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5화 〉길드에서의 이야기 (35/198)



〈 35화 〉길드에서의 이야기

"유진."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누구지? 또 그놈들인가? 뒤를 돌아보니 갑옷을 갖추어 입은 귀족처럼 보이는 간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하게 저질렀군."

종이를 가져다 대면 베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냉정하고 차가운 목소리다. 제기랄, 여기도 위계질서 같은 거 엄청 신경 쓰나. 나는 내가 피해자임을 강조하기로 했다.

"이놈들이 먼저 시비 걸었습니다. 저 피해자예요."

"알고 있다.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으니. 그보다 네 녀석은 대련 상대가 없는 것 같은데, 내가 적당한 상대를 마련해주마."

"아니, 굳이 그러실 필요는..."

저 양반이 소개해주는 녀석이니 분명 강하겠지. 그리고 좋은 승부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높으신 양반하고 엮이는 것 자체가 불안하다.

하지만 나한테 거부권이 있을 리가 있냐. 귀족 양반이 씨익 웃으며 자신을 가리켰다.

"내가 직접 너를 상대해주마."

"...네?"

누가 누굴 상대해? 말도 안 된다. 저 강한 양반이 날 상대한다고? 날 죽일 셈이야! 귀족 양반과 나의 힘의 차이는 압도적이다. 아무리 내 기술이 뛰어나도 이길 방법이 없다.

그렇기에 기겁하며 어떻게 거절할지 고민했지만, 그 고민하는 것마저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몰려왔다. 어느새 우리들이 서 있는 곳은 운동장 한가운데가 되었다.

"걱정 마라. 힘 조절은 할 테니 죽진 않을 거다."

그렇게 말하며 등에서 푸른빛의 마검과 검은색의 흑검을 꺼낸다. 딱 봐도 가검이 아닌 진검, 그것도 본인이 사용하는 주 무장이다.

'도대체 뭔 속셈이야!'

나는 저 양반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내가 D 랭크 모험가를 두들겨 패서 그런 것 같진 않았다. 귀족 양반은 재밌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도대체 뭣 때문이지? 고민하면서도 나는 내 전용 주 무장인 창을 꺼냈다. 그리고 상대의 기세에 화답하듯 본능적으로 자세를 갖추었다.

"훗. 너도 나와 싸우고 싶은가 보지."

'아닌데 씨발아. 니같은 새끼하고 싸우다 뒤질 일 있냐.'

당장이라도 그렇게 외쳐주고 싶었지만 꾸욱 눌러 참았다. 대신 창을 앞으로 내밀고 마력을 운용시키며 자세를 잡았다.

저 양반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이니 최대한 버티는 수밖에

"걱정 마라. 힘 조절은 해줄 테니. 대충 A랭크 수준으로 해주마."

"아예 안 싸우면 안될까요? 아니면 쉬는 시간을 주시거나 아예 내일 싸우는 것도 저는 좋다고 보는데."

"안 된다. 이건 너만의 테스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기라면 등에 찬 창이 있잖은가."

"창이 있긴 하죠."

분명 내 창은 강력하다. 내가 만든 거니 장담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만든 걸작에 어울리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애초에 강력한 금속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합금으로 제작한 무기이니만큼 통째로 미스릴을 융합시켜 만든 하이퍼 미스릴(본인명)이나, 슈퍼 오르하르콘(본 인명)에 비하면 너무나도 부족한 무기다.

반면 저 양반은 어떤가. 푸른색의 마검은 매우 귀하고 강력한 물건이었다. 아마 신과 관련된 유물이겠지.

거기에 흑검의 색과 표면에 흐르는 마력 전도율. 아마 마력 전도 라는 측면에서는 미스릴조차 뛰어넘는 블랙 메탈로 만든 게 분명하다.

저 무기들에 비하면 내 무기는 어린아이가 소꿉장난 때 쓰는 장난감 수준이다. 근데 창을 쓰라니. 존나 너무하네.

"우리는 너의 천재성과 재능에 수습이면서도 따로 훈련을 부과하지 않았지. 하지만 그런 너의 모습에 불만을 표하는 자가 있으니 여기서 실력을 뽐내보도록."

"아니, 그건!"

본인들이 먼저 제안해 놓고 이런 식이라니. 이래서야 군대하고 다른게 없잖아!

"그러면 지금부터 테스트를 시작하겠다!"

그렇게 말한 귀족 양반은 나한테 달려들었다. 처음 시작은 왼손에 들린 푸른빛의 마검이었다. 마검에 마력이 모이더니 그대로 푸른 마력포가 발사되었다.

피융!

마력포는 매우 빨랐고, 나는 급하게 창으로 마력포를 후려쳤다. 마력포는 그대로 흩어졌다.

