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3화 〉 원영신(2)
* * *
무신은 음울한 눈으로 이시우를 바라봤다.
짙은 보랏빛의 힘을 흩날리는 영체.
눈으로 보니 알 수 있었다. 저것은 불완전하다.
하지만 저것은 명백한 원영신이었다.
‘어떻게……?’
저것은 마왕도 가지지 못한다. 오로지 무에 미친 존재가 수 많은 업적을 쌓아야 한다. 또한, 비인도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자신의 대부분을 물려받은 ‘제자’를 문자 그대로 갈아버려야 나올 수 있는 힘. 혁월에게 그 대상은 협회의 얼굴인 멸망의 번개, 김은정이었다.
혁월은 자신에게 향하는 마법들을 쳐냈다. 그리고 정권. 티타니아와 에니스가 만든 결계가 산산이 조각나며 비산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혁월도 멀쩡할 수 없다. 정교한 결계를 부수는 것은 그에게도 무리가 컸다. 삼왕이라는 존재들과 대치하면서 커다란 틈을 보인 것. 용왕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어지간한 마법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왼팔이 용왕의 불길에 녹기 시작했다.
왼팔은 당분간 사용하지 못할 중상. 그러나 상관없다.
어차피 오베론이 죽어가는 이상, 그에게도 이 전장은 바람직하지 않으니까.
그 순간. 아래에서부터 섬뜩한 느낌이 왔다. 결계를 가르고 오는 보랏빛의 검기. 세계를 가를 듯이 질주하는 검기가 혁월에게 향했다.
‘무슨…….’
혁월은 보자마자 알았다. 저 공격은 위험하다. 본능적으로 방어를 준비했다. 저 기술은 무엇인지는 모르나, 그의 감이 저 공격은 회피가 불가능하다고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오른손을 뻗었다. 하늘의 공간이 굴절되기 시작한다.
무신. 혁월은 무공으로 하늘에 선 남자였다. 별자리들이 일그러지며 그곳에 힘을 담았다.
그리고 검기와 부딪치는 순간. 혁월은 깨달았다. 저것은 방어할 수 없는 공격이라고.
‘내준다.’
혁월은 최대한 몸을 비틀었다. 왼팔이 검기에 맞으면서 날아갔다. 그러면서도 모골이 송연해졌다.
저 검기를 왜 막으려 했는지 깨달았다. 극한에 다다른 기교. 그것이 무언가와 겹쳐지면서, 저 공격은 절대필중이라는 힘을 담게 된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안녕. 죽일 작정이었는데, 살았네.”
팔 한쪽을 부여잡으며, 혁월은 물었다.
“원영신을 어떻게 얻었지?”
“내가 가르쳐 줄 것 같아?”
“가르쳐 준다면 선선히 물러나겠다.
이시우는 혁월을 바라봤다. 그것은 광기였다. 무?라는 학문을 배우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목숨을 잃을지라도, 조금이라도 깨달음을 얻겠다는 광기.
이시우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윤채린이 허탈하게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곤충들은 거의 막아내었다. 그렇다면 혁월이 저렇게 자신만만해할 이유는 뭘까.
“미국에 있는 30여 개에 도시. 그곳에 우리는 수 많은 마력 폭탄을 만들고 설치했다.”
“그걸로 협박하려고?”
“원영신. 그것에 대한 일말의 단서를 얻을 수 있다면 나는 선선히 물러나겠다. 내 모든 것을 걸고 맹세하지.”
맹세.
그것을 어기는 순간 걸은 힘과 격이 무너진다.
그러나 거악 쯤 되는 존재라면 그 맹세를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 시간만 있다면. 저 말은 진심이라는 소리다.
“원영신에 대한 거라…….”
이시우는 말을 늘리며 상대를 가늠했다.
무신은 여기서 죽여야 한다. 삼왕의 상태를 살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무신은 왼팔을 잃었다.
“말로 하기는 좀 힘들지.”
여명에서 짙은 보랏빛이 솟았다. 그 광경을 보고 혁월은 소리 없이 웃었다.
“그렇지. 진정한 무에 도달하려면 스스로가 도달해야 하지. 그것이 설사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지라도.”
광증을 뿜어내며, 혁월이 손을 뻗었다. 공간이 일그러지면서 무형의 파동이 이시우에게 쏟아졌다.
‘공격을 흘린다.’
이시우는 가면을 썼다. 평정의 가면을. 그리고 천수의 출력을 최대치로 올렸다.
무신과의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정신과 기교의 싸움이다. 이연아는 삼왕을 감당하지 못하지만, 무신은 삼왕을 감당한다. 그러나 무신은 이연아를 감당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이연아의 기교가 너무나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시우는 이연아 만큼은 아니지만, 이연아를 제외하면 기교로 자신을 따라올 자가 없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무형의 파동을 검으로 막아섰다. 혁월이 돌진한다. 주먹을 휘두르자, 그 공간 일대가 붕괴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화악!
생명의 마나가 일대를 감쌌다. 용왕이 인간의 형태로 변하면서 무신을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동시에 보랏빛의 마법진 수백 개가 무신을 포위했다.
