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에반의 이야기
나는 구석에 박힌 채 친구들을 지켜보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더라? 우리는 같은 마을에서 자라 아기 때부터 친구로 지냈다.
내가 맏형이자 촌장이신 아버지처럼 형편이 나쁘던 유벨과 아리스를 도왔다.
그 후에도 언제나 동생 같은 유벨과 유진을 지켜주고, 아리스와는 연인이 되어 달콤하게 사랑을 나누었다.
그 외에도 내가 남자로서 굉장했기에 여자들이 나에게 자신들의 매력을 드러내 이에 응하기도 했다.
우리는 마을에서 단 하나의 꿈을 만들었다. 던전에서 몬스터를 쓰러트리고 큰돈을 버는 모험가. 그것이 내 꿈이었다.
그렇게 마을에서 즐겁게 지내던 우리는 16살이 되던 해 우리 앞으로 온 적성검사 명령서를 받았다.
이건 모험가가 될 기회였기에 우리는 지체없이 길을 떠났다.분명 유진이 이상해진 건 마을에 온 뒤 얼마 지나지 않을 때. 바로 어제부터였다. 유진은 평소와 달라졌다.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원래라면 호통 한 번에 울먹거렸을 유벨을 상대하면서 여유 있어 보였다.
그리고 적성검사에서는 역대 최고의 재능을 보여주며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치 지금처럼.
"....부럽다.
아리스, 유벨, 유진. 전부 나와는 달리 빛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 좋은 길드의 제안을 받고 있었다.
그중 압도적인 것은 유진이. 무슨 일만 있어도 내 곁에 달라붙던 소심한 유진이가 지금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며 자신의 재능을 뽐내고 있었다.
유진이 손을 앞으로 뻗자 손에서 번개가 휘몰아치기 시작하더니 창의 형태로 뭉쳐졌다. 유진이한테 저런 능력이 또 있었어!? 어제는 분명 물이었는데!
내가 새로운 능력에 놀라는 사이 유진이는 창을 손으로 잡아 빙그르르 돌리다 몸을 약간 숙이며 깔끔하게 자세를 잡았다.
무슨 자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도 뭔가 있어 보이는 동작에 주변 사람들이 감탄사를 터트리며 연신 유진이를 칭찬했다.
"대단하군, 실로 대단해. 단순히 재능만 뛰어난 게 아니라 이미 자신만의 무를 완성했을 줄이야!"
"저 나이 때면 나는 동기들한테 두들겨 맞고 있었을 텐데!"
"그보다 저거 벼락 맞지? 축복으로 번개의 힘을 받은 건가! 이거 대박인데! 마법사도 아닌데 번개를 다루다니!"
"칭찬 감사드립니다."
고개를 숙이는 유진이. 나는 유진이가 부러워졌다. 저 압도적인 재능과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무술까지 선보이고 있다.
내 소중한 여자친구인 아리스와 유벨조차 지금은 유진을 감탄 섞인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이곳의 관심은 전부 유진에게로 향하고 있다. 나에게 향할 시선은 일말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유진이도 좋은 재능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좋았겠다고 무심코 생각해 버렸다.
이것이 추잡한 질투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런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이곳에 모인 사람 중에서 가장 강해보인던 남자 3분이 앞으로 나섰다.
그분들은 각자 유진의 앞에서 똑바로 유진을 쳐다봤는데 유진은 그들의 시선을 조금도 피하지 않았다. 남자분들은 그런 유진의 모습에 웃었다.
저분들은 입은 갑옷과 종족으로 보아서 오국 중 최상위 길드 소속으로 보였다. 그리고 내 생각은 맞았다.
그들은 오국 길드 최상위 3개에서 나온 자들이었고 유진에게 엄청난 조건을 걸었다.
"우리 황금 길드에 오도록. 그리하면 황제 폐하의 이름으로 그대에게 최고의 지원을 약조하지."
"저희 환상향 길드에 오신다면 요정과 정령의 정수를 알려드리죠. 당신이라면 번개의 정령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대가 진정한 전사라면 우리 펜리르 길드에 오는 걸 권하지. 우리는 그대에게 야생의 힘을 알려줄 것이고 그대는 실력과 힘만 있다면 우리 길드에 끝까지 올라갈 수 있을 거다!"
