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9화 〉너 뭐하니? (79/198)



〈 79화 〉너 뭐하니?

우리는 마차 뒤편에 느긋하게 앉았다. 내 양옆에는 당연히 아리스와 유벨이 있었다.

둘은 자신들을 힐끔거리는 못생긴 모험자들의 시선에 나에게 더욱 달라붙었다.

당연히 모험자들이 시선이 따갑도록 박혔지만, 그 시선에 담긴 열등감과 부러움에 기분이 좋았다.

나는 그들에게 과시하듯 둘의 허리에 손을 감아 내 품에 껴안았다. 아리스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스스럼없이 안겼다.

유벨은 반항하면서도 주변의 시선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내 몸에 밀착했다.

"근데 유진아. 포토니아 숲이라는데 지도로 확인해보니까 우리 마을 근처야!"

"마을 근처라고?"

"응응! 여기 봐봐!"

아리스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나에게 지도를 보여주었다. 지도에는 포토니아 숲이라고 적힌 지형의 옆옆옆에 아주 작은 마을이 그려져 있었다.

"여기 말하는 거지?"

"응! 여기 우리 마을이야! 잘됐다, 그 사람 잡아서 현상금 타면 마을에 한번 둘리자!"

"마을? 마을이라..."

고민된다. 그다지 끌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몸에 진 원한을 갚고 싶기도 하다. 문제는 갚을 방법이 적다는 거.

아리스랑 유벨의 부모님이랑 친구도 있을 마을에서 원수를 갚겠다고 학살을 벌일 수는 없잖아.

물론 아리스라면 내 말을 거역하지 않겠지만 적잖게 마음에 상처를 입을 거다.

'역시 가지 않는 게 낫겠어.'

나는 부정의 말을 꺼내려고 했다. 그때 유벨이 스리슬쩍 우리 사이로 끼어들었다.

"나는 찬성. 오랜만에 마을에 한번 가보고 싶어."

"그러면 2명이 동의했으니 가는 건가."

아리스는 그리 말하며 내 눈치를 봤다. 어지간히 마을에 들르고 싶은가 보다.

내 여자가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좋아, 한번 들리자."

동의하자 둘은 작게 환호했다.

"근데 아리스. 에반과의 일은 잘 설명할 수 있겠어?"

무엇보다 에반과 헤어지고 나랑 그런 사이가 됐다고 말할 수 있겠냐고 덧붙이니 방금 전의 환호는 어디 가고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우리 그냥 가지 말까?"

아리스의 어깨를 안았다.

"이미 늦었어. 어떻게 설명할지나 고민해봐."

아리스 아웃!

이번에는 유벨을 바라본다. 유벨은 흠칫 떨면서 나에게 꾸욱 쥔 앙증맞은 주먹을 내밀었다.

"나, 나는 걸리는 거 없다 뭐!"

"유벨은 나랑 섹스까지 한 사이였지? 그러면 연인이나 다름없지 않나? 가족들이 이걸 알면 반응이 참 재밌을 것 같은데."

"아, 아우!"

유벨 아웃!

단숨에 두 명이 녹아웃 당했다. 흡족하게 웃고 있으니 같은 마차에 타고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런 씨발! 누구는 혼자서 처량하게 마차를 타고 있는데 어떤 애새끼는 여자를 두 명이나 대동하고 시끄럽게 떠들고 있어!"

남지는 못생겼다. 흉측한 외모에 살인범을 연상시켰다. 그런 주제에 딴에는 아리스와 유벨이 탐나는지 침을 꼴깍 삼키며 둘을 바라봤다.

"어이, 애송이! 꼴을 보아하니 돈만 많은 신참 같은데 이리 와봐! 내가 선배로서 인생 조언을 좀 해주지!"

남자는 손을 까딱였다. 자기 딴에는 이거 위험해 보일 거라 생각하는지 만족스러운 미소까지 지었다.

"뭐라는 거야 냄새나는 병신 새끼가."

당연하지만 나는 나에게 싸움을 건 자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내가 한 말이 그리도 충격이었나? 아니면 지가 먼저 욕해놓고 나는 평화적으로 나올 거라 생각한 건가.

