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시험 시작?
발파루스는 20층에 서식하며 와이번을 대동하고 있는 몬스터, 주로 20층의 서북쪽에 영지를 만들어 다른 드래곤 형태의 몬스터와 공존한다.
우리의 목적은 발파루스의 소재 중 하나인 눈알과 20계층 몬스터의 몸에 붙어 있을 거라 추측되는 붉은 수정의 회수다.
"여기부터는 20층이네, 조심해서 따라오게."
알렉이 메이스와 거대한 방패를 든 채 앞으로 나갔다. 그 뒤에는 에리넬괴 내가 있고, 맨 뒤에는 에리스가 있다.
뚜벅- 한걸음 내디뎌 20층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주변의 공기와 분위기가 바뀌었다. 위쪽과는 비교도 안돼게 농밀한 마력과 강대한 힘이 느껴졌다.
"후우우..."
숨을 들이마시자 폐에 공기와 함께 마력이 잔뜩 들어왔다. 던전 내부를 둘러보니 단순 고기 육벽으로 이루어진 다른 층들과는 달랐다.
무엇보다 20계층에는 식물로 추정되는 것들이 자라나고 있었고, 어떤 곳에서는 아예 숲을 이루고 있았다.
진짜 빡세겠네, 이런 마력이라면 20계층의 몬스터가 강하다는 게 실감이 난다. 이런 마력 농밀도라면 몬스터들이 약한 게 더 이상하잖아.
그 대신 마석도 훌륭하겠지. 이곳에서 사냥하고 얻을 마석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이, 유진."
에리넬이 어깨를 두드리며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니 쌍검을 손에 꼬옥 쥐고 있는 그녀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네놈, 마녀님과 만난 적이 있느냐?"
"? 갑자기 뭔 소리야? 마녀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만난 적은 없는 걸로 기억하는데...왜?"
내 대답에 그녀가 조금 고민하다가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한번 보고 다시 내 귓가에 대고 아주 작게 속삭였다.
"어, 오늘 아침에 마녀님께 텔레포트로 네 정액을 보내 드렸어. 그랬더니 역시 자기 예상이 맞았다며 환호하시더라고. 그리고 너랑 이야기 좀 나누게 데려오라 하셨어."
"그게 왜? 마녀라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마녀는 곱게 말하면 마법에 대한 탐구자이자 진리를 추구하는 자들, 거칠게 말하면 마법! 마력! 탐구! 응기잇!!! 하는 미친 년들이고.
그러니 마녀가 나한테 흥미를 느꼈다면 실험이나 탐구를 위해 나를 부르려는 건 마녀니까 당연한 거 아니겠는가.
"확실히 내가 모시는 마녀님이 미친년이시긴 하나 그분은 마녀 중에서도 특별하시다."
"특별, 하다고?"
"그분은 마녀 중에서도 고귀하며 기품 있으신 분. 비록 마법에 관한 연구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으시네 누군가를 부를 때는 그 사람이 잘 아는 사람이거나 자신과 격이 맞는 사람만을 부르시지."
과연, 그러니까 너는 지금 내가 마녀와는 격이 맞지 않으니 당연히 친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거구나? 이거 기분 나쁘네?
"흥, 내가 네놈과 만난 지 일주일도 안 됐지만 너한테 기품이 없다는 것은 안다. 설령 기품이 있다 하더라도 그건 겉을 꾸민 것, 그 내면을 들여다보는 마녀님한테는 의미가 없지."
"뭐래. 그러면 너는 기품이 있다는 거냐?"
"그럴 리가. 나는 기품이니 뭐니 하는 게 싫어서 도망친 다크 엘프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있게나. 그러나 나는 마녀님의 시종이다. 그런 게 없어도 그분의 명을 따르는 것은 문제없어."
허어~ 질린다. 대체 마녀하고 저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년이 그렇게나 마녀한테 충성하는 걸까. 아니면 마법에 정신을 조종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녀의 몸에서는 어떠한 마법의 흔적도 보이지 않기에 단순한 망상이지만 왠지 그럴것 같다.
