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0화 〉 가장 오만한 자(2)
* * *
나는 그 뒤로 이것저것 실험을 해봤다.
공허를 이용한 가면들이 얼마나 강한지에 대해서였다.
그립군. 옛 북한이 이렇게 발달할 줄 몰랐는데.
아련한 감정으로, 괴력난신의 주인인 이철주가 말했다.
어때. 너도 생각이 좀 달라지지 않았나? 이 광경을 보니.
……나쁘지는 않네.
후손의 일은 후손이 처리해야 된다고 말했던 영웅, 한석우가 답했다.
좋군요. 사람들은 일에 힘들어하지만, 눈에는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맞아. 그게 중요하지. 물이니, 식량이니 보급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이길 수 있다는 희망뿐이었다.
근데 정말 이곳에 우리의 힘을 전부 써도 되는 건가?
“네. 어차피 이곳에 건물을 놓을 거라, 산을 밀어야 하긴 하거든요.”
하긴. 산을 미는 데에 영웅만 한 것도 없지.
이철주가 고개를 돌리며 목을 풀었다.
허, 익숙해지지가 않는군. 이건 옛날 혁월이 말한 원영신과 같은 육체야.
이 육체면 전성기보다 더 강할 것 같은데. 최소 5할 이상은.
이철주가 동산을 보고는 말했다.
처음에는 가볍게 가보지.
주먹이 뻗는다. 목표는 북한에 있는 방치되어있는 동산.
우우우우웅!
주먹에 무언가가 깃든다. 괴력난신. 불가해한 힘이 깃든다.
정권.
쿠우우우웅!
한번 뻗은 주먹이 파문을 일으키며 문자 그대로 산을 밀어버린다.
아직도 힘만 무식한 건 여전해.
공허로 만든 창을 어깨에 든 채로 한석우가 말했다.
한석우가 자세를 잡았다. 산을 밀면서 튀어나오는 파편들이 그의 목표였다.
만인지적의 능력은 간단하다.
창이 곧게 뻗어진다. 놀랍도록 깔끔한 일격. 더 놀라운 일은 창에 휘감긴 찌르기가 수백 갈래로 갈라지는 것이다.
파파파파파파팡!
한 번의 일격으로 같은 힘을 수백 번 방출하는 힘. 능히 만 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었다.
저 능력으로 한석우는 상대의 숫자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홀로 존재한다면 참격 수백 개를 한 명에게 넣으면 되기 때문에.
과연……인류를 구한 영웅분들의 힘은 대단하군요.
과찬은. 근데 쟤는 왜 저렇게 되어 있냐.
이철주가 혁월을 가리켰다.
“아, 저 인간은 배신자입니다. 마왕 측에 붙어서 얼마 전까지 거악의 일원이었죠.”
뭐? 쟤가?
쯧. 저놈은 싹수가 노랗기는 했어. 무공만 있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행동을 하긴 했었는데.
나는 그 뒤로 혁월과 마인을 얼마나 조종할 수 있는지, 성자의 능력이 공허에 먹혀도 통하는지에 대해서 확인했다.
와, 저거 진짜 탐나는데? 시대만 잘 타고났으면 관리자를 밀어내고 우리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겠는걸.
육체의 능력은 기대 이하지만, 고유 능력이 이딴 능력이라니.
다른이들이 성자의 능력을 감탄했다. 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
유럽 스웨덴.
나는 현재 스웨덴과 노르웨이 국경에 있는 산맥에 도착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닌 비염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다.
내가 강해진다고 해서 도움이 될까?
비염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물론 이 몸은 귀여워서 계약자에게 힘을 주는 마스코트기는 하지만, 지금에서 강해져 봤자, 거기서 거기일 것 같은데.
비염은 강하다. 상격을 상대로도 대부분 우위를 가져간다. 신염을 가지고 있었을 때는 최상격도 나름 노려볼 만 했지만, 지금은 애매했다.
“가능해.”
그럼에도 나는 확신했다.
일찍이, 이곳은 한 재앙을 맞닥트렸다. 세계를 멸망시킬 것 같았던 화염의 거인.
영웅들의 어마어마한 희생을 내면서, 겨우겨우 물리쳤지만, 유럽은 수르트가 할퀸 상처로 굉장히 힘들어했었다.
그 뒤 수르트의 시체는 낱낱이 분해되어 각국의 영웅들이 가져갔다고 나왔지만.
‘사실은 아니지.’
핵심인 수르트의 핵은 살아있다. 그것도 조용히 힘을 기르면서.
나는 그곳에서 두 가지를 얻을 거다.
하나는 비염을 정령왕에 도달하게 할 물건을.
그리고 훗날 온전한 수르트가 되기 위해서 만들었던 물건을.
비염은 필요하다.
비염이 불의 정령왕이 된다면 정령왕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데 그 정령왕의 권능은 오만한 용을 죽일 수 있는 카운터격 능력이라 그렇다.
숲속 안쪽으로 들어갔다.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숲속의 마력이 팽창해서 온갖 괴수들이 있는 곳인 마경이라 불리는 곳.
그러나 지금의 나라면 이 지역에 있는 모든 괴수들이 모여도 이길 수 있다.
안쪽에 들어가자 썩어버린 거대한 나무가 보였다.
나는 눈으로 나무를 훑었다. 얇지만, 강렬한 마력의 줄기가 나오고 있었다.
찾았군.
계약자, 여기야?
“응.”
나는 나무 뿌리 안쪽으로 들어갔다. 워낙에 커서 사람 하나가 들어가도 문제가 없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공간이 점점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열기가 강해지고 있다.
공간은 점점 넓어졌다.
운동장의 크기를 넘어섰다.
계, 계약자? 이, 이거 엄청 위험한 거 아니야?
