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시작의 이야기
밖으로 나와보니 매우 북적인다.
도시라 그런지 사람도 많고 거리도 넓었다. 그리고 던전 도시답게 다들 가죽과 철 재질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허리에는 각자 검이나 활 등의 무기를 차고 있었다.
"우선 대장간부터."
내가 돈을 벌 수단은 간단하다.
세계를 넘나들며 쌓은 기술 중에는 당연히 대장장이 기술도 있으니깐 그걸 팔 거다. 세계를 넘나들며, 남는 시간 동안 온갖 기술을 단련했고, 원래 장인일수록 신기술에 죽고 못 사는 편이니깐.
거리를 걸으며 주변의 대장간을 둘러봤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어디 보자, 어디로 가볼까…
주변을 둘러보다가 가장 큰 대장간에 들어갔다. 건물 안은 매우 넓었다. 그리고 수많은 장인이 쉴 새 없이 망치질 하고 있었다.
"후! 후! 여기 강철 더 가져와!"
"이봐! 그건 다루기 힘든 광물이잖아! 창고에 넣어!"
시끌벅적한 대장간. 진열장 안에는 검부터 시작해 도끼, 메이스, 방패, 갑옷 등등. 온갖 무기가 가득했다.
재질을 보니 강철제인가. 여기도 강철 같은 광물이 많나 보네. 미스릴 같은 광물은 여기에서도 희귀한 모양이야.
그러면 내 야금술을 보여줘 볼까!
"어서 오십시오. 무기는 저쪽에 있고, 홈메이드 제품은 저한테 직접 말해주세요."
대장간의 주인은 쇠를 두드리며 태연하게 말했다. 이왕 온 거 무기도 좀 봐볼까. 수중에 있는 돈은 어머니가 준 10 실버 뿐이지만.
"어디보자…."
대장간을 둘러봤지만 당연히 내 눈에 들어오는 무기는 없었다.
이래 봬도 주인공을 도우며 많은 명검과 훌륭한 무기를 봐왔기 때문이다.
이런 대장간의 무기가 내 눈에 찰리가 없지. 그래도 질 자체는 뛰어난 것 같고 가게도 크니 내가 파는 기술의 가치를 알아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대장장이에게 다가갔다.
대장장이는 중년의 남성이었는데 얼굴에는 기다란 수염이 자라 있었고, 평생을 망치질하며 지내서 그런지 양팔에 근육이 가득 차 있었다.
오, 망치질 좀 했나 봐. 근데 이 양반은 돈 많으려나. 기술을 팔 때 최소 10골드 이상은 받을 생각이기에 그가 돈이 많을지 고민했다.
돈이란 아주 중요한 자원이자 강력한 힘이다. 대개 주인공은 크게는 세상을 구하고, 작게는 국가를 구하거나 반대로 국가를 전복시킨다.
그러는 데에는 무력도 필요하지만, 세력을 모으고 장비를 구매하기 위한 돈은 필수.
그게 아니더라고 돈은 많을수록 좋으면 좋았지 나쁘지 않다.
그래서 환생이나 빙의 같은 경우에는 부자 집안이나 높은 귀족 가문으로 시작하는 게 좋았다.
주인공을 만나면 돈 걱정 없이 빵빵하게 지원도 하고 히로인들한테 작업 걸기도 수월했으니깐. 전의 삶에서 성녀를 꾈 때도 처음에는 엄청난 지원금을 명목으로 만났었지.
그리고 벌써부터 돈을 벌려는 이유도 주인공을 위해서다. 우리는 시골에서 막 상경한 촌놈. 내일 엄청난 재능이 있다는 게 밝혀져도 초거대 길드에 들어가려면 따로 시험을 치러야 한다. 시험 내용은 극비라며 알려지지 않았고, 이 몸의 주인은 알아보려 하지도 않았다.
