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5화 〉황녀와의 이야기 (45/198)



〈 45화 〉황녀와의 이야기

"살아서 돌아가면 그 마법사 새끼! 수염을 전부 뽑아버리겠어! 이런 건 자기들이 미리미리 확인 좀 하라고!!!"

모험자 의뢰의 치명적인 단점. 그것은 의뢰 내용이 진실인지 확인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의뢰 시스템을 악용하면 제국이 직접 처벌하는 데다 굳이 이걸 악용할 이유는 없고, 그녀가 황녀란 사실 하나만 가지고 너무 방심했다.

콰과과광!!!

동굴 전체에 커다란 금이 갔다. 가공할 만한 힘이다. 괜히 몸에 바위를 둘러 골렘처럼 된 게 아니었다. 저 정도면 나나 루진도 한 방 제대로 맞으면 골로 가겠어.

급하게 골렘의 손짓을 피하며 천천히 거리를 벌리니 루진이 식은땀을 흘리며 나에게 물었다.

"유진!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이대로 맞설 건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러게 내가 들어오기 전에 퇴각할 거냐고 물었잖아! 인제 와서는 도망치기도 애매하다고!"

아예 뭔지 몰랐다면 모를까. 저런 걸 목격한 이상 그냥 도망치긴 매우 찝찝하다. 그리고 도망치면 저게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미지수였다.

막말로 폭주해서 날뛴다면 엄청난 사상자를 만들어 낼 거다. 그리고 이걸 막지 못한 우리에게 비난이 쏠리겠지.

아마 일을 이렇게 만든 자가 바란 게 이런 상황이리라.

'싸우다 죽거나, 아니면 도망쳐서 명성과 이름을 땅바닥에 떨구거나.'

누가 세웠는진 몰라도 단순무식해 보이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를 설명하니 루진도 상황의 심각함을 이해했는지 딱딱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 처음부터 목적은 그거였나. 설령 여기서 살아나간다 해도 저놈을 처리 못하면 나는 물론이요 우리 황가의 명예에 타격이 가겠지."

사람은 믿고 싶은것만 믿으며 알고 싶은대로 안다. 설령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 루진이 물러났다 해도 그녀를 향해 비방하는 세력은 있을 것이다.

"일단 싸우자, 설령 도망치더라도 최소한의 정보는 얻어야 해!"

나는 외쳤다. 그리고 한쪽 팔에 번개를 집중시켰다.

파지직, 파직!

번갯불이 반짝이며 길고 가느다란 번개의 창이 만들어지고 그걸 투척한다.

공기를 가르며 날아간 창은 골렘의 가슴 부분, 붉은 핵이 있는 곳을 정확하게 노렸다.

슈루룩!

골렘은 붉은색의 마력을 실처럼 뽑아내 거미줄처럼 치는 것으로 번개의 창을 막아냈다. 저 붉은 실에 닿자마자 순수한 원소로 이루어진 번개가 사방으로 흩어져 버린 거다.

"마력에 의한 분해인가, 저래서야 원소 공격은 거의 효과가 없겠어."

나는 그리 평가하며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원소 다음에는 마법이지.

"에테르 블레스트."

손에 마력이 모이며 강대한 기세로 포가 쏘아졌다. 동시에 가방에서 대검을 꺼낸 루진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그아아아아아!!!

골렘이 포효하며 에테르 블레스트를 방금과 같은 붉은 실로 막았다.

그리고 날 공격할 생각인지 거대한 바위 하나를 던지려고 골렘이 육중한 두 팔을 드는 것과 동시에 그녀는 대검으로 한쪽 팔을 후려쳐 박살 냈다.

콰아앙!

순식간에 파편으로 흩어진 돌덩이들과 갑작스러운 충격에 골렘의 몸이 흔들린다.

이틈을 타 그녀의 대검이 골렘의 전신을 두들기고, 나도 여기에 끼어들어 골렘의 몸을 창으로 후려쳤다.

아마 얘한테는 마력을 일점으로 방출해도 별 효과가 없을 것이기에 창의 능력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콰앙! 콰광!

대포라도 맞은 것처럼 골렘의 몸 곳곳이 박살 났다. 합을 맞추는 건 처음이나 우리는 그럭저럭 잘 어우러졌다.

"하앗!"

번개의 창에 마력을 불어넣어 그 크기와 힘을 키운 뒤 골렘의 복부 부분에 박았다.

정신이 없어서 그런지 방금처럼 실로 막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골렘은 공격의 소나기 속에서 다른 쪽 팔을 그녀를 향해 휘둘렀다.

나는 급하게 창을 던져 나머지 팔을 노렸으나 골렘이 더 빨랐다. 루진은 급하게 대검을 세웠고, 그 대검을 육중한 팔이 후려쳤다.

그 팔에 실린 물리력은 엄청나 루진은 대검으로 가드 한 채로 저 멀리 말아갔다. 그야말로 가공할 만한 힘. 그리고 그 힘에 상반되는 반응속도다.

