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5화 〉마녀를 만나다. 보상을 받다. (75/198)



〈 75화 〉마녀를 만나다. 보상을 받다.

누가 마족 아니랄까 봐. 강해졌다고 나한테 도전한다는, 마치 전사처럼 구는구나.

그런게 마족의 특성이긴 하지만!

카앙-! 카가강!

파이로스의 마기와 창이 격렬하게 뒤섞인다. 창에 휘감긴 황금빛의 번개가 화려하게 번쩍거렸고 몸의 마력은 가열차게 육체를 움직였다.

"역시 훌륭해! 훌륭한 솜씨야!"

파이로스는 쾌활하게 웃었다. 나에게 도전한다. 외쳤던 것처럼 눈동자에는 투쟁심이 가득했고 철저하게 자신의 목을 노리는 창을 튕겨내거나 흘려보냈다.

"후우..."

뒤로 약간 물러나며 태세를 정비한다. 파이로스도 거칠게 헉헉거리며 힘들어 냈다. 체력과 마력의 잔존량은 이쪽이 우위다.

솔직히 쟤가 붉은 액체를 흡입하여 자신의 힘을 되찾았을 때는 긴장했다. 다행인 건 나와 비슷한 수준으로밖에 힘을 되찾지 못했다는 거다.

굳이 싸우지 않고 위로 올라가기만 해도 던전에서 탈출할 수 있고 위험해 지면 그러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 없겠네.

이 승부는 명백히 내 우위. 이대로만 가면 저놈을 확실하게 죽일 수 있다.

"빌어먹을. 마왕님께서 드실 생명력을 먹고도 밀리다니. 이거 창피한데."

"창피해할 필요 없어. 너는 마족으로서 최고의 싸움을 하다 가는 거니까."

대치는 이걸로 끝이다. 다시 전신에 황금빛 번개를 휘감고 파이로스에게 달려들었다. 처음은 익숙한 찌르기를 연속으로 내지른다.

그리고 공격은 점점 포악적으로 변해갔다. 호흡을 지속하며 창을 휘두른다. 모든 것을 부술듯한 기세의 공격은 마력을 넉넉하게 담았기에 파이로스의 마기와 닿을 때마다 쿵! 쿵! 마기가 부서졌다.

"젠, 장!"

파이로스의 입에서 힘겨운 욕지거리가 나왔다. 아마 그녀도 눈치챘으리라. 지금 그녀가 나에게 손수 무책으로 밀리는 건 힘의 총량이나 몸 상태를 넘어 기술에서 너무나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란 걸.

카앙! 캉! 카캉!

빙그르르~ 창을 봉처럼 돌려 파이로스의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를 후려쳤다. 순간적인 타격에 그녀의 몸이 흔들리고 나는 팽팽하게 허리를 당겼다가 풀면서 그녀의 머리를 찌르려 했다.

"읏!"

휘익!

그녀가 급하게 몸을 비틀어 스치는 선에서 끝났다.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공격을 이어나갔다. 포악하게 휘두르다 절묘하게 움직여 신체를 타격하고 날카로운 찌르기를 날린다.

파이로스는 피하거나 막는 데 급급했다. 설령 공격을 날려도 나는 쉽게 막아냈다.

지금 내가 보여주는 영역은 무술로서 도달 가능한 최고 경지 중 하나. 공격과 방어의 완전한 일체화이자 조금의 딜레이도 두지 않는 공방 일체의 묘리.

그렇기에 나는 이를 행함에서 딜레이가 없었다. 육체 스펙이 부족함에도 나보다 강한 자들과 싸워서 버티거나 이길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하아......하아......큰일났네. 마왕님께 드릴 생명력까지 먹고도 이렇게 밀리다니. 생명력이 얼마 남지 않아서 아끼던 거였는데! 정말 명목이 없군!"

"저 액체도 나온느데 한계가 있었구나...아, 그래서 지금까지 저거 방치된 거였군."

이제는 액체가 나오지 않는 촉수를 가리켰다. 파이로스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현재 그녀는 전성기 시절이 아니다. 딱 봐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녀의 현재 실력은 S 랭크 정도.

