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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297화 (297/298)

가는 길은 평탄했다.

하이엘프인 십삼월의 단장이 마주치는 인물을 무섭게 노려봐서 검문에 시간이 좀 걸린 게 흠이었지만.

“죄송합니다! 이 죄는 제가 팔을 잘라서……!”

“……자르지 마.”

오베론은 대체 요정족들을 어떻게 교육했길래 이렇게 된 걸까.

근데 더욱 무서운 것은 팔을 자르겠다는 단장의 말에 그란데힐이 묵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이다.

요정족들에게 왕이란 그렇게 대단한 존재인 것 같긴 한데, 이건 처음에 버릇을 잘못들인 오베론의 탓이다.

‘지금 이 기회에 확실하게 말해둬야겠군.’

“단장.”

“네!”

“다음부터 내 앞에서 팔을 자르느니 하는 건 말하지 마라.”

“넵, 알겠습니다!”

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충성심 때문에 생긴 일이다. 너무 책망하는 것도 좋지 않고.

“그란데힐. 다른 요정족들에게도 그렇게 전해줘.”

“네, 알겠습니다.”

그란데힐에게 맡겼으니, 이젠 저런 걸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요정들이 시우를 엄청 따르는구나.”

“뭐, 이래 봬도 일족의 장이니까.”

“……?”

김시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아직 김시연에게 말하지 않았네.

김시연에게 말하지 않은 걸 떠오르니 내 여자들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던 게 떠올랐다.

처음에는 마왕이 나를 노릴까 봐, 숨겼었지만, 지금에서야 상관없고.

아, 참. 마왕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마왕은 현재 잘 쓰고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동료 페널티로 절대공명의 랭크가 낮아진 것 정도.

마왕이 무리해서 절대공명을 Ex랭크로 올린 탓에 랭크가 떨어졌다. S+로. 그리고 그 결과 절대공명은 굉장히 질이 떨어졌다.

‘Ex-랭크가 되면 쌔지는 종류일 줄은 몰랐는데.’

어쨌든.

나는 김시연에게 털어놨다. 상격에 올라서서 내가 세계수에게 선택받아, 요정왕이 되었다고.

“그, 그, 그러면 그 소, 소문이 진짜 사실이었어? 티타니아 님과 결혼한 단 거?”

“……어.”

더 정확하게는 삼왕과 결혼이다. 용왕 하메르와 공허왕 에니스까지.

“그, 그렇구나. 그 티, 티타니아 님이…….”

김시연이 뭔가 안타까운 듯이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니 티타니아는 가까이서 보면 잉여에 가깝지만, 멀리서 보면 꽤 멋스럽다.

세계수와 동화하면 초록빛 머리카락과 눈동자로 변하면서 신비한 분위기를 뿜는다.

요정족 특유의 분위기도 강하고.

‘티타니아가 존경받는 세계선이라니.’

그 세계가 내가 살고 있는 세계라는게 참으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도착했습니다.”

단장이 그렇게 말하고는 재빠르게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문을 열어줬다.

“고마워.”

“네, 넵!”

고맙다고 하자 눈에 띄게 좋아했다. 단장은 쉬운 요정이구나.

그 이후에 워프 게이트에서 잠깐 있다가 통과해서 섬으로 향했다.

“꽤 괜찮네.”

“네, 전부 요정족들이 나서서 자연의 마나를 뿌리며 가꾸었으니까요.”

섬은 진짜 괜찮았다. 영화에 나오는 장면 한폭을 옮겨놓듯이, 숲은 적당히 울창하고, 바다는 물이 굉장히 맑았다. 해변에는 모래가 쭉 깔렸고.

꽤 괜찮네.

***

김시연은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아마 마지막으로 꼬실 수 있는 기회지 않을까?’

이시우라도 결혼 후라면, 자기 자신을 절제할 것이다. 왠지 모르게 그런 ‘감’이 들었다.

이시우 주변에는 여자가 많다.

거의 끊이지 않는 수준이다.

그런데 더 무서운것은 예쁘고 아름다운 여자들이 모두 능력이 있단 거다.

‘마도명가의 가주가 확실시되는 애가 2명. 대한민국 재계를 쥐락펴라하는 가문의 외동딸. 협회를 주무르는 임원…….’

상대는 많다.

그나마 비벼볼 만한 상대가 김하린 정도인데, 김하린은 어리다는 장점이 있다. 자신보다 무려 3살이나 어리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남자들은 모두 어린 여자애들을 좋아했다.

그래서 김시연은 여러가지 준비를 했다. 여자들 사이에서 베스트 셀러로 등극한 남자를 꼬시는 100가지 방법은 물론이며, 이날을 위해 수영복까지 준비했다.

몸매는 꽤 자신있었다. 혹시 이시우가 자신을 봐주지 않을까 해서.

해변가에서 수영복을 입고 해가 질 때 모래사장에서 키스. 그리고, 그리고. 미리 잡아둔 숙소에서…….

‘……꿈이었구나.’

더 정확하게는 자신이 ‘있었’다.

김시연은 눈을 돌렸다.

회색빛의 메이드를 바라봤다. 그녀는 검은색 비키니를 입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묘하게 그녀가 조소하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한국인 C컵은 진짜 큰 거라고 생각한다.

저건, 저건 그냥 혼혈이 반칙인 거다. 어떻게 사람 가슴이 저렇게 클 수 있지? 최소로 잡아도 E컵은 될듯한 크기다.

그리고 다른 여자, 황금빛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자를 지닌 단장-이라고 불렸던 여인을 봤다. 그녀는 레쉬가드였다.