눈앞에서 씩씩대는 더러운 남자가 나를 째려보았다. 제대로 관리도 안 되고 마구잡이로 단련한 근육과 씻긴 한 것인지 역겨운 냄새가 풀풀 풍긴다.

나는 코를 막고 손을 휙휙 저었다.

"냄새나니까 저리로 좀 꺼지시지? 왜 남한테 피해를 주고 지랄이야."

"이, 이 새끼가!"

말귀를 못 알아 듣는 것인지 아니면 눈치가 없는 것인지. 남자는 괜히 세게 나왔다. 당장에라도 나한테 달려들 것 처럼 행동하면서 아리스와 유벨의 눈치를 살살 봤다.

푸웃!

"얘들아. 아무래도 저 남자가 너희한테 관심 있는 것 같은데?"

아리스와 유벨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며 남자를 가리켰다. 둘의 얼굴이 험상궂게 변했다.

아리스는 말조차 섞기 싫다는 듯이 아예 내 품에 얼굴을 묻어버렸고 유벨은 잘 걸렸다는 듯이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슬쩍 물었다.

"저 사람 모험자로서 실력이 어느 정도야?"

"D 정도 될 것 같아."

이런 치밀한 년을 봤나. 뭔가 하기 전에 나한테 상대의 실력까지 물어보는 꼼꼼함. 그래도 전투 분야에서는 내 실력과 힘을 인정하는지 유벨은 내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근데 이러면 내가 전투력 측정기가 된 것 같은 기분인데?

"저기요 아저씨. 추하게 여기서 그러지 마시고 원래 자리로 가시죠? 당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거 안보여요?"

그리고 냄새나니까 평소에 좀 씻으시죠? 유벨은 상큼하게 말했다. 근데 표정은 장난기 없이 진지한 데다 손으로 코를 막고 역겹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어댔다.

"뭐, 뭐라고! 이 꼬맹이가! 감히 누구한테!"

"누구긴 누구예요. 실력도 안되면서 현상금 받아먹으려 발악하는 꼬질꼬질한 거지새끼지."

우와, 존댓말이라 더 기분 나빠. 그보다 유벨 원래부터 이렇게 말을 잘했니?

"너랑 같이 다니면서 배운 건데?"

"? 뭔 소리야. 내가 얼마나 바르고 고운 말만 쓰는데. 너처럼 행동하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는 남자라고 나는!"

"이! 이이익! 나 무시하지 마 이 개새끼들아!"

남자가 버럭 소리쳤다. 남자의 뒤에 있던 동료도 험상궂은 얼굴로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걱정이 하나도 안 된다.

남자는 다가오는 동료의 모습에 용기라도 얻었는지 나한테 다가와 팔을 잡았다.

근데 그거 아니? 내가 배려하는 건 미녀 한정이란다. 미녀라도 꼴리면 그냥 두들겨 패는 게 나라고.

"이 더러운 새끼가 누구 팔을 잡아!"

마력으로 팔을 풀고선 그대로 들어 올려 엎어 쳐 버렸다. 순수하게 마력만을 이용해서 벌인 묘기에 슬금슬금 다가오던 남자의 동료들이 차갑게 굳었다.

"마, 마력!?"

"저 새끼 마력을 쓸 줄 안다! 거기에 마력으로 사람을 들어 올렸어! 최소 B 랭크 이상이야!"

방금 전까지의 기세등등했던 모습은 어디 가고 남자들은 몸을 부르르 떨며 마차 끝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덜덜 떨었다.

"죄, 죄송합니다! 사실 이새끼 혼자서 나댄 거예요! 저희는 이 새끼랑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뭐! 너희도 저 새끼 족치고 같이 여자 따먹기로 했었으면서 이제 와서 배신이냐!"

"우와...궁지에 몰리자마자 서로 배신하다니 참 보기 좋은 우애네."

"원래 저렇기 몰려다니는 새끼들한테 우정이란 건 없는 거야. 그냥 이득이 되니까 함께 다니는 거지."

