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시험 시작!
바닥을 뚫어서 빠르게 내려간다는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몬스터들의 어그로가 잔뜩 끌려서 내려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몬스터의 군세를 맞이했지만 우리는 수월하게 처리했다.
"늘어나라."
내 명령에 따라 쭈욱~ 늘어난 창을 휘둘러 달려오던 몬스터들을 휩쓸었다. 현재 위치는 중앙부근, 수맥이 존재하는 지역이랑은 꽤 거리가 있다.
"하하하, 몬스터들이 팔팔하군!"
알렉이 웃으며 한 손으로 메이스를 휘둘렀다. 거대한 크기의 둔기에 가까운 메이스 였는데 그는 겨우 한 손으로 메이스를 자유자재로 다뤘다.
그의 메이스가 움직일 때마다 몬스터들의 뚝배기가 깨졌다. 서포터로 온 에리스도 내가 생각한 것 보다 강하고 도움이 되었다. 그녀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몬스터들을 저격!
피슛! 피슛!
재빠르게 쏜 두 발의 화살이 아리스를 덮치려던 몬스터에게 꽂혔다. 엘프 특유의 깔끔하고 훌륭한 궁술이다. 거기에 더해 엘프의 장기인 정령이 더해지니 그 시너지는 대단하다.
그리하여 6계층의 몬스터는 금방 정리되었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주변에는 몬스터의 주검이 널려 있었다. 알렉이 시체 하나를 들고선 물었다.
"마석을 적취할 건가?"
"아뇨, 이놈들은 약하니까 마석의 질이 별로일 거예요. 마석은 20층에 가서 구합시다."
내 말에 알렉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몬스터의 시체를 버려뒀다. 어차피 우리는 20계층에 가야 한다. 발파루스를 잡으려면 그놈의 부하격 몬스터인 와이번을 잡아야 하니 마석은 잔뜩 얻을 수 있다.
굳이 질 낮은 마석을 얻겠다고 시간을 쓸 필요는 없다는 판단하에 몬스터의 시체를 한곳에 모았다. 몬스터의 시체를 그대로 놔두면 다른 몬스터가 이릴 포식할 수도 있다.
걔중에는 마석을 먹고 마력을 흡수하는 몬스터도 있기에 마석을 채취하지 않을 시엔 이렇게.
촤악-
특수한 액체를 뿌려 사체를 처리해야 한다. 부글, 부글 끓으며 녹아내리는 사체를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이동하죠. 수맥 지역까지는 제가 안내할게요!"
에리스가 앞에 나섰다. 그녀는 엘프 특유의 발걸음으로 소리 없이 움직이며 던전 내부를 자기 안방 마냥 돌아다녔다.
알렉이나 나도 자신의 기척 정도는 숨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리스와 유벨은 이런 기술이 없다. 그렇기에 던전을 걷다 자주 몬스터와 마주쳤다.
그때마다 내가 전기로 지지고 알렉과 에리스가 나서서 재빠르게 처리했다. 에리스는 나처럼 연줄과 능력빨로 바로 랭크업한 것과 달리 실적을 쌓아 랭크업한 엘프라 그런지 던전에서의 연륜이 돋보인다.
에리스의 안내를 받으며 수월하게 던전을 이동하다 보니 저벅, 저벅 걸을 때마다 바닥에 물이 고이는 곳에 도착했다. 습기가 가득하고 바닥은 축축하다.
드디어 수맥 지역에 도착했다. 수맥 지역은 다른 지역과는 달랐다. 대표적으로 물이 있는데 물이 사방에 있는 푸른색의 크리스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거대한 호수같은 곳도 있었다. 던전이 넓다는 건 알았지만 저런 것 까지 있을 줄이야 계속해서 새로운 것이 보이는 던전에 감탄했다.
