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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273화 (273/298)

〈 273화 〉 가장 오만한 자(5)

* * *

오만한 용이 힘껏 도약했다.

한 순간에 내 앞으로 다가온 오만한 용. 최강의 생명체가 손을 뻗었다.

콰득.

공간이 찌그러진다. 단순한 물리력임에도.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압도적인 힘.

나는 뒤로 도약했다. 그러자 최강의 생명체가 씩­웃으면서 손을 꽉 쥐었다.

끼이이익.

공간이 무너진다. 극한에 도달한 근력이, 시공간에 간섭한다.

내 주변의 공간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검게, 변하면서 공간이 찢어진다.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단순하고 무식하다. 그리고 그래서 더 까다로웠다.

몸의 실체감이 옅어진다. 몸이 영혼으로 화한다.

원영신.

보랏빛의 혼돈이 내 육체로 화했다. 왼손에는 혼돈으로 만들어진 검을 쥐고, 한쪽 손에는 여명을 쥐었다. 여명 위에 공허가 덧씌워진다.

화악!

공허의 검기가 공간을 가로질렀다. 반월의 형태로 날아가 공간을 짜부시키는 물리력을 잘랐다. 그리고 최강의 생명체에게 쏘아졌다.

“호오?”

최강의 생명체가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한 걸음. 최강의 생명체가 방어하지 않고 회피를 했다.

“그 놈이 자신이 훗날 최강의 생명체라 불릴 거라 했던 기술이라 자부할만하구나. 아니, 그랬으면 최강의 창을 얻었다고 했을 텐데? 혁월놈의 기술과 네 것이 합쳐진 건가?”

최강의 생명체가 자문자답하면서 몸을 움직였다.

“너, 경시할 수 없는 존재로군. 손대중할 때가 아니겠어.”

눈이 도마뱀의 그것으로 변했다. 펄럭­용의 날개가 그녀의 등에 솟았다. 비늘이 팔과 다리를 덮었다.

“가능성의 종족. 하찮은 인간종에서 이런 괴물이 나올 줄 몰랐는데. 너, 이름이 뭐지?”

“이름을 알아서 뭐 하려고?”

“너를 기억해야겠다. 영광으로 알아도 좋다. 내가 기억하는 인간족의 이름은 몇 개 되지 않거든. 다섯 손에 꼽을 정도니까.”

최강의 생명체는 어느새 입이 찢어질 듯이 웃고 있었다.

이 싸움이 즐겁다는 듯이.

“이 몸의 이름은 아포리아다. 지상 최강의 생명체. 그리고 세계의 종말을 담당하는 묵시록의 붉은 용.”

“이시우.”

“시우. 이시우라. 난봉꾼 같은 이름이군.”

“…….”

저 말에 부정할 수 없는 게 슬펐다. 나는 조용히 가면을 썼다. 어검의 가면. 그리고 공허를 공급했다.

“음?”

공허의 통로가 활짝 열렸다. 공허가 수백 자루의 검 형태로 바뀌었다.

────────!!

수백 자루의 검이 아포리아에게 쏘아졌다. 여기에 광익의 가면을 덧쓴다. 등 뒤에서 길쭉한 날개가 뻗었다.

아포리아가 도약했다. 공허가 자신이 뿜은 물리력을 무시하는 광경을 봤음에도.

‘단순히 오만했으면 문제가 없는데.’

수백개의 검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쩌어어어어어어어엉!!!

아포리아가 고른 수단은 간단했다. 아포리아는 주먹을 내뻗었다.

투로가 투박하다.

도저히 초월경에 이른 주먹이 아닌, 강한남이 내뻗는 주먹처럼.

그러나 그 결과는 투박하지 않았다.

공간이 뭉개진다. 공허의 폭풍이 뭉개진 공간 안에 갇힌다.

‘허어.’

어이가 없었다. 저런 방식으로 막을 수 있기을거라고 생각은 했었는데, 방식이 너무 무식했다.

“최강의 생명체가 달리 나온 말이 아니군.”

“이런 방식도 꽤 괜찮지 않은가.”

아포리아가 오만하게 웃었다.