그들의 제안이 정확히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녔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유진이는 저런 가치를 잘 아는지 잠시 고뇌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금방 대답했다.
"저는 황금 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황금 길드. 분명 위대하신 황제 폐하께서 세우신 길드다. 나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을 테지만 유진이는 당연히 들어갈 수 있겠지.
정말이지 웃기는 일이다. 아침에만 해도 내가 리더인 양 나서며 이끌었는데. 무기와 장비까지 전부 구했는데. 나는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다.
이 사실에 가슴이 아파졌다. 어느샌가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어떡하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으려니 아리스가 유진이를 붙잡는 게 보였다.
"잠깐! 유진아. 진짜로 갈 생각이야! 에반을 버리고?"
아냐, 나 때문에 유진이랑 싸우지 마!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말리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사이 유진이 차가운 목소리로 나를 불렀고, 처음 보는 차가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리스 누나. 잘 들어, 에반형은 재능이 없어 모험가를 할 수 없다고! 그런 상태에서 우리 4명이 길드를 만든들 무엇을 할 수 있는데! 내 목적은 위로 올라가는 거지 작은 길드에서 하하 호호 하면서 소꿉놀이나 하는 게 아니야!"
'으윽!'
가슴에 무언가가 꽂힌 거 마냥 심장 세차게 쿵쾅거린다. 몸이 덜덜 떨렸다. 유진의 말은 진실이기에 뭐라 항변조차 할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제발…. 제발 그만...!"
유진이는 없어도 된다. 사랑하는 아리스와 내 친한 여동생인 유벨 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 그러나 싸우지 않았으면 한다고 간절히 빌었다.
겨우 이런 것 밖에 할 수 없는 내가 너무나도 한심했다. 그래도 나는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유벨의 발언에 내 소망은 깨져버렸다.
"저도, 저도 황금 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유벨의 선언에 귀가 먹먹해지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어째서? 어째서야?'
유벨이 나를 버린다. 이 사실에 유진이때 보다 가슴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마치 가슴에 불이 붙은 듯한 감각에 몸을 웅크리며 무릎 사이에 얼굴을 박았다.
곧 유벨이 나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지만, 저들의 이야기에는 내 의사도, 생각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저 아리스와 유벨 사이에 낀 짐.
그것이 지금의 내 입장이었기에 그들의 이야기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한마디만큼은 뼈에 스미든 들려왔다.
"나도……. 황금 길드에 들어갈게."
그 말에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불꽃이 가슴에서 타올랐다. 어째서, 어째서 아리스마저 나를!
원통함과 분노가 스멀스멀 피어올랐으나 나를 걱정하듯 바라보는 아리스와 마주치니 이를 표출할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애써 안에 삭혔다.
'그래, 이것도 전부 나를 위한 일이야. 감수해야지!'
최대한 그렇게 생각하려 애쓰며 애들을 보았다. 어느새 리더처럼 앞에 나선 유진이 계약서로 보이는 종이를 받아 읽고 있었다.
"이 계약서에 사인하면 그때부터 자네들은 우리 길드 소속이 되지."
황금 갑옷의 남성분이 말하자 유진은 꼼꼼하게 종이를 읽었다. 그 모습이 매우 멋져 보였다.
'부럽다…. 나도 저러고 싶었는데.'
모험가를 꿈으로 했을 때부터 나는 저렇게 멋진 나를 상상했다. 하지만 상상 속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내가 아닌 유진이였다. 유진은 종이의 글을 다 읽었는지 남성분께 내밀었다.
"봤을 때 이상한 조항은 없네요. 사인하죠."
에반이 계약을 완료하자 이어서 아리스와 유벨마저 계약서를 적었다. 이걸로 내가 함께할 일은 없어졌다.
나는 허탈한 심정에 더 이상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그저 무언가가 빠진 듯 공허해졌다. 곧, 아리스가 나에게 다가왔다.
언제나 좋아하던 아리스, 사랑하던 아리스. 그녀의 예쁜 얼굴이 지금만큼은 최악으로 느껴졌다
"에반. 우리는, 그러니..."
