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6화 〉황녀와의 이야기 (46/198)



〈 46화 〉황녀와의 이야기

골렘의 끝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견고해 보였던 바위 몸이 흩어진다….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던 바위가 한낱 바위로 돌아가는 풍경이다.

"후와 존나 빡셌다."

나는 골렘의 몸을 헤집느라 이리저리 피부가 까진 손을 재생능력으로 치유하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내 손에 들린 수정구가 뭘하기도 전에 그대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인벤토리는 현실과는 다른, 나만의 특수한 공간. 여기에 들어간 이상 자력으로 나오는 건 불가능하다.

반쯤이지만 이걸로 제압한 거다.

"허…. 허공에 검은 구멍이!"

루진이 경악한 얼굴로 나와 내 옆의 닫쳐가는 구멍을 본다. 맞다, 얘가 있었지.

'이걸 어떻게 설명할까.'

나를 좋아하니 설득하는 건 자신 있다. 문제는 그녀가 이것에 관한 걸 밖에 알리지 않을 하는 건데...

"그 구멍은 창세의 용사로서 지닌 능력인가! 대단하구나!"

"어, 음. 맞아!"

창세의 용사가 뭔진 모르지만, 알아서 오해해주니 좋네. 이거면 설득도 쉬울 거다.

"루진. 이 능력은 특수한 능력이라 많은 사람이 알아서는 안 돼. 비밀로 해줄 수 있지?"

"하지만 그 능력이면 많은걸 할 수 있지 않나? 마차나 운송단이 없어도 대량의 보급품을 옮길 수 있고, 길드 차원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텐데?"

"그건 그렇긴 하지."

그녀는 바보가 아니다 오히려 천재. 내 능력에 놀라긴 했으나 금방 이 능력의 특징을 알아내고 사용처를 집어내다니. 훌륭한 안목이다.

하지만 아무리 무한에 가까운 공간을 자랑한들 나는 인벤토리로 보급품을 옮길 생각이 없었다.

"내 인벤토리에는 자동 정리 기능이 없거든."

짐을 넣었다. 빼려면, 특히 안에 짐이 많을수록 원하는 물건을 빼내기 힘들어진다.

전에 이걸로 장사 했을 땐 물건이 뒤죽박죽 섞여서 정리에만 3일이 걸렸었다.

그러니 인벤토리는 철저히 사적인 일, 그리고 소수의 물건만을 보관하는 중이다.

그런데도 가끔 물건들이 뒤엉키거나 해서 뒤져가며 꺼내야 하지만.

"어쨌든 인벤토리에 관한 건 너와 나만의 비밀이야! 알았지!"

"너와 나만의 비. 비밀! 크흠, 알았다! 절대로 말하지 않지!"

이걸로 한시름 놨다.

"이제 움직이자."

수정은 제압했지만 우리는 바로 동굴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실로 역겹고 짜증 나는 일이지만 우리가 의뢰를 완료했다는 증표로 산적들의 귀를 잘랐다.

흑산적은 보통 귀에 자신들만의 마력표식을 새기니 이걸 가지고 가면 의뢰가 완료 될 거다.

"다 모았네. 인제 그만 기분나쁜  동굴에서 어여 나가자."

이곳에선 1초라도 더 있고 싶지 않다. 루진도 마찬가지인지 귀를 따로 주머니에 잘 감싸놓고선 허겁지겁 동굴 밖으로 나왔다.

이걸로 우리가 할 표면적인 의뢰는 끝이났다. 하지만 아직 남은 게 있기에 나는 그녀에게 물어봤다.

"근데 이제 어떻게 할래?"

"뭐가 말이지?"

내가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 루진은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이러면 바로 알아들을 줄 알았는데.

"저기 말이야."

"...아!"

내가 마을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그제야 알아차린 모양이다.

"마을은…. 무시하고 그냥 돌아가지."

"흐음, 털고 가지 않고? 그놈들한테 들어야 할게 한, 두 가지가 아닌데?"

이 일을 벌인 게 누구이며 왜 그녀를 노렸는가. 그리고 어떤 조직에 소속되어 있기에 절대신 교단의 사제인척 하고 있었던 건가.

모든 게 의문이다.

"확실히 나도 그 부분에 관해서는 알아보고 싶지만 우린 지쳤다. 다치기도 많이 다쳤지. 일단 귀환해서 상처를 치료하는 게 우선이다. 그놈들이 누구든 간에 결국 우리 황금길드의 힘 앞에서는 무력할 테니깐."

그녀는 자신만만했다. 그리고 황금 길드를 믿고 있었다. 황금 길드의 힘이면 이런 일을 처리하는 건 쉬운 일이겠지.

굳이 우리가 나설 필요가 없긴 하다. 이 문제는 단순히 나와 그녀만의 문제가 아니라 황가와 황족으로서 엮인 문제니까.

