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깐 김시연을 바라봤다.
안절부절하면서도 묘한 기대감을 품고있는 눈빛.
꽤 신나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마도 꼬리라도 달려 있으면, 신나서 흔들고 있지 않을까-하는 그런 모습.
‘…….’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여자를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새를 못 참고 또 꼬실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이건 그냥, 그거였다. 일종의 수집병.
이렇게 말하니까 문득 내가 너무 쓰레기 같이 느껴졌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남에게 주기는 아까운데.’
일종의 계륵이었다.
그런데 그 계륵이 굉장히 탐이 난다. 삼키면 탈이 날 것 같은데,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나는 잠깐 김시연이 다른 남자와 같이 있는 모습을 떠올려 봤다. 기분이 나쁘다.
그리고 남자를 떠올렸다. 대상은 강한남.
“…….”
다른 남자까지는 기분이 나빴는데 강한남으로 생각하니까……참을 수가 없었다.
허공에 손가락을 뻗어 인을 맺었다.
마법.
김시연이 듣지 못하게 그란데힐과 은밀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데힐.
-네.
그란데힐이 조용히 말했다.
-김시연까지 끌어들이는 건 조금 그렇지?
-…….
그란데힐이 잠깐 침묵했다.
-김시연 님이라면 저도 환영입니다.
회색의 머리를 귀 뒤로 슬쩍 넘기면서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김시연님의 능력은 굉장히 위험하니까요.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약 김시연 님이 저희를 적대하는 세력에 들어가면, 그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
-김시연이?
-네. 이 세상엔 절대적이란 건 없으니까요. 그러니 우선 그녀를 포섭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생각 이상으로 그란데힐이 적극적이었다.
-물론 이시우 님의 의견이 가장 중요합니다. 혹시 빌미가 보인다면, 제거하는 쪽으로 생각하셔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시우 님이 그럴리는 없겠지만요.-라고 그란데힐이 덧붙였다.
-다만.
-다만?
-가끔이라도 좋습니다. 저와 제 아이, 그리고 저희 칠칠맞은 여왕님에게 성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여기서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김시연을 공략하면, 내가 완전 쓰레기가 되는 거잖아.
하지만 여기서 김시연을 공략하지 않으면, 그란데힐의 말대로 된다.
만약에.
그럴리는 거의 없다고 생각하지만, 김시연이 마인들에게 꼬셔지고 마인으로 타락하면 굉장히 성가시다.
나는 김시연의 잠재능력을 굉장히 높게 평가한다. 이연아까지는 무리더라도, 삼왕의 턱밑까지 쫓아갈 수 있다.
거기다가 김시연만이 가진, 신살.
공허와 비견되는 저 힘은 굉장히 위험하다. 완전히 다 성장한 김시연을 상대하려면, 이연아도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이라는 가정도 무의미하다.
벌어지는 순간 그 가정은 무의미하니까.
나는 김시연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봤다.
***
그란데힐은 김시연을 좋아하지 않는다.
애초에 지금 그란데힐이 좋아하는 여자는 없었다. 일직이 그녀는 같은 요정족들에게도 배척당할 만큼 이상한 성벽을 가지고 있었다.
동성애.
그녀는 여자를 좋아했다. 이시우에게 반하기 전까지는.
‘그때부터였나.’
그때부터,
그란데힐은 조금씩 다른 여자들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호감이라는 감정을 어렴풋하게 가지고 있던 윤채린도.
그녀가 평상시 존경해마지않았던 티타니아도.
조금씩 거슬려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일에 굉장히 능숙했으니까.
다만, 자신의 남자인──아니, 요정왕인 이시우 님이 다른 여자들에게 눈길을 줄 때마다, 자그마한 불꽃이 커졌다.
그란데힐은 김시연을 떠올렸다.
성장 가능성 자체만을 따진다면, 옛날에 티타니아가 떠오를 정도다. 그리고 희귀하기 그지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은근한 말투로 요정왕님을 부추겼다. 요정왕님이라면 김시연을 끌어들일 테니까.
그 사실이 마음에 아프지만, 그란데힐은 미래를 내다봤다.
‘인간은 죽어.’
인간은 금방 죽는다.
그에 반해서 요정의 시간은 길다. 요정왕께서는 인간이 죽게 내버려두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그 한계는 있을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은 그저 요정왕님을 지지하면 된다.
“그런데 누나는 여기에 웬일이에요?”
“나? 나, 자, 잠깐 들리다가. 그, 미안.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요정왕님을 향해 호감을 보이며 암캐 같은 행동을 하는 김시연.
그 전까지 자신의 가슴을 불사르는 이 까만 불길 같은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
“헤헤.”
김시연이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모습을 보니 어렸을 때, 키웠던 개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개는 얼마 자라지 않아서, 할아버지가 보신탕으로 만들었었다.
“그, 그런데 그게 사실이야?”
“어떤거요?”
“결혼.”
“아.”