“투박하다고 구박하기는 하지만, 무릇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효과적인 법.”

맞는 말이었다. 그녀가 가진, 극에 다달한 능력치와 권능이 합쳐진 힘은, 이미 그 자체로 압도적인 폭력이었다.

그래서 귀찮았다.

‘레반테인.’

불꽃의 검을 부르자 답했다. 파멸의 불꽃이 허공에서 피었다.

“비염.”

­오케이.

비염이 응답했다. 회색의 불꽃이 질주한다. 허무의 신염. 모든 것을 태우는 불꽃이 춤을 추듯 허공을 수놓았다.

“이건?”

아포리아가 멈칫했다. 허무의 신염. 저것은 불꽃이지만, 불꽃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시간과 공간의 간섭하는 힘에 가깝다.

파멸의 불꽃이 질주했다. 아포리아가 주먹을 쥐고 공간을 격했다.

회색의 불꽃, 허무의 불꽃이 쏘아졌다.

“흡!”

아포리아가 몸을 비틀었다. 그러나 허무의 불꽃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공간과 시간을 무시하고, 격한다. 화륵­불꽃이 아포리아의 몸을 태웠다.

나는 공간을 도약했다. 원영신의 권능. 나는 곧장 아포리아의 바로 앞으로 도약했다.

“너…….”

사납게 일그러진 아포리아의 얼굴. 오버로드·극. 능력치에 힘을 더했다. 나는 여명을 휘둘렀다. 아포리아가 주먹을 휘둘렀다.

─────────────────────!!!!!!

공간이 일그러진다. 시공간이 붕괴한다.

“물리력으로 공허를 상대하는 건 일단은 가능하군.”

“글쎄, 그럴까?”

“허세는.”

아포리아가 픽­웃었다.

‘힘에서는 내가 확실히 밀리는군.’

아포리아가 가진 힘과 천마적룡, 천상의 용 때문이었다.

속도는 원영신의 권능을 사용하면 내가 위.

나는 몸 속에 자리를 잡은 은하를 꺼냈다.

일월이 합쳐진 황혼.

그것이 빛을 뿜었다. 그 근처에 있는 행성들이 힘을 더했다.

힘이 증폭한다.

“……!”

아포리아의 표정이 바뀌었다. 흥미에서 다급함으로.

그러나 은하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공허를 증폭한다.

증폭한 상태에서 한 번 더 증폭한다. 공허가 넘쳐 흐른다.

공허가 검에 모였다. 하나의 힘으로 응축했다. 길쭉한 검날이 되었다. 여명을 휘두른다.

아포리아가 크게 기함하며 뒤로 물러났다. 공허가 질주한다. 아포리아를 향해서. 아포리아가 뒤로 크게 물러났지만, 조금 늦었다.

서걱.

오른쪽의 날개 절반.

잠깐 늦은 판단으로 날개를 잃었다.

아포리아가 고요하게 나를 바라봤다.

***

온갖 감정이 섞인 복잡한 눈이었다. 살의. 황당함. 곤혹.

그리고 생소함.

“네놈.”

처음 아포리아가 느낀 감정은 들끓는 살의였다. 아포리아는 자신의 몸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세상 전부가 인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최강의 생명체.

그것은 저 존재가 흠집을 냈다.

자신의 육체를. 그리고 자존심을. 머리가 뜨겁다. 본능이 외쳤다. 저건 위험하다고. 자존심이 부딪쳤다. 자신은 이길 수 있다고.

그러나 저 남자와 부딪쳤을 때, 감각이 이상을 알렸다.

아포리아는 흉포하게 움직이는 대신. 한가지 질문을 이었다.

“너.”

아포리아가 가늘게 눈을 좁혔다.

“어째서 네 몸에서 하메르의 냄새가 나는 거지?”

그건 분명히 하메르의 냄새였다. 한 때 자신을 누구보다도 따랐었고, 존경의 눈빛으로 보던 용족이었다.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 말투로.

……그러고 보니 저 놈, 하메르를 굉장히 아꼈다고 설정집에 한 줄 설명으로 있었다.

