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7화 〉길드에서의 이야기 (27/198)



〈 27화 〉길드에서의 이야기

뒤에서 들려오는 굉음. 그러고 보니 마법사도 전투를 상정해 대련한다고 했었나? 뭐, 알아서 잘하겠지.

나는 내 할 일이나 해야 한다. 던전에서 살인을 해보기로 정했으니 만들어야 할 게 많다.

투척용 단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할 마도구 등등. 문제는 단검이나 마도구를 여기에서 제작했다간 확률은 낮지만, 혹시 모를 꼬투리가 잡힐 수 있다.

투척용 단검은 따로 무기점에서 구매해 연금술로 형태와 색상만 바꾸고 마도구도 간단한 것만 만들 생각으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에반을 만났다.

"아! 유진아!"

에반이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 마냥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나는 조금도 반갑지 않았지만, 사회생활 고인물에 걸맞게 반갑다는 표정을 연기했다.

"에반! 오랜만이야!"

"하하하.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너는 날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에반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쳇, 이럴 때는 눈치가 빠르네.  당장이라도 그렇게 말하고 싶어서 근질거리는 입을 막았다.

"내가 널 왜 싫어해. 비록 요새 이런저런 문제가 있긴 했지만 우리는 아리스와 유벨을 만나기 전부터 함께 했잖아. 내 엄마도 너랑 친하고."

엄마는 친한 걸 넘어 아예 육체관계까지 맺었지만, 하여튼 그것도 친한 거지.

어쨌든 방금의 발언으로 에반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에반은 밝은 표정으로 자랑하듯 말했다.

"유진아! 이거 봐봐. 나 이제 마력을 다를 수 있게 됐다!"

"...뭐? 마력을?"

"응! 여기 봐봐!"

에반이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손에는 확실히 마력이 깃들어 있었지만, 통상적인 마력과는 그 특성이 조금 달랐다.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외부의 것을 억지로 담은듯한 모양새다.

이거 위험한데. 이런 마력은 얻기 쉽지만 반대로 없어지기도 매우 쉽다. 그리고 자신의 마력이 아니니 재능과는 별개로 수련으로 마력을 올릴 수 없다.

아니, 그보다 얘는 이런걸 어디서 얻었데.

"에반. 너 이거 어쩌다 그렇게 된 거야?"

내 물음에 에반은 선뜻 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진중한 얼굴로 알려주기 어렵다며 거절했다.

"미안해. 하지만 이건 내 유일한 희망이야. 이해해줘."

"이해해, 이해하고말고."

뭘 이해해 달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걸 얻게 되는 과정을 말해줄 수는 없다 이거지. 그렇다면 나한테도 방법이 있지. 나는 작게 손에 추적 마법 진을 만들어냈다.

"에반. 마력 좀 더 세세하게 보게 팔 좀 줘봐."

"응, 알았어!"

내 말에 에반은 기쁘게 응했다. 병신 새끼. 이상함을 못 느끼네. 나는 웃으며 팔에다 마법진을 부착했다. 마력에 재능이 없으니 이걸 감지할 수 없을 거다.

"아 참. 나 바쁜데! 에반, 나 인제 그만 가볼게!"

나는 일부러 바쁜 척 하며 가려고 했다. 에반이랑 더 대화할 필요는 없으니깐. 하지만 에반이 뒤에서 날 잡았다.

"유진아. 혹시 아리스가 어제 어디 있었는지 아니?"

'알고 있지. 어제 나랑 질퍽하게 즐겼거든.'

"어제? 어제 왜? 무슨 일 있었어?"

나는 일부러 모른다는 듯이 물어봤다. 그러자. 에반의 얼굴은 그림자가 드리운 듯 어두워졌다. 그리고 나를 잡던 것을 놔주었다.

드디어 풀려났네.

"하아…. 어떡하지."

에반은 나를 잡았던 걸 놓고 침울해진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내가 해줄 말은 없다. 나는 그를 무시했다.

에반은 내 곁에서 물어보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았던 신세 한탄을 한바탕 쏟아냈다. 대충 한 귀로 흘려듣고 있으려니 드디어 끝났는지 에반이 모쓱하게 말했다.

"갑자기 붙잡아서 미안했어. 유진아. 난 이만 가볼게."

이제야 가는군. 나도 적당히 손을 흔들어주며 그를 보냈다. 아마 자신의 여자 친구가 내 전용 보지가 된 걸 꿈에도 모르겠지.

