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화 〉 탐욕
* * *
널찍한 책상이 있고, 그 주위에 세 명의 존재가 있었다.
삼왕.
요정여왕과 공허의 왕, 용왕.
이 자리에 모인 것은 티타니아의 호출이었다.
‘어쩌지.’
이시우는 여자가 많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필멸자. 요정왕의 힘까지 얻은 이시우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수명에 제한이 사라진다.
그것이 바로 세계수와 가장 가까운 자의 수혜.
그러나 눈앞에 있는 존재들은 다르다. 공허에서 태어나, 가장 뛰어난 마법적인 종족인 공허족의 수장.
태어나면서부터 그저 나이를 먹는 것만으로도 중격의 영웅들을 가볍게 이기는 용족.
그 용족중에서도 가장 특별하다고 일컬어지는 신룡족의 용왕.
저 둘도 불멸자다.
즉, 저 둘은 위험한 경쟁자라는 이야기다.
“이시우. 언제까지 구속할 건가?”
하메르가 턱을 괴었다.
“구속이라뇨. 저희는 신뢰로 쌓은 부부 관계입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여자가 많던데.”
“그들은 필멸자니까요.”
티타니아는 에니스와 하메르를 봤다. 에니스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웃고 있었고, 하메르는 그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알지? 우리에게는 뒤가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왕을 막고 그 뒤에 올 그 ‘존재’를 저지해야 해.”
하메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신.
우주적인 존재.
티타니아는 그 목소리에서 오래된, 옛 대륙에 대해서 떠올렸다.
인간이 세운 제국이 있었고, 왕국들이 있었다.
요정왕 오베론과 요정여왕 헬레나가 있었다.
분쟁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평화로운 시대였다.
그 존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대적불가의 마신.
그 존재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행성을 파괴했다.
일격.
요정족들의 모성이 파괴하는 데에 필요한 것은 고작 일격이었다. 그 과정에서 요정족은 대부분 죽어버렸다.
요정왕과 여왕이 목숨을 걸고 이십월까지 있던 요정들이 십월이 될때까지, 마법으로 일시적인 공간을 만들고, 이 세계로 떠돌 때까지.
많은 희생이 있었다.
이곳에 신이라 불리는 천신과 교섭으로 마왕을 적대하는 조건으로 이 행성에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의 뒤를 이을 후손은 필요하지.”
후손.
하메르는 자신의 모든것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후손이 필요했다.
적들은 강하다.
단순하지만 가장 강력한 힘을 품고 있는 묵시록의 붉은 용과 세계와 공명하는 힘을 가진 마왕이 있다.
무신이라는 존재도 허투루 볼 수 없다.
“에니스. 네가 말했지? 요정왕과 관계를 지닌다면, 높은 확률로 나와 요정왕의 특성을 지닐 거라고.”
“어~요정왕의 공허를 같이 연구하면서 알았어. 그가 가진 외신들의 힘은 오롯이 그에게 종속되어 있더라~. 만약 우리가 그의 자식을 갖게 된다면 우리의 자식은 공허의 특성을 높은 확률로 얻게 되겠지.”
“…….”
티타니아는 그 둘의 말에 침묵했다. 만약 이시우라는 남자가 자신의 부군이 아닌 하메르나 에니스의 부군이라면, 자신도 굉장히 혹했을 이야기니까.
“용신족과 공허를 품은 요정왕…이 둘이 결합하면 어떤 결과가 올까.”
하메르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뛰어나다. 그렇다고 해서 요정왕을 얕보지 않았다. 에니스가 말해주는 기록으로 그녀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공허는. 자신의 상상보다 훨씬 더 위험한 능력이다.
“공허는 말이지. 모든 연결점을 끊어버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우리가 수백 년에 걸쳐서 결계를 만든다고 한들, 공허 한 줌으로 그게 무너질 수 있다는 소리야.”
공허를 연구하면서 에니스는 확실했다.
저것은 절대적인 공격력을 가진 창이다. 저것을 공격으로 한다면 무엇이든 꿰뚫어 버릴 테고, 공허로 방어한다면 무엇이든 막는다.
막는다는 행위 자체를 허락하지 않는 힘이었다.
그렇다면 이시우의 힘은 가장 날카로운 창이 되어서 마왕의 심장에 꽂힐 비수.
“하지만 상대가 바보가 아닌 이상 어떻게든 이시우를 죽이겠지.”
“용왕이라면 가능하다. 자신의 목숨을 도외시하고 죽인다는 선택지를 고른다면 말이야.”
그래서 이시우를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만약에 이시우가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삼왕과 관련된 세력 전부가 그를 지키려고 노력하겠지만 죽는다면?
“자손을 낳아야 한다. 최소한 나나 에니스, 티타니아. 이 세 명이.”
공허의 단점이었다.
다른 이들은 안된다.
그들은 공허를 품지 못한다. 오롯이 세 명만이 공허를 품은 자식을 견딜 수 있다.
“후손을 낳는 것이 두렵다면 내가 받아도 좋다.”
하메르는 자신의 후손을 상상했다. 공허의 힘을 품은 신룡족.
방어가 불가능한 절대의 힘으로 브레스를 뿜는 용.
상상만해도 흥분된다.
“나도 가능해.”
에니스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공허로 마법을 구상할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그 힘은 어떨까? 어쩌면 마왕마저도 혼자서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태어나지 않을까?”
“너도 궁금하지 않은가? 공허의 힘을 다루는 요정. 아니, 요정족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종족이니, 공허를 품을 수 없을 가능성도 있군.”
“그렇네~그러면 정말 곤란한데. 마왕을 대비해서 하루라도 빨리 후손이 필요한데.”
에니스와 하메르의 말.
전부 일리가 있다. 세계는 멸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마왕이 부활하고, 그가 대적불가의 마신을 부른다면.