한심한 모습으로 서로 말다툼하는 남자들. 그 모습이 매우 추했다.

나는 혀를 차며 바닥을 쿵쿵 두드렸다. 남자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몰려들었다.

"그만하고 저 구석에 앉아있어. 짜증 나게 하지 말고."

그렇게 소란을 가라앉았다. 우리는 마차 안에서 즐겁게 꽁냥거렸다.

늦은 저녁.

마차로 이 이상 가는건 위험하기에 우리가 탄 마차를 포함한 여러 대의 마차가 멈췄다.

각자 마차를 한곳에 두고 호위하듯 둥글게 텐트를 펼쳤다. 우리는 조금 떨어진 숲에 텐트를 치고 아리스가 식사를 준비했다.

요리는 내 전문 분야지만 아리스가 워낙 강하게 나와서 아리스한테 넘겼다. 그녀의 요리실력은 준수한 편이니 먹을 만한 게 나올 거다.

"유벨 요리할 동안 우리는 간이 결계아 설치하자."

시간이 남는 동안 유벨에게 속성 마법 강의를 해준다. 룬 마법을 비롯해 내가 사용 가능한 마법을 보여준 뒤 이 세계에 맞는 마법을 골라낸다.

그리고 그 마법으로 결계를 설치하는 것으로 시범을 보인다.

"먼저 땅에 4방위, 동, 서, 남, 북을 그리고 4방위를 중심으로 결계의 핵심이 될 물건을 배치."

결계의 핵심은 당연히 내가 미리 제작한 특수 마석이다. 마석을 텐트 쪽에 넣고 마법진을 새겨넣는다. 그리고 마법을 발동하면 끝.

"어때. 쉽지!"

"쉽긴 뭐가 쉬워! 영창이나 제대로 된 마법진도 없이 엄청 간략하기 하고 끝냈잖아! 왜 그렇게 하고도 마법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데!"

"마법이란 게 익히다 보면 익숙해져서 영창을 생략하거나 줄이는 게 가능하거든."

마법이란 학문의 일종이며 기적의 산물 같은 거다. 게임처럼 파이어볼! 이렇게 외친다고 뿅뿅 나가지 않는다.

제대로 된 영창과 마법진이 동반되어야 비로소 마법이 작동된다. 근데 나는 워낙에 오래도록 마법을 배운데다 마법의 여신한테 기술을 전수받기도 해서 영창 생략 정도야 간단하지.

"으으으...대체 왜 얘가 이런 압도적인 힘을 가진 거람, 뭐...싫진 않지만.... 우리 에반 오빠는..."

유벨은 에반 이야기를 꺼내며 투덜거렸다. 하여튼 그놈의 에반 사랑. 딱 한 번의 계기만 있다면 그녀가 넘어 올 것도 같은데 그 기회가 좀 처럼 오질 않는다.

"얘들아~ 밥 다했어!"

그때 텐트에서 아리스가 나와 손을 흔들었다. 아리스의 손에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스튜가 들려 있었다.

우리는 활활 타오르는 장작 앞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그릇을 세 개 꺼내 나누고 각자의 그릇에 푸짐하게 스튜를 담았다.

그리고 맛을 봤다.

"음~ 괜찮네."

나름 먹을만했다. 유벨도 별말 없이 스튜를 입에 담기 바빴다. 아리스는 맛있게 먹는 우리 모습에 뿌듯하게 웃었다.

그렇게 스튜가 바닥을 보일 때쯤 우리를 향해 마차에서 만났던 남자들이 다가왔다.

"저, 저기요?"

남자들은 쭈뼛거리며 우리 앞에 섰다. 나는 서늘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또 뭐야. 진짜 해보자는 거냐?"

"아, 아뇨! 그런 거 아닙니다! 그저 저희가 했던 무례를 사과 드리려고...이렇게 마실 걸 챙겨 왔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과일 음료수를 주었다. 그리고 조용히 물러났다. 진짜 이게 목적이었다는 듯이.

'저 새끼들 병신인가...'

나는 음료수 병을 들고 던져 버릴까 생각했다. 이미 까진 포장지에 한번 열린 흔적이 있는 뚜껑까지.