아니지, S 랭트가 싸우는걸 못 봤으니 장담할 수는 없지. 그래도 대략 S 랭크라고 하자.

파이로스의 실력을 대강 분류하고 난 뒤 그녀에게 제안했다.

"어때? 항복하고 생포 되는 건 너는 9위라고 했으니 고위 마족이겠지. 항복하고 정보만 내어주면 살려줄게."

"거짓말이군."

파이로스는 즉답했다.

"네놈은 날 살려둘 생각이 없잖나. 그런 거짓말을 할 거면 그 짙은 살기부터 지워라."

그녀는 그리 말했으나 얼굴에는 패색이 짙었다. 본인도 방법이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대로 가면 항복하지 않을까 싶다.

"짙은 살기라니. 너무 과장됐군. 이건 적당한 투기일 뿐이야."

"쯧, 그런 되지도 않는 변명을 하다니. 뭐, 그래도 정의니 선이니 외쳐대는 용사보다는 훨씬 낫군."

"정의와 선이라. 중요하지, 둘 다 중요해. 근데 그거 두 개가 전투랑 전쟁에서 이겨주진 않잖아? 개인적으로 두 개 다 알맞지 않고. 우리가 하는 건 정의와 악의 싸움이 아니라 그냥 싸우고 싶고 죽이고 싶어서 싸우는 전사 간의 전투니까."

나는 정의가 싫다, 선이 싫다. 그 명목하에 실컷 굴러봤으며 정의라는 이름 아래에 깔린 어둠을 몇 번이고 직면했으니까.

그렇기에 단순하게 생각한다. 이건 신념도 뭣도 아닌. 그저 순수한 욕망과 욕구를 위한 싸움이다.

이런 내 말이 의외였는지 파이로스가 맹한 표정을 지었다가 금방 폭소를 터트렸다. 온몸 곳곳에 생긴 잔상처가 푸슛! 하고 터지며 악화했지만 그녀는 이 순간 순수하게 기뻐했다.

"그래, 그 말대로다. 정의와 악이 아니지! 그저 생사를 건. 죽이고 싶어서 싸우고 싶어서 열린 전투일 뿐이야! 나도 나이를 하도 많이 먹어서 그런지 그걸 잊어버렸네."

그녀의 얼굴에 환한 빛이 돌았다. 조금 전에 보이던 패색이 사라졌다. 그녀는 여기에서 온 힘을 기울여 싸우고 죽을 생각이다.

그녀를 생포하여 정보를 알아내려던 나한테는 안 좋은 일이다.

"날 생포할 생각은 버려라. 영웅이여. 전사라면 모든 잡생각을 버리고 눈앞의 상대를 죽이는 데 집중해야 하는 법이니까!"

콰아아아아-!!!

"크읏!?"

파이로스의 몸에서 어미 어마한 마기의 폭풍이 뿜어져 나왔다. 방금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강렬한 힘의 방출에 나는 나도 모르게 두세 걸음 물러났다.

우득! 우드득!

내가 뒤로 물러난 순간 마기가 증폭되었다. 파이로스는 전신에 새까만 마기를 듬뿍 덧칠하고선 날카롭게 벼려진 기세를 나에게 겨누었다.

"우리 마족에 관해 잘 아는 너인 만큼 마족 최후의 발악이 뭔지도 알겠지?"

그녀의 말에 얼굴이 자동으로 찌그러졌다. 마족이 행하는 최후의 발악은 자신의 생명력을 연료 삼아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을 강화 하는 것.

죽음을 각오한 자폭기이자 순수한 살의와 투쟁심의 표현이다. 거기에 더해 그녀의 몸에서 돋아난 촉수들에는 악마의 힘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러니까 너는 죽을 땐 죽더라도 내 포로는 절대 되지 않겠다. 이거지?"

"당연하지! 넌 마족이 싸우다 죽지 않고 포로가 되는 걸 본적이 있나!"

"몇번 있는데."

마족이라고 해서 전부 다 싸움, 아주 좋소! 전투와 죽음이 나를 부른다! 마왕님 만세! 등등. 전투에 집착하고 마왕에게 광적인 충성을 보내지는 않는다.