근데 나는 대충 감이 온다. 대충 무슨 시험을 치를지. 이에 대비하려면 당연히 돈이 필요하고.
"주인장. 혹시 여기 대장간 좀 써도 되나?"
"뭐야, 손님이 아니었나."
기술을 팔려면 시범을 보여야지. 나는 10 실버를 튕기며 대장장이에게 넘겼다.
대장장이는 능숙하게 10 실버를 챙기며 망치를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피식하고 비웃었다.
"이봐 샌님. 망치질은 해본 적 있어? 야금술은?"
"해본 적 있으니깐 비키기나 해."
"허허, 그래. 돈은 받았으니 비켜주지. 하지만 우리 대장장이 연합의 대장간을 빌려 쓸 거라면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할 거야."
호오, 대장장이 연합이라. 내 생각 이상으로 큰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나는 씨익 웃으며 곁에 놓인 금속 주괴 중 몇 개를 선별했다. 세계를 넘나들며 알게 된 건데 판타지 세계관엔 세계에 겹치는 금속이 많다. 그러면 이거랑 이걸로.
광석 선별 후에는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주괴를 고온의 열로 가열하며 망치를 두들긴다.
처음에는 강철을, 그다음에는 판타지 세계에서 본 적 있는 익숙한 주괴를 꺼냈다. 흠, 이러면 내가 낸 10 실버보다 더 나가겠지만 작업에 집중하자.
"흐읍!"
깡-! 깡-! 깡-! 깡-!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녹인 금속 주괴를 한 곳에 섞으며 마력을 집중했다. 판타지 세계의 야금술은 마력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지금 내가 쓰는 기술도 마력을 이용하여 금속을 섞고, 뭉쳐 합금을 만드는 기술. 이 작업에서 마력 운용을 잘해야 한다. 실수하면 합금이 엉망이 된다.
그렇기에 집중하며 빠르게 망치질을 해서 합금을 만들어냈다.
이것저것 배우다 보니 합금의 이름이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합금은 어지간한 강철보다 튼튼하다. 그 대신 무게가 더 나가지만.
어쨌든 대장장이라면 이걸 보고 참을 수 없을 테지. 나는 만들어진 합금을 만족스럽게 쳐다보며 대장장이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두 눈을 부릅뜨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바, 방금 그 기술은! 이봐! 그 기술은 대체 어디서!"
"으흠, 이 기술은 내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지던 마력합금술이야. 내 아버지 세대까지는 대장장이를 해왔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대장장이 일을 하는데 문제가 생겼거든. 그래서 이 기술을 팔려고."
"이런 기술은 처음이야! 새로운 합금기술! 당장 내가 사겠네! 얼마면 되나! 아니지, 여기서 기다리게! 내가 단장님을 모셔올 테니!"
남자가 합금을 챙기더니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키가 작은 어떤 남자를 데리고 아래로 내려왔다.
저 남자는 드워프인가? 드워프로 추정되는 남자는 대장장이 남자가 챙겨간 합금을 들고 있었다.
드워프라면 대장장이 중에서도 엄청난 실력을 갖췄을 테고, 대장장이 연합에서도 상당한 지위를 가졌겠지.
"자, 자네인가! 이 기술을 팔겠다고 한 사람이!"
"네, 접니다."
지위가 좀 있어보이니 존댓말을 썼다.
"사겠네! 내가 사겠네!"
내 말에 남자는 내가 만든 합금을 만져보았다. 얼굴에는 짙은 탐욕이 서렸다. 그래. 장인이라면 이런 탐스러운 기술을 보고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
이제 이 기술을 얼마에 팔지 고민하고 있으려니 대장장이 사내가 조바심이 나는지 허리에서 돈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 안에는 금화가 들어있다.
ㅗㅜㅑ. 이 아저씨 돈 많네. 나름 지위 좀 있는 양반인가.
주머니를 받고 금화를 세어보니 30개 정도가 들어있네. 이 정도면 충분하겠어.