자유를 외치며 뛰쳐나온 다크 엘프를 저리도 순종스럽게 만들다니, 대단하다 마녀!
"네놈, 마녀님과 관련된 이상한 생각을 했구나."
"그런 적 없는데?"
허허, 마녀하고 관련되면 눈치도 빨라지나? 나는 그녀의 시선을 스리슬쩍 피하며 능글맞게 굴었다. 에리넬도 그 이상으로는 따지지 않았다.
그보다 마녀가 나를 부른 다라, 목적이 뭔지는 모르지만 가는 게 좋을까? 아니면 그냥 신경 끌까. 내 감은 가라고 외치고 있다. 나도 궁금하긴 하다.
마녀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그 마녀가 무슨 마법을 사용하며 어떤 연구를 하는지.
"전언이다. 마녀님께서는 던전에서 올라오면 바로 자신의 공방으로 너를 안내하라 하셨다. 따라오겠지?"
이게 본론이었나. 마녀가 나를 부른 다라...이유는 모르지만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감이 든다.
"마녀라는 양방이 왜 나를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따라가지."
"알았다. 그러면 가는 걸로 보고해두지."
아리넬은 수정구를 꺼내 무언가를 입력했다. 통신 마도구인 모양이다.
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고 마녀가 누구일지 고민해봤다. 답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뭐, 이건 지금 생각해야 하는게 아니니 나중에 생각하자...지금은 발파루스에 집중해야지, 그리고 붉은 수정도.'
특히 붉은 수정은 이 세계의 보스와 연관된 물건이다. 얻어두는 게 좋을 것이다.
철컹, 앞서 가던 알렉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에 따라 그의 뒤를 따르던 나도 제자리에서 멈추고 알렉을 바라봤다. 이 양반 왜 이러지?
철컥, 철컥
뒤에서 소리가 난다. 뒤를 보니 에리스가 활에 화살을 메기고 있었다. 에리넬도 양손에 쌍검을 들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여기서부터는 발파루스를 필두로 한 드래곤 형태의 몬스터가 서식하는 곳이에요. 드래곤형 몬스터는 탐지 능력이 뛰어나고 자기 영역에 민감하니 들어가면 몬스터들이 몰려올 거에요. 각오 단단히 하세요!"
"아, 여기가 발파루스의 서식지구나."
왜 멈춘 것인지 이해했어. 나도 준비해야지. 창을 꺼내 쥐고 언제든 휘두룰스 있게 감지 범위를 최대한 늘렸디. 알렉은 메이스를 휘두르기 좋게 어깨에 얹은 뒤 방패를 앞으로 내밀고 놈들의 영역에 들어섰다.
그리고 침입자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건방지게 용의 영역에 들어선 자들을 잔혹하게 죽이기 위한 드래곤의 거대한 포효가...들리지 않았다.
"응? 여기 드래곤형 몬스터는 포효 안 해?"
자고로 드래곤형 몬스터한테는 두 개의 아이덴티티 기술이 있다. 하나는 모두가 아는 형형색색에 여러 가지 속성이 가미된 용의 숨결, 통칭 드래곤 브레스.
다른 하나는 용의 분노와 적의 들어내며 일시적으로 주변 생명체의 마력을 파괴하고 행동불능으로 만드는 개사기 기술, 포효.
포효 같은 경우에는 몬스터 따위가 쓰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드래곤의 근-본 기술인 만큼 일단 내지르는 게 당연한 기술이다.
드래곤이 아니라 마력을 파괴하진 못해도 커다란 소리로 주변의 생명체의 고막과 뇌에 데미지를 줄수 있으니까.
어쨌든 나는 드래곤 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 몬스터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알렉은 어두운 표정으로 메이스를 다시 허리춤에 걸었다.
"드래곤형 몬스터도 포효는 하네, 그렇기에 이상해...여하튼 빨리 안으로 가도록 하지!"
알렉은 그리 말한 뒤 뭐가 그리 급한지 안쪽으로 달려갔다. 나도 알렉의 뒤를 따라 달렸다.
