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2화 〉황녀와의 이야기 (42/198)



〈 42화 〉황녀와의 이야기

황녀의 알몸을 몰래 엿보려다가 눈이 마주쳤다는 사실에 몸이 뻣뻣해졌다. 이대로 그냥 자는척해야 하나?? 아니면 눈 돌릴까? 이런저런 생각이 범람한다.

하지만 눈이 마주친 루진의 대답 한마디에 이런 잡생각들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뭐야, 아직 안 자고 있었어? 일어난 김에 너도 씻을래?"

그녀는 수건으로 찰랑거리는 금발을 닦아내며 말했다. 얼굴을 약간 붉히고 있으나 자신의 알몸이 보였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 같진 않았다.

'...뭐지?'

진짜 별생각 없어 보이는 모습에 나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의 몸을 대놓고 구경했다.

여태까지는 갑옷에 가려져 있었으나 옷을 벗자마자 보이는 폭발적인 가슴은 작은 움직임에도 출렁거리며 압도적인 살색의 파도를 일으켰다.

그리고 가슴 정중앙에 있는 수줍게 생긴 앙증맞은 분홍 꽂지는 가슴에 비해 조금 작아 보였다.

여기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아이를 잘 낳을 것 같은 순산형의 보기 좋은 골반이 보인다. 특히 가슴에 지지 않은 풍만한 엉덩이는 뒤치기하면 아주 좋을 것 같다.

'크으, 진짜 꼴리네! 이게 제대로 관리받는 황녀의 몸매지!'

이미 이건 하나의 예술품에 가깝다. 유벨과 아리스도 아름다운 미소녀지만 그녀에 비할 수는 없을 거다.

"으음…. 언제까지 보는 거지? 조금 부끄럽다만."

"아, 미안미안."

너무 지켜봤나 보다. 그보다 저런 반응이라니, 진짜 성에 관해 무지한 건가?

나는 그녀가 옷을 다 갈아 입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녀가 복장을 갖추고 나서 물어봤다.

"루진아, 내가 네 알몸을 봐도 괜찮은 거야?"

내 물음에 얼굴을 붉힌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수줍게 말했다.

"원래는 알몸을 보이는 일 따윈 없어. 하, 하지만 유진이라면 괜찮아!"

"어, 음…"

뿌듯하다. 외치는 그녀를 보니 뭔가 불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 느낌을 넘기지 않고 그녀에게 질문했다.

"루진아, 성교육이라고…. 받아본적 있니?"

"성…. 교육? 들어보긴 했지만 내 이모님인 리린 플라비스님이 극도로 반대하셔서 배운 적은 없어."

"헤에, 그렇단 말이지."

리린 플라비스. 황금 길드의 단장이자 황제의 여동생, 동시에 대륙을 통틀어 몇 안 되는 S 랭크 모험자다.

그런 그녀가 자기 조카에게 성교육을 못받게 했다니. 이건 뭔가가 있다는 거다.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뭐가 중요한 게 아니란 거지?"

"있어, 그런 게. 그보다 아직 밤이다. 불침번 서야지."

나는 그녀를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음흉하게 웃었다. 성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처녀라니, 이보다 꼴리는 일이 있을까. 기대감에 절로 침이 차올랐다.

"이건 나중에 써먹을 수 있겠어."

지금은 때가 아니기에 뒤로 미루지만 나중에 기회는 노려라. 그때를 생각하며 나는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며 내 불침번 시간까지 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까지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그래서 간단하게 아침을 차려 먹고 빠르게 출발했다. 우리들의 목적지까지는 아직 많은 거리가 남아있다.





"휘유, 도착했네."

이틀을 더 달려 목적지인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아무리 깊숙한 시골이라도 기본적인 길 자체는 닦여 있고, 의뢰지는 단순히 의뢰를 적는 게 아니라 의뢰인이 있는 장소까지 안내하는 양산형 마도구이기에 헤매지 않고 찾을 수 있었다.

"이제야 도착했나. 설마 아베리스크 도시에서 이렇게나 멀리 떨어진 곳에 마을이 있을 줄이야. 예상도 못 했어."

"원래 시골이 다 그렇지 뭐. 도시에서는 아무나 살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나마 이 마을 근처에 있는 도시는 아베리스크. 술 같은 주류로 유명한 주류의 도시다.

돌아갈 때 기회가 된다면 한번 들렀다 가고 싶네. 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주류 도시의 술을 안 먹고 갈수는 없으니깐.

"안으로 들어가지."

그녀는 마을 근처로 천천히 말을 몰았다. 나도 상념에서 깨어나 그녀의 뒤를 따랐다.

마을의 크기는 작았고, 매우 열악했다. 어지간한 마을이라도 돌을 쌓아 만든 방호벽을 갖추고 있는데 이 마을은 그것도 없이 나무로 만든 벽을 지니고 있었다.