그래도 두 팔을 아작냈으니 낫지 않냐고? 아니, 저런 골렘은 분명 가장 짜증 나는 능력을 보유했겠지.

쿠르르르릉.

내 예상대로 박살 난 양팔에 바닥에 떨어진 바위들이 달라붙었다.

그걸 시작으로 주변의 바위를 흡수하듯 덕지덕지 붙이며 골렘이 자신의 크기를 키우기 시작했다.

점점 그 크기가 커진 골렘은 이윽고 동굴 안에서는 움직이기 힘들 정도가 되었고 움직이는 걸음걸이 하나에 동굴의 땅이 흔들렸다.

즉, 자가수복하면서 몸을 더 키운 거다.

"쓰읍…. 이거 곤란한데."

수복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박살 난 양팔이 회복되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5초 남짓.

저 속도라면 아예 박살 내려면 강력한 한방을 꼬라박거나 데미지를 누적 시켜 힘을 빼둬야 한다.

-그아아아아아아아!!!

이런 내 생각을 알아챈 걸까. 아니면 수복된 자기 손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 걸까.

골렘이 포효를 내지르며 바닥에 손을 주머니에 넣듯 집어넣었다. 철컹, 손에 바위가 달라붙어 거대한 바위의 검이 생겨났다.

이 광경에 나는 슬쩍 뒤로 물러나며 저 멀리 날아간 루진을 보았다. 그녀는 갑옷이 아작난 상태에서 포션을 들이켜 몸을 회복하고 다시 전장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지금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다. 골렘은 강한 데다 자가수복 기능을 갖추었고, 원소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갑옷이 없다시피 해서 방호력은 바라기도 힘들고 루진의 방어구도 이제 제 역할을 하긴 어려운 지경이다.

그러면 보험을 쓸 때가 왔네. 나는 주머니를 뒤져 거칠게 짐을 뒤졌다. 주변으로 마석이 떨어졌지만, 지금은 그런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찾았다!"

이윽고 가방에서 나온건 푸른 사파이어 반지. 나는 그걸 루진에게 던져주었다. 루진은 반지를 받아들어 곧바로 자신의 손가락에 꼈다.

그리고 효과가 뭔지 묻지도 않고 골렘에게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이런, 엄청 호전적이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양 손에 번개의 창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쳐맞기 전에 지원하고자 전장에 달려들었다.

우리는 따로 말을 하진 않았지만 눈빛 교환만으로 서로의 목적이 정해졌다. 그녀가 골렘의 자세를 부수고 내가 핵을 노린다.

심플하지만 저런 단순무식한 골렘에게는 무엇보가 탁월한 작전이다.

"그러면 먼저 가지!"

싸움의 시작을 알린건 루진. 그녀는 대검을 횡으로 휘들러 골렘의 다리를 노렸다.

하지만 이게 웬걸. 골렘이 그 자리에서 뛰어 올랐다. 그 육중한 몸으로 행했다기에 믿을수 없는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이다.

"무, 무슨 골렘이 저렇게 움직이는거냐!"

"야! 놀랄 시간에 피하기나해! 저 몸에 휘말리면 진짜 죽는다!"

-그아아아아....!

골렘이 운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우리가 가소롭다는 듯이. 그리고 수복된 양팔을 들어 어린아이가 마구잡이로 휘두르든 바위 검을 내리찍었다.

기교도 뭣도없는 단순한 행동이나 빠르고 강하다. 일격, 일격에 대지가 뒤집어 엎어진다.

"읏!"

우리는 미리 멀찍히 떨어졌으나 주먹질에서 나오는 붉은 마력과 압도적 풍압만으로도 몸에 잔상처가 생겼다.

루진은 주먹에 휘말려 팔이 기형적으로 꺾이고 부서진 상태였다.

동시에 사파이어 반지에서 푸른빛이 터지며 팔을 감싸 치유하기 시작한다. 사파이어와 푸른색이 상징하는 것을 치유로 고정시킨 마도구다운 효과다.

그렇게 어느정도 낫자 그녀는 주머니에서 빠르게 외상용 포션을 꺼내 피부에 들이부었다. 뼈가 다시 맞춰지며 팔이 수복되었다.

그동안 골렘은 가만히 있지 않고 달려들었다. 나는 루진을 지키며 골렘에게 맞섰다.

쿠웅! 쿠웅!

"아오, 팔 아파."

묵직한 골렘의 검을 창으로 막다보니 팔이 저려온다. 이 감각이면 아마 팔 자체가 부러졌을터. 나는 급하게 신성 마법을 발휘해 팔을 치료했다.

그리고 러쉬라도 날리는지 무자비하게 주먹을 휘두르는 골렘을 몇번이고 막아냈다.

이쪽도 창으로 두들겨 봤지만 역시나 효과가 없다. 몸이 부숴져도 금방 수복되었다.

"이대로 가다간 끝이 안 나겠어."

처음 골렘을 부수긴 했지만 결국 수복했으니 최종적인 데미지는 0이다.