동시에 창이 부르르 떨렸다. 분명 이건 견제기일 터. 그런데 이 수준이라니. A급 모험자도 충분히 괴물이라 이건가.

나는 긴장하며 귀족 양반에게 달려들었다. 귀족 양반은 기품있으나 화려하게 움직이며 계속해서 마력포를 쏘아댔다.

피융! 피융! 피융!

"읏!"

누가 마검 아니랄까 봐. 상당한 수준의 마력포를 난사한다. 그리고 마력포를 난사할 정도로 많은 마력이라니 잘못하면 사지 하나 날아가겠네!

이렇게 된 이상 중요한 건 거리를 줄이는 것. 저 마검으로 마력포를 발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3초 정도다. 거리를 좁히게 되면 마력포의 준비를 막을 수 있을 거다.

"후우, 처음으로 창의 능력을 쓰는 게 여기라는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창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창날을 아래로 향하게 하며 귀족 양반에게 달려들었다. 귀족 양반은 가소롭다는 듯이 마력포를 발사했고, 나는 창날을 바닥에 대고 외쳤다.

"방출!"

콰앙-!!!

창대에 흡수된 마력이 창날에 압축되어 일점의 형태로 내뿜어졌다. 동시에 내 몸이 빠르게 허공으로 치솟았다.

"흐읍!"

그대로 공중에서 떨어지며 접근, 귀족 양반에게 창을 내리찍었다. 당연히 흑검에 막혔지만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으니 이제 마력포는 못 쓸 거다.

"대단한 반응이군. 설마 그런 식으로 접근하다니. 놀라워!"

"빈말은 하지 마시죠!"

카앙!

창과 흑검이 부딪힌다. 서로를 공격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뒤섞였다. 나는 창의 리치를 살려 재빠른 찌르기를 날렸고, 남자는 쌍검을 이용한 고속의 베기로 응수했다.

그 움직임은 나를 상회하나 내 마력 호흡법과 육체 강화를 병행하니 그럭저럭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일격을 날리기엔 내 수준이 딸린다. 역시 내 예상대로 지금은 버티는 게 최대였다.





한편, 유진이 황금 길드의 간부와 싸우는 것을 지켜보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둥근 원탁형 책상에 앉은 그들은 길드 곳곳에 배치된 마도구를 통해 영상의 형태로 유진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다.

"훌륭하군. 역시 훌륭해."

지켜보던 자들 중 한 명, 전에 유진에게 공방을 안내해준 마법사가 기다란 수염을 쓰다듬으며 흡족하게 웃었다. 그리고 흥미와 기대로 반짝이는 다른 자들을 보았다.

"내 말이 맞지? 저 녀석이라면 가능하다니깐. 아직 어린 나이에 자신만의 무도 가지고 있고, 마력과 육체도 계속 성장하고 있어."

"확실히…. 어제보다 신체가 더 강해지긴 했더군. 가능성은 있겠어!"

"저 정도면 나도 찬성!"

이곳에 모인 자들은 전원이 황금 길드의 간부다. 황금 길드의 간부로서 뛰어난 실력과 힘을 갖추고 항상 길드를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는 단 하나.

이번에 새롭게 들어온 신입 같지 않은 초특급 신입인 유진 때문으로 간부들은 유진이 지닌 가능성에 기뻐했다. 저 신입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하며 짐이 하나 줄었다고 희희낙락했다.

하지만 아직도 의심쩍다는 눈을 하고 있는 여자가 있었으니...

"조금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하지."

그녀는 마치 금을 녹여 만든듯한 화려한 금발을 지닌 미녀였다.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간 화려한 몸매는 남자들의 시선을 잡아끌 매력을 가졌으나 냉정하고 지적으로 보이는 외모는 결코 만만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녀는 화면 속 유진을 빤히 바라봤다. 확실히 가능성은 있어 보였다. 나이대에 걸맞지 않은 출중한 실력과 뛰어난 성장력까지. 하지만 비교 대상과 비교하자면 조금 부족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리린님! 저 정도도 천재 중의 천재라 부르기에 마땅한 재능입니다. 분명 루진님의 훌륭한 호적수가 되어줄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 현재 간부들이 유진과 비교하는 대상은 황가에서 최고의 재능을 인정받았고, 황제에게 사랑받는 루진.

그녀는 단 5살만에 마력을 깨우치고 7살에 마법 심법을 익힌 천재 중의 천재였다. 하지만 단 한 가지의 문제가 생겼으니. 그녀가 천재여도 너무 천재란 것과 엄청난 노력가란 것이다.

덕분에 그녀의 실력은 동 나이대를 넘어 20살 전후로 뒤져도 그렇다 할 적수가 없었다.

