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길드에서의 이야기
전사 계열과 마법사 계열로 나누어진 뒤 우리는 어느 한 곳으로 다 같이 이동했다. 이럴 거면 왜 전사와 마법사로 나눈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서 이에 관해 물어보거나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고, 우리는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리하여 도착한 곳은 거대한 운동장이었다.
거대한 운동장에 선 전사가 우리를 보았다.
"이제부터 너희는 한 달간 기초체력 훈련과 무기를 다루는 방법, 그리고 던전에 대한 것을 배울 것이다! 너희는 A조. 그만큼 뛰어난 재능이 있으니 잘 따라오리라 믿는다!"
전사는 그렇게 말하며 운동장을 가리켰다. 다들 그 행동에 무슨 의미냐는 듯이 전사를 바라보자 전사가 씨익 웃었다.
불길하다. 존나게 불길하다. 여기 운동장에 데려온 것도 그렇고, 저 전사 새끼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오늘은 첫날이니 가볍게 하도록 하지! 다들, 100바퀴씩 뛰도록! 걸어도 안 되고, 멈춰도 안 된다! 실시!"
"네!?"
옆에 있던 아리스가 기겁했다. 내 예상도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체력훈련이라는 이름의 깡노가다라니. 확실히 재능이 수치로 나타나며 회복 포션같은게 넘쳐나는 황금 길드에 한해서는 효율적인 훈련일 것이다.
육체는 한계를 넘어 박살 나고 회복할 때 더 강해지니깐. 아마 여기에 모인 인원들은 그 성장 속도도 어마무시 하겠지. 하지만 다짜고따 100바퀴는 말도 안 됐다.
운동장의 길이는 눈대중으로 잡아도 1KM는 되어 보였다. 100바퀴면 100KM인데, 그걸 뛰라니. 효과는 그렇다 치더라도 진짜 무식한 방법이다.
그렇기에 다들 쭈뼛거리며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러자 전사가 바닥에 검을 내리찍으며 소리쳤다.
"던전을 도는데 체력을 필수! 저기 마법사 계열을 택한 놈들도 뛴다! 당장 움직여!"
"네…. 넷!"
전사의 외침과 함께 마법사를 고른 자들과 전사를 고른 자들이 동시에 운동장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리고 거대한 운동장을 돌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그들 중 맨 뒤에 있는 건 아리스와 유벨이었다. 둘은 벌써 헉헉대며 열심히 달리고 있지만, 도저히 100바퀴 완주를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오늘 점심 전에 100바퀴 완주를 목표로 뛴다! 알겠나!"
"만약에 못하겠다면 그만둬도 된답니다. 그러면 황금 길드의 입단이 포기될 뿐이에요."
전사가 고함을 치고, 옆에서 마법사가 거들었다. 저 악랄한 새끼들 보소. 엘프나 수인이야 어느 정도 버티겠지만 그래도 대다수는 재능이 뛰어난 일반인이다.
그들에게 저런 고난도의 노동을 강요하고 즐기는 모습이라니. 사탄이 형님이라고 부를 모습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근데 의문인 건 나는 뛰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도 뛰려고 했는데 전사가 내 팔을 잡아서 저지했다.
'뭘 하려는 거지..."
나는 내 팔을 잡고 있는 전사를 바라보았다. 전사는 험상궂은 외모로 웃고 있었다. 결국 내 쪽에서 질문했다.
"저기, 전 뭘 해야 하죠?"
"잘 물어봤다. 자네는 저런 훈련이 필요 없을 수준이니 다른 훈련을 하도록 하지."
"이제부터 당신은 제가 안내하도록 하죠. 저를 따라오십시오."
마법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데리고 어딘가로 갔다. 뒤를 바라보니 유벨과 아리스가 간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아깝게도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둘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마법사의 뒤를 따라갔다. 마법사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운동장과 비슷한 크기이나 맨 뒤쪽에 나무 인형을 세워둔 곳이었다.
"우선 좀 앉죠. 당신이 이제부터 할 일을 생각하면 설명이 좀 길어질 테니."
마법사의 말에 근처에 말없이 앉았다. 마법사도 내 근처에 앉으며 지팡이를 나와 자신 사이에 꽂았다. 마법사는 전형적인 마법사 차림의 노인이어서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그보다 갑자기 뭐지?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려니 지팡이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오며 내 전신을 샅샅이 스캔했다.
