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마녀를 만나다.
특수한 공간. 그것이 마녀의 힘으로 이동되고 나서 본 세계에 대한 감상이었다.
여기는 마녀의 공방. 그것도 최상급 마녀의 공방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단절된 세계라 보아도 무방하겠지.
"아름답지 않나?"
에리넬이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물었다. 아름답더라...
"확실히 아름다워..."
하늘에서 빛나는 수백 개의 별들과 서쪽에는 달이 동쪽에는 해가 떠있는 형태의 공방은 낮과 밤이 공존하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이 공간의 주인일 마녀가 강력한 것 같다. 설마 이런 공간을 만들어낼 줄이야. 거기다 이 공간은 하나하나 전부 의미가 있다.
저 하늘의 별은 천체 마법의 기원인 원시 형태의 별자리를, 태양과 달은 양기와 음기를 비롯하여 빛과 어둠을 상징한다. 이 공간이라면 마녀는 한정적이나 신의 영역에 준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긴장할 거 없어. 마녀님께서는 너한테 호의를 가지고 계시니까."
에리넬이 긴장 좀 풀라며 내 허리를 콕콕 찔렀다. 말은 고마운데 그건 불가능해. 이 공방만 보더라도 마녀는 내가 본 수많은 마법사 중 최정상급이다.
약해진 나로는 이 공방을 깨지 못하니 상대가 그러고자 마음먹는다면 죽는 건 순식간이다. 어찌 긴장하지 않겠는가.
"계속 그렇게 있어봤자 너만 힘들잖아. 어차피 여기까지 들어온 이상. 아니 그 도시에 존재하는 이상 마녀님을 이길 수는 없어. 던전도시 자체가 마녀님의 공방이니까."
"뭐라고?"
던전도시 자체가 공방? 물론 이런 공간은 만든 마녀이니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그걸 황금 길드가 내버려뒀다고?
'아니지. 황금 길드의 단장이 직접 마녀의 의뢰를 하고 있던 걸로 봐서는 마녀와 황금 길드가 한패일 수도 있어.'
그렇다면 조금 안심이야. 나는 긴장을 조금 풀었다. 대신 공방에 대한 호기심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나는 전사이니 동시에 마법사고 공방이라는 게 마법사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기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에리넬은 내 과도한 관심에 당황하며 어찌할 줄 몰랐다.
"자세한 건 나중에 마녀님께 듣도록 해. 나는 마법사가 아니라서 자세한 건 모르거든.
"큿! 그러고 보니 넌 전사였지! 마녀의 하수인이면서 마법의 마자도 모른다니. 이 쓸모없는 녀석!"
"뭐라고!? 지금?해보자는 거냐!"
하핫! 긴장이 풀린 김에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에리넬을 놀렸다. 그녀는 진짜 화난 것인지 아니면 내 장난을 받아주는 건지 칼을 빼 들고 씩씩거렸다.
워낙 공간이 넓었기에 이렇게 장난치면서 걸어도 공간은 충분하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거대한 성에 도착했다.
"후우~ 장난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여기가 마녀님이 거주하시는 마녀의 성이다.너는 하수인이 아닌 외부의 사람 중 최초로 성에 들리게 된 사람이니 기뻐하도록!"
에리넬은 자부심 가득한 말투로 성에 대해 말하며 문을 열었다. 끼기긱, 관리를 잘했는지 잠깐의 소음 이후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성 안으로 들어가자 여러 가지 신비한 물건들이 눈에 띄었다.
사륵! 사르륵! 사륵!
수백 개의 빗자루와 걸레가 하늘을 누비며 성을 깨끗하게 청소하기도 하고.
슈르르륵!!!
수십개의 접시가 날아다니며 요리 재료를 운반했다. 그리고 안에 아무도 없는 기사의 갑옷이 철그럭 소리를 내며 우리 앞에 섰다. 보아하니 마법으로 만든 특수 골렘인것 같다.
"여기 옆에 마녀님이 기다리시던 손님이 오셨다. 마녀님께 그리 전하도록."
끄덕.