"쯧쯧..."

나는 나무 벽을 보며 혀를 찼다. 루진도 내색은 안 하지만 나무 벽을 좋게 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나마 두껍고 튼튼한 나무로 만든 건지 아무런 상처도 없이 서 있었다.

"어여 일 끝내고 돌아가자."

"...그래야 겠군."

그녀와 나는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마을 입구로 다가갔다. 마을 입구에는 조잡한 창을 든 사내 두 명이 있었다.

그 둘은 나를 바라보다 옆에 있는 루진을 보고 헙! 숨을 삼켰다. 하긴 그녀가 예쁘긴하지. 충분히 저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아, 안녕하십니까! 황녀님!"

"저희 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음? 얠 알아보네?"

아무래도 저 둘이 놀란 이유는 그녀가 황녀라서 그런 것 같다. 근데 황녀인 건 어떻게 알았지?

"루진아. 혹시 의뢰 받을 때 누가 의뢰를 받았는지 전해지냐?"

"아니, 그렇지 않다. 의뢰지는 어디까지나 길 안내와 계약을 상징하는 도구지. 그런 편의성 기능은 들어가 있지 않다."

"그러면 얘네는 어떻게 아는 거야?"

"나도 모르겠다. 내 금발 때문인가?"

그녀가 자신의 금발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금발이 눈에 띄긴 하지. 근데 그걸로 황족임을 어찌 안다는 거지?

"너는 모르겠지만 우리 황족은 전원이 금발이다. 단 한 명도 금발이 아닌 황족은 태어난 적이 없지. 그나마 있다면 영웅과 맺어진 자의 자식 정도겠지."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나를 힐끔거렸다. 흐음. 역시 귀엽다.

"마을에 들어오시죠! 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때 문지기 중 한 명이 소리쳤다. 고개를 푸욱 숙이며 몸을 오들오들 떠는 모습이 꼭 겁에 질린 사람 같았고, 다른 한 명은 아예 절할 기세다.

그리고 이런, 범인이라면 부담스럽게 여길 광경 속에서도 그녀는 태연했다. 마치 이런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대할 때와는 달리 고고한 표정을 지었다

"좋다, 안내하도록"

그녀의 말에 문지기 두 명이 우렁차게 네! 라고 대답하고 우리를 안내했다. 우리는 그들의 뒤를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역시나 열약한 주거지. 그리고 피폐해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죽고 못 먹은 건지 쫄쫄 굶은 기색으로 몸을 떨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어이가 없는 것은 그런 사람들을 상태가 좋은 몇몇 마을 사람들이 억지로 구석에 집어넣고 있다는 거다.

내가 초인이 아니었다면 발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루진도 초인인 만큼 이 광경을 봤기에 잔뜩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지금 자신은 모험자 신분이기에 딱히 뭐라고 하진 않았다. 그저 잔뜩 짜증 난 표정을 지을 뿐.

"촌장님! 귀빈들께서 오셨습니다!"

문지기가 안내한 곳은 조촐하나 다른 곳들과 비교해 상태가 좋은 신전이었다. 신전 앞에는 나름대로 무장은 갖춘 자들과 뱃살이 불룩한 사제가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제가 고개를 푹 숙였다. 이때 뱃살이 출렁거려 기분 더러워졌지만, 우리를 환영해주는 거니 참았다. 곧, 남자가 시키지도 않은 자기소개를 했다.

"제 이름은 맥스웰. 이 마을의 촌장이자 절대신이신 아후레스크님을 모시는 사제입니다."

"절..대신? 처음 듣는 신인데?"

이세계는 다신교이긴 하나 창세신의 교리와 위세가 절대적이다. 그런데 절대신은 또 뭐야.

"절대신 교단은 창세신이 창세를 한 후 세계의 관리를 맡겼다는 신들의 왕을 말한다. 나름 창세신 교만과 맞먹는 위세를 가졌고, 교황이 없으나 그 대신 성녀가 존재하는데 몰랐어?"

"어. 몰랐는데? 그거 중요한 교단이야?"

"딱히 그렇지 않다. 신성력이나 신의 기적인 신성 마법의 효과만 보더라도 창세신 교단이 더 우수하니깐. 괜히 던전도시에 창세신 교단이 있는 게 아니야."

"허허허, 하지만 저희 절대신 교단은 창세신 교단이 신경 쓰지 않는 시골과 서민들을 주로 챙기죠."

우리들의 대화에 맥스웰이 끼어들었다. 무례한 행위지만 우리들의 대화도 절대신 교단의 사제 앞에서 할만한 대화는 아니었기에 이 일을 따지지 않았다.