나는 속으로 그를 비웃으며 내 할 일을 하러 움직였다. 이번에는 저번에 갔던 그 거대한 대장간이 아니라 일부로 작은 대장간을 찾았다.

대도시라도 돈이 적은 자들을 위한 소규모 대장간이 많이 있고 나는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가장 솜씨가 좋아 보이는 이를 찾아냈다.

"여기가 좋겠네."

그럭저럭 쓸만해 보이는 대장간이다. 그리고 장소도 후미진 게 들키지 않을 수 있겠어.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아무도 보지 않는 것을 철저하게 확인하고 나에게 마법을 걸었다.

"클로킹, 사일런스."

모습을 감추는 마법, 소리와 기척을 없애는 마법. 두 가지를 걸고 나서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다.

대장간 안으로 들어가자 강철을 두드리는 소리와 금속 냄새가 났다. 훌륭한 장인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실력은 있는 대장장이의 소리다.

나는 마법을 풀고 대장간 안에 있는 대장장이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요. 물건 좀 보러 왔습니다."

불가마 앞에서 열심히 망치질하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남자는 망치질에 집중하느라 내가 들어온 걸 몰랐는지 말을 걸고 나서야 나를 보고 망치질을 멈췄다.

"손님인가. 뭘 사러 왔나."

"혹시 투척용 단검 좀 볼 수 있을까요."

"투척용 단검? 잠시만 기다리게."

대장장이는 카운터로 보이는 나무판자 아래의 상자에서 잘 연마된 단검 30자루를 꺼냈다. 단검들은 내 눈에 찰 만큼 명품은 아니지만 쓸만한 수준은 된다.

나는 만족하며 단검 30자루 중 한 자루만 빼고 전부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건 마법인가? 마법사가 단검 같은 걸 사다니 의외군!"

내 인벤토리를 본 대장장이가 감탄했다. 마법은 아니지만, 마법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내가 쓴 인벤토리는 마법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단검의 날을 잡았다. 무기를 구했으면 시험을 해야지.

"음! 자네! 지금 뭐하는 짓인!"

나는 뭔가 이상한 걸 깨닫고 소리치려는 대장장이의 목에 단검을 투척했다.

푹-!

날카로운 음성과 함께 단검이 그의 목 깊숙한 곳에 박혔고, 단검이 박힌 탓에 그는 말을 꺼낼 수 없게 되었다.

"끄으……. 끄어어어......!"

마치 실이 끊어지는 인형처럼 아래로 넘어지는 대장장이. 나는 그에게 다가가 목의 단검을 뽑았다.

"내 손에는 잘 맞네. 그러면 이건 가져갑니다."

눈에서 생기가 사라져가는 대장장이를 지나쳐 불가마에 화염 증폭 마법을 걸었다. 불가마의 화염이 대장간을 집어삼킬 듯 타오르는 광경을 지켜보며 나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밖으로 튀었다.

곧 대장간은 화염에 휩싸여 타오르고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화재에 놀라 소리쳤다.

불을 끄기 위해 병사들과 마법사들이 급하게 화재 현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마법사들은 화재 현장에 물 마법을 사용했지만, 불길은 잡히지 않았다.

내가 불가마에 설치한 화염 증폭 마법은 그런 거로 꺼질 만큼 약하지 않아. 아마 고생 좀 할 거다.

'어쨌든 이걸로 공짜 단검도 구했겠다. 공방으로 돌아가자.'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슬그머니 위장을 해제하고 사람들 사이에 섞였다. 은신과 기척을 없애는 마법은 효과는 탁월하나 마력 소비가 심해 지금은 오래 유지하기 어려웠다.

나는 마법을 중단하여 모습을 드러냈다. 다행히 나를 본 사람은 없었다. 지금 사람들은 대장간에서 시작된 화마를 지켜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저 대장간 안에서는 대장장이가 불타고 있겠지. 그리고 이 화마는 옆으로 번져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 거다.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이게 이 세계에서 저지른 첫 살인이지만 별 감흥도 없었다. 이제 와서 그런 걸 느끼기엔 내가 너무 담담해졌다.

하지만 한가지 궁금하다. 과연 창세신은 이 광경과 지금의 내 행동을 보고 뭐라고 할까.

"상태창."

