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성장을 위한 이야기(?)
다음 날 아침. 오늘도 무난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밥 먹고 각자 할 일을 하러 간다.
근데 어제는 섹스, 섹스, 섹스, 섹스의 밤을 보냈다. 기분 좋았고, 서로 충분히 즐겼지만 그만큼 방이 엉망이 되었다.
곳곳에 정액이 흩날려 있어서 그거 닦는데도 한세월이었다. 덕분에 식사 시간이 약간 간당간당했지.
"그래도 늦지 않아서 다행이야."
밥을 잔뜩 얹은 접시를 가지고 비교적 한산한 자리에 앉았다. 내 양옆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아리스와 루진이 차지했다.
둘은 어제 꽤 사이가 진보되었다. 아리스가 순순히 루진의 동생으로 들어갔기에 더 이상의 갈등 요소도 없었다.
한층 더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하하 호호, 웃으며 밥을 먹었다.
그 옆의, 옆에서는 유벨이 우리를 무언가 의심된다는 듯이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었다.
"유벨, 인상 펴고 밥이나 먹어."
"뭐, 뭐! 내가 뭘!"
설마 그걸 안 들켰을 거라 생각한 건가? 그렇게 대놓고 의심하는 시선을 보냈으면서?
나는 그녀의 자신감에 비웃음을 보냈다.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접시로 시선을 돌려 와구와구 밥을 먹었다.
유벨은 역시 톡톡 튀는 맛이 있다니까. 그녀의 반응이 재미있어서 만족하며 나도 밥에 집중했다. 식사는 금방 끝났다.
그 후 우리 3명은 다시 뭉쳤다. 반면 유벨은 우리 쪽의 아리스를 스윽~ 보더니 그대로 혼자 나가버렸다.
요사이 유벨은 아리스에게 부쩍 거리를 벌리고 있다.
'이건 나중에 알아봐야겠어.'
그녀가 무언가 낌새라도 눈치챘다면 일이 복잡해질지도 모르니까.
"식사도 끝났겠다. 식후 운동이라도 좀 할까?"
"운동? 그거 좋군. 그렇지 않아도 언니로서 동생을 봐줄 생각이었거든."
루진은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자신의 가슴을 툭툭 쳤다.
"황실 기사단의 검술과 마력 운용에 대한 것만 알려줘도 동생은 매우 강해질 거다."
"그런가요? 근데 저 마력 운용 할 줄 아는데요, 언니?"
"이런. 동생이여, 네가 하는 마력 운용이란 말 그대로 마력을 운용할 뿐이다. 내가 말한 마력 운용은 마력을 효율적으로 움직여 효율적으로 다루는 방법이지. 지금의 너는 낭비가 너무 심해."
그 말에 동의한다. 아리스는 나와의 섹스로 마력은 물론이고 신체까지 큰 폭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녀는 자신의 힘을 제대로 다룰 줄 모른다.
여태까지 대련에서 승리해 온 것도 그저 또래에 비해 많은 마력과 강력한 신체로 밀어붙여서 얻어낸 결과물이다.
루진이 아리스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것도 이걸 꿰뚫어 봤기에 그런 거겠지.
"지금의 너는 미숙하니 언니에게 맡기도록. 너에게 신체를 다루는 법과 검술, 그리고 마력을 다룬다는 게 뭔지 제대로 알려줄 테니."
"알았어요. 언니, 오늘 하루 잘 부탁드려요!"
"에헴, 언니에게 맡겨라!"
루진이 헤실헤실 웃는다. 언니라는 호칭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훈련을 위해 도착한 운동장. 우리는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루진은 시작에 앞서 나와 아리스를 바닥에 안쳐두고 마력 운용에 관한 설명을 하려 했다.
"잠깐, 근데 나는 왜 이걸 들어야 하니?"
내 마력 운용 능력은 그녀 이상이다. 막말로 두 손 잡고 마력 싸움하면 내가 다 이길걸.
"으음, 그래도 같이 들어주면 안 될까? 기왕 내가 하는 건데..."
루진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리고 애교를 부리며 달라붙었다. 어지간히도 내가 자기 강의를 들어줬으면 하는 것 같다.
"아니, 왜 내가 그걸 들어줘야 하는데."
"으음…. 그, 냥?"
"잘 있어. 난 작업하러 가볼게."
그러고 보니 단장이 준다던 광물들은 전부 준비됐으려나.
"잠깐! 잠깐, 잠깐! 그냥 같이 있어 줘! 나 남을 가르쳐주는 건 처음이라 떨린단 말이야!"
루진이 내 팔을 붙잡고 버틴다. 그보다 이유인즉슨.