"크흠, 오늘이 이제 어두워지니 저희 마을에서 한숨 주무시고 내일 흑산적 놈들을 토벌하시죠."

맥스웰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하늘은 어두워진 상태다. 이 상태에서 움직이는 건 위험한 일이긴 하기에 우선 그녀에게 의견을 묻기로 했다.

"어떻게 할래? 호의를 받아 마을에 머물래? 아니면 이대로 이동?"

"산적을 잡는 건 쉬운 일이지만 어두워진 상태로 산에 오르는 건 위험한 일이다. 하루 자고 가지."

"알았어. 그렇게 하자."

우리는 그의 호의를 받아 마을에서 하루 머물기로 했다.

"그러면 저희 신전으로 오시죠. 귀빈을 대접해 드릴 준비는 이미 되어있습니다."

그의 말에 따라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신전에는 따끈따끈한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맥스웰은 우리가 앉을 의자를 손수 빼주고 자신은 그 반대편에 앉았고.. 식사는 나름 좋은 분위기로 시작되었다.

나는 음식을 먹으며 의뢰에 관한 것을 질문했다.

"흑산적 때문에 의뢰했다 했는데…. 흑산적의 정확한 위치는 알고 있나?"

"예, 알고 있습니다. 흑산적들은 저기 마을 뒤 산에 진채를 지은 채 지내고 있으며 가끔씩 마을로 쳐들어와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습니다. 어제도 사람들이 희생됐죠."

"그거 안타까운 일이군. 그렇다면 적의 수는?"

"대략 100명 정도입니다. 10명씩 조를 나눠 번갈아 가며 공격했었습니다."

"이 마을의 상태가 아주 좋지 않던데..."

"저희 마을은 원래 술에 사용할 약초와 과일을 가꿔 아베리스크 마을에 납품해온 마을입니다. 그런데 놈들 탓에 납품을 못 하다 보니 마을 사정이!"

"그것참 안타까운 일이군."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며 여러 가지를 물었다.

"일단 질문은 여기까지 하고, 화장실 한 번만 갔다 오지."

"아!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맥스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오버한다. 루진은 꾸준히 음식을 먹으며 나를 흘깃 보았다.

"그대, 맥스웰이라 했던가?"

"예? 예! 그렇습니다. 황녀님!"

루진이 말을 걸자 그의 어그로가 풀렸다. 나는 슬쩍 밖으로 나와 지나가던 사람 중 아무나 한 명을 잡고 화장실 위치를 물었다.

"화장실은 저기 있습…. 아, 아니지. 저기입니다. 저의 집이 아니라 화장실 위치가 헷갈리네요."

"자기 집이 아닌데 헷갈릴 수도 있죠. 뭐."

나는 그의 안내에 따라 화장실에 갔고 거기서 볼일을 본 뒤 손을 씻고 식당으로 돌아왔다.

"나왔다. 인제 그만 먹고 자야지."

"으음. 확실히 그렇군."

내 말에 이야기를 나누던 루진이 식기를 내려놓고 일어났다.

"오늘 만찬은 고마웠어. 내일 흑산적 놈들을 족쳐서 갚아줄게."

"그러면 우린 가보지."

"예, 예. 들어가십시오. 오늘 주무실 곳은 하인들이 안내할 겁니다."

맥스웰의 말대로 우리에게 방을 안내할 하인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마을, 그것도 신전에서 묵을 생각은 없다.

"우리는 따로 밖에서 잘 거야. 그러니깐 방은 필요 없어."

호의를 거절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니 호의라고 할수없지. 빤히 수상함과 어색함 대놓고 보이고 이리 허술하게 행동할 줄이야.

어지간히도 우리가 우스웠던 모양이다. 짜증나게 시리.

'그냥 마을이랑 같이 밀어버릴까...'

마을 상태를 봐서는 도적들이랑 마을의 몇명이 유착한 모양인데, 차라리 전부 죽이는 편이 더 쉽고 빠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옆에있는 미녀가 그걸 과연 두고볼까?

"왜 그러지?"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텐트 자리 여기가 좋으려나?"

마을의 후미진 부분, 집들 사이사이에 있어서 사람들이 몰려와도 방어하기 쉽고, 알아채기도 쉬운 골목이다.

루진도 이정도면 안전하다 판단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서 자자."

"오케이, 그러면 내가 텐트 필게."

"오, 케이?"

"그냥 알았다는 뜻이야. 신경 쓸거없어."

세계를 건널때마다 가끔씩 쓰이지 않는 말들이 있는건 조금 불편하다니까. 나는 속으로 툴툴 거리며 텐트를 꺼내 펼쳤다.

텐트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후끈한 온기가 우리를 반긴다. 마법텐트 답데 아늑하고 따뜻하다.

그렇게 오늘 밤도 어김없이 야영이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