에리넬의 말에 짧게 고개를 끄덕인 갑옷들이 성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에리넬은 우린 여기서 기다리자며 접견실로 안내했다.
접견실에는 수많은 의자, 그것도 하나하나가 전부 최고급 수제품인 의자가 좌우에 정렬되어 있었다. 마치 접견실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의자 중 하나를 빼서 자리에 앉으니 매우 푹신푹신 한 감촉이 전신을 녹여준다.
오, 부드러워라. 단순히 고급일 뿐만 아니라 긴장을 풀어주고 특수한 에너지를 내뿜어 근육을 풀어주고 있다.
마녀가 마개조해서 넣은 기능이겠지.
"의자. 마음에 들지?"
"으으으...엄청 마음에 들어. 이거 팔지 않을래?"
곧 아리스와 유벨이 진정한 모험자가 된다. 그리되면 예전부터 꿈이었던 내 집 마련을 여기에서도 이뤄볼 생각이다. 내 집에 이런 침대가 하나 있다면 정말 좋겠다.
하지만 에리넬한테 퇴짜 맞았다.
"미안하지만, 그 의자는 마녀님께서 만드셨고 누구한테도 팔지 않는 물건이다."
"쳇, 아깝네."
진짜 아까워. 아쉬움이 입맛만 쩝쩝 다졌다.
그때 에리넬이 몸을 흠칫 떨었다. 갑자기 왜 저러지? 그녀를 빤히 쳐다보니 에리넬이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방금 막 귀환했습니다. 마녀님!"
에리넬은 꾸벅, 몸을 숙였다. 뭐지? 문이 열린 것도 아니고, 하물며 누가 나타난 것도 아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에리넬이 저런다는 건 이유가 있을 터.
마녀 정도면 투명화 마법이나 기척을 지우는 것도 가능하겠지. 나도 그녀를 따라 고개를 숙였다.
"호오. 눈치가 빠릿빠릿한 아이구나. 나는 그런 아이를 사랑하지. 그리고 에리넬. 너는 이만 가보렴."
달콤하고 요염한 목소리가 내 귓가에 파고들었다. 마치 벌꿀을 연상시키는 목소리는 너무나도 달콤하여 몸에 힘이 빠질 뻔 했다.
'매혹인가? 아니 그러기엔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어. 그렇다면 이건 마녀로서의 힘인가...'
마녀는 드래곤처럼 상위의 마법 종족이다. 단순히 마력이 많고 마법을 잘 다루며 수명이 긴 것에 더해 핏줄로 이어지는 특수한 형질 마법이 존재한다.
내가 연구한 결과로는 마법이라기보다는 초능력에 가까운 형태지만 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
나는 조심스럽게 마녀의 미성을 매혹 능력이라 추측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압도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
벌꿀색의 장발이 허리까지 부드럽게 자라있다. 그리고 오밀조밀, 작은 얼굴 안에 뚜렷하고 완벽한 비율의 이목구비는 수수하나 그렇기에 극강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몸매. 키는 큰 편이며 그 덕에 머리보다 더 큰 가슴을 잘 소화하고 있다. 엉덩이는 포동포동 한게 순산형이다. 아이를 술술 잘 낳을 것 같다.
나는 절로 넘어가려는 군침을 참아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확실히 그녀는 아름다웠다. 그 정도는 루진보다 약간 위! 마녀는 완벽한 미녀가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넋을 잃은 이유는 그녀 주의 분위기와 몸에서 흘러넘치는 매혹 탓이다. 실로 엄청난 매혹이다.
마치 사랑의 신을 마주한 듯한 매혹에 내 몸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달아올라 있었다. 마치 취기가 올라오는 것처럼 시야가 흐릿해지고 이성이 좀 먹히는 느낌.
"후우...흐읍!"
나는 몸에 힘을 주며 마력을 움직였다. 몸은 금방 가벼워졌다. 정신도 다시 맑아졌다. 마녀가 내 행동을 흥미롭다는 듯이 지켜본다.
