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개의 화면이 시야를 가리는 착각이 일었다.
이시우의 삶들이 지나간다.
많은 이시우들이 있었다.
평범하게 마법사로 강해졌거나, 주술이나 이능 등으로 강해진 이시우도 있었다.
무공에 모든 것을 바치고, 무공으로 혁월을 뚫어버린 이시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시우가 있었다.
‘이시우 미친놈.’
어처구니 없어서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저런 구성을 했다고? 진짜 미친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투스타일이 굉장히 피키하다. 상급이면서도 초월경을 이길 수 있지만, 자칫하면 강한남에게조차 패배할 수 있는 구성이었다.
그러나 보고 있자니 굉장히 끌렸다. 재밌어 보이기도 하고, 잘만 한다면, 마왕도 손쉽게 잡을 수 있을 정도.
그들의 삶을 지켜보다가 나는 이시우들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이시우들은 이 세상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 세계를 증오하며, 김하린과 마인측에 가담한 이시우가 있었다.
가정을 꾸렸지만, 그 사람 때문에 살았다가, 그 사람이 죽자 자살한 이시우가 있었다.
‘왜지.’
찝찝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8명분인가.’
나는 상태창을 살폈다.
▼
이름 : 이시우
근력 : 99+
민첩 : 99+
체력 : 99+
마력 : 99+
고유능력 : 천상천하 유아독존(Ex-)
특성 : 혼원체(Ex-), ■생자(S+), 지식 열람(S+), 천수(S+), 천의 가면(S+), 오버로드·개(S+), 색즉시공(S+), 하늘을 굽어보는 눈(S+), 불가해한 감각(S+), 신의 대행자(S+), 대신관·극(S), 랭크 업(B+)
스텟을 바라봤다.
역시 99에서 막혔다. +라는 건 대충 측정 불가능하기에 99를 넘었다는 뜻에서 표기되었다는 것이고.
■■■의 등급이 올랐다.
그리고 가려졌던 네모칸이 사라졌다.
■생자.
눈을 찌푸렸다.
‘환생자인가.’
가장 유력한 추측이었다.
아마도 이것의 등급은 못해도 Ex-등급.
나는 주먹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주먹 근처가 일렁거렸다.
공간이 근력이라는 힘에 버티지 못했다는 증거다.
‘이거 너무 강해졌는데.’
눈을 찌푸리며 천수를 극대화했다. 그럼에도 바로 적응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있는 힘껏, 힘을 줬다.
우우우웅!
공간 자체가 찌그러진다. 여기서 더 힘을 줄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차원마저 찢어질 것 같았다.
‘굉장히 위험하군.’
아무래도 이것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도 제법.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폭음이 터지며 건물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빠르게 남아있는 이시우들의 시체를 장막 안에 욱여넣었다.
그리고 환생자로 추정되는 능력을 사용했다.
‘이런 식인가.’
기능은 여전히 쓸 수 있는 능력을 불러오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직감적으로 지금은 두 개의 능력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이거지.’
내가 고른 이시우는 간단했다.
내가 처음에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던 이시우.
나의 생각으로는 잘하면 상격이면서도 초월경을 조질 수 있고, 잘못하면 상격임에도 강한남에게도 질 수 있는 능력.
나는 두 가지의 능력을 불러왔다.
행운의 네 잎 클로버.
인과역전의 실.
‘여기에 인과의 주사위가 없는 게 아쉽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은 이미 찢어졌다. 문자 그대로 마왕과 우리 일행이 싸운 흔적 때문에.
나는 능력을 발동했다.
그리고 요정왕의 장막에서 별의 성창을 꺼냈다.
상격에 어울렸던 무구.
그러나 지금은 여명이 더 좋아서 쓰지 않았지만, 별의 성창은 별의 마력을 지니고 있다.
모든 마의 대척점인 신성력만큼은 아닐지라도, 그에 준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나는 자세를 잡았다.
목표는 마왕.
발을 내디뎠다. 무릎에서 어깨를 걸치고 손목으로.
파아아앙!
내던졌다. 별의 성창이 별의 마력을 뿜으며 마왕에게 쏘아진다.
그러나 마왕은 웃으면서 성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별의 마력은 신성력에 준하는, 마를 멸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별의 성창이 가지고 있는 마력과 마왕의 마력 차이는 하늘과 땅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늘과 산맥만큼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나는 웃었다.
행운의 네잎클로버.
인과역전의 실.
창 끄트머리에서 실 같은 것이 내려앉았다.
별의 성창은 무슨 짓을 해도 지금의 마왕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그러나.
만약에 마왕이 가진 마기가, 통제에 벗어나면 어떻게 될까?
“음?”
마왕의 마기가 모종의 이유 때문에 흩어졌다.
여기에 행운이 더해진다. 이곳에 떨어지기 전, 마왕에게 한 방 먹였던 공허의 힘이 ‘의문 모를 힘’에 의해서 다시 작용한다.
“무슨……?”
마왕이 경악해하며, 다급하게 성창을 막지만, 그 순간 아포리아와 이연아가 개입했다.
짙은 마기로 아포리아와 이연아를 후려쳤다.
아주 약간의 빈틈.
다급하게 끌어올린 마기는 ‘모종의 이유’로 작용된 공허가 피어오르고. 그 장소에 성창이 꽃혔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마왕의 심장 부위에 그대로 적중했다. 그리고 그대로 빛의 마력이 터지면서 성창이 파괴되었다.