그 사이 에리스는 조금 더 걷다가 거대한 바위가 보이자 그곳에 몸을 숨겼다. 그녀의 경험은 던전에서 길 안내를 받으며 충분히 알았기에 그녀를 따라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여기가 수맥 지역 부근이에요. 그리고 저기, 저기 보이시나요?"
그녀가 상체만 빼꼼 꺼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을 바라보니 경비를 서는 것인지 개구리 형태의 몬스터 프라그가 높게 솟은 목책 형태의 바위 위에서 개굴개굴 울었다.
"저놈은 프라그에요. 수맥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이 보이면 크게 울어서 경보를 울리죠. 잘못해서 경보가 울리며 몬스터들이 잔뜩 몰려올걸요."
"그러면 여기서부터는 소수로 가야겠군. 혹시 이런 일에 자신 있는 사람 있나?"
알렉의 물음에 선뜻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손을 들었다.
"제가 가도록 하죠."
이런 일은 또 내 전문이지.
"자네가 가겠다고? 알았네. 그러면 나도 같이 가지."
"아뇨, 그냥 혼자 갔다 올게요."
"그러다가 발각되거나 실수하면 위험...하지는 않겠군."
알렉이 말을 하다가 말았다. 알렉은 지금까지 내가 싸우는 것을 봤기에 내가 무력 자체는 A 랭크라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A 랭크의 모험자가 6계층의 몬스터한테 당할 리가 있나.
나는 당당하게 창을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후딱 다녀오죠."
그렇게 말한 뒤 보폭을 줄이고 기척을 죽이며 바위 뒤에서 나와 목표가 있는 수맥 지역의 중심부로 천천히 움직였다.
꾸륵?
프리그 중 한 마리가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려고 한다. 단검을 던지려고 꺼내려는 순간 프리그의 머리에 화살 한방이 꽂혔다. 뒤를 돌아보니 에리스가 조금 전처럼 상반신만 꺼낸 체 활을 조준하고 있었다.
퓻- 퓨퓻-
빠르고 조용하게 발사되는 화살들, 위쪽에서 방을 보덤 프리그들은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위쪽이 사라졌다면 아래쪽을 정리하는 건 간단한 일이지.
허릿춤에서 내가 만든 리볼버를 꺼냈다. 그리고 소리를 제거하는 사일런스 마법을 걸고 천천히 전진했다.
수맥의 중앙 지역으로 가는 길에도 역시나 마물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나는 리볼버를 들어 꼭 처리해야만 하는 녀석들만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저 마석의 폭발로 일어난 불꽃만이 보일 뿐. 하지만 총의 위력은 대단했다. 프리그의 얼굴을 관통하다 못해 아예 날려버렸다.
상반신 째로 갈려나간 프리그의 시체. 내가 만든 거지만 잘 만들어진 무기에 감탄하며 멋들어지게 리볼버를 한 바퀴 돌렸다. 주변에 보는 사람이 없어서 조금도 멋이 나지 않지만 이게 갬성이라는 거지.
철컥, 철컥 리볼버를 재장전했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꺼낸 역병 의사 복장을 입었다. 역병 의사 복장에는 투명화 기능이 달렸지.
투명화 기능을 활성화하고 몬스터 사이를 당당하게 걸었다.방금은 그냥 총을 쏴보고 싶어서 일부러 은신했지만 한번 쏴봤으니 이제 구할 것만 빨리 구하고 빠지자.
걸음을 옮기며 수맥의 중앙부로 달리자 중앙부는 금방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연못 위에 운집된 대량의 몬스터들 사이로 목표물이 보인다.
글라보, 나비형태의 몬스터, 들은 대로 정말 나비의 형태다. 다만 덩치가 엄청나게 큰데다 나비 특유의 주둥아리 대신에 마치 모기같이 날카로운 주둥아리가 달려있어 괴악하다.
"빨리 죽이고 돌아가자."
