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게 많은 표정이네?”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윤승하를 살폈다. 윤승하는 어디 한껏 보라는 듯, 눈웃음을 치며 나를 봤다.
“내 기억을 지운 게 너야?”
“나는 아니야. 시우, 너는 마왕과 거래를 해서 외신과 계약을 했었거든.”
윤승하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원래대로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계약이야.”
윤승하가 손짓을 했다.
그녀의 손 중앙에 지구 같은 모형이 만들어졌다.
직감적으로, 나는 저것이 지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단 것을 깨달았다.
“외신과의 계약은 이 세계의 ‘것’을 대가로 외신의 세계에 팔아치우는 행위지. 시우가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나라를 적국에 팔아먹는 매국노보다 더 심한 존재라고 봐도 되.”
외신에게 팔아치운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돌려받을 수 없다.
그리고 팔아치운 공간은 외신에 의해서 오염이 된다.
그렇기에 외신에게 세계를 팔아치운 존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이 직접 벌을 한다.
“하지만 나는 할 수 없었어.”
왜냐하면 이시우가 외신과 거래를 한 것은 자신과 윤채린의 이기심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윤승하는 자신의 힘을 깎이는 것을 감수하고 거래를 허락했다.
“……외신들은?”
“게네들은 개입하지 못해. 애초에 그들은 너를 통해서 이 세계를 구경하기 위해, 계약을 맺은 존재들이거든.”
“구경?”
“응, 구경. 그들이 사는 세계는 네가 생각한 것보다, 삭막하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그들이 사는 세계에서 나올 수 없는 제약이 있지. 그래서 역겨운 냄새가 꽤 났지만……너를 위해서 특별히 허락했어.”
윤승하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나를 바라봤다.
“물론 그럼에도 그들의 능력은 너무 위험해서 제약했지. 천수, 지식열람, 천의 가면. 그것들은 무슨 짓을 해도 S+등급 이상으로 오를 수 있게끔 조치해뒀어.”
“그러면 내 기억들은?”
“그것도 외신과의 거래로 기억이 지워졌어. 시우, 넌 그것을 원하지 않았지만……외신들은 그런 존재들이거든. 상대를 속이고, 그것으로 이득을 챙기고, 그리고 속은 상대를 비웃고.”
윤승하가 씁쓸하게 말했다.
즉, 이시우는 마왕을 통해서 외신과 거래했고, 자기도 모르게 속았다는 건가.
‘아니, 속아준걸지도 몰라.’
이시우의 시체는 유아독존의 힘으로 흡수했다. 처음 있던 것을 합치면 대충 19회차.
최소 3년이라고 따진다 해도 60년이 가까이 되는 끔찍한 시간이다.
나는 내가 나름 멘탈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시간동안 세계에 갇히고, 싸움을 이어갈 정도로 멘탈이 좋으냐고 묻는다면 물음표가 붙는다.
어쩌면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잠깐 환생자였던 이시우에게 유감을 표하고는 윤승하를 바라봤다.
“그러면 이제 모두 다 끝난 거야?”
“응.”
윤승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이곳에 남고 싶으면, 이곳에 남아. 그러면 이 세계는 그대로 유지될 거야.”
“안 남으면?”
“나는 정말 슬프지만, 다시 한번 세계를 만들어야지.”
……이정도 집착이면 진짜 무서워지는데.
“너랑 윤채린은 어떻게 되는 거야?”
“나랑 채린이?”
“응.”
“별거 없어. 원래대로라면 채린이는 시우 널 찾으러 간다든가, 시우, 네 시체를 보면서 비슷한 모양으로 만든다던 가해서 소꿉놀이를 했겠지만…….”
“…….”
“지금은 글쎄, 모르겠네. 처음에는 그냥 보기만 하는 것에 만족하고, 끝에는 아마 널 갖고 싶어 할지도?”
의문형으로 윤승하가 말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윤승하가 내게 보내는 신호같이 들렸다. 자신을 내버려두면 자기도 곧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상견례를 한 상태에서 다시 한번 상견례를 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그럼 일단 돌아갈까?”
“응, 보내줄게.”
직후, 빛이 번쩍였다.
어둠 속을 거치고 나는 다시 마왕의 시체 위에서 있단 것을 깨달았다.
‘아직도 살아 있네.’
아락셀이 나를 보면서 눈을 번뜩였다.
그러자 나를 삼킨 어둠이 뭉쳐지더니, 그대로 아락셀을 두들겨 팼다.
콰아아아앙!
“크헉! 어, 어떻게?”
아락셀이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99에 달하는 체력 덕분에 죽는 일은 없었지만, 육체가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
‘보고 있다는 게 지금도 보고 있는 건가.’
어처구니없어 하면서 마왕을 후려친 어둠을 바라봤다.