"아냐, 괜찮아, 얘들아! 나, 나는 신경 쓸 것 없어…. 이게 전부 내가 재능이 없어서 그런 거니깐. 그냥 길드에 들어가!"
나는 선수를 쳤다. 그래, 이건 내가 약해서 이렇게 된 거다. 내가 재능이 없고, 약해 빠진 탓에!
"....미안해."
제발 사과하지 말아줘 아리스. 이건 전주 재능도 없으면서 큰 꿈을 꾼 내 탓이잖아. 그렇지? 그러니깐 날 걱정하지 말아줘.
"아니, 아니…. 아니야! 난 괜찮아! 괜찮고말고! 나도 길드 밖에서 노력해서 열심히 할 테니깐 나중에 함께하면 되는……. 거…. 젠장!"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최선을 다해 웃으며 말하려 했다. 하지만 끓어오른 감정을 도저히 주체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신전 밖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원래 머물던 여관에서 나와 어딘가로 급하게 도망갔다.
•
•
•
"....젠장!"
나는 베개에 머리를 박고선 몸을 휘적거렸다.
너무 한심하다.
내 동생이었던 유진은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재능을 보였는데 내가 가진 재능은 아무것도 없다.
마력, 신체 모든 분야에서 최하위를 찍은 내가 뭘 할수 있겠는가.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를 버려두고 애들이 황금 길드로 떠나버렸다.
아무리 내가 무능하다지만…. 날 버리다니 너무하잖아! 나라면 누구도 버리지 않았을 텐데!
우리 4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황금 길드라 하더라도 포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애들은 아니었나보다.
"빌어먹을, 그냥 죽어버릴까."
아직도 마지막에 울면서 도망치던 내 모습이 생생하다. 아리스 앞에서 그런 한심한 모습이라니! 겨우 이런 거로 그녀와 내 사이가 나빠지지는 않겠지만 남자로서 너무 창피하다.
"하아……. 진짜 죽을까."
답답하니 자꾸만 한숨이 나온다. 이럴수록 오늘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모두에게 환호를 받은 유진과 내가 비교되어 더 괴롭다. 분명 유진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말하지 않고 힘을 키워왔겠지?
유진이 아리스에게 한 말이 떠오른다.
[방금 그건 야생 늑대 수준의 속도야. 그런데 넌 반응하지 못했지. 그리고 몬스터는 방금의 그것보다 더 빠르지. 방금의 속도에 제대로 반응도 못 하면서 길드를 세우겠다고? 재능이 뛰어나도 그걸 꽃피우지 못하면 의미가 없어. 던전은 언제 어디서 죽을 모르는 곳이야. 제발 긴장 좀 해!]
그 말에 틀린 건 하나도 없었다. 유진이 보기에 우리가 얼마나 바보 같았을까.
자신의 재능도 모르는 녀석들이 단련도 한 적 없으면서 무작정 모험가를 하겠다고 도시로 올라오다니.
하지만 단 하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다.
"유진이, 나를 버리려고 했지..."
자신의 실력을 숨긴 건 이해한다. 유진은 마을 사람들과 사이도 좋지 않았고, 우리를 놀라게 할 의도였다고 생각하면 된다.
근데 유진이는 날 버렸다. 그것만큼은 어째선지 이해를 못 하겠어. 그래도 우린 친한 친구였잖아. 근데 어째서! 계속 같은 생각으로 머리가 어지럽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바뀌는 건 없었다. 그래, 이럴 때일수록 냉정하게 생각해야지. 어려운 상황일수록 냉정하게 사고하라. 그게 내가 배운 모험가의 철칙이다.
지금은 앞으로의 일부터 생각하자. 남은 돈은 4 실버……. 갑옷은 하나 뿐이고 뿐이고, 기껏산 대검은 어딘가에 흘려 놓고와 버렸다.
이제와서 찾으러 가봤자 누군가가 들고 가 버렸겠지. 이제 나한테는 무기조차 남지 않았다.
"어쩌냐. 돈도 없고, 무기도 하나 뿐이고…. 진짜 답 없네!"
침대에 누워 머리를 잡고 날뛰었다. 도저히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바닥에 굴러 떨어졌지만 암울한 미래에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