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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271화 (271/298)

〈 271화 〉 가장 오만한 자(3)

* * *

리버스.

그것은 모든 것을 뒤바꾸는 힘.

개념이나 현상 따위도 그것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응축되는 수르트의 핵이 정지한다.

활활 타오르는 육체가 다시 축소한다.

그러나 고작 이 정도였다면 영웅들이 성자의 능력을 극찬하지 않았을 것이다.

“딜레마.”

성자가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리버스.

성자의 능력은 모든것을 뒤바꾼다. 현상이 원점으로 되돌아 간다. 그리고 반전한다.

그리고 딜레마.

모든 것이 뒤바뀌기 전에 성자는 선택할 수 있다. 무엇을 반전시키지 않을 것을.

성자는 자폭을 택했다.

핵이 다시 원상태로 복귀된다. 그리고 동시에.

쩌저저저적!

수르트의 육체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불꽃의 반대는 바로 얼음.

‘고작 이 정도인가.’

이시우는 조용히 수르트를 응시했다.

성자의 능력이 극대화되면, 산자는 죽은 자로 바뀐다. 간단하게, 오만한 용과 대치한다고 한다면, 그녀의 피부가 썩어 문드러지게 된다.

오만한 용이 성자의 힘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그러나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성자가 살아생전이라면 모를까, 지금 성자를 구성하고 있는 힘은 공허.

그럼에도 이렇게 되었다는 뜻은, 두 가지다. 하나는 상대의 저항력이 너무 강하거나.

상대가 살아 움직이는 존재와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혹은 외계의 생명체라던가.’

이시우는 검을 들었다. 수르트의 핵이 열기를 발산했다. 모든것을 얼릴 것 같은 냉기가 모든것을 불사르는 열기에 점차 녹기 시작했다.

검을 놀렸다.

몸체를 베었다. 어지간한 아파트의 10층만 한 높이가 반으로 갈렸다. 수르트라는 존재를 낱낱이 해체했다. 수르트와 핵의 연결을 끊어버린다.

­변수 발생. 핵과의 연결이 끊김을 확인. 핵을 뺏길 확률 100%. 되살아날 가능성 0%. 잔여의 힘으로 정보를 전달…….

검을 움켜쥐었다. 공허가 솟았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은 모조리 베어버렸다.

공허는 연결점을 끊는다. 잔여의 힘조차 남기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정보를 주는 것은 곤란하다.

정보가 남는다면, 세계와 공명해서 마왕에게 정보다 들어갈지도 모른다.

수르트의 몸 조각을 수천 조각으로 나눈 이시우는 핵을 잡았다.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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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신족의 핵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불꽃이 응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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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비염의 진화 재료는 모았고.’

시선을 돌렸다.

비염이 두 손으로 낑낑대며 들고 있는 레바테인으로.

불꽃에 휩싸인 검은 어느새, 룬문자가 새겨진 평범한 검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 때, 북유럽을 불태워서 지워버릴 수 있었던 신검.

그 자체로도 무시무시한 힘을 품고 있다. 게임 속에서는 이걸 얻을 수 없었지만, 생각보다 쉽게 얻었다.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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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테인

신화 속의 마검. 태양의 검. 파멸의 초래. 불꽃에 담긴 힘은 감히 세계마저도 파괴할 수 있을 정도다.

­개념의 형태로 사용할 수 있다.

­자신보다 하위의 격들을 상대할 시, 추가 공격력 보정.

­스킬 내장, 파멸의 불꽃.

­스킬 내장, 절멸의 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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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들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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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의 불꽃.

생명체라는 카테고리에 있는 존재들에게 절대적인 파괴력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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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멸의 업화.

개념이나, 현상 따위를 불꽃으로 태워버릴 수 있다. 불꽃의 개념을 강화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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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능력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훌륭한 능력은.

‘개념의 형태로 사용이 가능하다고?’

이시우는 잠시 레바테인을 쥐었다. 그러자 레바테인이 불꽃으로 화하더니 이내 이시우의 몸속으로 들어왔다.

‘이런 형식인가.’

레바테인의 힘 그자체가 추가된 형식이었다.

나쁘지 않은데.

나지막히 감탄하면서 이시우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럼 이제 그걸 얻어볼까.’

수르트는 남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힘을 비축했다.

수르트가 가진 통제력은 비상하지만, 그것보다 수르트라는 존재 자체가 가진 힘이 너무 강했다.

그렇기에 따로 힘을 모아서 하나의 불꽃을 만들었다.

레바테인.

상념으로 부르자, 레바테인이 이시우의 부름에 답했다. 불꽃이 솟아올랐다.

절멸의 업화.

그것이 이능의 형태로 화해서 땅을 불사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 공간이 나왔다.

‘찾았다.’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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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르트가 남긴 힘의 잔재

힘의 잔재라고는 하지만, 그 힘은 가히 파격적이다. 일반인이 상격에 도달할 힘이 응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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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여기서 얻을 것은 다 얻었다.

이시우는 밖으로 나섰다.

***

바깥 숲 속의 공터.

나는 비염을 불러서 핵을 건넸다.