[이름:유진(현재)]
[나이:16(???)]
[ 직업:차원 여행자]
[보유 능력:창세신의 축복(액티브), 마력친화(패시브), 번개의 권능(패시브), 물의 권능(패시브), 육체 강화(패시브), 항마력(패시브), 인벤토리(패시브), 헤파이스토스의 손재주(액티브), 악마 사냥(액티브), 초재생(패시브), 황금률(패시브)]

[현재 동행자 수:0]
[창세신님의 전생 한 줄 평:그러게 왜 내 축복을 안 쓰고 뻐기다가 한방에 뒤지니.]
[창세신님의 현생 한 줄 평:화염! 아주 좋지! 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테니깐!]

"....미친놈."

이딴 놈이 창세신이라니. 역시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데 당연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괜히 상태창을 열었다고 생각하며 나는 공방을 향해 발걸음을 틀었다. 화염 증폭 마법의 유지 시간은 길어야 3분. 이제 슬슬 화마가 잡힐 거다.

화마가 잡히더라도 나와 관련된 증거와 시신은 이미 한 줌의 재가 됐을 터. 그러니 더 이상 여기 있을 필요는 없겠지.





공방에 들어와 작업 준비를 한다. 마석중에 내가 먹을 거 10개랑. 작업에 촉매로 쓸 마석 103개를 꺼냈다.

그리고 마석폭탄에 쓸 마석도 따로 구분해 놨다.

"그러면 시작해볼까."

창은 현재 내가 가진 무기 중 가장 강한 무기다. 창을 꺼내 부여대에 올리고 마석 하나를 갈아서 부여대에 적절히 뿌렸다. 마석은 창에 능력이 잘 깃들 수 있게 해줄 거다.

그리고 마석을 뿌렸으니 이제 재료를 넣어야겠지. 내가 창에 깃들게 할 능력은 압축과 해방. 이를 위한 재료는 해당 능력의 술식과 마력, 그리고 오토 악어의 혀와 막대한 마력이 뭉쳐져 고체화된 광석은 마력석이 필요하다.

오토 악어의 혀는 마력을 뭉쳐서 브레스처럼 발사할 수 있게 해 주는 기관이지. 그리고 마력석은 마력을 끌어모으는 성질을 상징한다.

이것들을 부여대에 놓고 부여대에 술식을 새겼다. 그리고 술식에 마력을 넣는 것으로 준비는 끝난다.

이제부터가 진짜 작업의 시작. 술식에 부여된 마력을 이용하여 창을 들어 올렸다. 먼저 창대를 파서 술식을 새겨넣는다.

그리고 창대를 판 부분의 뒤에는 마력석을 조금씩 녹여 메꾸고, 뒷부분은 오토 악어의 혀를 갈아 넣는다.

재료를 놓은 뒤에는 창과 같은 분류의 금속으로 창대를 얕게 덮어 팠던 흔적 자체를 지워버렸다. 촉매로 사용된 마석이 발광하며 이 작업을 원활하게 도왔다.

"다, 됐다!"

창 곳곳에 기묘한 마력 흐름이 느껴진다. 술식이 새겨진 부분은 빛나고 있었다. 이걸로 창은 작업 끝. 인벤토리 안에다가 집어넣고 단검 두 자루와 투척용 단검 30자루를 꺼냈다.

이 두 개는 형태와 색까지 입혀야 한다. 입힐 색은 검은색. 황금 길드의 지원으로 얻은 지옥 까마귀의 깃털을 꺼냈다.

깃털에 마력일 천천히 불어넣으며 무기에 뿌렸다. 마석을 촉매로 하여 변환 마법을 사용. 색이 검게 물들며 형태가 내가 구상한 거로 바뀌었다.

단검에는 소리가 나지 않는 능력을 부여하고, 투척용 단검에는 자동 추적 능력을 걸었다. 크기가 작아 이 작업은 금방 끝났다.

"그러면 이제 마지막."

천을 꺼냈다.

누에부에라는 몬스터가 만든 초고가의 천으로 방호력이 어지간한 금속에 맞먹는다고 한다. 여기에 지옥 까마귀의 깃털과 강철실, 부에띠의 실, 강철 거미의 거미줄까지.

재료는 완벽하다. 이제 이걸로 옷을 만들기만 하면 된다. 이미 아리스가 입을 복장도 다 구상해 놨지. 나는 누에부에의 천을 자르며 작업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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