방긋하고 위로 올라간 입꼬리가 장미를 연상시킨다. 위험한 여자. 이게 지금 내가 내린 마녀에 대한 결론이다.
"매혹에 당하는 게 나쁜 느낌은 아니지만 나는 대화를 하러 온 거지 마녀의 장난감이 되려고 온 게 아니야."
마녀와 눈을 마주쳤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공허해 보이는 눈동자 속에서 나를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크나큰 흥미와 호기심을 품고 있었디.
특히 내가 매혹을 자력으로 견뎌내고 풀어버리자 눈동자의 빛은 더욱 커졌다. 짝- 짝- 짝- 마녀가 박수를 쳤다.
"대단해...그 황제조차 감히 내 매혹을 견디지 못했는데 그걸 견뎌내고 아예 부수다니! 용사, 그대는 대단한 정신력을 지녔구나."
"미녀한테 박수 받는 건 기쁜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한테 이런 짓을 한 거지?"
마녀를 경계하며 물었다. 무기는 꺼내지 않았다. 대신 한 번 밖에 쓰지 못한 총을 꺼냈다. 마녀는 총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총을 쏴도 큰 효과는 없을 거다. 애초에 총을 만든 것도 마력을 쓸 수 있는 어지간한 놈들을 죽일 수 있고 강자한테는 견제 용도로 딱 맞아서 만든 거니까.
"신기한 무기구나. 게이트를 만드는 데 쓰이는 물건으로 그런 걸 만들다니.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대단해."
"벌써 거기까지 간파한 겁니까? 대단하시군요."
역시 마녀랄까. 스윽~ 보고선 내가 만든 총의 원리를 간파했다. 이 마녀는 보통내기가 아니다. 마녀에 대한 평가를 최상으로 끌어올리며 고분고분한 존댓말을 썼다.
내가 예의를 차리자 마녀는 흡족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자신 앞의 의자를 지팡이로 툭툭 두드렸다.
"여기 앉아라. 할 이야기가 많으니."
마녀의 명령. 나는 그녀를 경계하며 그녀가 말한 의자에 앉았다. 마녀는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다시 한번 인사하지. 나는 이 던전도시를 지배하는 그림자 여왕, 그리고 이제는 사라진 마녀의 섬에서 살던 마녀 족 중 가장 강대한 힘과 역사를 자랑하는 벨로스 가문의 마지막 남은 가주, 레티시아 벨로스다. 만나서 반갑군."
"레티시아 벨로스...님 이시군요. 당신이 던전도시의 그림자 여왕이라는 건."
"너의 예상대로다. 나는 황금 길드의 오랜 파트너이자 지부를 지닌 일종의 투자자. 황제에게도 받을 빚이 있는 완벽한 마녀지."
레티시아는 그리 말하며 베시시 웃었다.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마녀는 묘하게 나한테 중요한게 분명한 정보를 술술 불었다.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정보를 그녀는 끝도 없이 쏟아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정보는 역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원미상의 존재들이 도시에 잠입이라..."
"일단 내가 전부 죽이긴 했다. 하지만 점점 들어오는 수가 많아지고 있어. 이거에 관해서는 네가 알아서 리린한테 경고하도록."
"알겠습니다. 책임지고 제가 전달하죠."
괴한들의 침입이라.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이 느껴진다. 아니라면 좋겠지만...그건 쓸데없는 희망이겠지.
"좋아! 그러면 이런 우중충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레티시아는 이야기를 끝내고 두 팔을 위로 쭈욱 뻗었다. 이에 따라 가슴이 앞으로 내밀어 지며 풍만한 가슴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그야말로 남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매혹적인 모습에 저절로 시선이 향한다.
레티시아는 내 시선을 알아챘는지 팔짱을 끼며 자신의 풍만한 가슴을 부각했다. 그러면서 나 몰라라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많은 이야기를 해줬으니 이제 네가 이야기를 해줄 차례다. 자, 말해봐. 용사에 관한 것을!"
"요, 용사에 관한 거?"