사박- 사박- 드래곤형 몬스터가 사는 곳에는 수많은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내 감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며 속삭였다. 여기에 존나 쩌는 물건이 있다고. 나는 내 감을 신뢰하기에 주변을 샅샅이 둘러봤다.
그리고 발견했다. 식물 사이에 커다란 나무가 몇 그루 있었는데 나무 꼭대기에 드래곤 후르츠를 연상시키는 열매가 열려 있는 것이.
분명 저 열매는 용의 열매로 초고가에 거래되는 희귀 물품이라 그랬는데? 어째서 저리 활짝 열려있는 거지? 다른 나무에도 여러 개씩 열려있다.
이것도 이상 현상의 일종인가? 궁금하면서도 내 몸은 자동으로 열매 쪽으로 움직였다.
손을 뻗어 인력 마법을 발동 눈에 보이는 열매란 열매는 모조리 수확해 가져왔다. 커다란 게 내 머리만 한 열매. 모조리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이걸 황금 길드에 넘기면 내 평판이 올라갈 테고, 나중에 귀족이나 황족, 혹은 그에 준하는 귀빈을 맞이할 때 쓸 수도 있을 거다.
'그야말로 아이템 획득이로군.'
다들 열심히 달리느라 내가 이런 아이템 획득을 한 것도 모르는 눈치다. 원래 던전에서 찾은 물건은 모든 파티원이 공평하게 나눠 가지는 게 규칙이지만...
들키지만 않으면 범죄가 아니라는 내 스승 중 한 분의 말씀을 따라 이건 내가 전부 가지기로 하자.
"저기네! 이제 곧 도착할 거야!"
알렉이 앞에 있는 붉은빛을 가리키며 말했다. 순간 드래곤 후르츠를 독점한 게 들켰나 싶어 흠칫했지만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안심하고 달리니 숲 구간이 끝났다. 그리고 넓고 광활한 평야 지대가 드러났다. 매우 넓다. 나는 급하게 하늘을 보았다. 만약 하늘에 드래곤형 몬스터가 있다면 상대하기 몹시 어렵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브레스와 육탄 돌격은 공포 그 자체다. 하도 많이 겪어봐서 대응 방법은 잘 알고 전부 쓸어버릴 자신도 있지만 그런 두려운 상황에는 처하고 싶지 않다.
"다행히 하늘에는 없네."
공허한 하늘. 대지에는 붉은빛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꿀꺽, 저 빛을 보니 나도 모르게 침이 넘어갔다. 우리는 빛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의외의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에반?"
".......유진!"
그곳에는 에반이 있었다. 에반은 처음 보는, 로브를 걸쳐 얼굴을 가린 2명의 사람과 함께 있었다.
내가 놀란 듯이 에반을 부르자 에반도 나를 보았고, 그는 험악한 얼굴로 나를 째려보며 이를 갈았다. 저 새끼가 왜 저러는지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얘가 왜 여기 있데?
에반의 실력으로는 여기까지 못 온다. 그렇다면 저 둘이 버스 태워 줬나...나는 에반 옆의 둘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로브 사이로 백금발이 언뜻 보인 존재에게서 창세신과는 다른 이질적인 신성력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옆에, 흑발이 보인 사람에게는 막강한 마기가 느껴졌다.
마기의 경우 옆에 신성력처럼 감춘 게 아니라서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도 느꼈다. 당장 알렉만 해도 눈이 빨개져서는 사납게 흑발을 노려봤다.
에리스 같은 경우에는 마족에 관한 걸 모르는지(분명 설명했는데?) 현 상황을 이해 못 했으면서 일단 우리를 따라 활시위를 당겼다.
에리넬은 아까부터 전신에서 투기를 내뿜고 있다. 얘도 마족이 싫은 모양이다.
마족도 우리처럼 진한 투기를 내뿜으며 소리쳤다.
"너희들 우리랑 싸울 생각이지? 자, 싸우자!"
마족은 비릿하게 웃으며 로브를 내렸다. 감쳐줬던 모습이 드러났다.