나는 잠깐 마왕을 바라봤다. 여신의 힘에다가 시우들을 흡수하면서 강해진 내 능력은 충분히 마왕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모르니까, 우선 마왕은 잡아볼까.
나는 콜렉터의 가면을 쓰고 세계를 열었다.
“잠깐, 네놈, 설마……!”
뭐라 말하려는 마왕의 머리를 붙잡고 그대로 세계에 쑤셔 넣었다.
물론 일시적으로 강해진 마왕이라 시간이 지나면 훨씬 약해지겠지만, 죽지는 않을 거다.
배신자 혁월도 있으니, 심심하지도 않을 것이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마왕은 처리했다. 불길한 외신이라는 것들도 구경만 한다고 했다. 다만 불안한것은 윤승하는 유아독존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았다.
‘모를 일은 없을 테지.’
윤승하의 힘은 정신. 그 힘이 어느정도 깎여나갔다고 해도, 마신에 비하면 만능의 힘을 가진 능력이다.
나는 그것을 털어내고, 이연아에게 다가갔다.
“뭔가 허무하네.”
“그런가? 그래도 뭐, 마왕을 잡았으면 됐지.”
“그건 그래. 시우 오빠, 근데 쟤가 이상한 소릴 한다? 시우 오빠가 자신만의 반려자라고 막 짓걸여. 연아 처녀를 두 번이나 따먹었는데.”
“…….”
이연아가 아포리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틀리지 않기는 했다. 큰 연아, 작은 연아 모두 먹었으니까.
“흥, 처녀 두 번쯤이야. 나와 내 반려는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이어져 있다.”
“나도 그런데?”
기싸움을 하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티타니아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물론이다.”
티타니아가 나를 보며 거만하게 말했다.
“아니, 아이를 가졌잖아.”
“멀리서 지원만 했을 뿐이다. 진짜로 위험했던 건 하메르였지. 그대가 마왕에게 일격을 당하자마자 눈이 뒤집힌 채로 그대로 돌격했으니까.”
그건 감동인데.
“세계수는?”
“멀쩡하다. 다만 마왕에게 당한 상처가 극심하다. 저번과는 다르게 격렬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티타니아가 내 하반신을 힐끔 바라봤다.
“그대가 요정왕으로서의 본부를 다 하기를 기대하고 있겠다.”
“……그래.”
그 다음은 에니스.
“혹시 물어봐도 돼? 갑자기 어떻게 강해진 거야~?”
“음, 마왕이 괜히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강해진 게 아니었다 정도?”
다 말해주고 싶지만,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았다.
마왕 원정에 데려온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를 가졌으니 안정을 취하는 게 맞았다.
“으음~.”
내 의지를 눈치챘는지 에니스는 더 말 안하고, 내 입에 입을 맞췄다.
“그럼 다음에 침대에서 오붓하게 이야기하자?”
“네, 그럴게요.”
다음은 하메르.
“그대여 괜찮은가?”
“물론이지.”
나는 하메르의 머리를 손으로 올렸다. 강해 보이지만, 하메르는 외강내유다. 은근히 애교도 많고.
“아까 나 마왕한테 당했을 때, 눈 돌아가서 마왕에게 돌진했다며. 괜찮아?”
“……용은 제법 튼튼하다. 아포리아, 저것이 미적지근하게 움직여서 내가 움직였을 뿐. 아이는 무사하다.”
“그래? 그래도 다음부터 그러지 마. 아이는 소중하니까.”
“……알았다.”
상황을 정리하고 우리는 마물 토벌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마왕은 그대로 내버려둔 채, 세계에서 전력들을 다 꺼내 마음껏 날뛰라고 했다.
그리고 혁월은 뜻밖에도 나에게 바로 왔다.
“콜렉터에게서 벗어날 수단은 많지 않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내가 원했던 것은 무극. 네 곁에 있다면 그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
똥폼을 잡길래 나는 혁월을 그대로 세계에 넣었다.
그리고 나는 아카데미 조로 걸어갔다.
첫번째로 마물을 잡으며 상격으로 도약한 임나연에게.
“어, 시우야? 마왕은?”
“잡고 왔어. 생각보다 약하더라. 근데 이제 상격이 된거야?”
“응, 깨달음이라고 해야 될까. 갑자기 그게 확 느껴져서. 다 시우가 준 능력 덕분이지.”
임나연이 히히 웃으면서 꽃을 보여줬다.
하늘마저 얼려버릴 냉기가 느껴졌다.
“그럼 빨리 마물들 정리하고 자랑하러 가자.”
“그럴까?”
“그런데 누가 나에게 반말하래?”
초크를 살짝 강하게 잡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주인님만의 암캐에게 벌을 주세요.”
“열심히 잡으면 상을 내려줄게.”