"과연, 마도구를 지니고 있거나 하지는 않는군요. 종족도 인간이 맞고요, 뒤에 매고 있는 창도 평범한 창이고."
"...아, 저를 의심하신 거군요."
"죄송하지만 그렇습니다. 저희 간부진도 테스트 때 몇몇 곳에서 당신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실력은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었어요."
"으음....."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사과드리죠."
"아뇨, 아닙니다. 마법사님의 심정은 이해가 가거든요."
내 창술은 이미 극에 달했고, 테스트 때는 마력을 자유자재로는 다루며 나무창에 마력을 담기까지 했다. 내가 마법사였어도 의심했을 거다.
이리 뛰어난 실력과는 달리 나는 알려진 게 하나도 없는 평범한 시골 출신의 16살 소년이니깐. 그러니 마도구 사용이나 종족을 의심해도 별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게 넘어가니 마법사가 다시 한번 사과했다.
"당신의 자비로운 용서에 감사드립니다. 이 무례에 대한 보상은 나중에 테스트 보상과 함께 저녁에 드리겠습니다. 혹시 원하는 건 있으신가요?"
원하는 거라, 이건 좋은 기회다. 나중에 돈을 써서 구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기회는 이용해야 하는 법이다.
"강철실과 부에띠의 실, 금속 거미의 거미줄, 그리고 제 전용의 공방한 곳만 마련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 많은 요구에 마법사가 침묵했다. 내가 말한 것들은 전부 고가의 촉매로 마법 재료이자 연금술 재료다. 전부 사면 몇백 골드는 기본으로 깨질 것이다.
"왜 그러시죠? 혹시 무리인가요?"
"하, 황금 길드의 재력을 우습게 보시는군요. 저는 오히려 요구가 그게 전부여서 놀란 겁니다. 저는 또 귀중한 마도구를 달라고 하면 어쩌나 했거든요."
"그러면 제 요구는..."
"가능합니다만…. 설마하니 그 정도 무력에 연금술의 조화까지 있으실 줄이야. 의외군요. 일단 요구에 따른 보상은 철저하게 해드리죠. 연금술에 필요한 재료까지 전부 구비해 드리겠습니다."
역시 황금 길드야. 돈이 많아서 그런지 통이 매우 컸다.
"크흠, 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죠. 당신의 실력이 진짜라는 것을 알았으니 당신은 육체단련이 아니라 마력 단련을 최우선으로 할 겁니다."
"마력단련?"
"네, 당신도 아시겠지만, 모험가에게 있어서 육체가 중요하긴 하지만 마력은 더 중요합니다. 전사의 경우 보유 마력량이 늘수록 육체를 더욱 강하게 만들 수 있죠. 마법사 같은 경우에는 마법사로서의 격이 상승하여 사용 가능한 마법이 다양해지고요."
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세계를 넘나들며 수없이 많이 마력을 다뤄왔기 때문이다. 그만큼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임을 알고 있다.
당장 내가 하는 마력 호흡도 신체를 강화하며 마력을 체내에 쌓는 것이다.
"마력을 단련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마력을 전부 사용하고 회복하길 반복하거나, 마력 운용을 익혀서 조금씩 단련하거나, 아니면 뛰어난 마력 호흡을 익히는 거. 이중 저희는 마력 운용을 알려주어 다들 마력을 깨닫고 마력을 단련할 수 있게 해주죠."
"마력 운용이라…. 그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하지 않을까요?"
마력 운용은 몸의 마력을 운용하는 기술의 일종이다. 몸의 마력을 순환시키며 육체를 강화하는 데 쓰이며 마법사의 말대로 마력을 단련할 수 있다.
하지만 마력 운용은 어디까지나 운용이 목적이기에 초반에는 빠르게 성장해도 어느 정도 쌓이고 나면 마력 성장이 더뎌진다.
그때부터는 개인의 재능 차이가 벌어지고 마력을 빨리 쌓기 위해서는 전장을 전전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나는 걱정됐다. 유벨과 아리스가 마력 운용 하나만으로 견딜 수 있을지가. 마법사도 나랑 같은 생각을 했는지 걱정 말라는 듯이 말했다.
"마력 운용이 나중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다른 길드에는 마력 운용도 없어서 그냥 마구잡이로 마력을 쓰는 자들이 태산입니다. 운용기술이라도 받을 수 있는 건 천운이죠."