그에 따라 느껴지는 힘도 점점 커졌다.
“괜찮아. 내가 이겨.”
비염을 안심시키면서 안쪽으로 내려갔다. 그러기를 한참. 드디어 거대한 공동이 보였다.
계, 계약자. 저, 저건…….
공동의 아래에는 용암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거대한 불꽃 덩어리가 있었다.
화르르르르르르….
압도적인 존재감을 풍기면서.
저건 설마.
“일찍이 수르트라는 거인이 있었지. 그것은 그가 남긴 핵이야.”
그리고 지금 이 시점으로 5년이 지나면 저것은 완전한 수르트가 되어 다시 한번 세상을 휩쓸기 위해 포효한다.
염가 확인……상대는 인간종족으로 판명. 격체 상격. 내포된 힘 초월경을 넘음. 혼란. 명령어 확인. 상대할 경우 회복 기간 50년.
무기질한 기계 음성이 들린다. 이곳에 나오는 거인족들의 특징이다. 그들은 기계에 닮았다.
오로지 인간을 말살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상대 적의 확인. 상대 위험도 최상.
불꽃 덩어리가 점점 형상을 되찾는다. 거인의 형태를 가진 인간의 형태로.
스캔 결과 상대가 외신과 협력한 인류 확인. 인류 전체보다 상대가 위험함을 확인. 상대를 말살하겠다.
공허까지 스캔할 수 있는 건가. 어처구니가 없군. 나는 여명을 꺼냈다. 통로를 타고 공허가 내 몸에 흘러들어온다. 그것이 여명을 타고 검기를 이루었다.
검기.
검강보다 한 단계 아래라고 하지만, 공허의 힘을 가진 나는 다르다.
공허 자체가 강기보다 압도적인 파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불꽃이 움직인다. 어지간한 성인 장정을 세 명 이어붙인 듯한 팔이 검으로 변했다. 거대한 거검. 그것으로 내리쳤다.
화악!
나는 여명을 휘둘렀다. 공허가 내 뜻에 따라 반월의 형태로 날아가서 거검에 부딪쳤다.
카아아아아앙!
공허의 검기가 불꽃의 거검에 막혔다. 나는 눈에 이채를 띄었다.
공허는 모든 것의 연결점을 끊는다. 그래서 그것을 막는 힘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공허는 무적인가? 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다.
연결점을 끊는다.
그러나 그 연결점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힘이라면 공허에 버틸 수는 있다.
버틸 수 만 있어서 문제지.
‘역시 저 검은…….’
수르트에 대해서 유저들의 의견이 있었다.
오른팔이 검으로 변하는데 유지 시간이 짧고, 검으로 공격하면 그 공격력이 너무나도 강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르트와 관련되어있는 검이라고 한다면 레바테인이라는 검이 존재한다.
레바테인 손실률 3% 확인. 정면대결은 회피.
거인의 몸이 크게 부풀어 오른다. 불꽃이 이글거리면서 지금까지 차원이 다른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벌써 페이즈 2인가.’
나는 오른팔을 힐끔 봤다. 레바테인을 가져오고 싶은데. 공허와 맞대고도 힘의 손실률이 3%라는 건 그만한 힘이 저곳에 뭉쳐있다는 뜻이다.
후우우우우웅!
여명을 타고 공허가 뭉친다. 검기가 실이 되어 가닥가닥 뭉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내 하나의 형태로 되었다.
검강.
그리고 그것을 압축한다. 천수를 최대출력으로 올렸다. 천수의 기교가 더해지면서 공허가 다시금 얇게 변했다.
동시에.
수르트가 거대한 화염구를 수백 개를 소환했다. 수백 개의 화염구가 들이닥친다.
여명을 휘둘렀다.
수백 개의 화염구가 일검에 반으로 갈라진다.
상대의 검기가 날카로움. 사방에서 공격을 시도.
동시에 화염구가 마나와의 연결점이 끊기며, 자연의 마나로 환원된다. 공허의 진정한 효능은 마법을 상대할 때에 나온다.
그러나 수르트의 공격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위에서 화염의 새가 수백 마리가 나온다. 아래에서 용암이 들끓으며 그곳에서 수많은 도마뱀이 나왔다.
포병 도마뱀.
불꽃을 던지는 특징이 있다.
물량빨이라는 건가. 나는 입을 비죽였다. 물량이라면 나야 환영이다.
나는 세계를 열었다.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동시에 두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만인지적의 능력을 가진 한석우.
한석우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상황을 파악했다.
내가 잡놈들을 맡지.
한석우가 공허의 창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번의 찌르기. 그것으로 포병 도마뱀과 불새를 모조리 없애버렸다.
가면을 쓴다.
광익을 모방한 가면. 등뒤에서 공허를 담은 날개가 솟았다.
그대로 여명을 쥐고, 수르트에게 돌진했다.
변수.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공격 수단으로 공허 사용자에게 타격 불가.
수르트가 검을 한번 더 휘둘렀다.
서걱.
무언가 완전히 잘리는 소리가 들림과 함께, 팔이 갈라졌다.
“비염! 보관해 놔!”
비염에게 외치고 나는 검을 휘둘렀다. 수르트가 몸을 점점 불리고 있었다.
개체명 수르트. 명령에 따른 명령어 수행. 자폭, 시전.
생각보다 자폭하는 타이밍이 빠르다.
‘지금은 좀 곤란한데.’
수르트를 잡는 방법은 쉽다. 핵 체로 공허를 가르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이곳에 온 보람이 없다.
벌써 세상에 다시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나.
나는 세계를 열었다. 한석우를 넣고, 다른 한 사람을 꺼냈다.
“성자님. 부탁합니다.”
얼마든지요.
성자가 여상하게 웃었다.
리버스.
그리고 모든것들이 반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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