걔중에는 정치적인 인물도 있고 좀 웃기는 일인데 마족과 맞지 않고 마족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인물도 있었다.

생긴 거랑 성격이 마음에 들고 내 재량껏 빼는게 가능해서 마음껏 범해 쾌락으로 굴복시킨 경우도 있다.

"이, 있다고!? 거짓말 하지 마라!"

파이로스는 당황하며 소리쳤다. 거짓말이라, 반은 맞네. 지금까지의 예시는 전부 다른 세계의 마족이니까.

"그보다 슬슬 끝내자."

잡담은 여기까지다. 곧 있으면 신성 강림 유지 시간이 끝난다. 그전에 파이로스를 죽여야 한다.

"후우..."

자세를 잡으며 창에 최대한 마력과 번개를 담아냈다. 황금빛의 번개가 마력의 격류와 뒤섞여 창에 서리는 모습은 황홀하다 못해 아름답다.

파이로스도 최대한 몸을 날렵하게 마기를 움직여 바꾸며 전신의 마기를 폭발하듯 팽창시켰다. 그녀는 자신의 전신을 무기로 쓸 모양이다.

그리하여 서로의 기세가 팽팽하게 부딪치고 우리는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죽어라!"

콰앙-!

힘을 팽팽하게 실어 창을 투척했다. 내 손을 떠난 창은 울부짖었다.

우르릉!!! 쾅쾅!!!

커다란 천둥과 번개의 소리를 내며 빠르게 쇄도해 파이로스의 심장을 노렸다.

콰앙!

파이로스는 빠르게 날아온. 것도 갑자기 투창한 창을 회피하지 못했다. 그녀의 몸에서 마기와 번개가 뒤섞이며 격렬하게 뛰었다. 하지만 자신의 생명력을 끌어온 것 답게 아슬아슬하게 창을 비켜냈다.

"마지막 한판은 내 승리로군 영웅!"

"맞다. 질문 하나 더. 여태까지 용사 거리다가 웬 영웅 타령이냐?"

파이로스의 손짓을 가뿐히 피하고 가슴팍에 손을 얹는다. 그리고 비장의 수단을 썼다.

[신성 마법:신화 재현-제우스]

콰르르르르릉!!!

사방에서 내리치는 신의 번개. 허공을 뒤덮은 번쩍이는 빛이 시야를 가렸다. 몇 초 만에 다시 시야가 돌아왔으나 파이로스는 끔찍한 몰골이 되었다.

마기는 번개에 녹아내려 액체처럼 주르륵 흘렀고 파이로스의 육체 또한 신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녹아내렸다.

그녀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바, 방금 그, 건?"

"신성 마법의 일종. 신성 마법을 잘 쓰지 않고 싫어하는 내가 유일하게 만들어낸 비장의 카드이자 최강의 기술 중 하나."

그녀는 죽을 거다. 그렇기에 순순히 말해줬다. 단순한 선의냐고 묻는다면 그저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파이로스는 내 예상대로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가. 네놈이 신성 마법을 쓸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조차 너의 신성력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너는 뛰어난 사제기도 했군. 나는 너의 육체적인 전력 밖에 끌어내지 못한 거야."

파이로스는 콜록거리며 피를 토해냈다. 이제 진짜 한계다. 우리 둘은 서로 욕구와 욕망에 따라 싸울 것이기에 별다른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포로로 잡으려고 했는데 아쉽다는 감정이 다였다.

"그래서 마지막 질문의 답은? 왜 나를 영웅이라 불렀어?"

"그야...너는 용사가 아니니까. 정의로운 마음을 가득 담았기에 현실을 보지 못하고. 그저 신의 명이라는 이름으로 마왕님과 싸우는 년과는 다르지."

너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욕망과 의지에 따라 마왕님과 싸우게 될 거다. 장담하지.

그녀는 의미심장하게 그리 말하고는 눈을 감았다.

"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용사 같은 정의감이 없다 그거지? 안목 좋은데!"

박수를 짝짝 쳤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정의감으로 무장한 용사가 아니다. 신의 명령도 따르지 않는다. 그저 개인의 욕망에 충실할 뿐인 속물이지.