창을 꺼내 번개를 담았다. 글라보는 몬스터들 사이에 있어서 골라 빼내거나 몰래 죽이는 게 불가능한 상태다. 그렇다면 그냥 통째로 날려버리는 쪽이 편하겠지.
"흐읍!"
한계까지 팽팽하게 번개를 담은 뒤 투척했다. 잔뜩 번개를 머금은 창은 대기를 찢으며 날아가 정확하게 글라보의 몸통을 꿰뚫었다.
글라보는 자신의 몸에 꽂힌 창을 보고 포효했다. 창에서 강렬한 뇌전이 튀다가 점점 크기를 벌리더니 사방에 번개를 뿌렸다.
콰광-! 콰과광-!
샤아아아아아아아아!!!
번개가 주변 일대를 휩쓰는 동안 글라보의 몸은 강렬한 열기에 불탔다. 창이 박힌 보통이 녹아내려 두 토막이 된 놈에게 재빠르게 다가가 심장 부위의 마석을 꺼냈다.
놈의 시체가 사라진다. 전부 다 사라지지는 않고 글라보의 부산물 중 하나인 날개를 남겼다. 날개는 인벤토리에 넣고 창은 회수했다.
이제야 정신을 차린 몬스터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하며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래서 지능이 딸리는 몬스터들은 편하고 좋다니까.
나는 유유자적하게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오! 무사히 날개를 구했군! 대단해!"
"이 정도야 별거 아니지."
글라보의 날개를 꺼내 내가 성공했음을 보여주니 일행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유벨도 이때만큼은 순수하게 나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어디 보자, 그러면 의뢰 하나는 해결했고, 이제 7층의 보스룸에 가야 하네요. 에리스 언니, 길 안내 부탁해요!"
"응, 걱정말고 언니한테 맡겨줘!"
아리스는 언제 친해진 건지 에리스를 언니라 부르며 친근하게 다가갔다. 에리스도 아리스의 친화력에 넘어갔는지 자신을 스스로 언니라 칭하며 당당하게 나섰다.
다시 한번 앞장선 에리스의 뒤를 따라 우리는 던전을 내려갔다. 나는 아리스에게 다가갔다.
"아리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후후후, 그냥 다가가서 말동무 좀 해드렸어. 어때? 나 대단하지, 저렇게 엘프 친구도 금방 만들고."
'글쎄다? 저 엘프가 워낙에 특이해야지.'
보통의 엘프는 좋게 말하면 싸가지가 없으며 밥맛 떨어지고, 엘프 우월주의 빠진 짜증 나는 비건이다. 나쁘게 말하자면 한번 크게 털리기 전까지는 정신 차리지 못하는 개병신 종족이고.
근데 유독 에리스는 그런 특징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냥 쟤가 특별한 건지, 아니면 던전의 영향으로 엘프들도 약간은 바뀐 것인지 모르겠다.
'이왕이면 후자였으면 좋겠다.'
인간이라고 무시당하며 동맹을 위해 개고생 하던 때가 생각나 몸이 떨렸다. 아리스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디 아픈 거야?"
"아니야. 그냥 좀 거슬리는 기억이 떠올라서."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
?
?
7층의 보스룸에 쳐들어가 헬센을 잡는 건 쉬운 일이었다. 당장 알렉이 뛰어들어가 휘두른 메이스 한방에 헬센의 대가리는 쉽게 찌그러졌다.
헬센을 죽인 뒤 마석과 함께 부산물 채취에 성공했다. 문제가 된 건 그다음, 볼트 울프에 있었다. 볼트 울프 자체는 10계층 전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다가 개체수도 더럽게 많았다.
근데 우리의 목적인 이마의 보석이 나오지 않더라. 리젠 속도가 빨라 나오는 족족 쳐죽이고 마석를 뽑아내도 보석도 같이 사라졌다.
