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2화 〉 가장 오만한 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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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록의 붉은 용.
종말을 이끄는 이 용은 터무니 없이 강하다.
순수하게 단일 객체의 힘만 따진다면, Ex등급의 능력을 각성한 윤승하와 윤채린을 제외하면, 이 존재와 맞설 존재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마왕의 능력은 성가시고, 귀찮지만, 단일 객체의 강함만을 따진다면 마왕도 오만한 용의 아래로 따진다.
궁극마법조차 제대로 통하지 않은 저항력.
왠만한 충격은 전부 무시하며, 신성력조차 그녀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녀의 능력치는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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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아포리아
근력 : 80
민첩 : 80
체력 : 80
마력 : 80
고유능력 : 천상의 용(Ex)
특성 : 천마적룡(Ex), 가장 오만한 자(S++), 억겁의 저항력(S+), 멸망의 축(S), 스스로 오롯하게 존재하는 자(S) 외 5개
윤채린이 가진 천상의 마.
그 안에 든 천마들이 목표로 했던 궁극의 생명체.
저걸 지금의 내가 바로 상대할 수 없다.
‘저것과 싸우기에는 아직 격이 조금 부족하니까.’
원영신을 사용하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사용하면 아포리아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그뿐이다.
막을 수만 있다.
그리고 그 격은 간단하게 채울 수 있다.
수르트가 남긴 힘의 잔재.
이 힘을 잘만 이용하면 아무것도 없는 일반인을 상격에 도달할 힘을 준다.
‘다른 능력치보다 격을 채워준다는 거지.’
현재 나는 상격이다.
하나가 부족한데, 하나를 채우지 못해서 지금 상격이다.
정확하게는, 무언가 억지로 막아서 내가 상승의 경지로 가지 못하는 느낌.
나는 힘의 잔재를 입에 넣었다.
잔재는 입에 넣자마자 액체로 화했다. 뜨거운 액체가 몸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몸속의 자리 잡은 무언가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내 무언가에 의해서 막혔다.
원영신.
육체가 영체로 화한다. 보다 내 힘을 자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가면……?’
그리고 나서 나는 천의 가면이 내 성장을 막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이게 페널티인가?’
아니, 그건 아니다. 천의 가면의 페널티는 좀 더 끈적한 느낌이다. 사람을 홀리고, 그 사람이 나에게 집착하게 하는.
나는 팔을 뻗었다.
그리고 손을 움켜쥐었다. 장막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한다.
끼이이이이익───!
무언가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이건, 이 힘은……!
경악해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면이었다.
‘아니, 가면의 사도인가.’
일전에 마수왕을 잡고, 나왔었던 가면의 사도.
설마 저게 나를 막고 있었나?
손을 움켜쥐었다. 공간이 찌그러진다. 힘이 막으로 전달되었다.
네놈 도대체 무슨 짓을? 벌써 원영신에 도달했다고?
당황해하는 목소리. 나는 힘을 더 주었다. 통로를 활짝 열어젖혔다.
공허가 몸에서 솟아올랐다. 공허를 손에 둘렀다. 그러자 비명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나를 막는 무언가가 점점 옅어지고 있다.
격이 높아진다.
화아악!
태양과 달의 마나가 공존한다. 그것들이 합쳐지면서 황혼이 만들어졌다.
보라색의 구체가 내면에서 떠올랐다.
우우우웅!
공전.
보라색의 구체가 공전하면서 주변의 풍경을 일그러트렸다.
상격이 자신의 인생을 토대로 만든 각인이 생겨난다면.
최상격은 그 각인이 세계에 영향을 끼치게 한다.
주변이 보랏빛의 황혼으로 물들었다. 공간이 일그러진다.
파직.
거대한 막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균열이 늘어나면서, 그것들이 깨지려 하고 있었다.
그만! 그만! 그것을 깨트리면 안 된다!
“왜지?”
이건 일종의 방어벽이다. 네가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게, 격을 내가 낮추고 있을 뿐이지.
“방어벽이라고? 내 성장을 가로막는 게?”
…….
무엇보다도 놈은 이미 신에게 버려진 사도라고 했었다.
내 몸속에서 기생하면서 살고 있었기에 언제 한번 쳐내려고 하려고 했었는데.
“내 몸속에서 격을 막으면서, 내 격을 먹으면서 성장하고 있었구나?”
…내가 성장하는 게 마냥 나쁜 일은 아니지.
아니, 나쁜 일이지.
절멸의 업화.
공간을 일그러트리는 황혼에 불꽃을 더했다.
크흐흐흐흐흐
가면이 웃었다. 허망한 웃음이었다.
화악.
각인이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억눌려 있던 격에 가면이 먹어치운 격, 그리고 가면의 격이 내 몸뚱어리에 들어섰다.
이건…….
황혼이 한 단계 더 진화했다. 공허를 삼키며, 몸속의 은하를 만들었다.
천수로 세밀하게 몸을 살폈다. 그리고 이 은하가 내 심상 세계란 것을 깨달았다.
‘이런 구조인가.’
일월.
그것은 태양과 달의 힘을 끌어온다.