다른 세계의 용사들이 전부 정의감을 지녔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지만 최소한의, 빈약하더라도 신념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나한테 용사 자리는 그냥 권력과 명예를 얻게 되는 자리일 뿐이지만.'

퍼억!

딱딱하게 굳어버린 파이로스의 시신을 발로 밀었다. 뒤로 넘어진 파이로스의 시신은 땅에 닿자마자 조각나 버렸다.

나름 즐거운 싸움이었다. 원래 싸움이란 게 양학도 좋고, 비등비등한 상대와의 혈투도 즐겁고 나보다 미세하게 하수인 자를 압도적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즐겁다.

"그러면 이제 나가볼까!"

할일은 다했다. 31층의 조사? 중심이 되는 물건은 에반이 흡수인지 기생인지 하여튼 걔가 가지고 있어서 조사할 의미가 없다.

그 대신 들어올 때 본 수정들을 챙겨 올라갔다. 레티시아의 마법으로 결계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이때 에반에 관한 건 쏘옥~ 뺐다. 얘는 나중에 내가 직접 족칠 거다. 지금 에반의 몸에 마왕과 관련되어 있던 던전의 물건이 있다는 걸 알리면 며칠 만에 시체로 다시 마주할 테니까.

레티시아는 수고했다며 내 공을 말로만 치하하고 이 도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내가 챙겨온 수정의 90%를 뜯어갔다.

"이보시요 레티시아 양반. 이제 주기로 한 사례를 주시요."

의뢰는 전부 수행했다. 아직 하루가 남긴 했지만, 이 도시에 우리가 털만큼 고위급 존재는 없다.

그래서 사례를 요구했다. 마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노력 했으니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이리 오도록."

레티시아가 나에게 손짓했다. 대체 뭘 주려는 거지. 기대되는 마음을 안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내 어깨 위에 팔을 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쪼옥.

가벼운 버드 키스. 뭐지?

"상은 바로 나란다♥"

그녀가 요염하게 말하며 섹시 포즈를 취하며 음란하게 가슴골을 노출했다. 그 모습이 보기 좋긴 한데.

"개소리하지 말고 제대로 된 거 내놔. 아니면 노예 계약서 작성할까?"

"쳇! 재미없는 녀석. 전대 용사 놈은 이러면 얼굴을 붉히며 어버버 거렸는데."

"전대 용사? 틀딱이세요?"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안 좋은 의미인 건 알겠군. 하아...~ 어쩌다가 저런 놈이 용사가 됐는지. 받아라, 약속한 보상이다."

그녀가 나에게 던진 건 작은 열쇠였다. 이게 뭔데?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자 마녀가 허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마법사한테 있어 결계란 자신만의 공간이다. 그리고 대마법사라 불리는 존재는 실제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알아. 나도 예전에 시도해본 적 있거든."

성공은 했는데 화로의 여신인 헤스티아가 마음에 든다고 눌러앉고 다음으로 아테나가 눌러앉고, 다음은 아르테미스가 눌러앉으면서 제2의 올림푸스가 되어버렸지만.

씨발, 좆같은 12신 놈들. 생각하기만 해도 빡치네.

"대체 뭔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진정하고 듣도록. 그 열쇠는 공간을 여는 마도구다. 무려 내가 만든 특수한 숙소와 연결되어 있지."

"숙소?"

열쇠를 자세히 보았다. 확실히 대단하고 복잡한 마도구다.

"사용법은 간단하다. 허공에 열쇠를 꽂듯이 넣고 돌리면 된다."

"이렇게?"

한번 해봤다. 그 말대로 허공에 이상한 문 같은 게 생겼다.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거대한 목욕탕과 엄청 큰 빅사이즈 침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어떠냐! 이 정도면 어디서든 편하게 섹스를 할 수 있다!"

마녀는 자랑스럽게 외치며 옷을 벗었다. 아름다운 몸매를 과시하며 그녀가 나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어때? 목욕 한번 하지 않을래?"

그녀는 풍만한 몸을 흔들어 과시하며 나를 유혹했다.

"...오케이!"

그녀와의 목욕은 너무나도 강력하기에 나는 순순히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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