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을 쓰러트리고 난 뒤, 겉으로는 평화가 찾아왔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여성진 전원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한적한 집에서 여성진들하고 같이 살았다.
당연하게도 청춘남녀가 모인 이상 섹스는 당연했다.
다만, 문제는 여성진의 수가 많다는 것.
그래서 진짜 한동안 바깥을 나돌아다니지 않고, 집에만 박혀 있었다.
“시우, 어디 나가?”
남다윤이 와이셔츠만 입은 상태로 나에게 물었다.
“네, 오늘 애들이 놀자고 해서요.”
“애들? 설마…….”
“남자에요. 남자애들.”
나는 톡을 보여주며 말했다.
톡방에는 정한서가 애들끼리 놀러 가자-라고 권유하는 내용이 있었다.
여자들이 싫은 건 아닌데, 여자들이랑 있으니, 가끔씩 남자들과도 놀러 다니고 싶기는 하다.
‘취향이 다르니까.’
“그럼 누나도 같이 갈까?”
“괜찮아요, 누나 안 그래도 몸도 안 좋은데.”
몸이 안 좋다는 말은 남다윤의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니다.
다만, 어젯밤 내가 남다윤을 너무 몰아세워서 그랬다. 지금 남다윤은 겨우 걷고 있어서 자세가 불안정하니까.
“우음, 그러면 차라도 태워 줄까?”
“근처라서 걸어가면 돼요.”
남다윤이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이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정말로 오랜만에 외출 준비를 했다.
그냥 씻고, 옷을 입었다. 향수 같은 건 일절 뿌리지 않고, 꾸미지 않고 대충대충 입었다.
일행은 모두 남자들뿐이기 때문이다.
“이건 어때?”
윤채린이 내 몸에 옷을 가져다 대면서 말했다.
무난한 흰색 티에 검은색 진.
“괜찮네. 그냥 이걸로 입고 갈까?”
“그것보다는 좀 더 힙한 쪽 어때?”
윤승하가 내 쪽으로 오면서 말했다.
나는 윤승하가 들고 온 옷을 봤다. 구멍이 뚫려 있는 검은색 스키니진. 어깨가 드러나는 오프숄더 긴팔.
“……이걸?”
“와, 그거 괜찮은데?”
윤채린이 눈을 빛냈다. 그런데 나는 저게 별로였다. 퇴폐미가 느껴지긴 하는데 너무 노출이 많다. 남자가 노출이 많으면 뭐한가.
“……나중에 입을게. 지금은 애들끼리만 모여서 나가는 거니까.”
“아, 남자애들이랑 어디 놀러 간다고 했었지.”
그럼 다른 여자가 꼬이지 않게 조신한 옷으로 입히자-라고 윤채린이 말했다.
“애초에 시우 얼굴을 보이는 거면 소용없잖아.”
“그렇기는 해. 애초에 마법을 꿰뚫을 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겠지만…….”
“맞아맞아. 상아탑주랑 삼왕이 마법 하나만으로 최상격도 시우를 상대하기 힘들 거라 했으니까.”
윤채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애들이 누구야?”
“정한서랑 타오.”
정보길드의 막내 아들인 정한서
그리고 샤오메이의 친동생인 타오 리.
친구라기 보다는, 이제는 신하 같은 느낌이지만, 그래도 정한서는 친구로 남아있고 싶어하고, 타오 리도 처음 봤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에 남으면서 제법 겸손해 졌다.
‘아니, 누나가 갈궈서 그런가.’
시련의 탑에서 아야네나 이연아만큼은 아니지만, 샤오메이도 굉장히 강해졌다.
아카데미에 있었을 때, 타오가 다른 영웅과 충돌했을 때, 타오와 다른 영웅을 힘으로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럼 우리는 집 지키고 있을까?”
“……나간다고 해도 남자들 있는 곳에 가면 어색하니까. 그리고 나 시우 아기씨 아직 안에 있어서.”
“그건 네가 미련하게 정액을 보지에 쑤셔 넣어서 그런 거잖아…….”
“뭐래, 지도 그랬으면서.”
자매끼리 투닥거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다만 시선을 옆으로 돌리니 부적절한 광경이 보였다. 큰 연아하고 작은 연아가 침대에서 기절해 있었기 때문이다.
‘슬슬 장모님 집에도 들려야 하는데.’
천천히 생각해보니 내가 좀 쓰레기 같이 느껴졌다.
윤승하나 윤채린의 부모님 같았던 이연아와 과거의 이연아를 따먹고, 실제 어머님까지 먹었다.
……여러가지 사정이 있었지만, 모두 사실이라 그래도 쓰레기라 지탄받아도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처음 윤채린이 준비해준 옷을 입고 인식 저하 마법을 나에게 건 뒤에 밖으로 향했다.