이시우는 아포리아를 힐끔 봤다.

집중 좀 흩트려볼까.

“하메르가 날 지나치게 좋아해서 말이야.”

“……헛소리.”

“뿔을 잡아도 별 말 안하더라. 처음에는 좀 어색해하면서, 부끄러워했는데, 이젠 꽤 능숙해졌어. 그거 알아? 하메르 가슴 아래에 점 찍혀 있는…….”

콰득.

이시우는 잠깐 후회했다. 너무 도발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최강의 생명체가 살의를 의념으로 세상에 채웠다.

화악!

아포리아 몸에서 빛이 솟아났다. 그녀의 의지에 따라 권능이 세상 바깥에 힘을 떨쳤다.

천마적룡.

천상의 용.

두 개의 힘이 빛을 발하며 아포리아의 의지에 호응했다.

일곱개의 별이 하늘에 떠올랐다.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별들. 그 별들의 지름은 하나하나가 100m를 넘었다.

내포된 힘은 그 이상이었다. 하나의 힘이 섬 하나를 삭제시켜도 이상하지 않을 힘.

천마적룡.

묵시록의 붉은 용이 가지는 힘. 그것은 생명체의 종언────.

“……너. 죽이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아포리아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이거 생각보다 훨씬 더 화나게 한것 같은데.

이시우는 한숨을 조그맣게 내쉬었다.

우웅!

‘어라.’

검은색의 왕관이 이시우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이시우는 뜬금없어했지만 반색했다.

벌써 4번째인 각성의 징조였다.

***

깊은 어둠이 잠든 곳.

그곳에서 한 존재가 눈을 떴다.

­거악이 대부분 전멸했군.

어둠속에서 눈을 뜬 존재는 천천히 관조했다.

외신과 거래하여 얻은 그들의 수하 여섯. 그리고 무신이라 불리는 존재의 링크가 끊어졌다.

무신이 벌써 원하는 바를 이뤘을 리는 없다.

원영신.

그것을 얻는 조건이 너무 빡빡하기 때문이다. 천무, 천무지체·극, 검귀, 검천…….

하나만 가져도 하늘의 실수라 불리는 재능들.

이루 말할 수 없는 재능들을 가지고, 자신의 모든것을 내다 버려야 얻을 수 있는 힘이다.

그 조건을 통달한 존재는 오롯이 한 존재였다.

‘19회차의 이시우.’

일격으로 산맥을 무너트리고, 이격으로 달을 부수는 진정한 무신.

그 존재밖에 없었다.

마왕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자신에게 남은 무기가 무엇인지 찾았다.

공명.

절대적인 공명으로 세계의 힘을 끌어내는 자신의 힘이 많이 쇠약해졌다.

뭐, 상관은 없다. 그들은 장기말. 그들과 자신은 수직 관계가 아니다. 거래를 주고받는 사이일 뿐.

‘그리고 이제 슬슬 마지막 준비는 완성되었으니.’

마왕은 거울을 보았다. 그곳에는 16체의 시체가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시체들의 모습은 특이했다. 마치 쌍둥이와 같이 기본적인 생김새는 비슷했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점이 많았다. 하나는 몸이 왜소하다던가. 다른 하나는 용의 피를 이식한듯, 용의 신체 부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한가지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보랏빛의 눈동자와 검은색의 머리카락.

마왕은 그것을 처연하게 봤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 그러나 자신이 꼬아버린 외신과의 관계로 영원히 갇혀버린 이시우를.

'걱정하지 말라. 마지막의 너의 몫으로 이 세계를 부숴줄테니.'

지독하기 그지없는 존재들로 부터 벗어날 준비는 거의 완성되었다.

윤승하.

윤채린.

세계를 창조하고 다시 한번 부숴, 시간을 반복시키는 그들에게 말이다.

이 지긋지긋한 회귀도 이것으로 마지막이리라.

‘잠깐.’

마왕은 다급하게 시체가 안치된 장소를 봤다.

16체다.

분명 19체가 있어야 했는데, 3체의 시체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마왕은 보았다.

시체 하나가 서서히 가루가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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