인간과 비슷한 미녀이나 흰자위가 아닌 검은자위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보인다.
얼굴 위에 나선의 형태로 꼬인 한 쌍의 뿔과 등 뒤에 박쥐를 연상시키는 날개가 거슬린다. 저 모습, 저 힘은 분명 마족이다.
인간형 마족인가. 당초 우리의 예상은 붉은 수정이었는데 설마 인간형 마족을 만날 줄이야.
에리스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날개와 뿔을 동시에 가진 마족을 보았다. 나와 알렉을 비롯한 나머지는 더욱 날카롭게 기세를 다듬었다.
마족 안에서 느껴지는 악마의 힘까지 포함해서 그녀는 강하다.
근데 인간형 마족이나 악마의 힘을 가진 마족을 하도 많이 봐서 딱히 놀랍지는 않다.
마족은 우리를 둘러보고 요염한 콧소리를 냈다. 쪽수에서 밀림에도 그 투기는 여전히 건재했다.
악마의 힘은 대략 D랭크 수준...일단 간 좀 볼까?
타타타타타탕-!!!
허리에 매달아둔 리볼버를 꺼내 순식간에 6발을 속사했다.
마족은 빙그레 웃으며 손에 마기를 깃들게 하여 휘둘렀다.
콰직! 콰지지직!
총알이 마기에 얽히며 으스러졌다. 역시 어림도 없었나. 총을 다시 허리에 걸었다.
"그것보다...이것참 우연, 아니 악연이네. 신입을 교육하려 나왔다가 하찮은 신의 노예들을 만나다니."
마족이 웃으며 도발한다. 아마도 표적은 알렉, 알렉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고 군데군데 핏줄이 두둑, 튀어나왔다.
"건방지게 떠드는구나 더러운 어둠의 기생충이, 네놈들의 왕은 진작에 뒤졌는데 아직도 살아있는 꼴이 참으로 잘 어울리는구나."
알렉은 이미 죽은 걸로 추정되는 마왕을 걸고넘어졌다.
이번에는 마족의 얼굴이 험상궂게 변했다. 서로 도발한 둘은 각자 준비했다. 알렉은 손에 신성 마법으로 황금빛의 화염창을 만들었다.
마족의 두 손에는 마기의 칼날이 형성되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 당장에라도 싸움이 날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쪽수가 더 많다는 거야.'
마족은 강하다. 느껴지는 기운만 해도 A랭크를 능가한다. 하지만 메꾸지 못할 정도의 차이는 아니다. 여기에 있는 A랭크만 4명, 2명이 마족을 상대한다 치면 나머지는 쉽다.
신성력을 지닌 자는 대략 A랭크 수준이고, 에반은 잘 쳐줘야 C랭크 수준이니까.
"알렉 씨. 저랑 에리넬이 저 두 놈을 상대할 테니..."
"여기까지 하죠."
아직도 로브로 정체를 가리고 있던 자가 내 말을 끊었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뒤틀려 여자인지 남자인지 추측조차 할 수 없는 특이한 목소리에 절로 오싹한 기분이 든다.
아무래도 마력으로 목소리를 바꾼 모양이다. 그자는 싸울 생각이 가득한 마족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서열 9위의 마족일 터. 목적도 이루지 못하고 여기서 허무하게 죽을 생각은 아니시겠죠?"
"너 재미있는 농담을 하네! 설마 내가 여기서 죽을 것 같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족은 적의를 거둬들이고 손에 생긴 마기의 칼날을 지웠다.
"말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흥이 깨졌을 뿐이야."
마족의 눈이 위험하게 반짝이다 착 가라앉는다.
"유진 님…. 저 사람 위험해 보이지 않나요?"
에리스가 덜덜 떨며 내 뒤로 숨어들었다. 내가 가장 안전하다 여긴 건가.
"일단 경계하고 있어."
저 미친 마족 년이 갑자기 미쳐서 달려들지도 모르니까. 에리스는 내 충고에 몸을 부르르 떨며 뒤로 다섯 걸음 물러났다.