그런데 몸에 착 달라붙어서 가슴 부분이 두드러져 보였다. 저건 반칙이야. 어떻게 가슴이 저렇게 큰데, 허리는 얇을 수 있느냐고. 골반도 저렇게 크고.

-그란데힐 님. 이거 가슴이 너무 커 보이지 않습니까? 압박붕대를 이용했는데도, 좀 많이 커 보입니다.

-괜찮습니다, 왕께서는 큰 걸 좋아하시니까요.

더 웃기는 건 단장은 지금 압박붕대를 찬 상태라는 거다.

그렇다고 자신의 외모가 그렇게 특출난 것도 아니다. 분명, 여기만 아니면 어디서든 남자가 꼬이는 외모다.

이시우가 자신을 구원해주기 전까지, 그런 관심이 없어서, 퍽 부담스럽지만, 내심 그가 봐주길 바라면서 외모를 가꿨다.

그런데 외모도, 몸매도 모두 저 두 사람에게 뒤떨어진다.

‘자, 잘하는 거라던가.’

잘하는 건 싸움.

싸움을 잘 하는 여자라.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마이너스가 아닌가.

김시연은 울고 싶어졌다.

정말로.

***

‘왜 저러지.’

김시연이 굉장히 축 처진 채로 나왔다. 하얀색 비키니가 퍽 잘 어울렸다. 내가 살짝 동할 만큼.

나는 눈을 돌렸다. 그란데힐은 검은색의 비키니를 입었다. 단장은 몸에 착 달라붙는 푸른색 줄무늬가 그려진 하얀색의 레쉬가드를 입었다.

레쉬가드는 몸매가 안 좋으면 별로인데. 이렇게 보니까 진짜 괜찮아 보인다.

‘요정족에서 몸매 좋은 애들은 보기 힘든데.’

요정족들은 아름다움을 추구해서 대체로 슬랜더인 편이라 그랬다. 단장도 아마 그걸 의식해서 레쉬가드를 입고 온 게 아닐까. 조금이라도 작아 보이니까.

난 큰 게 더 좋지만.

나는 시중을 들겠다며 왔던 요정이 준 블루 레몬에이드를 마셨다.

톡 쏘는 탄산의 느낌과 상쾌한 레몬의 맛이 느껴졌다.

“와아.”

김시연이 날 보면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표정은 몇 번 봤다. 전생에서는 본 적이 없지만, 이 세계에서는 여자들이 나에게 반했을 때, 보통 저런 표정을 지었다.

음, 내가 잘나기는 했지.

그 후로 우리는 같이 돌아다니면서 바닷가를 거닐었다.

그란데힐이 내 오른쪽 팔을 지지하고, 가끔 가슴을 비빌 때 참기 힘들어져서 단장이랑 김시연을 따돌리고 몰래 한다든가.

그란데힐이 등을 떠밀어서 단장이 내 왼쪽 팔을 가슴에 비벼서 그란데힐하고 몰래 한다던가.

‘……음.’

결국 구경하는 척하면서 그란데힐하고 한 게 끝이었다. 꽤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앗, 이런. 죄송하게 됐습니다, 시우님. 워프 게이트가 작동이 엉망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란데힐이 딱딱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국어책 읽기 수준이었다.

……저게 연기인가.

사실 워프 게이트 없이 마도황제 특성을 이용해서 대규모 텔레포트를 일으키면 별로 문제는 없다.

일단 속아주기로 해볼까.

나는 오랜만에 천의 가면을 썼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여기 숙소도 있으니, 거기에서 하룻밤 자고 가야겠네.”

“하, 하룻밤?”

김시연이 반응했다. 단장도 긴 귀를 쫑긋하고 움직였다.

저게 쫑긋이 되는구나.

새삼스레 감탄하며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가 좀 많이 크네.”

“예. 당연히 저희의 왕이 머무는 곳이니까요. 사실 이 정도도 누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게 아니라 집이 정말 컸다. 영국 왕실같은 곳에서나 볼법한 궁전.

대충 눈으로 훑어봐도 5층은 되고, 아래층은 못해도 200평이 훌쩍 넘어 보이는데.

……이거 맞나.

그래도 일단 지어졌으니, 들어가 보는 게 예의. 우리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너무 예쁘다.”

“당연합니다. 이것을 위해 저희 십삼월의 절반이 투입되었으니까요.”

이게 과연 십삼월의 절반이 투입되어야 했을 일인가 잠깐 고민을 했다.

십삼월의 절반이면 이연아도 상당히 큰 부상을 각오해야 할 텐데…….

“저녁은 어떻게 할까요?”

“안에 고기 있지? 그걸로 바비큐 해먹을까?”

“좋습니다.”

“누나랑 단장은 어때?”

“제 소원이 요정왕님이랑 바비큐를 먹는 것이었습니다.”

“나, 나도 좋아.”

그렇게 바비큐를 구워먹고.

집에서 카드놀이나 영화같은 것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단장하고 김시연에게 방을 배정해 준 다음, 씻고 나와 그란데힐의 방에 들어갔는데.

“…….”

“미, 미천한 몸이지만, 요, 요정왕 님의 시중을 드, 들겠습니다.”

“그, 그, 겨, 결혼은 괜찮으니까, 하, 한 번만 안아줄 수 있을까?”

단장이 푸른색의 란제리를 입고 있었고, 김시연이 하얀색의 속옷을 입었다.

검은색 속옷을 입은 그란데힐을 바라보자,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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