반면 우리는 계속 상처를 입고 포션을 써야하기에 장기적으로 봤을때 진짜 최악이다.

"하아, 하아...좋은 방법없나?"

루진은 땀을 닦으며 나에게 질문했다. 방법이라, 없는건 아니다.

저 골렘 녀석 루진의 공격을 피한걸 봐선 어느정도 학습도 하는것 같은데 지금 녀석은 내리찍던 검을 멈추고 몸을 약간 웅크린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명백히 그녀만을 경계하는 태세다. 이러면 할수 있는건 두가지.

하나는 그녀가 앞에 나서서 어그로를 끌고 내가 강력한 한방을 준비한뒤 날려버린다.

아니면 내가 앞서서 맹공을 쏟아부어 나에게 어그로를 쏠리게 한뒤 그녀가 결정타를 날린다.

전자는 그녀의 상태가 좋지않아 무리다. 그렇다면 역시 후자로 해야겠군.

"내가 무시 당하는건 기분 나쁘지만 이건 이용할만해. 루진, 지금 잔존 마력량은 어느정도야?"

"솔직히 말해 조금 아슬아슬해. 저 골렘한테 정통으로 맞았을때 몸을 지키느라 마력을 너무 많이 소모했어."

"그래도 마력은 남아있지? 아직 싸울수 있고."

"당연하지."

그렇다면 그걸로 됐다.

"다시 한번 간다. 이번에는 내가 메인, 너는 뒤에서 기회를 노렸다가 다리를 박살내. 그 다음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알았지?"

"...알았다. 맡기지!"

그녀는 조금 고민하나 했지만 결국 내 제안을 수용했다. 나는 저 멀리 날아간 창을 회수하고 앞장서서 골렘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한쪽 손에 마력을 모아 마법을 준비했다.

"내가 간다아아아! 덤벼라!"

나는 일부러 크게 소리쳤다. 나에게 관심을 돌리겠다는 수작질이 뻔히 보이는 행동.

이에 골렘은 귀찮은 날파리 쫓아내듯 성의없이 손을 휘둘렀다.

자기한테 큰상처를 입히지 못한 나는 경계할 의미가 없다는 건가. 그렇다면 그 몸에 철저하게 새겨줘야지.

"읏차!"

몸을 비틀어 골렘의 커다란 손을 피하고 창을 위로 들어올려 주먹을 휘두르던 팔을 부쉈다.

-그아아아?

골렘은 나에게 팔이 박살날줄 몰랐는지 의아하다는 듯이 소리를 낸다. 나는 골렘이 정신차리기 전에 골렘의 어깨를 창으로 찔렀다.

파앙-!

어깨가 부숴지자 당연히 어깨와 연결된 팔도 같이 흘러내렸다. 골렘은 특유의 수복 능력과 힘을 갖추었으나 내구도는 별거 아닌지 부수는것 자체는 쉬웠다.

하지만 골렘도 당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치명상을 입자 나도 위험하다 여긴건지 박살나지 않은 다른쪽 손에 들린 바위의 거검을 휘두르며 나를 본격적으로 경계했다.

빠캉!

거대한 힘이 실린 바위 검을 얇은 창으로 흘려보낸다. 아무리 강해도 인간형에 기교가 조금도 없다면 그 충격을 흘려보내 막는것 쯤이야 식은 죽 먹기다.

나는 철저하게 방어 태세를 갖추어 공격을 막고, 흘리며 반격했다. 그동안에 그토록 기다리던 틈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이제 준비한 마법을 쓸 차례다.

"라이트닝 스퀘어."

손에서 쏘아진 번개가 바닥을 타고 골렘의 몸을 점령한다. 순간 골렘의 몸이 경직되었다.

"지금이야! 부숴버려!"

"알았다!"

내 외침에 그녀의 대검에서 짙은 검기가 서렸다. 검기는 날카롭게 빛나며 골렘의 발을 넘어 하반신과 상반신을 갈랐다.

쩌억, 두개로 쪼개진 몸. 나는 이틈을 빌려 골렘의 가슴부를 노렸다. 몸이 조각난 탓에노리기 아주 쉬웠다.

"수정구를 내놔라!"

주먹에 힘을주고 그대로 가슴 부분에 때려박았다. 방금과 같이 붉은 실이 나왔으나 역시나 몸에는 별영향이 없었다.

하지만 몸에 깃든 마력에 침범하는 걸 보니 위험한건 마찬가지. 나는 골렘의 몸을 이리저리 쑤시며 골렘 몸 속의 핵을 수색했다.

"찾았다!"

바위와는 다른 매끈한 표면. 분명 수정구다. 이대로 뽑기만하면 끝나는 상황.

그대로 손에 힘을줘서 가슴의 붉은 수정구를 뽑아버렸다.

마치 반항하듯 수정구는 격렬하게 반응했으나 내 현란한 마력 테크닉으로 찍어누르고 적출하듯 뽑아냈다.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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