오들오들 떠는 게 귀엽다.
"그러면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신의 종들이여."
"도망치려는 건가? 어둠의 기생충아, 딱 너희 같은 행동이구나!"
알렉은 연신 마족을 도발했다. 그러나 방금과 같이 마족은 도발에 걸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알렉을 비웃었다.
"네놈들이 과연 언제까지 그런 식으로 떠들 수 있을까. 머지않았다. 진정으로 우리의 시대가 곧 다가온다! 그때쯤엔 나도 온전한 힘을 되찾을 터. 그때 너희를 상대해주겠다!"
"...쓸데없는 소리를! 지금 적한테 정보를 주면 어떻게 합니까!"
"정~보? 웃기고 앉았네. 이건 선전포고다! 그리고 착각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우리는 네놈들과 협력하는 거지 네놈의 아래로 들어간 게 아니라고!"
둘이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다. 이 틈에 공격할까?
창을 조용히 꺼내 마족에게 겨누었다. 그러나 마족은 귀신같이 내 의도를 알아채고 비릿하게 웃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데 두 눈동자가 반짝거린다. 마치 덕질하는 아이돌의 실물을 본 악질 팬 같은 시선이다.
"오랜만이야. 저번에 우리가 애써 키운 수정을 네가 박살 내고 처음이지?"
예전에 루진과 함께했던 사건의 이야기를 꺼내는 마족. 그러면서 뭔가를 기대하는데...
"그거 가지고 내가 놀랄 거리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맨 마지막에 마석을 터트린 게 누군데."
"하핫! 역시 너는 마음에 든다니까!"
그리 말하며 요염하게 입술을 핥는다. 마족이지만 몸매와 얼굴이 뛰어나서 당연히 꼴렸다. 동시에 그녀에게서 극도로 위험하다는 감각을 느꼈다.
이것도 약해진 영향인가? 겨우 저 정도 수준에 떨게 될 줄이야. 약해진 이 몸에 불만을 내뱉으며 겉으로는 태연함을 가장했다.
몇 번이고 했던 연기기에 그들은 이상한 부분을 찾지 못했다.
"그거 칭찬이냐? 아니면 욕 한 거냐?"
"당연히 칭찬이지. 좀 더 기뻐하라고. 너는 순수한 인간의 몸으로 마족의 인정을 받은거다. 패배자인 저놈과는 다른 전진전명 대단한 전사라는 거지."
마족은 에반을 가리키며 웃었다.
"조용, 이제 조용히 좀 하세요. 에반한테 그런 소리를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당신이 제 말을 들을 리는 없지만. 어쨌든 이제 갑시다. 준비가 끝났어요."
"오냐, 이리로 와라 멍뭉아."
마족이 에반을 가리키며 멍뭉이라 불렀다. 너 설마 그쪽에까지 취향이 발전했니? 내가 아무리 마음이 넓어도 남자 M은 조금…
"나를 개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지! 그리고 난 유진하고 할 말이 있어!"
역시, 네가 M 취향일 리 없지! 그보다 한때 주인공이라 생각했던 놈이 마족과 함께 있다라. 이거 그건가? 어둠에 타락한 동료.
'.........'
왠지 창세신이 고개를 끄덕이는 환상을 보았다. 아무튼, 에반이 나와 할 이야기 있다니 그거 흥미가 가네.
잘하면 정보를 캘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고~ 우리 멍뭉이가 또 개소리하네~"
퍼억!
마족이 에반의 배를 걷어찼다. 그리고 강제로 끌고 왔다.
"아, 미안 해. 아직 멍뭉이 교육이 덜 됐거든."
그는 실실 웃으며 우욱, 하고 배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에반의 머리를 짓밟았다.
그 사이 바닥에서 마법진이 서서히 떠올랐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텔레포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와 저들 사이의 거리는 대략 10m 남짓, 달린다면 금방 닿는다. 저들이 도망치면 모를까 응전한다면 생포의 가능성도 있다.