그리고 나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어검의 가면을 쓰고, 여명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돌진.
여명이 솟구치며 마왕에게 쏘아졌다. 레바테인을 꺼냈다. 신화 속의 마검이 불꽃을 내뿜었다.
-나는 고작 이딴 걸로 쓰러지지 않는다!
마왕이 선언했다. 마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성창이 꽂힌 장소로 향했다.
마왕은 쉽게 죽지 않는다.
세계와 공명하면서, 마왕의 힘이 허락하는 한, 세계는 마왕에게 꾸준하게 힘을 준다.
마왕의 절대공명은 마기에 의해서, 세계의 부정적인 힘을 담는 그릇.
마왕을 쓰러트리려면 죽이고, 죽이고, 죽여서 마왕이라는 이름의 그릇을 철저히 부숴야 한다.
“놈!”
마왕이 기함하며 나를 바라봤다. 막대한 마기를 뭉치고 구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나에게 쏘았다.
어째서 마왕이 이렇게 싸웠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어검으로 조종하면서 피했다.
여명을 들지 않았다.
공허도 쓰지 않았다.
내가 한 것은 단순한 것이었다.
주먹을 쥐고.
그대로 마왕에게 꽂는다.
“무슨?”
당황하는 마왕. 아까 전, 성창에 당한 것이 있는지 경계하는 눈치였지만 내 능력치는 마왕의 것을 아득하게 웃돈다.
근처에 오자마자 나는 공간을 내딛고 박찼다.
오버로드·개.
근력을 더했다. 혼원체의 마력을 근력에 더한다. 색즉시공의 능력을 근력에 더했다.
음속.
그것을 넘어선 광속.
초속 300,000km를 질주하는 속도로 마왕에게 쏟아졌다. 마왕 역시 당황스러워하며 온갖 방어 마법과 몸을 막았지만.
────────────!!!!!
모든것을 우그러트린다.
소리, 공간, 시간.
공간을 넘어, 차원마저도 녹여버릴 것 같은 아득한 근력이 모든것을 관통했다.
마왕의 가슴을 통째로 뚫어버렸다.
“고작, 고작 이딴 결말이라고?”
허탈해하는 음성.
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마왕이 절망한 표정을 지었다.
‘안 좋은데.’
뉴비들은 잘 모르지만, 마왕에게 각성 이벤트가 존재한다.
정신(Ex)을 각성한 윤승하나 마신(Ex)을 각성한 윤채린이 잘못 때려도 죽고, 한 대만 치면 빈사상태에 걸리기에 아는 사람은 적다.
다만, 윤승하나 윤채린이 Ex등급의 능력을 각성하지 않아도, 미친 듯이 키워서 마왕과 1:1 구도를 만들면, 마왕은 각성 이벤트를 겪는다.
그래도 결국 윤승하나 윤채린이 각성에 성공하고, 마왕은 한방 컷.
마왕이 각성하고, 윤승하나 윤채린이 각성하지 않고 잡는 루트도 있다.
‘그다음이 문제지.’
마왕이 각성 이벤트를 겪고, 윤승하나 윤채린이 각성 이벤트를 겪지 않았을 때.
마왕이 패배하면, 자기 혼자 죽을 수 없다고 외친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그것이 강림한다.
대적불가의 마신.
나는 팔을 내려다봤다. 한 번에 근력을 너무 극대화 했다.
극대화한 공격에 대한 반동으로 움직임이 조금 굼떴다.
하지만 곧장 풀렸다.
체력 역시 99+.
한계치를 초과한 상태다. 반동으로 경련했던 팔이 한순간에 회복된다.
‘한 번 더.’
다시 한 번 근력을 극대화 한다. 오버로드와 색즉시공.
“나는…….”
마왕이 절대공명을 사용했다. 선언하기 전, 나는 도약했다.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동원한다.
모든 특성을 동원했다.
“지금부터.”
다시 한 번 광속의 세계에 들어갔다.
마왕에게 달려들었다.
간단하게 마왕의 가슴에 구멍이 뚫렸다. 마왕의 눈이 점점 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
마왕이 입을 달싹거렸다.
묘하게 즐거운 듯, 올라간 입꼬리.
뻥 뚫린 가슴 속에서 어둠이 튀어나왔다. 지금까지 마왕이 다뤘던 마기와는 뭔가 달랐다.
“위험해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림과 함께 시꺼먼 어둠이 나를 감쌌다.
***
“…….”
어둠이 감쌌다. 그리고 나는 어둠뿐인 공간에 들어왔다.
어둠이 감쌌을 때, 나는 그것마저 부수려고 했다.
‘안됐다.’
그게 불가능했다.
어둠은 내 근력에 미동하지 않고 나를 잡아먹었다.
“안녕.”
여상한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찬란한 금발. 붉은색의 눈.
윤채린의 모습이 보였다.
평소와 같은 모습. 블라우스에다가 허벅지가 드러나는 핫팬츠.
그러나 그 모습은 묘하게 불길했다.
“…….”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민첩이 크게 늘어나며 내 감각은 정말 날카로워졌다. 감각권을 넓히고자 하면 서울 전체를 훑어볼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그 감각이 말하고 있다.
내 앞에 있는 존재는 윤채린이 아니라고.
‘아니, 윤채린이 맞다.’
다만, 내 눈앞에 있는 존재는 윤채린이 아득하게 진화한, 지금의 회차에서 볼 수 없는 윤채린이라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안녕.”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인사했다.
윤채린.
아니, 대적불가의 마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