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세계가 다른데 너가 왜 여기서 나와?
남자는 내 옆의 미녀들. 특히 아리스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어이 아가씨들. 보아하니 현상금 사냥을 하러 온 것 같은데 저런 약한 녀석하고 다니지 말고 우리랑 같이 가는 게 어때?"
"맞아, 맞아. 저런 놈들보다는 우리같이 위도 아래도 듬직할 남자가 낫지 않겠어."
남자들은 그렇게 말하며 낄낄 웃었다. 더 들어볼 것도 없는 저질스러운 놈들의 말에 우리는 무시하기로 하고 산으로 들어가려 했다.
"잠깐! 말하고 있는데 어디를 가! 사람이 말을 하면 들어야 할 거 아니야!"
"아니면 네 옆에 여자 두 명이라도 놓고 가던가. 우리가 잘 쓰고 돌려줄게. 돌려줄 때 쯤에는 헐렁헐렁해질지도 모르지만."
'하아, 이 주제도 모르는 놈들이!'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구나.
방금 그 발언으로 아리스와 유벨이 웃기 시작했다. 입꼬리는 올라갔으나 눈은 차가웠고 몸에서 스멀스멀 살기가 올라온다.
나를 향한 사랑이 지극히 강한 아리스는 죽일듯한 기세로 검을 뽑아들었다. 자존심이 강한 유벨같안 경우에는 어느새 지팡이 주위로 화염이 몰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예상(우리가 약하다.)과는 다른 상황이 연출되자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유벨이 마법을 쓰려는 걸 보자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덜덜 떨었다.
"마, 마법사! 씨발 왜 마법사가 여기에!"
"튀, 튀어! 마법사 이 미친 새끼들이랑 엮여서 좋은 점 없어!"
둘은 후다닥 도망갔다.
"쯧. 별것도 아닌데 까불고 있어."
유벨은 지팡이를 휘적거리며 녀석들을 비웃었다. 웃고 있는 걸 봐서는 자신의 마법에 상대가 쫀 게 마음에 드나 보다.
아리스도 다시 칼을 집어넣었다. 그나저나 그놈들이 마법을 보고서 그런 반응이라...
"내 예상보다 마법사에 대한 인식이 안 좋네."
어느 세계에서나 마법사는 특권층이자 엘리트 계층이자. 마법을 대체할 도구를 뚝딱 양산할 수 있는 현판 쪽이면 모를까 이런 판타지 세계에서 마법은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것.
당연히 마법사들은 프라이드가 강하고 싸가지 없는 놈들인 경우가 많다.
그나마 마법사 특징이 마법에만 관심이 있어 어지간한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건데 저놈들처럼 마법사를 건드리다 마법 처맞아 본 적 있는 놈들한테 마법사는 미친놈들이겠지.
솔직히 나도 다짜고짜 마법을 날리려던 유벨의 행동에 놀랐다.
"유벨, 만약 저 둘이 계속 찝쩍거렸으면 진짜 마법 쓸거였어??"
"흥!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네가 사전에 다 치워버렸겠지!"
유벨이 새침데기 처럼 고개를 획 돌리며 말한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내가 없을 땐 어쩌려고."
"어쩌긴 뭘 어째 그때는 진짜 날려야지. 마법을 괜히 배운 게 아니야. 이럴 때 쓰려고 배운 거지."
유벨이 위험한 미소를 지으며 손 위로 작은 불꽃을 일으켰다. 그녀의 붉은 트윈테일이 흩날리며 불꽃의 아지랑이에 뒤섞이는 모습은 굉장히 귀엽다.
뭐랄까. 센척하는 고양이를 보는 느낌!
"그래, 그래. 내가 너희 곁에 없을 일은 없겠지만 내가 없다면 망설이지 말고 쏘렴."
유벨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녀는 얼굴을 붉혔으나 나에게 딴죽을 걸지도 으르렁거리지도 달려들지도 않았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쓰읍~ 시간이 지날수록 유벨의 커여움력이 상승하고 있다. 자존심 강하고 드세게 굴던 때도 좋지만 이렇게 부끄러워하면서 묵묵히 받아들이는 모습이 아주 좋다.
"으읏, 이제 그만해! 얼른 올라가야 할 거 아니야!"
자꾸 쓰다듬으니까 유벨이 내 손을 쳐냈다. 그리고 후다닥 숲을 향해 달려갔다.