나는 천천히 걸어가며 약속장소로 향했다.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주위는 한산했다. 평일이었기 때문이다.
날짜도 좋았다.
9월.
모든 학교가 방학이 끝났기 때문이다.
히어로 아카데미 빼고.
그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마왕을 토벌하고 남은 마물들을 정리하고, 영웅들이 얼마나 많은 마물들을 처치했나 등의 공적등을 정리하고, 요정족과 교수들이 그 일에 투입되고 있어서 일시적으로 방학이다.
‘절대 좋은 게 아닌데.’
그란데힐에게 들었지만, 이번 겨울 방학 때 학생들이 쉴 기간은 10일도 넘기기 힘들거라고 말했다.
방학이 10일도 안된다라.
정말 끔찍하군.
근처로 가니 이미 타오 리와 정한서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정한서는 탁한 금발머리에 캐쥬얼한 복장이었고, 타오 리는 중국 정통 복장을 입고 있었다.
둘 다 복장에 신경을 많이 썼다. 자세히 보니 타오는 왁스로 머리를 세웠고, 정한서는 화장까지 했다.
굳이 저렇게 할 필요가 있나 생각이 들지만 둘의 나이를 떠올렸다.
아직 청춘인 나이였다.
놀러 가지만 거기엔 여자도 많다는 소식에 정한서가 재빨리 추천했었지.
“안녕.”
“누구……어, 시우네. 방금 그건 마법?”
“응, 인식저해 마법.”
“가문에 있는 마법사들과는 느낌이 전혀 다르군. 하급의 격만 갖춰도, 꿰뚫어 볼 수 있었는데.”
“어허, 우리 시우가 누군데.”
타오의 말에 정한서가 한껏 거들먹거렸다.
우리는 모이고서 걸음을 옮겼다.
“맞다, 타오. 네 취향이 누구였지?”
“내 취향은 갑자기 왜?”
“혹시 가다가 여자들과 만나면 빨리 짝을 정하는 게 좋잖아.”
“그렇군. 나는 누나같은 폭력적인 여자는 싫다. 가슴 크기는 상관없지만, 골반은 큰 쪽이 취향이지.”
“나는 활발한 타입이 좋겠어. 미형도 좋지만, 그보다는 현명한 쪽이 더 취향이야.”
“결혼까지 생각한 거야?”
나는 정한서의 말에 어처구니없어했다.
“연예도 현명한 여자랑 해야지. 얼마 전에 강한남 봤어? 아야네 포기하고 다른 여자랑 사귀었는데, 그 여자가 사귄 지 얼마 안돼서 바람을 피워서 난리 났었잖아.”
“이시우는 그때 없었다.”
“아, 맞다.”
둘은 언제 저렇게 친해진거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가 우리는 근처에 대학 부지로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웬 축제?”
“이번에 마도명가 이가에서 마왕 토벌에서 대단히 크게 활약했잖아.”
단연코 가장 활약한 것은 이지아였다.
마법사는 전쟁의 꽃.
한 번에 수십에서, 넓게는 수천의 마물까지 잡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마법사다.
그리고 이지아는 그 마법사들 중에서 파괴력 하나만을 따지자면, 정점에 도달한 인물.
다른 것은 몰라도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마법사로서 이지아의 파괴력을 이길 수 있는 마법사는 없다.
“그래서 선가에서 위기를 느꼈나 봐. 원래, 선가가 아티팩트를 만드는데 이번에 생각보다 효력을 못 봤잖아.”
“뭐, 거기에는 마기가 잔뜩 있었으니까.”
마법사가 만드는 아티펙트는 으레 마나가 풍부한 곳에서 효과가 뛰어나 진다.
마기가 가득한 곳에서는 당연히 마나가 적어, 위력이 감소한다.
“근데 이번에 거기 장녀가 새로운 아티팩트를 만들었다 하더라고. 소문에는, 아니, 내가 얻은 정보에 따르면 상아탑주 님이 칭찬했더라-하더라고.”
“그래? 그 영감님이 칭찬했다고?”
나는 놀랐다.
그 영감님 엄청 깐깐하던데…….
“……영감님?”
“아, 미안. 수아 말투가 옮았네.”
쓰게 웃고는 말했다.
“너 상아탑주님이랑 아는건가? 아니, 생각해보면 당연한가. 너는 최전선에서 마왕과 싸웠으니까.”
“……아무튼 그렇다 하더라고. 처음에는 시연회였는데, 잔뜩 자랑하고 싶었던 가주가 인원 제한 없이 마법사들을 초대하고, 마법사와 결혼하고 싶은 여자들도 모이고, 그 여자들 보고 따라온 남자도 많고. 그래서 그냥 장소 하나 빌려서 커다란 축제를 열게 되었어.”
그래서 이렇게 된건가.
그러면 근처에 이지아가 있을지도 모른다. 근데 이지아의 가족이 있을 경우도 있다.
