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은 정수기의 비웃음에 가만히 있었다.
나는 정수기가 오독거리며 씹는 뱀을 봤다.
“저걸로 얻을 수 있는 포인트가 어느 정도지?”
“글쎄. 근데 꽤 될걸. 나름 진짜 최종보스 같은 역할이라서.”
아, 근데 내가 마기를 다 빨아먹어서 잘 모르겠네.
정수기가 키득거리며 덧붙였다.
“뭐, 나쁘지는 않아. 내 사도가 강해지는 거니까.”
“맞지, 맞지. 이제 슬슬 몽중화를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되었고.”
정수기가 내 근처로 와서 내 목에 팔을 둘렀다.
달짝찌근한 향기가 났다.
“그래서 아포리아는 바로 포섭하는 쪽으로 할까?”
“응.”
나는 고민했다.
마왕과 싸우기 위해서 강해지려고 탑에 왔는데, 뭔가 붕 뜬 느낌이다.
‘그래도 시련의 탑은 있으면 성장률을 올려주니 상관없지만…….’
탑에 남아서 요정족을 규합하고, 티타니아를 불러와서 수련에 힘을 써야겠다.
임신 한 사람을 불러오고 싶지 않지만, 티타니아의 격이라면 규합하고 상대를 억압하는 거라면 별 문제 안 되니까.
“성은 우리가 써도 문제는 없겠지?”
“넵! 바로 비워두겠습니다! 혹시 시종들을 원하시면 시종들을 남겨두겠습니다!”
“그건 필요 없고.”
당장 요정족이 이종족에 비해서 많다고는 하지만 그 수는 만이 넘는다.
거기다가 나는 요정왕.
내 수발을 들고 싶어서 안달이 난 요정 중에 적당히 받으면 되겠지.
“마왕은 어떻게 할까?”
나는 일행들을 모아두고 말했다. 더 정확하게는 이연아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이연아는 이 탑이라는 공간에서 10년이란 세월 동안 살아왔으니까.
“완벽히 복종시킨다는 가정하에 항복을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연아가 말했다.
“원래라면 불가능할 것 같지만…….”
시선이 정수기에게 향했다.
“주인이 말하면 완전 꼭두각시로 만들 수 있는데, 어때?”
“그럼 그렇게 하자.”
일단은.
나중에 점수가 급하게 필요하면 그때 죽이면 된다.
“그리고 시종들도 모두 모아둬. 병사나 그런 것들도.”
“그정도는 문제없지.”
짝.
정수기가 가볍게 손뼉을 쳤다. 달짝지근한 향기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 마왕의 눈이 몽롱해졌다.
“이걸로 당분간 문제 없을 거야.”
마왕성의 일을 끝내고, 우리는 제국으로 들어왔다.
“마왕은 죽었습니다.”
대충 마왕은 죽었다고 보고하고, 우리가 인질로 잡았다고 통보했다.
엘프족 족장을 불렀다.
“지금부터 세력을 불려라. 여왕을 데려올 것이니, 부당하다 생각되는 것은 모두 거리낌 없이 맞서라. 나머지는 여왕이 해결할것이다."
“여왕님 말씀이십니까?”
“응.”
그리고 남은 용사들을 모았다.
‘남은 애들이 23명인가.’
윤승인을 포함해서 부상자 4명을 제외해서 27명. 고작 3명만 죽었다.
‘제국에서 탐낼 만했네.’
용사들은 초반에 보호만 받고, 대부분은 격전지로 보내진다.
그런 상황에서 3명이 죽은 거면 이들 대부분이 재능 덩어리라는 소리였다.
나는 이곳에서 용사들을 모았다.
“마왕은 죽었다. 이곳에서 살거나, 나랑 같이 가고 싶은 애들을 제외하면, 돌아가고 싶은 애들은 돌아갈 수 있다.”
“집으로 말입니까?”
“그렇다.”
그렇게 하니 절반은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남은 이들이 13명인가.’
윤승인은 제외했다. 아직도 부상으로 방에 틀어박혀 있어서.
한국에서 온 학생 2명, 일본에서 온 학생 5명. 여기에 샤오메이랑 아야네와 나. 그리고 중국에 있는 학생 2명이었다.