물론 그녀보다 실력이 뛰어난 자들은 많지만 그런 자들은 전부 길드의 간부이거나, 아니면 중립 성향을 가진 자들이며 루진과 실력 차이가 크게 났다.

그런 자들은 황가에서 원하는 자들이 아니다. 황가에서 원하는 건 루진과 함께하며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말 그대로 호적수.

그리고 그렇게나 호적수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으니. 그건 바로 황가에 내려진 예언에 있다.

"이 세계에 빛나는 힘을 가진 창세의 영웅이 강림하리니. 그는 위대한 자의 자녀의 스승이자 적수니, 그 둘의 자식은 부모보다 위대하리라."

리린은 예언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원래라면 이런 예언 따위 무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예언을 한 게 다른 누구도 아니라 창세신 교단의 교황이기에 얼마나 소란이 일었던가. 그나마 윗사람들한테만 퍼져서 다행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일과 관련하여 논란이 매우 컸지만.

위대한 자의 자녀가 누구인가, 그 둘의 자식이라니. 그렇다면 창세의 영웅은 남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강림이라니. 정확히 어떻게 영웅이 나타날 것인가.

이게 가장 의문이었고 이를 해석하려 수많은 사제와 마법사가 나섰다. 그리하여 알아낸 사실은 몇 개 없었다.

위대한 자는 황제를 의미하며 자녀는 루진을 의미한다는 것, 그리고 스승이자 적수라는 말은 루진과 비슷한 나이대라는 의미란다.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지만, 사제들이 그렇다는 어쩌겠는가. 그냥 믿어야지. 하여튼 그렇게 예언에 해석되고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게 루진이다.

그리고 그 상대인 창세의 영웅을 찾기 위해 수색을 시작했다. 하지만 찾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루진의 적수라니. 리린은 그런 녀석이 존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떡하니 나타났다. 루진과 동급의 천재가.

카앙! 카가강!

리린과 마찬가지로 이제 막 성인식을 거친 나이로 봐준다고 하지만 황금 길드의 간부와 멋진 승부를 보여주는 괴물이.

그렇기에 그들은 이미 확신했다. 저 소년, 유진이 루진의 운명의 상대인 창세의 영웅이라고. 하지만 리린만은 여전히 예언을 믿을 수 없었다.

겨우 예연 따위로 자신의 조카의 운명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 미뜩치 않았다. 황가는 그녀의 운명을 축하하기에 더더욱 그랬다.

황가는 지금까지 뛰어난 재능과 힘을 가진, 소위 영웅이라고 불리는 자들을 데릴사위로 드려와 그들의 피를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탄생한 천재를 능가하는 천재가 탄생한다는 말에 황가의 사람은 대부분 루진의 운명을 복이라고 말했다.

"난 이거 인정 못 해."

하지만 리린, 그녀만은 사랑스러운(?) 조카의 운명을 비틀고 싶었다.

"저놈은 이미 여자 친구가 있잖아! 내 여동생이 다른 남자를 빼앗게 되는 건 사절이라고!"

리린. 그녀는 NTR을 매우, 극히 혐오하는 건전한 사람이다. 황가에서는 그런 거 신경 쓰지 않고 루진과 유진을 이어주려 했다 .

그렇기에 어떠한 사정으로 예정보다 일찍 귀환하기로 한 자신의 여동생이 걱정되었다.

콰앙! 콰아아앙-!!!

"크읏, 이러다가 저 진짜 죽어요! 힘 조절 좀 하시죠!"

간부진들이 지켜보느 사이에서도 싸움을 계속되었다. 마검에서 끊임없이 포격이 쏟아져 나오고 유진은 이를 피하며 노련하게 기회를 노렸다.

입으로는 쉴새없이 약한 말을 쏟아내나 본능적으로 적을 이길 방법을 탐색하고 찾아내려는 것이다.

그아말로 엄청난 투지이자 의지, 간부들은 그렇게 받아들였다. 정작 유진의 마음은 그들과 달랐다.

'아오, 피곤해.'

입으로는 힘들다고 외치나 그저 피곤함을 느낄 뿐이다. 물론 현재 상황은 위험했다. 막말로 광선에 조금이라도 스친다면 지금의 유진이라면 치명상이 확실하다.

하지만 유진은 자신이 있었다 맞지않을 자신이. 오랜 시간 쌓인 경험은 약한척을 하면서도 최적의 경로를 따라 공격을 회피했다.

이를 보고 간부는 웃었다.

"그렇군, 아무래도 네놈은 이것만으로 무리겠어."

그는 인정했다. 현재로서는 유진을 이길수 없음을 그렇기에 마검을 꺼내들었다.

"진짜는 이제부터다."

간부는 조금이지만 전력을 다하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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