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에는 마경이라는 곳이 존재한다.
백두산 근처에 있는 천둥산.
얼마전에 비염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갔었던, 스칸디나비아 반도.
알레스카에 존재하는 눈 덮인 설산.
아프리카에 존재하는 흑색의 마경.
바다에 존재하는 버뮤다 삼각지대.
하나같이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다. 그곳의 마수들은 하나하나가 상격이 임무를 받는 A등급의 몬스터들이 즐비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향하는 곳은 흑색의 마경이었다. 아프리카 대륙 끝 부분에 있는 이 마경은 온갖 마수들의 천지다.
그리고 세간에서 마수왕이 탄생했으리라 생각되는 장소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이곳에 오기까지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워프 게이트로 아프리카에 온 직후, 헤카테의 그림자 마법으로 이동해서 단숨에 왔으니까.
‘여기가 던전 부근인가.’
약 한시간 정도의 탐색 후, 나는 던전을 찾았다. 그리고 바로 몬스터들을 잡고, 보스방까지 도달했다.
-키에에에엑!
마경.
그곳에서 가장 위험한 흑색의 마경에 존재하는 던전이라지만, 나한테는 별거 아니었다.
‘공허가 너무 사기라서.’
공허는 모든 것들의 연결점을 끊어버린다. 그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거악 중에서도 극히 드물고, 마왕정도나 막을 수 있는 능력이다. 한낱 던전의 보스가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보스를 쓰러트리고 나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은색 빛으로 빛나는 단이 보였다.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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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의 단
특성, 랭크 업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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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크 업.
이 특성은 굉장히 특수하다. 다른 능력들을 일시적으로 랭크를 상승시켜서, 사용하게 하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제약이 있다.
Ex등급으로 올라갈 수 없으며 Ex-등급에 오르더라도 쓸 수 있는 권능들이 대부분 쓸 수 없다. 혹은 거대한 대가를 치른다든가, 하는 문제점이 생긴다.
이것때문에 얻을까 말까 고민했었다.
‘그래도 Ex-등급 아래 등급이라면, 문제가 거의 없지.’
나는 단을 삼켰다. 그러자 몸 속 내부의 미약한 힘이 자리잡은 것을 깨달았다.
천천히 그 힘을 끄집어냈다. 내가 원하는 것은 ■■■.
은빛의 힘이 ■■■을 감쌌다.
‘랭크가 바뀌는 정도까지는 강화가 안 되는 군.’
아쉬운 일이었다.
나는 시험삼아 원영신을 한번 써봤다. 몸이 영혼으로 화한다. 육체라는 틀을 벗어던진다.
새로운 힘이 나오지는 않았다. 다만 좀 더 익숙해지고, 스텟 증가 부분이 늘었으며, 공허의 힘을 잘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정도면 만족스럽군.’
그럼 이제 탑으로 향할 때가 되었다.
***
나는 즉각 탑으로 향했다.
내가 없는 동안, 탑은 꽤 많은 것이 바뀌었다.
첫번째로, 황제가 죽었다. 대신해서 황녀가 여황으로 즉위했다.
‘원래대로라면 황태자가 즉위해서 제국이 썩어빠진 게 가속했다고 들었는데.’
이연아가 다시 탑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을 먼저 바꾸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다.
잠깐 탑에 머물면서 주변 사람들을 붙잡으며 말을 걸었다. 탑은 아직도 9층에서 머물고 있었다.
‘나를 기다린건가?’
10층이 이 세계에 마왕이라는 존재가 있고, 11층에는 질투의 뱀이 존재한다.
마왕이라고 해도, 현실의 마왕같은 놈이 아니다. 그 힘은 마수왕이 가진 힘보다 몇 단계는 아래. 이연아가 있는 조라면 힘이 조금 들지 모르지만…….
‘아야네가 있어서 굳이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당장 아야네를 위시한 조도 강하다. 제국의 힘을 빌리면 피해는 크지만 10층은 공략할 수 있으니까.
나는 10층으로 향했다.
“방패진 모두 앞으로! 궁수들과 마법 병단은 힘을 아껴라!”
“저 개같은 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려!”
10층으로 오자마자 보인 것은 인간과 마족들의 전쟁이었다.
나는 눈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하늘을 굽어보는 눈이 전장 전체를 살피기 시작했다.
전장의 한쪽 끄트머리에서 익숙한 마력 파장이 보였다.
도약.
나는 단숨에 도약해서 그쪽으로 향했다.
장소로 향하니 그곳에서 굉장히 큰 마물 하나를 아야네와 샤오메이, 작은 연아가 대치하고 있었다. 옆에서는 이연아가 팔짱을 끼며 구경하고 있었고.
-어, 언제 오셨어요?
꽤 멀리 있는 거리이건만 이연아가 내 쪽을 보고 자연스레 손을 흔들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여기부터 이연아의 영역인가.’
이연아의 복장은 특이했다. 나시티에 검은색의 청바지.
“방금 전에. 애들은?”
“전투 경험이 부족해서 연습 좀 시키고 있었어요. 그런데 엄청 강해지셨네요. 무슨 힘인지 모를 위험한 것도 품고 있으신 것 같고…….”
이연아가 내 몸을 시선으로 훑었다. 그러다가 살짝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흐음……몸도 엄청 좋아지셨네. 오랜만에 한번 할까요?”
“우선 처리할 게 많으니, 나중에.”
“……어라, 시우씨가 맞는데?”
내 말에 이연아가 당황했다.
“그런데 애들 움직임이 좋아졌네.”
아야네를 봤다. 마물이 팔을 들어 주먹을 휘둘렀다. 아야네는 검을 휘둘렀다.