그렇게 남아 있는 인원을 점검하고, 탑 밖으로 나가서 티타니아를 불러오려고 했다.
“용사님.”
“왜 엘도르?”
엘도르가 드물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용사님, 그 신탁이 내려왔습니다.”
“신탁?”
“네, 여신님이 한 번 뵙자고 하십니다.”
“여신님이?”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 위에 있는 여신.
천상.
꽤 궁금했다.
위에서 신성력을 공급하면서, 마왕을 죽이겠다며, 삼왕을 포섭한 여신이.
“그, 용사님.”
엘도르가 내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여신님의 모습을 보고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
“그리고 절대, 절대로 실망했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외에 엘도르는 이것저것 말했다.
뭔가, 내 안에 있는 여신이라는 이미지가 다 부서지는 것 같았다.
***
천상.
하늘 위에 있는 존재. 그곳은 성스러운 장소였다. 순백의 구름 위에 온갖 건축물과 신전이 세워진 장소.
그곳 중앙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가진 여성이 있었다.
금발의 푸른색의 눈동자.
자기가 여신이라고 주장하듯, 하늘하늘한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그러나 별로 신성해 보이지 않았다.
‘엘도르에게 이것저것 들어서 그런가.’
여신이란 이미지는 사라지고 대신 하나의 변태 이미지가 들어섰다.
엘도르가 질투심에 이미지를 망쳤다고 생각하기에는 엘도르는 여신의 사도이다.
거기다가 엘도르는 여성진중에서 질투심이 없기로 유명하기도 하고.
‘애가 살짝 그란데힐 과라서.’
순종적이다.라기 보다는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어서, 사랑만 받아도 나는 행복하다-라는 느낌이라.
“처음 뵙겠습니다.”
신성한 목소리였다. 마치 신성함이라는 단어를 목소리로 승화시킨 것 같은 느낌.
“네, 안녕하세요.”
“후후.”
내가 인사를 하자 여신이 가볍게 웃었다.
“그런데 저를 어째서?”
“용사여.”
여신이 눈을 감고 고요히 말했다. 일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
……갑자기 티타니아가 떠올랐다.
존경받고 싶다는 이유로 이따금 세계수와 동화하여 자신의 존재감을 뿜는 모습이.
그 모습을 보니 장난기가 솟았다.
“네.”
“현재 저희의 세계는 터무니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마왕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나 자신의 불변성을 포기하고 이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마왕이요?”
“네. 그는 자신이 이룩한 모든것들을 포기하고, 당신을 제거하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힘은 여태껏 당신이 모아온 힘 전체를 위협하는 힘이 되었죠.”
여신은 그 뒤에, 다만-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1개월 후. 마왕은 그대를 없애기 위해서 움직일 것입니다.”
“저희가 먼저 공격하는 것은 어떤가요?”
“그건 불가합니다. 그는 이미 힘의 안정화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비록 억지로 불린 힘이기에 당분간 마왕은 그의 지역에서만 움직일 수 있지만…….”
꽤 귀찮은 말이었다.
“그래서 제가 당신에게 힘을 하사하겠습니다. 이 힘은 당신의 사도인 정숙한 처녀가 탑의 마왕들을 잡았기에 내릴 수 있는 힘.”
여신의 말과 함께 빛이 번쩍였다. 그러자 내 눈앞에 반투명한 창들이 여러 개 뜨기 시작했다.
[여신의 축복 활성화!]
[S급 이하의 모든 특성이 한 단계 올라갑니다!]
[성검의 주인이 신의 대행자로 강화됩니다.]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하늘 위의 여신의 힘이 당신의 몸에 깃듭니다]
‘오…….’
나는 상태창을 열었다.
▼
이름 : 이시우
근력 : 80
민첩 : 80
체력 : 80
마력 : 80
고유능력 : 천상천하 유아독존(Ex-)
특성 : 지식 열람(S+), 천수(S+), 천의 가면(S+), 오버로드·개(S+), 태극지체·극(S+), 색즉시공(S+), 하늘을 굽어보는 눈(S+), 불가해한 감각(S+), 신의 대행자(S+), 대신관·극(S), ■■■(B+), 랭크 업(B+)
“그리고 한 번에 한해서, 당신이 원하는 특성의 랭크를 하나 올려주는 힘을 내리겠습니다.”
