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화 〉 탐욕(2)
* * *
요정여왕 헬레나.
그녀의 죽음은 마왕의 손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인간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모두가 마왕과 대적하러 간 시간. 세계수를 다루는 요정이 거치적거린 마왕은 자신의 권능으로 요정 여왕에게 적대적인 존재를 찾았다.
영웅들을 배출해낸 명가였다.
그 가문은 마왕에게 힘을 받는 대가로 요정여왕, 헬레나를 죽였다.
그 결과 요정왕은 미쳐버렸고, 요정족들은 세계수의 의지에 따라 티타니아를 요정여왕에 올려놓고, 겨우겨우 추수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가문은 지금 미국에서 수 많은 영웅을 배출해낸 가문이었다.
가문에서 가장 만들어낸 걸작, 더 원. 현실의 법칙을 조작하는 그 영웅은 아메리카의 퍼스트 원이었다.
‘의미 없는 일이다.’
누군가가 복수에 대해 말했다. 복수의 끝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헛소리.
힘이 없는 나약한 자의 말이다. 복수를 이룰 힘이 없는 자의 목소리일 뿐. 복수는 달콤하다.
오베론은 입을 비죽였다. 벌레가 웽웽거렸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베론의 뒤.
여섯 명의 충익들이 그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그레고리가 아쉽군.’
그는 바퀴벌레의 특징을 타고난 마물이었다.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약했지만, 왕에 대한 충성심이 가장 강하고 생존능력이 뛰어났기에 이시우를 해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거라 생각해서 보냈다.
‘이시우……너무 빨라.’
고작 1년이다.
인간족의 최약체였던 그가 자신의 턱밑까지 올라온 시간.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이미 벌어진 것. 그러나 이미 비슷한 존재가 하나 있다.
마왕.
그렇기에 오베론은 대응할 준비를 했다.
“요정족들은?”
모두 오벨리스크 아카데미에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용족들이나 공허족도 거기에 있을 터. 나쁘지는 않았다.
오베론은 요정족을 해하기 싫었다.
삼왕.
그들은 강하지만 두렵지 않다. 오베론은 다른 거악들과는 다르게 본신의 무력이 약하다.
그가 자신의 사도들에게 힘을 더 투여한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자신은 전투에 재능이 없다. 그렇기에 자신의 아들들에게 전투에 임한다.
그렇게해서 그는 일곱의 아들을 만들었다. 세 명은 초월경 초입에 이르렀고, 셋은 최상격에 끝자락.
‘그리고 무신도 있지.’
다만 아쉬운 점은 오만한 용과 정숙한 처녀, 질투의 뱀이 없다.
정숙한 처녀가 히어로 아카데미에서 소식이 끊겼다고 하지만 그는 걱정하지 않는다. 마왕과 가장 가까운 그녀는 누구와 싸워도 절대로 지지 않을 존재니까.
질투의 뱀은 바다를 거닐며 대륙을 씹어먹는 존재. 걱정이 사치다.
오베론은 허공을 거닐었다. 허공을 걸을 때마다, 그의 육체가 변하기 시작했다. 입가가 찢어지고, 눈이 가느다랗게 변했다.
벌레로 만들어진 육체가, 조금씩 허공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발 아래.
축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영웅명가에서 주최하는 축제. 빌어먹을, 씹어먹어도 부족한, 존재들이 자신들의 영웅들을 기리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 축제.
오베론은 이를 악물었다. 헬레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 저 축제는 다른 축제로 바뀔 것이다. 자신들에 의해서. 요정족을 배신한 인간들을 죽이는 축제로.
헬레나의 넋을 기리기 위한 장소로.
“가자.”
증오가 섞인 목소리.
오베론의 말에.
억 단위가 훌쩍 넘어가는 벌레들이 움직였다.
백 만명의 인간의 목숨이면 헬레나의 마음도 조금은 풀릴 것이다.
***
아무런 전조 없이 나타났다.
그것들은 검은색의 폭풍과 해일처럼 보였다. 검은색의 폭풍들과 해일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뭐야, 저거 폭풍이잖아?”
“영웅들은 뭐 하는 거야! 축제에서 폭풍이 다가오는데 아무것도 몰랐어!? 다들 대피하라고 해!”
대피하는 시민들.
“……저게 폭풍이라고?”
“미친, 벌레들이잖아! 전부 소량이지만 마나를 품고 있다! 모두 조심해!”
영웅들은 경악했다.
수 없이 많은 벌레가 군집을 이루어 폭풍을 만들어 도시로 향하고 있었다.
폭풍이 지나가는 곳에 모든 생명체가 사그라졌다. 폭풍이 지나는 자리는 마물이나 짐승들의 뼈 따위 밖에 남지 않았다.
검은색의 해일과 폭풍은 마치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것 같았다.
“전부 전투 준비! 남은 애들은 모두 요새화에 집중해라!”
도시 내부에 있는 방어 마법을 가동하고, 시에서 나눠주는 유물과 아티팩트들을 무장한 이들이 도시 외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은 절망했다.
“지저스…….”
셀 수 없이 많은 곤충.
그리고 그들을 통솔하는 것같이 보이는 강한 마력을 지닌 곤충들이 보였다.
“버텨라! 버티면 지원군이 올 것이다!”
한 영웅이 외쳤다.
“우리들은 자랑스러운 미국인들이다! 우리는 버틸 수 있다!”