즉, 지금이야말로 공격의 적기다. 창을 들고 온몸에 힘을 줘 총알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다. 창끝은 가장 약한 에반을 노렸다.
콰앙!
"역시 막히나…"
"저 쓰레기를 돕는 건 싫지만, 우리한테 중요한 인물이라서 말이야. 용?사?님?"
마족은 나를 용사라 부르며 마기를 더욱 폭발시켰다.
창끝은 정확히 에반의 눈앞에서 마기의 칼날에 사로잡혀 1cm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렇다면!
철컥, 타앙! 타앙!
단숨에 더블배럴 샷건을 꺼내 갈겼다. 무수히 분열된 마력탄환이 에반을 꿰뚫기 위해 날아갔다.
띠링~
"포스."
파앙!
청량한 종소리와 함께 기초 신성 마법인 포스가 발동되며 총알을 튕겨냈다.
허미 쒸벌, 마력탄환을 이렇게 쉽게 튕겨내다니. 옆에 신성력 보유자도 자신의 진짜 힘을 숨기고 있었군!
당혹스럽지만 재빨리 총구를 개폐해 탄피를 빼내고 두 발 장전했다. 다시 발포하려니 마족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나에게 집중해라!"
마기에 덮여 마치 짐승의 것처럼 변한 팔이 창을 타고 꼬물꼬물 올라오려 했다.
파지지직!!!
내 몸을 중심으로 강력한 번개가 피어오르고 창을 따라 올라오던 마기가 번개에 휘말려 원래 위치로 내려갔다.
창을 잡아당겨 회수하고 왼쪽에서부터 휘두른다. 마기의 칼날이 창날과 격돌한다.
역시 저 마족은 강하다.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으며 우리는 서로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오오오! 역시 너는 대단해! 역시 용사야!"
"아까부터 누구보고 용사라는 거야! 난 아직 정식용사는 아니거든! 황제 폐하께 인정받으면 그때부터 용사다!"
용사직에 큰 관심은 없지만...
카앙! 카아앙!
빠른 공격은 튕겨내고 힘을 실은 묵직한 공격은 피한다. 기초적인, 가장 이루기 어려운 방식의 전투가 이어졌다.
공방이 이어진 시간은 기껏해야 30초. 그동안 우리는 서로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내 예상이 틀렸군."
저 마족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강하다. 아직 숨기고 있는 뭔가가 있었다.
"그러니 오지 말고 뒤에 빠져있어."
내 말에 막 끼어 들렸던 애들이 멈칫했다. 지금 얘네가 끼어들어도 오히려 방해다. 저 마기 보통의 마기가 아니다.
당장 위험하게 끼익 거리는 창만 봐도 그랬다. 온갖 좋은 광물을 이용해 만든 창이 몇 번 부딪힌 거 가지고 이러고 있다.
제대로 부딪히면 다른 무기는 부서질 거다. 아마 이게 악마로서의 능력이겠지. 참 성가신 능력이다.
"너희도 마찬가지야...이건 나랑 이 용사 녀석의 싸움이야!"
나야 일행들이 다치지 않고 내 전투 법상 혼란한 전투를 피하고자 그렇게 말했다.
마족은 전투본능에 충실하며 스스로 유리할 상황을 걷어찼다. 마족을 상대할 때 이점 하나는 좋다니까.
"자아~ 좀 더 해볼까."
'생포는 포기. 대신 최대한 죽이는 쪽으로…'
파앙!
창날을 바닥 깊숙이 넣고 뇌전. 번개가 아래로 치는 게 아니라 날 중심으로 위로 솟구친다. 강력한 번개에 바닥이 붕괴한다.
바이러스가 퍼지듯 번개가 바닥을 타고 사방으로 흘러들어 갔다. 마족은 뒤로 잽싸게 물러났다.
이를 확인한 뒤 번개를 멈추고 창을 빼내 자세를 잡았다.
후웅-!
창에 대량의 물이 생기며 휘감기다. 그 상태로 반월의 형태로 휘두르자 창에서 초승달 형태의 물의 참격이 쏘아져 나갔다.