"아리스랑 단둘이서 뭔가를 가르쳐주는 상황이 어색하다?"
"응!"
루진은 내 질문에 옳다구나 하고 바로 긍정했다. 자기가 가르친다고 해놓고 저러는 꼴이 이상하지만 그래도 아리스를 위해서 나선 건데 한 번쯤은 도와주자.
그런 심정으로 다시 자리 잡고 앉았다. 루진은 위엄이 이미 사라지다 못해 소멸했으나 근엄한 표정으로 목청을 가다듬었다.
"크흠, 그러면 지금부터 마력 운용에 관한 설명을 시작하지. 아리스 동생, 동생은 마력 운용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지?"
"어, 마력 운용이란 마력을 운용하는 것이다. 정도...?"
"한마디로 말해 아는 게 없다는 거군."
그녀는 이제는 익숙해진 이중성 중 하나인 카리스마 상태를 ON 했다. 진지한 얼굴에 몸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귀티와 카리스마란 어제의 모습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저 상태도 꽤 꼴린다. 누군가의 위에 군림하며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과시하는 분위기와 자존심과 신념이 굳건한 상태에서 섹스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한 번만 설명할 테니 잘 듣도록. 마력 운용이란 크게 말해 마력을 운용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동생의 말도 틀린 건 아니야. 하지만 누군가에게 가르치고, 또 배우는 마력 운용이란 마력을 온전하게 다루는 방법이지."
마력 운용에서 중요한 건 3가지, 마력 조종, 마력 운용, 마력 활용으로. 그중 기초가 되는 게 마력 운용이다.
마력 운용은 크게 3개의 경지로 나누어지는데 자신의 몸에 마력을 두르는 초입, 외부의 물건을 마력을 두를 수 있는 중입, 마지막으로 마력 자체를 물질로써 구현 가능한 상입.
아리스는 초입과 중입의 가운데쯤에 있다.
"마력을 온전하게 다루는 방법?"
"그래. 예를 들자면 마구잡이로 끌어올린 마력과 마력 운용을 배우고 몸에 맞는 방식대로 마력을 끌어올렸을 때 전자는 낭비가 심하다. 끌어올린 마력 중 30~40% 정도는 그대로 흩어져 버려."
"우왓! 낭비가 너무 심하잖아!"
아리스는 예상보다 심한 낭비에 몸을 떨었다. 여태까지 저렇게 힘을 낭비해 왔다고 들으면 누구나 저러겠지.
"그런 낭비를 줄이는 게 마력 운용이다. 그리고 마력 운용은 동시에 무기술과 결합하여 무기를 익숙하게 만들어 마력 운용의 효율을 높이고 큰 위력을 발휘하지. 일단 동생, 마력을 한번 움직여서 전신을 강화해 보도록."
마력 운용의 초기는 당연히 신체에 마력을 둘러 강화하는 것이다. 아리스는 루진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며 마력으로 전신을 감쌌다.
나름 꼼꼼하게 한 모양이지만 역시 이상하다.
마력에 민감하고 감지 능력이 매우 뛰어난 나는 그녀의 문제점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루진도 이를 느꼈는지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만. 보통 낭비의 정도는 개인차가 있는데…. 동생은 유독 심하군. 대략 50~60% 정도인가."
이건 심각한 일이다. 설마하니 절반 수준의 마력이 낭비되고 있었을 줄이야. 아리스 또한 우리의 반응에 심각함을 알아채고는 울상을 지었다.
"그,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
"후우, 우선 기초부터 갈고 닦아야겠군. 일단 마력의 활용 능력 자체는 뛰어난 편이야. 마력을 조종하는 것도 괜찮은 편이고. 다만 운용을 잘못하는 거지."
루진의 말대로다. 아리스는 자신의 몸을 강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활용 능력이 뛰어났다.
처음에는 마력을 쌓고도 다루지 못해 어버버 거리는 자들과 달리 마력을 조종하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문제는 기초가 없다는 거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야. 대개 길드의 훈련상 마력을 익히면서 검술 등의 무기술도 같이 가르치며 자연스레 기초부터 착실히 쌓게 해서 기초가 충분하고 나머지 활용력과 조종력이 부족해야 정상인데..."
너는 정반대라 뭐부터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구나. 루진이 한숨을 내쉬며 한 혹평에 아리스가 울먹거린다.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게 어딘가 심히 불안해 보였다.
이러다가 울어 버릴라. 나는 그녀를 껴안아서 달래주었다. 사람들 많은 운동장에서 큰소리를 내는 건 예의에 맞지 않으니까.