5m 크기의 마물은 갑옷을 두르고 있어 한 없이 단단해 보였지만, 마치 두부를 자르듯이 갑옷째로 팔이 두 동강이 났다.
시선을 돌리니, 이채아나 윤승인도 보였다. 한남훈도 열심히 싸우고 있었고.
‘장인 어른들도 강해졌네…….’
그 때 이채아의 그림자 속에서 무언가가 힐끗 튀어나오려 하고 있었다.
“어?”
이연아가 손을 쓰기 전에 내가 나섰다. 이채아의 옆으로 다가가서, 그림자를 밟았다.
공허가 내 발아래에 응축되며 그림자와 마물의 연결을 끊어버렸다.
-키에에에엑!
마물이 그림자 속에서 뛰쳐나오자 그대로 레바테인의 불꽃으로 태워버렸다.
“아, 감사합니다.”
“……고맙군.”
이채아와 윤승인이 나에게 감사를 건넸다. 다만, 문제는 윤승인이 나를 질투가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는 것인데.
이건 진짜로 억울한데.
천의 가면으로 감정을 살피니 어두운 감정이 많았다.
‘어라.’
그리고 약간 핑크빛의 싹 같은 것이 이채아의 감정 속에서 솟는 것도 보였고.
이연아가 나를 굉장히 복잡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
마물을 토벌하고 거점으로 돌아가는 길.
이연아가 내 옆에 슬쩍 다가오며 물었다.
“혹시, 진짜로 혹시나 싶어서 물어보는 건데, 채아 언니한테 관심이 있어요?”
“……내가? 어째서 그런 결론이 나오는 건데.”
안그래도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이채아나 윤승인은 장인어른이라 잘 해드리고 싶은 건데, 윤승인은 나를 질투하지.
이채아는 나를 보는 눈이 뭔가 복잡해지지.
“둘 다 장인어른이라 잘 해드리려는 거야.”
“……음, 앞으로 채아 언니 공략할거 아니면, 막 구해주지 말아 주세요. 채아 언니는 다 좋기는 한데, 한 남자에게 사랑을 바치는 타입이 아니라서…….”
이연아가 잠깐 고민하더니, 말을 덧붙였다.
“음, 근데 시우 오빠라면 가능할지도 몰라요. 오빠는 그 편력을 한 남자만 바라보게 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잖아요.”
“……근데 내가 왜 이채아를 노릴 것처럼 이야기 하는 건데.”
“제가 여러가지 조사한 게 있는데요.”
이연아는 말을 돌렸다.
“시우 오빠가 이동한 차원하고, 이 차원은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어느정도 연관은 있는데, 원인은 있는데, 결과는 그대로인 느낌?”
“…….”
이연아는 슬쩍 윤승인을 보더니 내게 귓속말을 했다.
“그러니까 지금 채아 언니를 자빠트려도, 승하랑 차린 이에게 가는 영향은 없다는 거죠.”
“근데 그걸 대체 왜 나한테……?”
이연아가 나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시우 오빠가 맞는데? 안 넘어온다고?”
“내가 성욕에 미친 사람처럼 말하지 말아 줄래?”
“성욕의 화신이 아니었어요?”
이연아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뭐, 사실 저 사람이 마음에 안 들 기도 해서 그랬어요. 겸사겸사 내 편도 만들고.”
이연아가 윤승인을 보며 말했다.
“왜? 무슨 일 있었어?”
“처음에는 안그랬는데, 그냥 사람이란게 바뀌더라고요. 평생 한 여자만 볼 것같이 말하더니, 나중에는 삼첩 사처를 거느리고 다니고. 나중에는 채아 언니를 버려두다시피 다녔으니까요.”
이연아가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원래대로라면 이연아의 말에 맞춰주면서 기분을 풀어줘야 했지만, 대상이 장인어른이라서 나는 입을 꾹 닫았다.
“아, 그러고보니 누구였지? 그 일본인 있잖아요.”
“일본인? 아…….”
일본인 하니까 떠올랐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본떠 만든 조각상을 가지고 나에게 기도를 올렸던 여자가.
어느순간부터 내게 밀착 경호를 하겠다며 달라붙었는데, 수비력이 인상적이었다.
“걔가 왜? 사고 쳤어?”
“아뇨, 성장속도가 엄청나더라고요.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지금은 좀 무서울정도라서. 아야네란 친구랑 같이요.”
이연아가 아야네를 힐끔 봤다.
“저거 지금 각성 중이라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는데, 다 키우면 진짜 쓸만해 질걸요?”
“그래?”
“네, 단절이란 능력이 진화해서 어디로 갈지 모르겠는데, 저거 각성에만 성공하면 아포리아한테도 한 방 먹여줄 수 있어서요.”
이연아가 썩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마왕 공략은 언제쯤 할 건데.”
“급해요?”
“응. 이번에 거악을 좀 많이 죽여가지고…조만간 마왕이 움직일지 몰라.”
“마왕이요? 거악은 아직 꽤 남아있을 텐데…….”
당황해하는 이연아를 보며 나는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오베론을 죽이고, 무신도 죽이고. 거기다가 아포리아랑 싸웠는데 사지 멀쩡히 돌아오시다니…….”
이연아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은 옆에 서서 싸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탑에서 좀 강해지지 않았어?”
“네, 뭐. 그래도 탑 등반을 다 했다고, 패널티 같은 건 없어서요. 대충 2할 정도는 강해져서 나름 자신감이 있었는데.”
이연아가 나에게 밀착하고는 귓가에 속삭였다.
“아, 섹스 스킬 좀 많이 배웠는데, 오늘 밤 어때요? 저 오빠한테 예쁨 받고 싶어서 진짜 열심히 갈고닦았는데.”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