"오호! 신기한 능력이군! 고도로 압축한 물인가!"
훙! 후웅!
마기의 칼날에 수압 커터가 잘려나갔다. 덕분에 물이 터지며 그녀의 시야를 방해했다. 이 틈에 총알 9발까지 동시 사격했다.
머리, 가슴, 배, 허벅지, 팔, 다리로 쏜살같이 날아온 탄환에 마족이 마기로 급하게 몸을 감싼다.
'지금이다!'
온몸에 마력을 운용, 이동기로 쓰는 초고속 이동에 사용했던 마력 운용을 했다.
쿠구궁!
강대한 힘과 함께 순식간에 코앞까지 박차고 나가니 마족이 당황한 표정이 보인다.
"흐읍!"
힘을 팽팽하게 실어 배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마족의 몸이 잠깐 공중에 부웅 떴다.
그 상태로 몸을 돌려 다리를 마족의 목을 향해 휘두른다. 돌려차기.
콰앙!
땅에 내팽개쳐진 반동으로 위로 튀어 오른 마족을 향해 지금까지 갈고닦은 무예 솜씨를 뽐낸다.
정권, 니킥을 비롯한 현재 무술부터 고대 무술까지 발과 팔이 바삐 움직이며 마족의 몸을 두들긴다.
'뭐지? 손맛이 나지 않아!'
덥썩!
어느새 마족의 손이 내 손을 잡아챘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오는 흑색.
빠악!
'박치기인가!'
코가 찌잉~ 울린다. 거기에 뇌가 울린 것인지 창까지 놓쳐버렸다. 그래, 이렇게 쉽게 당할 리가 없지!
미리 장전해둔 리볼버로 팔과 다리를 쐈다.
티잉!
총알은 얕게 박히다가 튕겨 나갔지만 총알의 위력에 몸이 거칠게 흔들린다.
그녀의 목을 부여잡고 최대한 강하게 번개를 터트렸다.
콰과과과과광!!!!
내 몸을 중심으로 세차게 피어오르는 번개의 꽃. 그럼에도 마족은 비명 하나 지르지 않는다. 도리어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죽여주지!'
번개에 대량의 마력을 투자하여 여기서 확실하게 끝내려는 순간. 바닥에 생겨난 마법진이 밝게 빛났다.
"준비 끝. 물러납니다!"
"이런!"
급히 창을 던지려고 했으나 창은 방금 놓쳤다. 총의 탄창은 텅텅 빈 상태. 다른 애들이 오기에는 거리가 멀다.
결국 붉은빛이 터져 나왔고 마족의 몸은 사라졌다. 급하게 마법진으로 달려가 마법진을 보았다. 텔레포트, 그것도 초장거리 텔레포트로 추정된다.
추적은...당연히 불가능하다. 나는 몸에서 튀는 번개를 수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아...의뢰 처리하러 와서 뭔가 일이 복잡해 졌어."
아깝다. 미녀이긴 했지만, 나중에 적이 될게 확실한 마족 년을 처리할 기회였는데.
혀를 차며 애들을 바라보니 입을 크게 벌린 채 나를 보았다. 하긴 워낙에 화려하게 싸우긴 했어.
"정신 차려. 이놈들 도망갔어."
내가 소리치자 그제야 핫. 하고 깨어났다. 그나저나 마족과 마주할 줄이야.
주변을 둘러보면 죽은 몬스터 사체가 가득하다. 저놈들이 여기에 있는 몬스터를 전부 죽인 것 같은데 어떡하지? 리젠되길 기다려야 하나.
고민하며 바닥을 보니 사방에 몬스터의 사체가 널려 있었다. 그리고 시체에는 머리가 달리지 않았다.
머리만을 베어내서 즉사시킨 모양인데 매우 깔끔한 솜씨다.
훌륭한 솜씨에 감탄하다 무심코 깨달았다. 저 시체들, 마석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는걸.
우리는 서로 보았다. 다 같은걸 깨달았는지 동시에 방긋 웃었다.
"공짜 마석이랑 소재 개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