딱봐도 개수작을 부린 티가 팍팍 나는데 이런 걸 먹으라고 준다고?

역시 빡대가리 들이다.

"얘들아. 이거 먹지 말고 그냥 버.."

버리려는 순간 유벨이 눈에 띄었다. 그래, 계기가 없으면 만들어야지. 아마 저들의 목적은 아리스랑 유벨일터. 그렇다면 이건 기회다.

유벨은 이미 나한테 마음을 허락했지만 아직 행동에 큰 변화는 없었다. 이참에 그녀와 무언가 사건을 만들 필요가 있다.

'뭐, 큰 의미는 없겠지만.'

유벨은 나한테 훈련 받으며 마력에 관해 해박해졌고 자연히 마력 운용도 뛰어나졌다. 어지간히 강한 약이 아님 이상 유벨한테 5분 이상의 효과는 보지 못한다.

그렇기에 나는 웃으며 음료수를 열어 아리스와 유벨에게 건넸다. 나는 마시는척하면서 마력으로 버렸다.

"훗! 역시 힘이란 건 대단한 거야. 저런 무식한 남자들이 덜덜 떨기나 하고!"

유벨은 자기 힘도 아니면서 만족스러워했다. 물론 그녀도 저놈들 정도는 쉽게 잡을 테지만 한번 힘이라는 것을 맛보니 너무 달콤해서 빠져버린 모양이다.

꿀꺽, 꿀꺽...

유벨은 음료수를 들이켰다. 아리스는 나처럼 음료수를 둘러보다 마시는척하고 버렸다.

뭘 넣은 것인지 음료수를 마신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유벨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하아암~ 졸리다. 이만 자야...."

유벨이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이에 나와 아리스도 재빨리 쓰러진척했다. 미리 결계 마법을 꺼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곧 우리한테 음료수를 준 남자들이 다가왔다. 어떻게 된 게 행동하는 게 내 예상이랑 한 치의 오차도 없을 수가 있냐.

"야, 이 새끼들 안 일어나는 거 맞지?"

"그거 대형 몬스터 전용 수면제야 어지간한 충격이 아니면 안 일어나. 아, 그래도 B급 모험자는 건들지 마라 마력에 대한 컨트롤이 괴물이니까 작은 충격에도 잠에서 깰 거야."

"크크크. 그 새끼는 됐어. 어차피 목적이 이 두 년이니까."

"야야. 그래도 저 빈약한 년보다는 이 풍만한 몸뚱아리가 좋지 않냐?"

남자들은 음흉하게 웃으며 내 여자들에게 독니를 들어냈다. 건방진 녀석들. 당장에라도 죽이고 싶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았다.

남자들은 자기들끼리 몇 번 더 이야기를 나눴고 2명이 아리스한테 붙기로 하고 한 명은 유벨을 들어 숲 쪽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사람들이 많으니 들키지 않게 조심하는 것 같다.

"야, 이제 우리도 이년 옮기.."

우득! 남자 중 한 명이 아리스의 팔을 잡자마자 아리스는 남자의 머리를 붙잡아 꺾어버렸다.

180도로 돌아간 남자는 당연히 즉사 다른 녀석은 뒤늦게 어버버 거리며 도망치려다 나한테 붙잡혔다.

"이, 이거놔아아!! 웁! 우우웁!"

"쉬잇~ 조용히 해봐. 금방 끝낼 테니까."

남자의 목을 잡고 힘을 준다.

우드득!

남자의 목이 꺾이며 즉사했다. 나는 시체를 내려놨다.

"아리스 나 유벨한테 갔다 올 테니까 여기 정리 좀 해줘."

"알았어. 잘 즐기다와."

아리스의 배웅을 받으며 숲에 들어간다. 유벨의 위치를 찾는 건 쉬웠다.

유벨은 내가 준 지팡이로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남자를 꾸욱-꾸욱- 짓밟으며 웃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유벨이 나를 발견했다.

그녀는 잠시 아무런 움직임이 없더니

"으으...힘이 빠진다아~"

갑자기 연기하며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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