주겠다. 용사여!"

"오, 노예 선언이냐?"

"노예도 상관없다. 너의 아내로 삼더라도 상관없다. 어떤가? 나라면 제법 큰 이득이지 않나?"

"그건 인정한다."

천마는 미녀다. 저런 미녀를 얻을 수 있다면 싸움 정도야...왠지 뒤에서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러면 나중에 보도록 하지 용사여. 이만 간다!"

"이야~ 드디어 끝났네."

"대화 너무 길게 하는거 아니야? 기다리다 지루해서 우리끼리 갈 뻔 했잖아."

역시 마족이랄까 별 긴장감 없이 천마를 대한다. 천마도 이게 나름 괜찮은지 미소 지었다.

"자, 잠깐만! 나도 데려가야지!"

현상금 목표인 샤니아가 천마에게로 달려갔다.

"여, 여기에 있던 그 광물을 너희가 안정적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도운 게 나잖아! 빨리 날 구해줘!"

"시끄럽군. 어이 용사. 이 녀석 너한테 필요한가?"

천마는 자신에게 달라붙은 샤니아를 보며 서늘한 살기를 흘렸다. 샤니아는 딸꾹! 하고 딸꾹질을 하며 벌벌 떨었다.

그나저나 이곳에 있던 광물이라, 마왕 교단 녀석들 이번엔 어떤 짓거리를 하려는 거지.

워낙에 기상천외한 짓을 하는게 마족이라 광물로 뭘 하려고 할지 생각나는 게 많다.

후우, 머리 아파. 일단은 여기에 집중하자.

"필요해. 근데 굳이 살아있을 필요는 없어."

서걱!

내 대답에 천마는 샤니아의 머리를 베어버렸다. 그녀는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시체에 예의 그 기운을 뿜어내 시체를 박살 내 없애버렸다.

그리고 나한테 놈의 머리를 던졌다.

"가져가라. 이제 우리한테는 필요없는 물건이니까."

그 말을 끝으로 천마는 공간이동 마법에 따라 이동되었다. 얼떨결에 머리를 받아든 나는 머리가 썩지 않도록 방부 마법을 걸고 미리 챙겨온 주머니에 머리를 넣었다.

주머니가 젖아 아래로 피가 뚝뚝 흘렀다.

"뭔가 묘한 기분이네."

빠르게 목만 베고 내려가려 했는데 귀찮고도 기묘한 일에 휘말려 버렸다.

나쁜 인연은 아니지만, 방금까지 강대한 폭풍이 몰아쳐 폭풍에 대한 대비를 끝내니까 갑자기 폭풍이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다.

"에휴~ 생각해서 뭐하냐. 이제 내려가자 얘들아."

몸을 뒤로 돌려 아리스와 유벨을 보았다. 둘은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음, 내가 뭔가 실수한 게 있었나?

"유진아?"

아리스가 오싹거리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른다. 입꼬리를 휘어져 웃고 있으나 눈꼬리는 그대로다.

그라고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는 건지 유벨 또한 손에 화염구를 만들어냈다.

"어제도 나를 실컷 범했으면서 오늘 처음 만난 여자한테 작업을 걸어?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내가 언제 작업을 걸었어."

유벨이 던진 화염구를 대충 손으로 잡아 꺼버렸다. 아리스도 강아지가 으르렁거리듯 나를 날카롭게 째려봤다. 꼬리가 있다면 지금쯤 1자로 쭉 서 있지 않았을까.

"이, 이이익! 죽여버려! 죽으라고!"

"죽기 싫고 그 정도 마법은 맞아도 안 죽는다."

포기하지 않고 마법을 쏘는 유벨. 항마력 탓에 맞더라도 끄덕 없지만, 퍼포먼스 처럼 손으로 툭툭 쳐냈다.

내 행동에 아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유진이 너는 이런 사람이지. 에반과 비교도 할수 없을 정도로 우월한 능력에 힘을 지녔지만, 우리만으로 만족 못하지."