그 말을 직후.
영웅은 대열에 합류하는 척하면서 도주할 준비를 했다.
추악한 것.
오베론이 벌레들을 조종해서 그의 살점을 뜯어먹기 직전.
수 많은 용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용들이 입을 벌렸다. 막대한 마나가 입으로 밀집된다.
막대한 마나가 용왕의 의지에 따라 밀집된다. 하나하나 원소의 입자를 입히고 그것을 토해냈다.
용의 숨결.
가지각색의 광선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모든 것을 불사르는 열기가, 곤충들을 녹였다.
공허족이 그 옆에 등장했다. 지팡이를 휘두른다.
허공에서 공간이 찢어지며, 그곳에서 수없이 많은 언데드족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벌레들의 중심에서.
번개가 부풀어 올랐다. 번개가 그물처럼 사방으로 엉켜가면서, 대지를 뒤엎는다.
대마법
뇌신의 심판
번개가 질주한다. 반경 500m 이내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을 태우며 그 속에서 하나의 인형이 보였다.
“안녕.”
이시우가 자신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왔는가.”
그레고리가 죽었을 때부터. 오베론은 짐작하고 있었다. 예지능력을 지닌 이시우가 반드시 이곳에 올거란 사실을.
그리고 그라면 혼자 오지 않을 것이다. 최소 삼왕. 그리고 이연아라는 의문의 존재도 왔겠지.
“너무 추하지 않아? 헬레나의 죽음에 관여를 한 영웅의 가문이라는 이유로 도시 하나를 집어삼키는 것은?”
“헬레나의 죽음에 방조한 인간들의 잘못이지.”
오베론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직도 헬레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원통하다. 나를 죽인 이들에게 복수해줘. 나를 사랑했잖아?
오베론은 이시우를 바라봤다. 그가 직접 나서는 것은 좋지 않다. 계약에 어긋나는 행동이니, 삼왕이 개입할 거다.
그러나 삼왕이 저쪽에 있다면 이쪽에도 무신이 존재한다.
“내가 이시우를 맡겠다.”
“상관없다. 다만, 죽이지만 말도록.”
“……놈이 그렇게 중요한가?”
“중요하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는 그릇이니까.”
오베론은 무신이 무언가를 쫓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마왕의 뜻에 반할지도 모를 일이란 것도.
그러나 오베론도 마왕을 따르지 않는다. 그가 필요한 것은 오로지 인간종의 죽음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부하를 보내줄까?”
오베론의 말에 무신이 소리 없이 웃었다.
“먼 옛날 마법과 이능은 재능이 있는 이들의 수혜였지. 무공은 재능없는 자들이 제 한 몸을 지키기 위한 공부였다.”
시대가 바뀌어도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다르게 말하면 무공만큼은 많은 이들이 공부했다.
그리고 그들은 수 없이 많은 무공을 발전시켰다.
“천 년의 무공이 나를 신이라는 호칭을 만들었다. 그런 내가 저런 오만한 것들을 두려워 할 리가.”
용왕은 강하다. 공허족의 왕은 영악하다. 티타니아는 마인들에게 치명적이다. 그러나 무신은 그들을 억압할 무력이 있다. 다른 거악들과 다르게 마왕의 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그는 대가를 받았다.
“그쪽에서 오지 않는다면 이쪽이 먼저 가지.”
무신이 도약했다. 쾅! 그가 도약한 자리에 크레이터가 생기면서 그가 질주했다.
용왕과 공허의 왕이 그를 하늘로 이끌었다. 무신은 웃으면서 하늘로 향했다. 직후 하늘이 무너질듯한 소리를 내면서 적색과 하얀색의 색으로 가득 찼다.
힘의 진동이 땅까지 울린다.
초월경에 이른 움직임으로 두 명이 이시우를 감쌌다.
“두 놈은 내가 막을 수 있다.”
검은색의 번개가 내리쳤다. 김은정이 하늘을 힐끔거렸다.
“신경 쓰이면 가셔도 좋습니다.”
“……스승이 어째서 거악과 같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저 전장은 내가 낄 수 없는 전장이다.”
김은정이 이를 물고는 답했다.
“이 전장이 길어지는 것은 좋지 않아. 무엇보다 시민의 희생이 너무 커져. 그러니 이게 맞다.”
“그럼 맡기겠습니다.”
이시우는 전장을 둘러봤다.
오베론의 아들들은 공허족과 용족, 요정족의 강자들에게 붙들려있다. 강자들 대부분은 벌레를 죽이는 데에 투입되었다. 시간만 지나면 승기는 이쪽으로 기울어진다.
오베론이 없다면.
“네 상대는 나다.”
“……네가 강한 것은 인정하지만 홀로 나를 상대하겠다고?”
“안될 정도까지는 없잖아?”
이시우는 강하다. 그러나 강함은 언제나 상대적. 오베론이 아직은 다른 거악들보다 약하다지만, 이시우의 상대는 아니었다.
이시우가 검을 나직이 뽑았다. 짙은 보랏빛을 흩날리는 검, 여명.
여명은 이시우가 공허를 깨우치면서 색이 변탰다. 짙은 보라색, 공허의 색으로.
이시우가 검을 휘둘렀다. 공허가 검을 감쌌다.
“그 힘은?”
오베론이 이시우의 힘을 파악하기도 전에 검이 움직였다. 가히 파괴적인 힘을 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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