[하늘 위의 여신이 남긴 잔재가 당신에게 깃듭니다]
내 몸속에 어떤 힘이 자리를 잡은 것을 깨달았다.
이건 태극지체에 써야겠군.
지식 열람이나 천수, 천의 가면 중의 하나를 사용할 수 있다면 바로 써야겠지만, 저 능력들은 이런 힘으로 랭크를 올릴 수 없다.
‘저건 랭크업도 통하지 않으니까.’
나는 천천히 힘을 가다듬었다. 급격하게 강해진 힘이 천수가 조율한다.
수치상으로 10이 올랐지만, 모든 능력치가 체감상으로 2배, 아니 3배에 가깝게 올라왔다.
‘진짜 백두산도 맨산으로 들 수 있겠는데.’
터무니 없는 힘이다.
“표정을 보아하니 만족스러운 보상인 것 같군요.”
“네.”
그런데 능력치가 강화된 덕일까.
감각이 터무니없이 넓어졌다. 정확하게는 수 킬로미터 떨어진 신전의 안을 뒤질 정도로.
‘뭐지.’
무언가 인형 같은 것이 있었다.
여기까지였다면 별 상관없을 일이나, 그 인형의 체형이 나랑 완전히 같다.
더 소름 돋는 것은 감각을 북돋으니 머리카락이라던가 눈매, 근육의 형태 같은 것도 비슷했다.
그리고 그 근처에 널브러진 사진들. 내 모습을 본떠 만든 것 같은 인형들.
‘…….’
-여신님은 현실 세계에 개입하기가 힘드십니다. 대신, 그 부작용이라고 해야 할까요, 여신님은 무언가 몰래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엘도르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던 게 떠올랐다.
이건 내 기억속에만 묻어둬야겠다.
***
“이건 어때?”
“……본녀의 생각대로라면 좀 더 야생적인 느낌이 나는 편이 좋다.”
뚱한 목소리.
하메르의 말에 나는 청바지의 무릎 부분을 살짝 찢었다.
현재 나는 현실로 돌아와서 열심히 코디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여자가 좋아할 법한 멘트를 하메르에게 배우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족과 용족의 취향이나 전통 같은 것이 다르기에.
“그런데 그 빌어먹을 일족의 원수를 굳이 영입해야 되는 건가?”
“마왕을 죽이기 전까지 일시적인 동맹을 제안하는 거야.”
“……미안하다, 그대. 본녀가 냉정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하메르가 조그맣게 한숨을 쉬고는 내게 안겼다.
“본녀는 일족의 장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용족이면서, 따분하다는 이유로 일족을 멸망에 가깝게 만들어버린 그 빌어먹을 배신자를 용서할 수 없다.”
하메르가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다만, 그대가 아포리아와 교섭한다는 마음에 본녀는 배신감보다는 질투를 느꼈다. 우리라는 관계가 그대의 아이를 낳기 위한 행위로 시작되었지만, 본녀는 그대가 좋다. 아니, 이제는 사랑을 느끼고 있다.”
하메르의 말은 이제 투정을 부리는 아이처럼 바뀌었다.
“그러니까 몸뿐인 관계를 유지하면 좋겠다. 가장 좋은 것은 관계 자체를 갖지 않는 것이고.”
“내가 아포리아랑 관계를 맺는 게 전제야?”
내 말에 하메르가 픽-하고 웃었다.
“본녀가 보증하지. 그대라면 아포리아를 함락시키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설마.”
아포리아는 마왕보다 더한 최강의 생명체다.
내가 꼬시고 싶다고 꼬실 수 있는 쉬운 존재가 아니다.
“아무튼 최대한 노력해볼게.”
***
……그랬었을 텐데.
나는 조용히 한숨을 쉬며 침대 위에서 기절한 채 정액으로 범벅된 아포리아를 봤다.
‘이게 왜 진짜로 되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