­이걸 나보고 먹으라고?

비염이 복잡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흥분과 기대. 그리고 내가 이걸 먹어도 되나. 하는 시선이었다.

“응. 이정도면 정령왕이 될 수 있잖아.”

­그야 가능하지. 이정도의 힘이면 아그니 님처럼 될 수 있으니까…….

“그럼 그때 도와줘. 마왕 잡을 때, 네 힘이 필요하니까.”

­계약자…….

비염이 감동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솔직히 말해서 비염에게 먹이지 않는다면, 저 핵의 존재가 애매해진다.

저걸 장비로 바꾸자니 그건 너무 아깝다.

다른 사람에게 먹어서 성장시키자니, 믿을 만한 사람은 적고, 내가 믿을 만한 존재 중 불꽃을 다루는 이는 용왕뿐이다.

‘용왕은 저게 굳이 필요가 없고.’

있으면 좋지만, 굳이 투자할 필요는 없는 느낌.

­어쩔 수 없지 뭐. 계약자는 은근 칠칠찮은 대가 있으니까, 내가 도와줘야지.

비염이 그렇게 말하고는 수르트의 핵을 삼켰다.

화르르르르륵!

주변의 모든것이 불꽃으로 화한다. 동시에 공간이 일그러지며 무시 못할 존재감을 가진 존재가 나타났다.

불꽃으로 이루어진 남자가 나타났다.

아그니.

불꽃의 정령왕이다.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이 아이가 정령왕이 된 거지?

아그니가 나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나는 수르트가 남긴 힘의 잔재를 보여줬다.

“이거랑 비슷한 걸 하나 건네줬습니다.”

­……이 힘은 화염의 거인? 미안하게 됐다. 내가 예민했군. 가끔 정령사 중에 정령들을 폭주시켜서 일시적으로 상승의 경지로 가려는 이가 있기 때문이다.

“괜찮습니다.”

­원래대로라면 불의 정령이 진화할 경우, 주변에 정령력이 폭주해서 불바다가 된다. 그러나 이곳은 마수의 지역. 나쁘지 않을것 같군. 아니, 오히려 내가 한 손을 보태도 나쁘지 않겠어.

아그니의 표정이 변했다. 정령들이란 본래 자연을 사랑하는 종족이지만, 마에 속한 존재를 더 혐오스러워한다.

얼마나 혐오스러워 하냐면, 불같은 성정을 지닌 아그니는 숲 하나를 태워서라도 마인 하나를 죽여도 이득이라고 생각할 정도니까.

­……라고 하고 싶지만, 비염의 성장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쯧­하고 혀를 차면서 아그니가 주위의 방출된 힘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그것을 바로 비염에게 공급했다.

비염의 몸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내 팔만했던 몸이 점차 성장하면서, 나보다 조금 작은 정도까지 성장했다.

내면의 힘도 강해졌다. 내 영향을 받아서인지 짙은 보랏빛을 흩날리고 있었다.

­이 힘……설마 공허인가?

“공허에 대해서 아십니까?”

­……잘 모른다. 우리들의 신조차도 그 힘에 대해선 언급을 꺼리셨으니까. 다만 그 힘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했다. 모든것의 연결을 끊는 힘. 그것이 극에 달한다면 인과율(??)마저도 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과율 말입니까?”

­그래. 어쩌면 그 힘은…….

아그니가 무어라 말할 찰나.

힘이 크게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염이 눈을 떴다.

­이게 정령왕의 힘?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아직도 말괄량이인 건 여전하구나.

­아빠?

­밖에서는 아그니나 정령왕님이라고 부르라고 그렇게 얘기했거늘.

그렇게 말했지만, 아그니의 눈에는 사랑이 넘쳤다.

­내 아이가 이렇게 빠르게 클 줄은 몰랐구나. 분명 좋은 계약자를 만난 탓이겠지.

아그니가 불꽃을 연성하고는 그것을 뭉쳤다.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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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니의 정령력이 뭉친 정령석

아그니의 힘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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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이것을 비염에게 사용하면 비염이 이 세계에 계속해서 머무를 수 있을 것이다.

­헉, 이걸 나한테 주는 거야?

­그래. 그것보다 너는 신에게 어떤 이명을 받았지?

정령신.

정령왕이 태어날 때마다 그들은 이명을 받는다. 그 이명에 따라 역할이 다르며, 그들은 역할에 맞는 힘을 받는다.

비염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허무의 신염.

­크하하하하! 그런가. 신염인가. 정령신의 가장 강한 창으로 선택받은 건가. 기쁜 날이군. 내 아이가 정령왕이 된 것도. 그 이명을 얻은 것도. 아쉽군, 이대로 가야된다는 것이.

­잘가.

­허. 아이를 키워도 헛수고라더니.

아그니는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거야, 계약자.

"이제 슬슬 움직일 때가 되었는데. 뭐, 안움직여도 먼저 치면 되나."

­응?

그 말과 동시에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다.

­영국쪽에서 적룡 출현. 묵시록의 붉은 용으로 추정됩니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가자, 비염."

­오케이!

우리는 영국으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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