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294화 (294/298)

김시연은 외톨이였다.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원인은 마인들.

원래라면 김시연은 그 사실을 몰랐었지만, 이시우가 가르쳐줬다.

이시우는 그녀에게 여러가지를 가르쳐줬다.

그녀가 안심하고 쉴 수 있는 쉼터를 얻게 해줬다.

부모님의 원수를 가르쳐주고, 그녀가 모르고 있었던 재능을 개화시켜 줬다. 언젠가 혼자 남겨질지라도, 혼자서 자립할 수 있도록.

김시연은 친구도 만들었다. 지금은 미약하지만, 아주 가끔 자신과 연결된 존재와.

은혜.

김시연은 그에게 은혜를 받았다. 아마 일평생 갚는다 할지라도, 갚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마인에게 이용당하던지, 흉측한 상처를 감추며, 지하에 있는 단칸방에서 아무도 모르게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래서 김시연은 노력했다.

그리고 그녀의 노력은 보답을 받았다.

“굉장한 힘입니다. 힘의 방향성은 바람이지만, 아니, 이걸로도 꽤 재능이 있지만, 더 말도 안 되는 것은…….”

“맙소사, 모든 개념을 부정하다니, 이런 힘이 실존한다고?”

그녀가 개화한 힘은 신살(神殺).

신마저도 죽일 수 있는, 개념부정의 힘이었다.

실제로 그녀의 힘은 독보적이었다.

그녀가 감당하기 힘든 적들이 있었었지만, 그녀는 끝내 승리를 쟁취했다.

이시우는 모르겠지만, 이시우를 위해서 싸웠다.

나태의 산양과 격전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뒤로, 그녀는 스스로의 무를 단련시켜서, 이윽고 최상급 영웅들 조차도 경시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되었다.

마왕 토벌전에서도 그녀는 큰 활약을 했다. 그녀의 마력을 응축해서 마인들과 마수들의 목을 끊어, 그들의 질긴 생명력을 끊는 단검 역할로.

그 활약은 가히 인도의 세력인 팔부중에 있는 아수라와 비슷한 급.

‘이번에야말로.’

김시연은 확신했다.

그녀는 이번에야말로 이시우에게 칭찬받을 수 있을 거라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처음 이시우에게 받았던 감정은 서서히 옅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강해졌다.

사랑은 아니었다. 동경에 가까우면서도, 충성심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그녀는 모르지만, 신을 죽인 늑대, 펜릴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다.

사냥개.

이시우가 확신했었던, 동료는 그 기질을 완전히 개화하고 있었다.

모든 싸움이 다 끝나서 이제는 소용이 없었지만.

***

이시우에게 칭찬받을 공로를 세웠다.

그러나 그 다음에 김시연에게 왔던 것은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야, 야. 그거 들었냐? 우리 학교 2학년에 이시우라는 선배님 있잖아.”

“아, 결혼하신다는거? 너 못갈걸. 거기 국내에서도 최정상급들만 갈 수 있다던데.”

“나 정도면 괜찮지 않냐?”

“미국 대통령이 그것 때문에 방문한다는 소식이 있는데 정말로?”

김시연은 고개를 돌렸다.

결혼? 김시연은 이시우의 나이를 떠올렸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결혼한다고? 그 나이에는 보통 놀 생각으로 가득하지 않나.

하긴, 이시우가 보통의 남자는 아니었다.

스스로가 예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아마 그 본질은 회귀자에 가깝지 않을까.

“근대 결혼상대는 누구래?”

“임나연 선배님이랑──.”

임나연.

대한민국의 정계 1위 계열사 회장의 외동 딸.

그정도라면 급하게 결혼해도 이상할 것 없다. 마왕토벌전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한 이시우를 내세워서 계열사 이미지를 좋게 할테니까.

왠지모르게 기분이 나빠진 김시연은 상상에 빠지다가 다음 이름을 듣고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지아 선배님, 김하린 선배님도 있고, 거기에 윤채린 선배님이랑…….”

학생의 말은 끊어지지 않았다. 거의 10명에 가까운 이름이 언급되자 김시연은 혼란스러워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거 소문인데, 윤승하 선배님도 있더라고.”

“윤승하 선배님 여자였어?”

“아니, 남자잖아.”

“헉, 설마 윤승하 선배님과 이시우 선배님의 금단의 사랑?”

여학생들은 윤승하와 이시우 중에 누가 공인지 수인지를 따지고 있었고, 김시연은 어느새 이시우가 공격하고 윤승하가 수비인 상상을 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은데.’

오히려 좋았다.

아니, 이게 아니라.

김시연은 머리를 붕붕 돌리고 그란데힐에게 찾아갔다.

마수들을 잡은 공로를 인정 받으면, 용족이나 공허족, 혹은 요정족의 보물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로를 인정받는 방법은 간단하다. 바티칸에 있는 성물인 공로의 저울을 이용해서 그 공로에 따라, 수장들이 지급한다.

“그란데힐 님은 지금 업무 때문에 바쁘십니다. 따로 말씀을 주시면, 제가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그런가요?”

요정족의 말에 김시연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ㅇ……이시우씨와 관련된 일입니까?

“시우요?”

갑자기 이시우가 왜 나오는걸까. 김시연은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요정족들이 이시우를 과도하게 신경쓰는 것을 느꼈다.

이시우의 이름을 팔면 그란데힐을 바로 만날 수 있을것 같았다.

‘그래서 뭐할려고.’

나쁜 생각이 듦을 자조하며, 김시연은 아니요-라고 답하고 뒤로 돌아섰다.

교실.