볼트 울프의 보석이 아무리 얻기 힘든 희귀한 부산물이라고 하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
결국 우리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지금처럼 돌아다니며 볼트 울프를 찾아서 죽이기보다는 아예 한쪽에 밀어 넣어 몰이 사냥을 하는 것이다.
원래 이런 뽑기는 단챠보다 연챠로 돌리는게 더 잘 나오는 법이지.
"우와아아아아!!!"
약속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유벨이 아리스의 등에 업힌 채 소리 지르고 있었다. 이번에 볼트 울프의 몰이꾼으로 선발된 건 아리스와 유벨.
둘은 큰 소리를 질러 10계층 전역을 돌아다녔고 그 결과 10계층의 몬스터들의 어그로가 잔뜩 쏠렸다.
던전의 입구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 나는 미리 번개를 뭉쳐 만들어낸 거대한 창을 들어 몬스터들 사이로 던졌다. 철저하게 대량의 몬스터를 잡기 위해 만든 창이기에 몬스터 사이에서 폭발.
거대한 번개의 폭풍을 일으키며 주변을 휩쓸었다.
"효과 좋~고."
"확실히 시원한 공격이군! 이거 나도 질 수 없겠는데!"
알렉이 한 손으로 메이스를 쓸자 메이스에 빛이 휘감겼다. 인챈트 형태의 신성 마법 빛의 검이다.
"이 전투에 빛이 있기를! 가자!!!"
알렉이 선두로 몬스터들에게 뛰어들었다. 나도 알렉을 따라 몬스터 무리로 몸을 날렸다. 그다음에 이어진 건 학살.
최대한 길이를 늘이고 무게를 무겁게 한다. 압도적인 중량은 그 자체만으로 폭력이 되었고, 창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수십을 넘어 수백의 몬스터가 찢겨 죽었다.
알렉도 바쁘게 움직였다. 커다란 메이스로 몬스터들의 뚝배기를 내리쳐 부숴버렸고 그때마다 성스러운 검의 빛이 더 강해졌다.
저 신성 마법의 효과는 간단하다. 1. 신성 마법을 무기에 건다. 2. 신성 마법을 건 상태로 적을 두들겨 팬다. 3. 충전완료 마력포 발사.
왜 신성 마법 중에 저 딴 게 있는지는 모르나 신성 마법 이란 것은 그 신성의 주인 된 자가 뼈대를 만들고 그걸 신자들이 다듬은 것. 그냥 창세신이 제 맘대로 만든 거겠지.
"충전완료, 발사하지!"
콰아아아-!!!
알렉의 메이스에서 순백의 마력 포격이 발사되었다. 다시 한번 수백의 몬스터가 쓸려나갔다.
이쯤되니 우리가 자리 잡은 공간이 몬스터의 사체로 가득 차고 핏물로 작은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이 정도면 되겠지."
나는 창을 원래 크기로 줄였다. 주변에 있던 볼트 울프 중 한 마리의 가슴에 손을 넣어 바로 마석을 뜯어냈다.
보석은 당연히 나오지 않았다.
"씨발! 이게 운빨 좆망겜도 아니고! 좀, 나오라고!"
다시 한 마리를 들어 가슴의 마석를 뜯어냈다. 이번에도 보석 없이 시체가 사라졌다.
...그냥 전부 불태워 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으려니 아리스가 날 뒤에서 끌어안았다.
"유진아 조금 진정해."
등에서 느껴지는 엄청나게난 부드러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분노가 가라앉았다.
역시 아리스의 젖탱이는 대단하다.
"후우, 진정했어."
"잘했어, 잘했어..."
아리스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이 취급하는 것 같지만,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때 내 옆에 있던 유벨이 낑낑대며 볼트 울프 한 마리의 가슴을 열었다.
그녀가 가슴의 마석을 힘겹게 뜯어내니 볼트 울프의 몸은 사라져 갔고, 그 자리에는 마석과 보석 하나가...응?
"이건..."
나왔다, 볼트 울프의 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