다음은 김하린.
그런데 김하린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왜?”
“그, 지금은 좀 땀냄새가 강해서.”
“괜찮아. 나는 하린이 땀 냄새도 좋아하는데, 뭘.”
“그, 그런가?”
김하린이 부끄러워하며 내게 왔다.
“부모님은 어때?”
“그냥 여전히 그렇지, 뭐. 그, 그래도 괜찮아.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내가 할게. 마침 시킬 일이 많거든. 그리고 집에서 나와. 우리 집에서 같이 살자.”
“지, 진짜?”
“응.”
나는 김하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음은 이지아.
“마법이 늘었네.”
“당연하지. 내가 얼마나 연습했는데.”
“뱃살도 좀…….”
“지, 진짜로? 요, 요즘 살이 좀 잡히기는 하는데…….”
이지아가 울상을 지었다.
“농담이야. 난 지금 지아가 딱 좋아.”
뱃살도 만지는 맛이 있다. 물론 너무 찌면 강제로 다이어트를 시키겠지만.
“그, 그치? 나, 남자들은 이런 걸 좋아한다고 해서 일부로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래?”
나는 뱃살을 꾹꾹-눌러보면서 장난을 치다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부모님은 어때?”
“뭐, 마도명가를 이끌 가주라면서 남자를 기둥서방으로 들이는 건 된다고 해서, 그냥 나온다고 했지.”
“그래? 그럼 이제부터 같이 동거할까?”
“진짜? 헉, 그러면 나 다른 애들한테 죽을지도 몰라. 나중에 나연이랑 채린이랑 하린이랑 같이 들어가도 돼?”
“하린이는 이미 들어오기로 했어.”
“그럼 그때 같이 갈게. 히히, 그럼 그때부터 나 재우지 않을 거야?”
“물론이지.”
마지막으로.
‘가야 하나?’
나는 잠깐 고민했다.
진짜, 진짜로 오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왔다.
마법소녀 복장을 한 은수아에게.
“어, 어때? 나, 나라도 좀 부, 부끄러운데. 그, 그치만 시, 시우 네가 원하니까…….”
“……나는 원하지 않았어.”
아까부터 시선이 따갑다. 20km 정도 멀찍이 떨어진 상아탑주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나도 이해한다.
하나밖에 없는 손녀같은 딸이 남자친구를 위해서 마법소녀 복장을 입으면 나 같아도 좀…….
“그, 그치만 시, 시우 취향이 마법소녀잖아?”
나는 바로 아닌데-라고 부정하려다가 잠깐 고민했다.
겉에서야 당연히 부끄럽지만, 둘이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서.
“그, 밤의 일일 때만…….”
“그, 그렇지? 나, 나도 사실 다, 다른 남자들이 내, 내쪽으로 시, 시선을 옮겨서 조, 좀 그랬어.”
“누가?”
“걱정하지 마. 전부 영감탱이가 다 혼내줬으니까.”
“……그래.”
상아탑주에게 줄 선물을 좀 고민해봐야겠다. 마왕을 실험체로 던져줄까?
근처에 마물들을 일소하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시우야? 벌써 마왕을 끝냈어?”
“네, 생각보다 별거 없어서요.”
나는 남다윤에게 향했다. 남다윤이 나를 보자 잠깐 당황하다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내 몸을 훑었다.
“……다행히 상처는 없는 것 같네.”
“제가 좀 강하잖아요.”
“그래, 우리 시우 엄청 강하지.”
남다윤이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꽉-껴안았다.
“누나가 많이 미안해. 이번에 별로 도움도 안 되고.”
“누나 없었으면, 지금의 저도 없었어요.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하……우리 시우 너무 착해.”
쪽-남다윤이 내 입에 입을 맞췄다.
“그런데 누나, 요즘 청소 안 하셨죠?”
“……혹시 냄새 나?”
남다윤은 굉장히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아니, 그냥 그럴 것 같아서요. 제가 청소해 드릴 테니까, 우리 집에서 지내실래요?”
“물론이지. 내가 식비랑 이것저것 다 내줄게.”
몸만 들어와도 된다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내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기둥서방이었기 때문이다.
남다윤도 나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꾸미는 거나, 내 선물을 사주는 거 빼면 돈도 잘 안 쓰니 모아둔 돈이 있을 테니, 괜찮지 않을까?
아무튼 나는 바티칸 쪽으로 향했다.
“해내셨군요, 용사님.”
엘도르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느껴져요?”
“네, 느껴집니다. 빌어먹을 썩을 향기가 점점 물러나는 것을요.”
엘도르가 잠깐 나를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여신님을 뵈셨습니까?”
“네.”
“혹시……저희 여신님이 무례를 저지르지 않았나요?”
“음…….”