"좋아, 그러면 돌아가자. 근데 우리가 말을 어디에다가 놨더라?"

"그야 마을에..."

"......"

"......."

맞다, 말을 잊고 있었네.

"일단 돌아가자."

"...말만 빠르게 챙기지."

결국 말을 데리러 산 아래의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놀란 얼굴이었다.

"오, 오셨습니까! 산적들은 전부 처리 됐나요?"

"전부 처리했다. 그보다 맥스웰은 어디로 갔지? 보이지 않는데?"

"이놈들 그새 도망친 모양이야."

나는 텅텅 빈 신전의 문을 발로 까며 말했다. 이왕 온 김에 털고 갈 생각도 있었는데,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네.

"쯧, 그 망할 수정구가 당한 걸 용케 눈치챘군."

"아마 그곳에 감시용 마도구를 달았거나 무슨 조치를 취해놨을걸."

우리는 마을을 걸었다. 마을 사람들이 전신에 묻은 피 때문인지 놀란 얼굴은 사라지고 공포에 절인 채 스리슬쩍 우리를 피했다.

저러는 사람들을 보니까 괜히 찝찝하다. 얼른 피를 몸에서 씻어내고 싶다.

털썩!

그때 마을 주민 중 한 명이 우리 앞에서 땅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그리고 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희 마을은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사실 맥스웰은 저희 마을의 촌장이 아닙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산적 놈들과 함께 저희 마을을 핍박하던 약탈자 중 한 명입니다!"

그리 말하며 사내는 꺼이꺼이 울어댔다. 이를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 또한 얼굴에 물기가 솟았다.

이 모습에 루진이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마을에 머물면서 사람들부터 진정시켜야겠구나."

"마음대로 해. 넌 황녀잖아."

"이해해줘서 고맙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뿐이지만 이 마을에 머물기로 했다.





맥스웰은 사제가 아니다, 마을 사람도 아니다. 그는 외부의 조직에서 간신히 만든 찬스를 맡은 자였다.

조직에게 수정구를 받고, 거금을 들여 사제로 위장 잠입에 성공했다. 그 후 부하들을 이용해 마을을 핍박해 마치 산적에게 당한 것 같은 몰골로 적당히 꾸몄다.

그 후에는 강한 힘이라는 말로 산적들을 구슬려 산에 틀어박히게 했다. 산적들을 자신들 또한 수정구의 완성을 위한 제물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신나하며 수정구를 키웠다.

그렇게 준비가 끝나고 맥스웰은 황녀와 황녀 곁에 있는 최우선 제거 대상을 마주했다.

맥스웰은 자신이 있었고, 실제로 수정구가 깨어난 초반에는 언제 그들이 찢겨 죽을지 느긋하게 기다렸다.

하지만 세상일은 예상대로 되지 않는 법. 수정구가 역으로 당해버리면서 그의 계획은 산산이 조각났다.

맥스웰 일당은 수정구의 신호가 끊어지자 마을에서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수정구가 있던 산적들의 동굴로 달려갔다.

그는 동굴에서 수정을 회수하려 했으나 동굴에는 썩어가는 시신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맥스웰이 머리를 부여잡고 그나마 온전한 산적의 시신을 짓밟았다.

"이 밥버러지 놈들! 쓸모없는 녀석들! 그분의 힘이 담긴 수정구까지 줬는데 애송이 두 놈을 처리 못 해!"

그의 신경질적인 외침에도 주변의 자들은 열심히 동굴을 뒤졌다. 피로 가득 찬 곳을 맨손으로 짚고, 장기와 살 조각을 치우며 수색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일 텐데도 얼굴에는 작은 변화조차 없었다.

"맥스웰 님, 아무래도 수정구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파편조차 존재치 않는 걸 봐서는 그놈들이 통째로 가져갔거나 아니면 조각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파괴한듯합니다."

짜악-!

그 말을 한 남자의 얼굴이 세차게 돌아갔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고 맥스웰은 다른 쪽 손으로 남자의 뺨을 후려쳤다.

짜악-! 짜악-! 짜악-!

고요한 동굴 속에서는 뺨 때리는 소리만이 거칠게 울렸다. 맥스웰의 손은 피가 묻은 상태로 퉁퉁 부었다. 따귀를 맞은 사내는 얼굴에서 피를 주르륵 흘렸다.

너무 많이 맞은 탓에 성한곳 하나없이 퉁퉁 부은 얼굴. 그럼에도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 모습에 더 짜증이난 맥스웰은 결국 발작을 일으켰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새끼들 실력으론 수정구를 완전히 제압할 수 없어! 없앨 수도 없다고! 그 수정구는 허가받지 않은 사람이 다가가면 말살하게 되어있단 말이다!"

맥스웰은 절찬리 흥분하고 있었다.