아쉬움에 허공에서 손을 몇 번 움찔거린다. 내 뒤에서 아리스가 달라붙었다. 그녀는 풍만한 가슴으로 내 등을 짓누르며 능글맞게 웃었다.
"유벨 귀엽지 않아? 저런 모습은 에반이나 나한테만 보여주던 거야. 그리고 좀 더 시간이 지나면...후후후. 말 안 해도 알지?"
오, 그때는 개냥이로 진화(?)하는 건가! 저렇게 기가 쎈 모습도 좋고 지금의 모습도 좋지만 개냥이 같은 모습이라니!
한번 상상해 봤다. 내가 키스 할 때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몇 번 돌리지만 내 집요함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키스에 임하고 조금 달아오르며 나에게 달라붙어 애교 부리는 모습을.
빨딱!
벌써부터 기대감에 발기해 버렸다.
"아, 섰다. 내 말에 그런 유벨을 상상한 거지?
아리스가 묘한 목소리로 말하며 손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옷 위로 볼록 튀어나온 자지를 천천히 문질렀다.
야외에서 이런 섹스어필이라니 흥분된다. 하지만 나나 그녀가 사리구별을 할줄 안다.
"여기서는 그만. 다음의 것은 다음 기회에 계속하자♥"
아리스가 애교를 부리며 물러났다. 아깝지만 그녀가 스스로 나에게 다가올 걸 생각하니 이건 이것대로 좋다.
"아리스 언니! 쟤랑 뭐해! 빨리 안 오고! 자꾸 그렇게 늦어지면 나 혼자 간다!"
"진법도 모르면서 뭘 혼자 간다는 거야!"
진짜로 혼자 숲에 들어가려는 유벨에게 달려갔다. 저 새끼 아직 진법의 무서움을 모르는군.
예전에 진법에 걸려 한 달 가까이 숲에 갇힌 전적이 있는 나로선 진법의 무서움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유벨을 막고 우선 진법 앞에 섰다.
"조금만 기다려."
둘을 내 뒤에 세우고 인벤토리를 뒤적인다. 아니고, 아니고, 아니고, 아니고, 아니고, 아니고. 찾았다!
"짠! 마석 폭탄!"
내가 꺼낸 건 특별 개조한 마석 폭탄! 특수하게 개조와 개량을 거듭하여 폭발 범위를 극도로 넓힌 무기지!
"폭탄? 그걸로 뭘 하려"
알라후 아크바르!
숲을 향해 마석 폭탄을 투척. 동시에 숲으로 뛰어든다. 내 행동에 기겁하며 뒤에 있던 둘이 제때 따라붙었다.
"뭐, 뭐하는 거야! 그보다 그 옷은 또 뭐고!"
재빠르게 역병 의사 복장으로 갈아입자 유벨이 놀라 소리쳤다. 대충 걱정 말라는 의미로 따봉을 날리며 포켓에 넣어둔 마석 폭탄을 더 꺼냈다.
알라는 위대하시다! 이 뜻이 맞나 헷갈리지만 뭐 어때 재밌으면 된 거지!
주변을 향해 폭탄을 뿌리고, 또 뿌린다. 뿌려진 폭탄은 허공에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앙! 콰광! 콰과광!!!
부르르~
거대한 폭음에 땅마저 울린다. 진법에 의해 생겨난 안개가 빠르게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하하핫! 나의 지식은 세계제일이지! 진법은 배치를 통해 신묘한 힘으로 특수한 효과를 낸다!"
그렇기에 마석 폭탄을 이용해 거대한 폭발로 진법의 배치에 충격을 주면서 동시에 마력이 퍼져 나가 신묘한 힘을 강제로 물러나게 한다.
사람의 마력이라면 이런 짓은 못하지만 마석의 마력은 순수하고 깨끗하여 자연의 마력과 비슷하다.
덕분에 자연물에 영향을 주기 쉽기에 마력 폭탄을 선택했다.
그리하면 진법의 힘은 약해지고 그 범위 또한 좁아져 진법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
"덤으로 길도 잃지 않을 수 있고!"
"지금 길이 문제냐! 숲에서 폭탄을 터트리면 어쩌자는 거야 이 미친놈아! 생각 좀 하고 행동하라고!"
"충분히 생각하고 내린 결론이다!"
비록 폭발에 아주 중요한 목재 자원이 박살 나고 땅도 훼손됐지만...
"이건 전부 진법까지 치면서 존버한 현상범 잘못이지 우리 잘못 아니야! 아무튼, 아니야!"