무례는 안 저질렀다. 오히려 여신같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했던 것을 기억한다.
다만, 내 감각권에서 내 신체와 똑같은 인형같은 것이나 사진 같은 것들이 널려 있는게 신경에 거슬렸을 뿐.
“아무튼 고생하셨습니다. 여신님께서도 용사님의 미래를 축복하실 겁니다.”
엘도르가 조용히 기도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엘도르, 저희 집에서 같이 사실래요?”
“네엣?”
엘도르가 잠깐 놀라며 나를 바라봤다.
“사탄의 유혹과도 같군요. 허나 여신님께서는 말하셨습니다. 색을 탐하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저는 여신님의 검이기에 여신님의 말을 따르는 것이 맞겠죠.”
엘도르가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용사님께서는 제 가슴을 좋아하시니, 언제든 만질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엘도르와 포옹하고나서, 나는 한국으로 향했다. 워프 게이트는 닫혀 있었지만, 99+에 달하는 마력과 마도황제의 특성을 열어서 한국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얼굴인식 장애 마법을 걸고, 보석상으로 향했다.
“어서오십시오.”
“물건을 주문했는데, 완성됐는지 알 수 있을까요?”
“잠깐 손님 번호를 확인하겠습니다.”
나는 번호를 불렀다. 점원으로 보이는 인물이 잠깐 눈을 크게 뜨고는, 굉장히 예의가 바른 어투로 말했다.
“네, 고객님께서 주문하신 반지는 모두 완성되었습니다.”
여자들에게 맞춰, 만든 보석 반지들이 다 완성돼있었다. 나는 장막에 반지 케이스들을 다 넣은 다음 하나를 먼저 뺐다.
이 전쟁이 끝나면 그녀들에게 고백해야지, 하고 미리 준비해뒀던 반지.
다행히도 플래그가 아니었다.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히어로 아카데미.
그곳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요정족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호주는 마왕의 마력으로 인해 전자기기가 작동 안하지만, 세계수의 마력으로 티타니아가 연락했을 터.
분위기는 굉장히 좋았다. 축제 직전인 것 같은 느낌.
“요정왕 님이 마왕을 쓰러트렸대!”
“헉, 그러면 우리도 이제 성은을 받을 수 있는건가?”
……이상한 말들을 애써 무시하며 집무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그란데힐이 서류들을 작성하고 있었다.
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그란데힐이 반응했다.
“요정왕님?”
마법을 풀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지.
나는 모습을 드러내었다.
“소식은 들었어?”
“네, 티타니아 님이 바로 연락하셨습니다.”
“그래?”
나는 반지 케이스를 꺼냈다. 직접 하려니까 좀 어색했다.
나는 조용히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케이스를 공손하게 그란데힐 쪽으로 열었다.
“갑작스럽지만……나랑 결혼해줄래?”
“……정말 갑작스럽군요.”
그란데힐은 그렇게 말하고는 내 반지를 받았다.
“물론입니다. 제 몸과 마음, 영혼까지 모두 요정왕님의 것이니까요.”
***
그 후로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다.
는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행복했다. 나 빼고.
“그러니까, 네가 우리 시우의 마음을 돌리려고 세계를 반복했다고?”
“네가라니. 나는 너이기도 한데.”
윤승하와 윤승하.
“……하, 나답지 못하고 이시우한테 집착하다니. 어이가 없네. 너는 ‘천마의 자격’이 없다.”
“천마 따위로 날 재단한다고 나는 마신인데?”
윤채린하고 윤채린.
“내가 가장 먼저 좋아했고, 내가 가장 먼저 이어졌는데, 마지막이라니.”
마신, 윤채린이 우울해하면서 말했다.
“그게 어때서. 나는 지금 시우랑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머리를 길게 늘어트리며 윤승하의 가슴보다 확연히 부풀어있는 가슴을 내밀며 정신, 윤승하가 말했다.
“저, 저기. 저, 저도 오, 오랫동안 응원했는데.”
“저리 꺼져, 스토커야.”
“오랫동안 ‘지켜만’봤었지.”
윤채린하고 윤승하가 으르렁거렸다.
여신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아무튼 나랑 결혼해줄래?”
나는 난장판인 상황속에서 반지 케이스를 꺼내며 말했다. 고백하려고 한 상황에서, 저들이 난입한 거라.
사파이어와 루비가 박혀있는 반지 케이스.
윤승하는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안겼고, 윤채린은 씩-웃으며 나에게 왔다.
“그럼 이제부터 우리 부부인거지? 진짜 각오해라, 이시우.”
“나 진짜, 내 능력 다 포기하고 풍유환 먹으며 안돼? 나, 나도 그거 먹으면 시우 자지 가슴에 끼울 수 있는데.”
“…….”
뭐, 그렇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