이 세계의 화폐는 동화, 은화, 금화. 총 3개이며 동화 100개가 은화 1개, 은화 100개가 금화 1개다. 동화는 보통 하층민이 쓰고, 은화는 평민들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많이 사용된다. 금화는 부유한 자들이 쓴다.
즉, 골드는 지닌 것만으로 떼돈을 벌 정도의 능력을 지녔다는 증거고 30골드는 3,000 실버 정도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나는 희희낙락 웃으며 금화 주머니를 챙겼다. 그러던 중 드워프가 다가와 날 잡았다.
"이보게, 자네! 훌륭한 장인 같은데 우리 대장장이 길드의 일원이 되지 않겠나!"
눈에 보이는 짙은 탐욕. 드워프는 내 실력을 탐내고 있었다. 확실히 내 실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대장장이로 일할 생각은 없기에 거절했다.
드워프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지 아쉬워하면서도 날 붙잡지 않았다.
나는 그런 드워프에게 내가 적어놓은 합금 제작서를 넘겼다. 대장장이들이 제작서를 챙기고 급하게 어딘가로 달려갔다.
"실험! 당장 실험이다! 그 합금 챙겨서 가져와!"
"네! 갑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장인들. 돈이 부족해지면 또 와서 기술 몇 개 팔아도 되겠어. 쿨거래가 완료된 나는 금화 주머니를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30 골드.
이건 엄청난 거금이다. 어지간한 상업 길드의 몇 개월 수입 정도니깐. 던전 도시라 그런지 대장장이 연합도 돈이 많구나.
이제 이걸로 무엇을 할까. 무기는 내일 적성검사 후에 직접 만들 거니깐.
"흠, 그러면 진짜 뭐하냐."
돈은 많아졌지만 당장 어디에 쓸지는 정하지 않았다. 생각나는 건 연금술에 쓸 재료를 구하는 건데… 이건 나중에 할 거니깐 히로인들이나 찾아가 볼까.
아리스와의 관계는 꽤 좋은 편이다. 아리스는 날 자기 동생처럼 여기며 아껴준다.
하지만 유벨과의 관계는 최악. 유진은 유벨한테 찝쩍거리다 차인 전적이 있다. 겉으로 드러날 정도로 유벨은 유진을 싫어한다.
나는 유벨을 노릴 생각이기에 이 관계를 최대한 다잡고, 나에 대한 인식을 바꿀 생각이다.
아리스와 유벨은 분명 도시 도서관에 간다고 했었지. 나도 가봐야지. 나는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던전도시 답게 도서관 근처에는 다양한 가게와 길드가 모여 있다.
상업 길드부터 시작해서 고급 식당과 여관이 보였고, 돈 좀 있어 보이는 양반들이 점점 거리에 나타났다.
그들은 노예를 대동한 채 도시 안임에도 불구하고 마차를 타거나 말을 타고 움직이고 있었다.
마차가 다니는 길에는 길게 실선이 이어져 있고. 그 옆에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다.
여기 부자 동네구나. 화려한 외각을 둘러보니 던전도시가 얼마나 부유한지 감이 온다. 이 정도면 대규모 무역도시 수준인데.
하긴 던전에서는 무한하게 몬스터가 되살아난다.
그만큼 안정적으로 마석과 재료를 수급할 수 있으니 사람들이 모이고, 도시가 부유해질 수밖에.
감탄하며 거리를 걷다가 과자와 케이크, 사탕을 파는 고급 디저트 가게가 보였다. 달콤한 냄새가 나는 가게에는 많은 여자가 모여 있었다.
'잘됐다. 히로인들 만나러 가는 김에 좀 사가자.'
맨입보다 선물을 함께 하는 게 더 좋은 법. 달콤한 간식은 여자에게 있어 최고의 선물. 유진의 기억에도 아리스와 유벨은 단 걸 좋아했다. 선물로 적당하겠어. 나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