그곳에서 파릇파릇한 학생들이 뛰어다니는 게 보였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다.

그때는 이런 모습이 아니라, 흉측한 모습이어서 맨날 따돌림당하고 그랬는데. 자조하면서 길을 걷다가, 문득 묘한 직감이 그녀를 휘감았다.

저 너머.

무언가가 이곳에 있는 생명체들의 인식을 흩트리고 있었다.

신살.

개념부정.

그 힘은 굉장히 위험한 힘이었다.

요정족들이 숭배하는 세계수.

바티칸이 숭배하는 천상의 여신. 그들 모두 신에 속한다.

신에 해당하는 개념을 죽이는 신살의 늑대. 그것은 그들이 하사한 힘에게도 적용되었다.

김시연은 그래서 평소에 본인의 마력을 꼭꼭 숨긴다.

그러나 이시우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그녀의 마음이 흐트러졌다. 신살의 마력이 그녀에게서 새어나왔다.

그래서 요정족은 그녀에게 공손하게 대했었고.

그리고 지금 일순간, 이시우의 감각권을 죽여서 피해 가고 있었다.

사실 그것보다 이시우가 아직 너무 강해진 자신의 힘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것이 컸다.

콰득.

결계가 비산한다. 쩌저적-하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그 안에 있는 풍경이 보였다.

교실.

그 안에서 교복을 입은 그란데힐이 보였다.

주책이다. 적어도 나보다는 나이를 배는 먹었을 텐데.

그 생각과 동시에 그녀가 펠라를 하고 있는 것을 봤다.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중성스러운 옷을 입고 있는 이시우가 보였다.

반바지에 검은색 나시. 거기에 대충 팔에 걸쳐있는 윗옷.

그 모습이 묘하게 성적이었다. 퇴폐한 모습에 이시우가 보였다.

즉, 정리하자면, 교복을 입고 있는 그란데힐에게 중성적인 옷에 퇴폐한 미가 인상적인 이시우가 펠라를 받고 있었다.

“…….”

“…….”

“…….”

잠깐의 침묵.

딱.

이시우는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마법식을 구축하고 결계를 재빠르게 생성했다.

다행히도, 아니, 다행은 아닌가. 목격자는 김시연 하나였다.

“어, 음, 안녕하세요, 누나?”

이시우는 태연한 척을 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란데힐은 아쉬워하며 한숨을 푹 쉬고 입가를 정리하고, 이시우의 옷을 정리해줬다.

“그, 호, 혹시 제, 제가 방해했나요?”

“네, 성인이신 김시연 님은 아시겠지만, 저희는 연인이자, 이제 곧 결혼할 사이기 때문에 이런건 부끄러운 건 아닙니다.”

그란데힐이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이시우는 그란데힐을 바라봤다. 천의 가면에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보였다. 그리고 미약한 경계도.

“그런데 의상은……?”

김시연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저게 그 코스플레이어라는 건가.

교복을 입은 그란데힐이 눈에 띄었다. 나이는 자신보다 ‘배’는 많을 테지만, 그럼에도 요정족 특색인지 교복이 매우 어울렸다.

앳된 얼굴. 새하얀 피부. 자신보다 나이는 배는 많지만 그럼에도 자신보다 더 탱탱한 피부가 눈에 띄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회색빛의 머리카락.

무감정해 보이는 회색빛의 눈동자. 김시연은 스스로가 어디가서 외모가 밀린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란데힐은 독보적이었다.

‘처음부터 저렇게 예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순간부터 예뻐졌다. 1년 전부터, 요정족들이 은은하게 이시우에게 호감을 보냈을 때.

“김시연도 끼실 겁니까?”

“응? 시연 누나를?”

이시우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뭐, 뭘 끼는 건데?”

그란데힐의 말에 김시연은 당황했다. 설마, 저 둘 사이에 끼라는건가?

김시연은 이시우를 바라봤다. 눈 앞에 청년은 점점 더 잘생겨졌다. 이제와서는 이시우와 같이 다닌 시간이 꽤 되어서, 다른 남자가 어지간하면 눈에 안 찰 정도.

‘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이시우야 돈도 많지, 잘생겼지, 무력도 뛰어나고, 평생을 갚아도 부족한 은혜를 받았다.

‘나쁘지 않아……?’

하나하나 따져보니까 나쁘지 않다. 강한남같은 이상한 남자가 꼬일 바에는 차라리 이시우가 훨씬 좋지 않을까?

그리고 아까 전, 펠라를 받던 이시우의 물건이 생각났다. 여리여리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팔뚝만 한 물건이…….

“시연 누나는, 음.”

이시우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김시연.

그녀의 티어를 따지자면 굉장히 높다. 충성심도 높고, 잘 키운다면, 이연아까지는 무리더라도 삼왕의 턱밑까지는 쫓아갈 수 있겠지.

거기다가 존재부정이라는,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공허와 비견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근데 지금와서 굳이 라는 느낌이 든다.

대부분의 싸움은 끝났다.

적이라고 규정할만한 존재는 있지만, 그들 대부분은 허약하다.

혹은 외신이라 불리는 존재들이라던가.

솔직하게 말해서 어지간하면 거두고 싶은 마음도 있다.

뭐라고 해야되지. 내가 손이 들어간 스킬을 가진 여성을 남에게 주기 싫다는 느낌이었다.

‘근데 여자가 너무 많아.’

슬슬이다.

이시우는 생각했다. 진짜 슬슬 위험해지고 있다고.

“일단 나가서 이야기 할까요.”

다시는 변강쇠를 얻었을 때, 쥐어짜였던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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