검을 들고. 엘도르에 모든 공허를 때려 박았다. 공허가 넘실거린다. 동시에 공허가 차오른다. 원영신의 권능. 아직 완성된것이 아니라 권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음이 아쉬웠다.
엘도르와 여명을 교차시켜서 휘둘렀다. 무신은 회피했다. 그러나 이런 싸움에서 공격을 회피한다 함은, 다른 공격들을 허용한다는 뜻이었다. 티타니아의 초록빛의 광선 수십 개가 무신의 몸에 명중했다.
“그 힘! 원영신의 권능인가? 아니, 아니지. 그랬다면, 굳이 둘로 나눠서 우리를 사냥할 필요가 없다. 육신을 포기한 대가로 얻는 힘의 회복……원영신은 그 불길한 힘조차도 회복하는 건가.”
그럼에도 혁월은 웃었다. 손을 뻗었다. 승산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숫자로 따지자면, 1%의 확률 아래. 그러나 혁월은 그럼에도 웃었다.
일수를 나눌 때마다, 그의 능력이 성장하고 있다. 지금껏 억눌렀던 깨달음이 그의 육체를 상승의 경지로 이끌고 있었다.
“괴물같은…….”
티타니아가 질린 듯이 말했다. 이시우는 혁월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았다. 무신은 지금도 성장한다. 그러나 이시우는 그 무신을 보면서 성장했다. 원영신이 점점 완성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브레스를 먹일까?
저 놈이 지금 요정왕에게 미쳤어도, 그것까지는 허락하지 않을걸.
에니스는 차분하게 상황을 관조하면서 전장을 조율했다.
티타니아, 요정왕이 아직 그걸 안 썼지?
……네.
그럼 일단 두고 보자. 혁월이 도망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바로 조질 준비 하고.
무신은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시우의 저 모를 힘도 완성하면서, 성장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너에게는 아직 안 보여줬군. 내가 만든 뇌령신공을 무엇을 모티브로 했는지.”
무신이 주먹을 쥐었다. 검은색의 번개가 그의 몸에 튀었다. 번개를 두른 뇌신이 공간을 가로질렀다.
쩌어어어어엉!
검과 발이 부딪쳤다.
“역시 그 힘. 멸망의 번개를 지우지 못하는군. 이 힘이면 대항할 수 있겠어.”
이시우는 말없이 무신을 바라봤다.
‘할 수 있을까.’
천수로 몸을 관조했다. 그리고 나온 답. 할 수 있다. 무신의 몸이 공간을 가로지르고 멀리서 나타났다.
직후, 그 앞에.
이시우가 나타나며 검을 휘둘렀다.
“무슨! 설마 벌써 원영신에 익숙해졌다고……?”
원영신의 내장된 권능.
원영신은 육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영체. 그렇기에 가능한 힘. 마나가 있다면 공간을 가로지르고 이동할 수 있다.
무신은 반사적으로 손을 가운데에 모았다. 별자리가 일렁이며 모은 손 중앙에 모였다. 그것이 검은 번개와 결합하면서 극단적인 힘이 모였다.
“그러나 아직 약하다!”
공간이 일그러진다. 이시우는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무신의 기운이 좀 더 우세했다.
공허는 강하다. 그러나 이시우는 그 힘을 다루기 시작한 지 고작 1주일. 무신이 작정하고 쓴 오의에 대항하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이시우의 몸이 힘의 반발로 튕겨 나갔다. 동시에 원영신이 서서히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육체가 보였다.
무신은 그 순간 승리를 확신했다. 파직. 공간을 도약하는듯한 속도로 무신이 움직였다. 검은색의 번개를 두른 정권.
“나의 승리다!”
무신의 정권이. 이시우의 배를 관통했다.
격렬한 고통이 몸을 잠식했다. 서서히 육체가 죽어가는 기분을 느끼며.
이시우는 웃었다.
“잡았다.”
이시우는 한 손으로 혁월의 육체를 잡았다.
그리고 그의 머리 위에서 검은색의 왕관이 불길한 빛을 흩날리고 있었다.
“……이런, 이런 능력이 있다고?”
무신의 눈동자가 경악에 서린다. 이시우의 육체가 마치 시간을 되돌리듯이 돌아갔다.
동시에 이시우의 검에 실린 힘이 강해지고 있다. 근처이기에 무신은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방어를 훼손한 이질적인 힘도 모조리 재생했다는 것을.
‘이게……가능한가.’
이것은 마신과 영원을 꿈꾸는 자가 추방한 외신들의 힘이지 않은가.
들은적이 있다. 정숙한 처녀가 말했던 영원한 꿈. 가장 우둔한 아버지만이 내릴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시간과 공간. 그리고 정신. 그 모든 것에 간섭하는 힘이 존재한다고.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렸다. 불길한 검은색의 왕관 속에서.
은발의 붉은 눈을 한 여자가 자신을 보며 키득거렸다.
어리석기는. 마신도 건드리기 싫어한 아버지의 사도를 건드리다니. 너는 정말 멍청하구나.
정숙한 처녀가 차원 너머로 자신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네놈 설마 사도가…….”
직후, 공허를 머금은 검이 내리쳤다.
경악어린 표정을 한 혁월의 머리가 땅으로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