걸려도 현상범 탓으로 몰아가면 된다. 우리는 황금 길드 소속이니 그 이름값으로 찍어누르면 아무도 우리를 의심하지 못할 거다.
"이, 이 미친 새끼가!"
빠악!
"꺄앗!?"
유벨이 내 정강이를 걷어찼다. 근데 내 몸이 워낙에 튼튼해서 도리어 유벨이 발을 아파했다. 아리스는 한숨을 내쉬며 유벨을 공주님 안듯 안았다.
유벨은 발을 동동 구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아리스 에게 애원하려 했다.
"우우, 언니. 이제 우리 어떻게 하. 언니?"
"뭐야. 뭔데 그래."
폭탄을 후두둑 뿌리며 뒤로 보았다. 아리스가 저번에 내가 줬던 까마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언, 니?"
"유벨. 이 옷 입을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이러니까 나 멋지지 않아?"
"으, 으아아! 언니까지 그러기야! 역시 모든 원흉은 유진 녀석이야! 죽여야 해! 죽여 버려야 한다고!"
"이런! 유벨의 격렬한 사랑을 봐서라도 반드시 살아남아야겠네!"
"끄아아아아아!"
콰과광!!!
유벨이 울부짖었다. 금방 폭음이 삼켜 들리지 않게 됐지만. 하여튼 그렇게 진법의 힘을 줄이자 어느덧 안개가 매우 연해졌다.
숲 정상 부분밖에 가리지 못하고 있는 안개. 슬쩍 아래를 보니 모험자들이 이때다 싶어 우르르 몰려 오는 게 보였다.
"우왓! 뭐가 이리 많아! 우리 얼른 올라가야 하는 거 아니, 우왓!"
유벨의 머리에 가면을 씌웠다. 그리고 단검 두 자루를 꺼내 들었다.
"아리스, 돌입한다! 유벨 꼭 껴안고 있어!"
밧줄을 꺼내 나와 아리스를 묶었다. 아리스는 유벨을 자신의 가슴으로 소중하게 껴안았다.
우리는 정상 부분을 향해 달렸다. 이렇게 열심히 달려가는 이유는!
쿠콰쾅!
"우왓! 뭐야! 아직도 폭발하잖아!"
"도, 도망쳐! 폭발은 끝나지 않았어!"
콰광! 쿠쾅!
이 주변 일대가 내가 뿌린 마석들로 인해 생겨난 지뢰 지대이기 때문이다!
"으랏차! 들어간다!"
항마력을 일으킨다. 본래 마와 관련된 것, 마력과 마법에 대한 대항 능력이나 진법 또한 엄연히 마법에 영역에 들어간다.
"흐읍!"
기합을 줘 몸에서 항마력을 일깨우자 진법의 안개가 유리창을 야구 방망이로 후려쳐 부수듯 쨍그랑 깨져 나간다. 그 기묘한 광경에 아리스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곧 빛이 보였다. 저기가 숲 정상으로 가는 곳임을 직감하며 올바르게 달려나갔다. 안개는 우리의 움직임을 속박하지 못했다.
와장창!
왠지 마지막에 나와야 할 것 같은 소리와 함께 힘차게 숲 정상에 도착했다.
나는 곧바로 옷을 갈아입었다. 아리스의 옷도 겸사겸사 원래대로 되돌렸다.
"도착했다!"
두 팔을 크게 벌려 위로 올리며 숲의 정상을 눈에 담는다. 푸른 하늘과 녹색의 땅.
그리고 마족 새퀴들과 뭔가를 주고받는 사, 제? 그리고 현상 수배범인 샤니아라는 모험자가 보인다.
"어디 보자..."
혹시 모르니 수배전단을 꺼내 비교 관찰한다. 수배 전단에 나오는 샤니아는 붉은 머리카락에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진 남성이다.
여기에 있는 샤니아는 몸에 이상한 문신이 새겨진 것만 제외한다면 같은 모습이다.
"음! 샤니아 맞네!"
수배전단을 집어넣고 무기를 꺼냈다. 사제들과 마족들은 나를 보고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속닥거린 다기엔 다 들렸지만.
"어, 어떻게 할까요."
"목격자는 전부 처단한다!"
오호, 공격인가. 창을 꺼내 언제든 신성 강림을 할수 있도록 준비한다. 근데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동작 그만! 감히 용사를 네놈들 따위가 죽이려 하는 거냐!"