가슴에서 급히 시선을 떼어냈다. 레티시아는 아쉽다는 듯이 작게 혀를 차면서도 상냥하게 내가 뱉어내야 하는 정보들을 정리해 주었다.
"너의 진정한 정체, 네가 가진 특수한 힘, 그리고 너의 그 특이한 영혼의 형태 말이다."
영혼을 언급할 때 악센트를 주며 그녀가 내 심장 부분을 쓰다듬었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내가 괜히 마녀일까. 아가야, 나같이 고위급 존재는 단순히 본다는 행위만으로 충분히 너의 이상성을 꿰뚫어 볼 수 있단다. 특히 너의 몸에서 분비되는 정액은 막강한 힘을 품고 있었지."
레티시아는 쿡쿡 웃으며 작은 병을 흔들었다. 병 안에는 내가 싸지른 게 분명한 하얀 정액이 출렁거렸다.
그녀는 병을 주머니에 넣고 외쳤다.
"자아~ 말해보렴. 너의 모든 것을!"
"싫은데요?"
거절했다. 마녀는 잘못 들었다 생각한 건지 귀를 후비다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싫다고 다시 한번 말해줬다.
"애초에 멋대로 말한 건 당신인데 저한테 대가를 요구하지 마시죠."
"흐응, 내 힘을 알면서도 그러는 거야?"
"당신이라는 마녀를 잘 알 것 같기에 이러는 겁니다."
마녀의 입꼬리가 휘어졌다.
역시나, 내 무례한 행동에도 마녀는 더 큰 호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녀는 웃으며 나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래, 용사라면 그정도 기개는 있어야지. 받으렴."
나는 본능에 따라 그것을 손에 쥐었다. 그것은 은빛으로 빛나는 구슬 형태의 물건이었는데 나는 이 물건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수 있었다.
"창세신의 파편! 이게 왜 당신의 손에...!"
신의 파편, 그것도 창세신의 파편이다. 나는 덜덜 떨리는 눈동자로 레티시아를 바라봤다.
레티시아는 유쾌하다는 듯이 웃었다.
"하하하하! 그래, 그 표정이야. 심지가 단단한 이들이 의외의 일로 그런 나사 빠진 표정을 짓는 건 언제봐도 재미있다니까!"
"장난 그만 치고 설명이나 해주시죠."
상태창으로 창세신을 부르려 했으나 이상하게도 창세신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고 보니 저번부터 이상하게 조용했지.
창세신인 만큼 어떻게 됐으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놈이 사라져서 조용해진 만큼 앞으로도 그냥 꺼져줬으면 하는 마음만 가득하다.
마녀는 창세신의 파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도 알겠지만 그건 신의 파편이다. 네가 지닌 힘과 유사한 걸 봐서는 창세신의 파편이겠지. 그리고 너한테 그걸 준 이유는...뭐, 그냥이다."
그녀는 그 후 입을 닫았다. 파편을 얻은 장소에 관해서는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조금 찝찝하지만...잘 받도록 하죠."
"아참, 당연하지만 공짜는 아니다. 세 가지. 너에게 세 가지 조건을 걸 테니 이를 들어줘야 한다."
세 가지 조건이라.
"그 조건들이 뭔지는…"
"지금은 말하지 않을 거다."
역시인가. 조건을 붙이는 게 매우 불안하지만 그렇다고 파편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파편을 받기로 하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우웅-! 우우웅-!!!
손에 쥐자 파편이 나와 공명한다. 창세신의 파편에 담긴 힘이 영혼과 육체의 틈새를 맞춰주기 시작했다.
내 예상대로 파편은 창세신의 축복과 같은 효과를 보여준다.
흑색의 머리카락은 어느새 금발로 바뀌었고, 육체가 유사 환골탈태를 시작했다. 영혼에 맞추어 육체가 변화하고 있는 거다.
비록 파편이기에 틈새를 완전히 맞출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내 본래의 힘을 되찾게 되겠지.
나는 기쁨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몰려오는 큰 고통에 머리가 흔들렸다.
'어라? 이런 거는 축복을 쓸 때 겪어보지 못했는데…'
그게 나의 마지막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