"그건 그렇죠."
아무래도 유벨과 아리스에게는 따로 내가 쓰는 마력 호흡을 가르쳐 줘야겠다.
"그래서…. 저를 여기에 부른 이유가 뭐죠?"
"아, 이제부터 본론을 말하도록 하죠. 당신은 이제 여기서 다른 사람들이 육체를 단련하는 동안 마력을 단련해 주세요. 현재 당신이 지닌 마력량을 봐서는 당신만의 마력의 단련법이 있는 것 같으니 운용법은 넘어가죠."
마법사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곁에 놓여있던 이상한 밴드를 가져왔다.
"이건 저희 황금 길드에서만 사용하는 단련용 밴드입니다. 착용 시 마력의 운용을 둔하게 만들죠. 당신은 이걸 차고 마력을 다뤄주시면 됩니다."
"호오..."
"마력량 만큼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서나 마력을 원활하게 다룰 수 있는 실력이죠. 자, 한번 이걸 차보시죠."
나는 밴드를 받은 뒤 필에 차봤다. 과연, 체내의 마력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그리고 내 호흡법에 의해 실시간으로 마력이 늘고 있었는데, 지금은 10분의 1수준으로 상승률도 낮아졌다.
확실히 이거라면 마력 운용 등의 단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연무장에서 무엇을 하든 자유입니다. 지금 하는 건 1단계고요. 일단 해보시죠. 그 밴드의 영향에서 벗어나면 1단계는 통과입니다."
마법사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면에 나는 자리에 가부좌하고 앉았다.
'무엇을 하든 자유라...'
나는 바른 자세로 앉아 오랜만에 본격적으로 마력 호흡을 시작했다. 몸의 마력이 요동치며 흐름이 빨리 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이에 정신을 집중했다.
밴드로 마력의 운용을 느리게 한다고? 세계를 넘나들며 쌓아온 마력을 다루는 능력을 겨우 이런 거로 막을 수는 없었다.
호흡을 지속하며 몸의 마력을 최대한 빠르게 순환시키자 억지로 마력을 둔하게 만들던 밴드가 조금씩 찢어졌다.
그리고 그게 극에 달하자 아예 밴드가 산산조각나 버렸다. 이 광경에 마법사가 기다란 수염을 쓰다듬었다.
"이거 굉장하군요.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생각 같아서는 당신의 마력 호흡법에 관해 연구하고 싶을 정도예요."
"칭찬은 감사하나 그건 안되죠."
마력 호흡법은 비기이자, 중요한 비밀 기술이다. 절대로 넘길 수 없다. 마법사도 이걸 알기에 장난이라 말하며 나를 진정시켰다.
"그나저나…. 이정도라면 5단계도 간단하게 통과할 것 같군요. 당신한테는 수습 기간의 훈련이 조금도 효과가 없겠어요. 그렇다면 다른걸 해야 하는데…. 으음. 이런 건 황녀님 이후로 처음이군요."
내 규격 외의 실력에 마법사는 고뇌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좋은 생각이 났는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유진군! 잘됐군요. 생각해보니 당신이 할 일이 딱 있었어요."
마법사는 신난 표정이었고, 뭔가 홀가분해 보였다. 뭐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길래 저런 표정이지? 나는 불안함을 느끼며 마법사가 입을 열길 기다렸다.
"유진군! 자네는 이제부터 S조에 넣도록 하겠습니다!"
"S조?"
"네, 지금은 사정이 있어 딱히 할 일이 없으니 당분간은 A조와 함께 같은 훈련을 받아주세요. 싫으시다면 저희가 공방을 마련해 드릴 테니 거기에서 연구하셔도 됩니다. 저도 마법사로서 당신의 실력을 보고 싶으니까요."
"으음, 그러면 당분간은 훈련 참가를 제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이건 나쁜 제안이 아니야. 오히려 좋은 제안이지.'
근데 이상하게 S 랭크라는 말이 거슬린다. 하지만 나는 별일 있겠냐는 생각에 승낙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하겠습니다."
"오오! 잘 선택 하셨습니다! 당신의 공방은 다음 날 저녁까지 찾아서 정리해 놓을 테니 지금은 연무장에서 하고 싶은 훈련을 하거나 운동장을 도는 친구들을 찾아가도 좋습니다"
내 승낙에 마법사는 기뻐하며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