확실히 맥스웰 받은 수정구는 강하다. 사람을 먹어 치워 완전해진 수정구는 살아있는 살육 병기나 마찬가지.

하지만 유진은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특수한 능력을 갖춘 덕분에 조금의 고생만으로 수정구는 제압되었다.

"이건 기회였어! 엄청난 기회였다고! 엿 같은 황가의 천재를 땅에 묻을 수 있는 기회! 이 함정을 파는데 얼마나 큰 돈이 들어갔는지 알아! 무슨 일이 있어도 수정구만큼은 찾아내!!!"

고래고래 소리치며 말하는 맥스웰. 수정구는 본인의 목숨이나 마찬가지 그렇기에 침착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수정구를 찾는 건 불가능하다. 수정구를 가져간 게 다름 아닌 유진이고, 수정구가 보관되는 곳은 인벤토리라는 특수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진이 수정구가 아닌 파편도 모조리 쓸어간 탓에 맥스웰은 수정구는커녕 그 파편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맥스웰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얼굴은 공포에 질린 사람처럼 파랗게 질려 있었다.

곧 그들 사이로 어둠이 몰려왔다. 아직 해가 멀쩡히 떠 있는데도 밖의 나무를 시작으로 동굴을, 사람을 먹어 치워 가리는 어둠은 언뜻 봐도 평범한 그림자 같은 게 아니었다.

"아, 아아....!!!"

맥스웰은 헝용할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요, 용서를!"

그는 맥스웰은 어둠 속에 무릎 꿇고 앉아 머리를 세차게 숙였다. 이마가 땅에 찌어 피가 줄줄 흘렀지만, 공포에 고통조차 마비되었다.

곧, 어둠이 입을 열었다.

"실패했군."

어둠에서 흘러나온건 차가운 목소리. 그리고 이를 따라 3명의 존재가 차례로 나타났다.

그들은 기상천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머리에는 검은 뿔이 달려있었고 등에는 박쥐같안 날개가 접혀있었다.

인간과 다른 검은자위 사이로 형형색색의 눈동자가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들은 교단의 간부이자 아주 먼 옛날있었던 전쟁에서 봉인된 몇 안되는 마족 생존자들.

비록 지금은 많이 약해졌으나 빠르게 힘을 회복하며 세력을 키운 괴물들이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발 저에게 자비!"

"이봐 맥스웰. 우리 교단의 규칙이 뭐지?"

맥스웰의 구걸을 끊고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짙은 어둠이 묻는다. 그의 말은 극히 평온했다. 맥스웰은 눈물범벅이 된 눈으로 간신히 입을 뗐다.

"저, 저희 교단의 규칙...임무에 실패한 실패자가 그 원인에 대해 알아내지 못하고 지급된 수정구를 제때 회수하지 못하면 즉, 즉결처분..!"

"잘알고 있군.  규칙대로 네놈은 처분이다."

맥스웰을 향해 어둠은 담담히 죽음을 고했다. 그리고 이건 절대적인 판결이었다.

촤악!

맥스웰이 다시 자비구걸을 하기도 전에 목이 잘려나갔다. 동굴에는 그렇게 이름 모를 시체가 하나 더 늘어났다.

"이걸로 실패자는 처리했다. 이만 돌아갈 것이니 채비를 하도록."

맥스웰의 측근이었던 자들이 어둠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들은 귀중한 전투원이기에 처분 대상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나저나…. 우리의 예상보다 더 강하군. 루진 플라비스, 그리고 창세의 용사."

어둠이 맥스웰이 목적이라 생각하던 자들을 떠올렸다. 설마하니 이리도 쉽고 빠르게 수정구가 제압될 거라 예상조차 못 했다.

"돌아가면 둘의 예상 능력치를 상향조정 해야겠군. 그러면 이놈이 완전한 실패자는 아니겠군. 이번 임무는 어차피 실패할 거라 예상했으니까."

어둠은 태평했다. 어차피 교단의 수뇌부 중 맥스웰과 수정구만으로 둘을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즉, 맥스웰은 처음부터 버림 패였던 셈이다.

"후후후, 저 정도의 재능과 힘. 나중이 기대되는군."

어둠은 웃었다. 이에 다른 마족들도 서로를 바라보았다. 자고로 마족은 전투의 종족. 강자를 사랑하며 꺾이지 않는 투지를 가진 자를 경외한다.

마족들은 유진을 보고 같은 생각을 했다. 위대한 마왕님이 깨어났을때 그분을 만족시켜줄 숙적은 저 소년일 것이라고.

만족스러운 정보도 얻었겠다. 마족들은 그 자리에서 사라지려 했다.

바닥이 빛나기 전까진.

"음? 이건…"

발아래에 있는 이상한 마석을 발견했고, 동굴이 환한 빛에 휩싸였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앙!!!

곧, 엄청난 굉음과 함께 일어난 폭발이 동굴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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