‘그건 좀 싫은데.’
이지아의 가족은 어렸을 적부터 이지아를 무시했다.
무시하고, 괴롭히고, 이지아의 집에 눌러붙은 사촌은 성희롱 까지 갈뻔했다고 했다.
물론 지금은 그 사촌은 한국을 떠나게 되었지만.
‘선유라도 있는 건가.’
트윈 스펠의 주인.
마법 하나를 쓰면 동시에 일정 마나를 불어넣어 마법을 복사할 수 있었던 고유 능력의 주인이었다.
‘오랜만이네…….’
……솔직히 말해서 반쯤 까먹고 있었다.
얼떨결에 관계를 맺었긴 했는데.
잘 지내고 있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선유라가 보였다.
금발에 푸른색의 눈동자. 강렬한 붉은색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쟤도 양반은 못되네.
반갑게 다가가려는데 근처에 이지아도 보였다.
이지아의 복장은 검은색 오프숄더 드레스에 검은색의 롱 글러브를 착용했다. 드레스의 가슴 부분에는 푸른색과 검은색이 조화된 꽃이 달려 있었다.
이지아의 모습은 신선했다. 평소에는 활발한 분위기가 포근한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도도한 절벽의 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 이지아다. 하긴, 당연한가.”
“한국의 마도명가는 두 가문이니까. 경쟁할 때도 있지만, 때때로 가문끼리 결합할 때도 있으니까.”
정한서와 타오가 말하자 이지아가 이쪽으로 고개를 획-돌렸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한서랑 타오? 오늘 시우랑 놀러간다고 하지 않았어?”
“응, 지금 옆에 있어.”
정한서에 말에 나는 인식장애 마법을 풀었다.
“시우야!”
이지아가 내게 안겼다. 주변에서 시선들이 꽂혔다.
“마도명가 이가의 차녀가 안겼어? 저 남자는 누구지?”
“자네, 정보가 그리 둔해서 어떻게 살고 있었나. 이시우일세. 그 이시우.”
“들어본 적이 있군. 최연소 상격이었지?”
“……자네 연구만 하지 말고, 바깥에 좀 돌아다니게, 제발.”
소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선가쪽이었다. 가만히 보니 선유라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여기는 어쩐 일이야?”
“애들이 놀러가자고 했는데, 여기에 왔네. 지아는 가문의 일?”
“응. 이번에 선가 쪽에서 아티팩트를 만들었는데, 상아탑주님이 칭찬할 정도로 잘 만들었다고 해서 구경하러 왔었지.”
이지아가 안긴 채로 내 귀에 얕게 속삭였다.
“혹시 나랑 하고 싶어서 왔어? 마마 속이 그리웠어?”
“그리웠지. 근데 오늘은 놀려고.”
“남자끼리의 우정인거야?”
"근데 아티팩트가 뭐길래 이리 호들갑이야?"
"나도 자세하게는 몰라. 근데 알약 형태라던데 그 효능이 너무 뛰어나 상아탑주님이 아티팩트 같다고 해서 아티팩트로 한것같더라고."
이지아랑 키득거리며 이야기 하고 있자니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강렬한 마나반응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이지아의 부모님과 선가의 가주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리고 상아탑주도.
“지아야, 이분은?”
“이시우에요. 제 남편.”
이지아가 싱글거리며 한쪽 손을 폈다. 커다란 그린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는 금반지를 보여주면서.
“오랜만일세. 그 때 봤던 때보다 기운이 더 안정적이군.”
“네, 익숙해졌으니까요.”
상아탑주가 손을 내밀자, 나도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그런데 상아탑주님이 이곳에 온 걸 보니, 아티팩트를 굉장한 걸 만들었나 보네요?”
“응, 그렇지. 자네도 보면 꽤 놀랄걸세.”
대체 뭐길래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거지?
나는 의아해하며 상아탑주의 시선을 따라갔다.
선유라가 알약 같은 것을 하나 들고 있었다.
“……이번에 저희가 만든 아티팩트입니다. 사실, 아티팩트라고 부르기엔 조금 묘하죠. 이건 알약이니까요.”
“아니, 고작 알약 따위가 아니네. 거기에는 모든 남성이 원하던 것이 들어있네!”
상아탑주가 격렬하게 말했다. 그 말에 선가와 이가의 가주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약은 체내에 있는 에너지를 한쪽으로 전환하여 몸에 피를 공급해 주기 위해서 만든 의료 약이었습니다.”
선유라가 차분하게 발표하기 시작했다.
대충 알약에 마나를 주입해서 그 마나를 체네에 녹여 피를 공급하는것이 목적이었는데 실제로 실험해보니, 한쪽에 마나가 몰리고 피와 다른 것이 공급되었다고 한다.
나는 차분히 지식열람으로 알약을 살폈다.
“…….”
저거 그냥 정력제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