이에 아리스는 훌쩍거리며 울음을 참으려고 애쓴다. 그런 모습에 나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렇게 그녀가 기초가 없는 이유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미안하다 아리스. 내가 배려가 부족했어."
나는 솔직하게 사과했다. 내 갑작스러운 사과에 아리스는 눈가를 비비며 고개를 들었다.
"훌쩍,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너가 기초가 없는 이유. 그거 나 때문이야."
내 말에 아리스가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내가 너한테 마력 호흡법 가르쳐준 거 기억나?"
"응, 기억나."
"그때는 너가 마력을 익히게 하는 것만 생각해서 내가 간과했어, 너가 상식이 통용되는 수준이라는걸."
아리스는 충분히 천재라 불릴 인재였고, 그렇기에 나는 호흡법을 강제로 쑤셔 넣어 자리 잡게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 그녀도 여타 천재들처럼 알아서 잘 다룰 거라 여겼다.
그러나 내가 봐왔던 무수히 봐온 상식을 벗어난 천재들에 비하면 그녀는 너무나도 부족했다.
어떤 천재는 나의 마력 호흡법을 익히고선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었고, 누군가는 그걸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형하여 나 이상의 효율을 끄집어냈다.
또 누군가는 익힌 것 만으로 자연스레 마력 운용의 기초가 잡히는 등. 너무나도 막대한 재능의 천재들을 많이 봐와 나도 모르게 그녀를 그들과 비슷한 선상에 뒀다.
그 결과 그녀는 강력한 기술을 익혔으나 그 기술을 완벽하게 다루지 못하는 신세가 됬으니 내 불찰이다.
"그렇군. 강제로 마력을 느낄 수밖에 없도록 하여 마력을 익힌 것이기에 기초적인 마력 활용력과 조종력이 뛰어났던 거군."
그야 못하면 육체가 망가지니 본능으로라도 익일 수밖에 없겠지.
루진은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유진, 아리스는 천재다. 분명 어지간한 인재들과 비교해도 중요할 인재지. 그러나 나와 그대의 수준은 아니다."
잔혹하리 만큼 냉정한 평가다. 근데 맞는 말이다.
"누구의 가르침도 없이 스스로 마력 호흡법을 만들어낸 그대와 마력을 익히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완벽한 운용법을 터득한 나. 아리스와 우리는 다르다. 앞으로는 이걸 상기하도록."
"그래, 주의할게."
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아리스의 수준을 생각하지 않은 내 실수니까.
"좋아. 그러면 이런 칙칙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하지! 아리스 동생, 그대는 현재 경험이 꼬인 상태다. 그러니 기초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기초로! 돌아간다!"
마치 군대에 온듯 아리스가 크게 소리쳤다. 루진은 흡족한 모습으로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익숙한 검은색 밴드. 루진은 이를 꺼내 아리스의 손목에 붙였다. 검은색 밴드가 아리스의 손목에 달라붙었다.
곧 그녀의 마력 흐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아, 저거 그거구나. 마력의 속도를 느리게 하는 밴드.
예전에 마법사가 나한테 붙인 적이 있기에 잘 알고 있다.
"그건 황금 길드의 훈련용 마도구다. 지금처럼 마력의 흐름을 억지로 느리게 만들지. 그 상태에서 원활하게 마력을 다룰 수 있도록 연구하고 연습하도록. 목표는 최소한 몸에 마력을 두를 수 있을 때 까지다."
"옙!"
좋은 훈련법이다. 저렇게 마력의 흐름이 느려진 상태에서 제대로 마력을 써먹으려면 최대한 낭비를 줄여야 한다.
원래는 기초적인 부분, 예를 들어서 어떤 식으로 마력을 다뤄야 하는가? 같은 이론부터 시작했겠지만, 그녀도 나름 천재이니 몸으로 익히라는 식의 훈련이다.
'검술은 따로 배우고 있으니 저것만 통과하면 폭풍 성장하겠네.'
그렇지 않아도 마력과 신체의 빠른 성장에 모두의 감탄을 받았는데, 이것까지 통과하면 얼마나 강해질지 궁금하다.
"크흠, 오늘 교육은 여기까지 하고, 동생은 이만 라피드한테 가도록. 그리고 유진, 우리는 전처럼 밖에 나갈까?"
카리스마 모드가 OFF 된 루진이 웃으며 팔짱을 낀다. 라피드한테 검술을 배워야 하는 아리스는 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근데 어제도 도중에 빠졌으니 오늘은 더욱 빠질 수 없잖아? 안될 거야 아마.
이대로면 우리 둘만 놀러 나가게 될 찰나, 누군가가 우리들 사이로 달려들었다.
"황녀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