"뭐, 뭐라고! 용사라니 저런 창세신의 이단이 뭐가 용사라는 거냐!"
"하! 자기들은 교단의 우위니 뭐니 하면서 마족하고 손을 잡았으면서 자신들이 용사를 정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나!"
투닥투닥.
분명 같은 편이었을 두 팀이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교단이라는 놈들은 나랑 마족들에게 '너 이단!'을 시전했다.
문제는 저런 정체 모를 사이비 종교, 그것도 인류의 주적이라 할 수 있는 마족과 손을 잡은 놈들이라 별 의미가 없었다.
마족들은 나를 용사라 부르며 마왕님의 숙적이니 라이벌이니 하면서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뭐랄까, 음. 볼 때마다 깬다.
"크흠! 동작 그만! 용사로서 말한다. 마족과 사악한 이교도들은 당장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그리하면 자애로운 용사로서 살려주겠다!"
분위기를 가다듬으며 불길에 석유를 투척하는 것. 그게 내가 하는 행동이다.
"감히 누구보고 이교도라는 것이냐!"
"너희. 인류의 주적이며 마왕의 부활을 꿈꾸는 마왕 교단과 함께하는 중인 너희가 이교도가 아니면 뭐라는 거지? 당장 투항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용사의 책무를 맡게 됐는지 그 몸으로 알게 해주지!"
일부로 멋지게 말해봤다. 멋들어지게 말해 본 적이 없어서 뭔가 애매하다고 느껴지지만, 최대한 멋지게 말했다.
현재 분위기는 무력 충돌까지는 아니지만 당장에라도 무력이 튀어나올 기세다.
"싸울 생각은 없지만 투항할 생각도 없나."
두 세력다 가만히 굳어있다. 생각해 보니 얘네 왜 여기에 있지? 진법 같은 특이한 게 설치되어 있길래 이상하다 했는데. 설마 얘네가 설치한 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누군가가 다가왔다. 강렬한 기세를 흩뿌리며 한 손에 검을 든 미녀가 두 세력을 가르며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녀는 매혹적인 미녀였다. 아무렇게나 자란 것 같이 야생성이 보이나 윤기있는 은발과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가 절로 군침을 삼키게 하였다.
특히 탱탱한 골반은 여태 만난 여자 중 최고였다.
"신기하군. 설마 천마인 내가 직접 설치한 진법을 부수다니. 그대가 마족이란 존재가 말한 용사인가."
시니컬하게 웃으며 자신을 천마라 칭한 미녀. 천마라니 그건 무협 세계관에 나오는 인물일 텐데?
"너, 천마라면 설마 중원에서 온 거냐? 마교는 어따 팔아먹고 여기있냐??"
"호오. 저들의 말에 흥미를 느껴 세계를 건너 여기에 왔거늘. 설마 중원을 알고 있으며 본인을 아는 자가 있을 줄이야! 이거 흥미롭군!"
천마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빠른 움직임에 본능에 따라 신성 강림을 발동하며 천마에게 창을 휘둘렀다.
카앙!
천마 또한 어느새 몸에서 검은 기운을 폭발시키며 창을 검으로 막았다.
"대단하군. 이게 용사인가! 천마인 내가 살던 중원에서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황홀한 빛이로다!"
"쯧."
지금 내가 발휘하는 힘은 내 전력에 비교하면 10% 수준. 이것만 해도 A랭크를 뛰어넘어 존나 쎈거지만 천마와 한번 부딪히고 깨달았다.
지금으로선 저놈 못 이긴다.
"상황 판단이 빠르군 더 마음에 들어."
천마가 큭큭 웃었다.
"역시 본좌의 판단을 옳았어. 저 마족이란 자들이 본좌를 부를 때 응하길 정말 잘했군!"
그들의 말에 황급히 마족에게 시선을 돌렸다. 불렀다고? 마족이 어떻게 차원이동과 관련된 기술을!
차원이동 기술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몇몇 세계에서는 고대의 유산이라 불리는 기술이나 고도로 발달한 과학 기술로 차원을 넘나드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저런 식으로 판타지 세계에서 무협 세계를 연결 하는 건 본적이 없다.
[창세신의 조언:미안하다. 오랜만에 이 세계에 내 힘을 썼더니 차원이 균열이 가서 이렇게 됐다.]
오랜만에 등장한 창세신. 창세신은 조금도 반갑지 않은 말을 했다.
"...씨발."
결국 저 천마가 이곳에 나타난 건 창세신의 실수란 거다.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