황혼.
태양과 달의 힘을 합쳐 반발하는 힘으로 힘의 증폭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다음 단계인 은하는 아득할 정도의 힘을 증폭시켜줬다.
헛웃음을 흘렸다. 힘의 증폭도 증폭이지만, 은하가 다루는 힘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공간과 시간의 힘이라고?’
나는 시험삼아 은하의 힘을 끄집어냈다. 주위의 공간이 녹아들기 시작했다. 공간은 손쉽게 다룰 수 있었다. 이미 그란데힐의 공간장악으로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힘은.’
주위의 시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시험삼아 돌멩이를 주워 던졌지만, 꽃잎이 흩날리는 속도로 느려졌다.
‘시간은 주변의 영향을 미치게 할 뿐인가.’
아쉽게도 과거의 시간으로 갈 수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무언가가 막고 있어서 향할 수 없었다.
힘의 증폭.
이것도 실험해 볼 게 있었다.
다만 길게는 할 수 없었다. 최강의 생명체인 오만한 용이 유럽에 있으니까.
급한대로 나는 몇 가지 실험을 해보고, 그것들이 전부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우리 무적 아니야, 계약자?
“물론이지.”
비염의 말에 나는 멀겋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 이 정도로 무적은 아니다.
***
“신이시여.”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자신도 모르게 신을 찾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상공에 날아다니는 한 마리의 용 때문이었다.
이 자리에 날 막을 영웅들을 모아와라. 시간은 하루를 주겠다.
오만한 용은 그렇게 선언하였다.
그 과정에서 문제를 생겼다.
일반인들은 규격 외의 괴물이 나타났다고 생각했지만, 상격들이 느끼기에는 고작 그 정도가 아니었다.
당장…당장 영국을 벗어나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왕실의 인원만이라도…….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기사단, 원탁의 일원들의 말이었다.
저걸, 저걸 막으라고? 고작 우리끼리? 우리끼리 막아도 시간 벌이조차도 되지 않아.
전의를 상실한 채, 그들이 말했다.
인류의 영웅들은 머뭇거렸다.
미국은 아직도 도시 회복에 힘을 쓰고 있다. 오베론이 남긴 상처를 봉합하지 못했다.
중국은 인명피해가 적었지만, 스켈레톤을 대부분 잃어버렸다. 드넓은 땅을 수호하기 위해서 한 명의 영웅들조차도 보내지 못했다.
바로 근처에 있는 프랑스는 영웅들을 보내줬지만, 그 수는 적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것은, 오만한 용은 금을 사랑했다.
그녀는 날뛰기 전에 온갖 예술품과 금은보화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이 정도면 다 부숴버릴 필요는 없겠군.
영국의 여왕은 그 말을 듣고 안도할 수 있다는 자신이 싫었다.
***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중앙에서 거대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근처에 있는 영웅들의 작은 기척들도 느껴졌다. 문제는 그들의 격을 모조리 합쳐도 저 존재의 격에 비하면 티끌만 하다는 것이었다.
……계약자. 우리가 저걸 막을 수 있어?
“할만하지 않아? 정령신에게, 신염이란 칭호를 얻으면서 너도 엄청 강해졌잖아.”
그건 그렇지. 그치만……그치만 저건…….
비염이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을 꺼냈다. 확실히 저건 규격 외다.
‘생각보다 할 만하다고 생각했는데……더 강해졌어.’
오만한 용에게서 마왕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언가 성취를 이뤄서 얻었다는 소리였다.
그래도.
“오만한 용, 최강의 존재라고 불린 존재라지만 생각보다 할 만해.”
그 순간 강렬한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어이가 없는듯한 시선과 흥미가 섞인 시선이.
최강의 생명체는 스스로를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오연하게 나를 바라봤다.
재밌군. 네놈이 혁월을 물리쳤다지? 자신감을 가질만하다.
영언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거센 압박감이 느껴졌다. 세계가 최강의 생명체의 언어에 반응했다.
조용히.
붉은색의 생명체가 하늘에 떠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붉은색의 머리카락. 보석같이 반짝이는 붉은빛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봤다.
옷은 적색과 검은색이 섞인 화려한 드레스.
나를 바라보자 최강의 생명체가 말갛게 웃었다.
“생각보다 보기 더 좋군. 이번 기회에 죽이기엔 아까운 얼굴인데.”
착.
오만한 용이 부채를 접었다.
“너, 내 수하가 되지 않겠나? 세계의 반을 떼어주지.”
“사양하지. 그 세계는 인간이 없잖아?”
“당연하지.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대부분 자기 주제를 모르고 기어 다니기 때문이다. 스스로 용자라 칭하면서 용을 죽인다. 아직 태어난지 5일도 채 안 된 꼬마를.”
증오가 들끓었다.
주변의 공기가 팽창했다. 공간이 녹아들기 시작했다. 그저 감정을 내비치는 것으로 주위의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뭐, 상관없다. 죽기 직전까지 두들기고 너를 굴복시키면 되니.”
입이 찢어지게 웃으면서.
오만한 용이 돌진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