"그러니까 언니! 저런 놈하고는 빨리 헤어져야 해! 에, 에반 오빠가 다른 여자하고 가끔 몸을 섞기는 하지만 저 녀석처럼 여자를 중증으로 밝히진 않았다고!"

"나는 그렇게 많은 여자를 밝히진 않았는데?"

"웃기지 마! 아리스 언니에 이어 황녀님도 건들고! 거기에 나까지 건들여 놓고 자기 여자니 뭐니 했었잖아! 그런 주제에 또 새로운 여자에 눈독을 들이냐!"

샤아악!!!

유벨이 대노한 고양이 마냥 나를 째려본다.

"거참. 얘들아 너희가 착각한 것 같은데 방금 본 그 천마는 나랑 그런 식으로 엮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그 사람 이름이 괜히 천마겠니."

내 말에 둘의 귀가 쫑긋거린다. 천마니 정파니 그녀들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를 꺼내 가며 대화했기에 나름 궁금했나 보다.

"그녀는 사람 중에서 가장 큰 마를 짊어진 인물! 용사인 내 숙적이라고 할 수 있지! 우리 둘이 싸워서 승패가 난다면 결과는 두 가지야. 내가 죽거나, 그놈이 죽거나."

나는 지금 진지했다. 그렇기에 두 사람도 내 말을 신뢰하는 눈치였다.

"그, 그러면 그 사람 엄청 위험한 사람이야?"

"위험하지. 아마 어지간한 S랭크는 상대도 안될 거야."

S랭크에도 엄연히 상하는 있다. 우리 길드의 간부진보다 리린 플라비스가 더 강하듯 최상위권 S랭크인 간부진과 리린 플라비스의 실력은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어렴풋이 추측할 뿐이지.

"하여튼 내려가자 머리를 제출하고 정산받아야지."

인벤토리를 열고 머리를 넣은 주머니를 넣었다. 그때 내 눈을 잡아 끄는 게 보인다.

용의 열매 수십 개가 들어 있었다.

"아, 맞다."

이게 있었지. 용의 열매는 개당 금화 10개 이상인 희귀 물품. 용의 머리는 가공해서 유벨 주기로 했던 거.

까먹고 그냥 보관만 하고 있었다. 수배 전단을 꺼내 다시 읽어봤다. 으음 금회 10개. 용의 열매는 개당 금화 10개니까...우리 여기 뭐하러 온 거지?

현타가 찾아왔다.

"아리스...이 머리는 너에게 맡기마!"

그래서 머리를 아리스에게 넘겼다. 아리스는 어리둥절해하면서 머리를 받았다.

"그러면 이제 가서 그걸로 돈 받아와. 나는 잠깐 할 게 있거든."

우선 둘을 보냈다. 둘은 갸웃하면서도 내 말에 따랐다.

인벤토리에서 과일을 꺼내 한입 베어 물었다.

"...맛있긴 무진장 맛있네."

괜히 비싼 게 아닌지 돈값을 한다.

"그보다 반지도 아직 안 줬네."

반지를 언제 줄지 고민하며 과일을 우적우적 씹어 삼켰다. 남은 찌꺼기를 대충 길가에 버렸다.

애들이 돌아왔다. 반지는 분위기 좋을 때 건네줘야지.

둘다 주머니에 스윽 넣었다.

"이제 마을, 아니 고향으로 가자."

이제부터는 복수의 시간을 가질 때다.

"유진아! 우리 마을에 가기 전에 이 마을 좀 구경하고 가자!"

"이 마을 뜻밖에 볼 게 많아. 던전 도시와 달리 학자들의 마법 시설도 많고."

"아, 그래? 그렇지만 굳이 여기서 머물 이유가 있나?"

내 말에 아리스와 유벨이 양쪽에서 내 팔을 붙잡고 동시에 있다고 외쳤다.

"너희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복수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필요하겠지.

특히 아리스와는 연인 관계 같은 거면서 데이트도 한 번 못 해봤잖아. 여기서 데이트를 즐겨도 좋을 것 같다.

복수는 둘과 좀 놀고 나서 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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