좀 충격적이긴 할 거다.
법적으로 위반이 안 되긴 한데, 보통은 사회의 시선이나, 감당할 수 있는 여자가 한계가 있어서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나야 여자가 많아도 그 수를 감당할 수 있지만.
“네, 뭐. 어쩌다가 그렇게 됐어요.”
“……그렇구나. 그, 그럼 신혼 여행은 어디로 가?”
“섬으로 갈 거예요. 거기 요정족이 사들인 섬이라 사람은 없는데, 풍경이 좋고, 관리도 되어 있어서.”
“김시연님도 가시겠습니까?”
“엉? 저, 저요?”
그란데힐의 말에 김시연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네, 여성 한 분이 는다고 해도 요정왕님께서는 괜찮을 것 같으니까요.”
의미심장한 어투로 그란데힐이 말했다.
순간 김시연이 그란데힐을 보고, 나를 잠깐 쳐다보고는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뭘 상상하는 거지. 천의 가면으로 힐끔 보니, 분홍색의 감정이 부풀어 올랐다. 얼굴은 홍조가 가득했다.
“아, 오시기 전에 준비하실 것이 몇 개 있습니다.”
“어, 어떤 건데요?”
“수영복입니다.”
“수, 수영복이요?”
그러고 보니 지나가는 요정족에게 들었는데, 이번에 가는 섬에 작게나마 온천을 만들었다고 들었었다.
온천이라.
한번 가보고 싶기는 하다.
“혹시 누구 또 데려가실 분 있습니까?”
“……아니.”
또 데려갈 사람이 아니라, 데려가지 않을 사람을 고르는 게 맞지 않을까.
나는 김시연을 봤다. 기대 어린 눈빛이지만,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명색이 신혼여행인데.
분명 가서도 섹스밖에 안 할거긴 한데, 그래도 아내 외에 다른 사람을 들이는 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데힐. 신혼여행은 보통 부부끼리 가는 거잖아.”
“…아,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했군요.”
그란데힐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요정족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뻔했다.
천의 가면에서 묘한 희열감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일부러 그런 건가.’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신혼여행이니 잠깐 답사를 갔다 오는 느낌으로 1박 2일로 가는 것이?”
“그, 그렇지! 사, 사전 답사는 중요하지!”
나는 멍한 눈으로 봤다. 신혼여행을 사전답사를 한다고? 그것도 요정족들이 잔뜩 있는 곳에서?
뭐, 잠깐 놀러 갔다 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안 그래도 선유라에게 요즘 신경을 써달라고 하니까.
“그럼 1박 2일로 잠깐만 갔다 올까?”
“준비해두겠습니다. 아, 봉관의 무녀님도 요즘 한가해 보이시던데.”
“…….”
“일단 말만 해두겠습니다.”
그란데힐은 고개를 숙이고 갔다. 중간에 김시연에게 속삭이면서.
-요정왕님에게 봉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다만, 내 능력이 너무 뛰어나서 귀에 들어왔다. 나는 못 들은 척을 하며, 다른 쪽을 쳐다봤다.
마침, 그곳에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마당을 쓸고 있는 사나에가 보였다.
사나에의 복장은 특이했다. 소위 일본에서 말하는 무녀복이었다. 붉은색 치마에 새하얀 저고리를 위에 걸친 모습.
‘진짜 왜 마당을 쓰는 거지.’
저런 잡일은 요정족이 한다. 심지어 대부분은 자기가 직접 하지 않으며, 정령들을 쓴다.
내가 걸어 다니는 길은 보통 로열로드라면서 자기네들이 직접 손을 쓰지만.
아무튼 시간이 지나고 곧 사전답사를 하기로 한 시간이 다가왔다.
***
“놀러 가자고?”
이채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둣빛 머리카락이 그대로 흔들렸다.
“네, 이번에 섬으로 갈 건데, 여기에만 있기 적적해 보여서 같이 놀러 가실래요?”
“나야 좋지.”
이채하가 내 몸에 기댔다. 달콤한 채취가 코끝을 스쳤다.
“근데 다른 애들도 가?”
“네, 김시연 누나랑 선유라 누나요.”
“선유라는 얼마 전에 같이 잤던 애?”
“네.”
“그럼 상관없겠네.”
이채하가 배시시 웃으면서 내 볼에 쪽-하고 키스를 남겼다.
“그럼 내일 가기 전에 몇 번 더 하고 갈래?”
이채하가 자기 보지를 손가락으로 벌리며 말했다. 나는 픽-웃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익숙한 손짓으로 내 자지를 자기 보지에 맞췄다.
찔걱.
“흐윽.”
이채하가 들뜬 신음을 냈다.
“윤승인이랑 비교하면 어때?”
“아앙, 당연히 시우 자지가 더 좋지. 그리고 그런 애랑 비교하지 마. 격떨어져.”
이채하가 아양을 부리며 내 몸에 안겼다. 그리고 쪽-하고 키스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