모든것은 끝난다.
“…….”
티타니아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미국에서 거창한 환영식을 끝내고.
나는 미국 아카데미로 들어왔다.
오벨리스크 아카데미
대학교가 연상되는 넓은 부지. 그 중앙에는 첨탑 하나가 하늘을 꿰뚫듯 솟아 있었다.
“어떤가. 꽤 괜찮지 않은가?”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하메르가 말했다.
“괜찮네요.”
“맞아 맞아. 오벨리스크 아카데미는 꽤 괜찮지. 우리 영웅전문학교도 꽤 멋스러운데, 언제 한번 놀러 와라.”
“시간 되면 갈게.”
“진짜지?”
에니스가 내 말에 웃었다.
“그대는 에니스와 말을 편하게 하면서, 나에게는 말을 편하게 하지 않는구나.”
“……편하게 할까?”
“존댓말은 보통 존중하는 말로 하지. 나는 그대에게 존중보다는 이해를 받고 싶구나.”
“…….”
말투가 묘했다.
아니, 당연하기는 했다. 하메르는 용왕이지만, 나는 요정왕이니까.
다만, 나한테 너무 친근하게 대했다. 마치 친구라기보다는 연인처럼 내 곁에 서 있었다.
“아, 오벨리스크의 3학년 학생 중 그대를 보고 싶어하는 인물이 있다. 학생회장하고 잠깐 이야기를 나눠 줄 수 있나?”
“네, 그 정도야.”
아카데미를 둘러보고 사인이나 사진 몇 번을 찍었다. 그리고 스트리머라 불리는 이들도 같이 나를 찍었고.
와, 쟤가 더 원이 그렇게 극찬한 애임?
ㅇㅇ인류의 미래라고 존나 극찬했음. 근데 쟤 나이 생각하면 지금 최상격에 근접했다는데 ㄹㅇ 괴물임
wwwwwwwww아야네 상이랑 같이 있는 모습, 보기 좋네요. 결혼하면 일본에 한 번 더 빅 찬스?
쟤는 진짜 귀화시켜야 한다. 한국에 영웅들만 몰려 있어서 사건 터지면 의뢰하는 거 시간 너무 오래 걸려. 한국같은 좁은 땅 말고 미국 같은 넓은 땅은 저런 존재가 많이 필요하다고!
중국인들은 이시우 씨를 환영합니다.
짱깨는 꺼지고요, 제발.
그리고 뉴욕 타임즈랑 인터뷰도 하고.
“혹시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연예 쪽으로.”
“……어떤 질문인지 듣고요.”
“이시우 씨가 사귀고 있으신 분 중 하메르 님이 계시다는 소식이 있어서요.”
“헛소리네요.”
이상한 정보를 물어온 기자가 있었지만.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우리는 회의실로 왔다. 회의실에는 많은 인원이 있었다.
‘아니, 인원이라고 하기엔 애매하나.’
공허족, 요정족, 용족.
그리고 삼왕. 여기에 내가 미리 선별해둔 인원들까지. 윤채린, 윤승하, 임나연, 김하린. 협회에서 온 김은정 팀. 그리고 탑에서 온 이연아랑 아이네도.
“이 정도면 꽤 할만한가?”
“할만하지. 그런데 너 언제 그렇게 쌔졌냐.”
“후후, 그동안 이시우 씨랑 엄청난 연습을 했거든요.”
아야네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거만하게 웃었다.
“아야네.”
“……히끅. 네, 네?”
이연아가 조용히 아야네를 부르자, 아야네가 식은땀을 흘렸다.
“사, 사, 사실, 이, 이연아 님이 지, 지도해주셨어요.”
벌벌떠는 목소리.
아야네는 강해졌다. 엄청 강해졌다가 작은 연아에게 으스대다가 큰 연아한테 대련을 명목으로 죽을 때까지 맞은 다음 저렇게 변해버렸다.
근데 웃긴 것은 거만한 행동이 계속해서 툭툭 튀어나온다.
나는 좌중을 둘러보았다. 오늘 탐욕의 벌레를 친다. 그것을 말한 만큼 주위의 인물들이 불안한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거악을 두 번이나 물리쳤지만, 그때마다 막대한 희생이 있었다.
“다들 조용.”
하메르가 말하자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몇몇은 식은땀을 흘리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주로 용족들이.
하메르가 주변을 조용히 시키고 나를 바라봤다.
‘설마 이거 나보고 말하라는 건가.’
에니스가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티타니아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각기 다른 종족들이다. 이러면 마치 내가 모두를 대표할 수 있는 대표자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는데.
‘뭐, 상관없나.’
인간들이라면 분열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요정족이나 용족, 공허족은 다르다.
요정족은 개인보다 집단을 위하고, 용족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자기의 동족을 끔찍하게 아낀다.
공허족은 왕이 선언한 계율을 지키지 못하면 공허속으로 돌아가는 종족이다.
“거악은 저희의 동족들을 살해했습니다. 검은양은 일본에 거대한 상처를 내었고, 마수왕은 중국에 수없이 많은 이들을 살해했죠.”
내가 말을 꺼내자 모두의 눈이 집중되었다. 불안한 시선이 느껴졌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머릿속으로 연설들을 떠올렸다.
“그래서 저희는 이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먼저 공격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 튀어나와 저희의 안전을 위협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홀로 백만대군을 상대하겠다는 검은 산양도. 산만큼 거대한 마수도 저희를 막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상대로 두 번이나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도 승리하죠.”
내가 말을 끝내자 더 원이 호응했다.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와아아아아아!!”
요정족들이 맹렬하게 호응했다. 나는 담담한척하려고 했지만, 속이 불에 타듯 뜨거웠다.
다음 부터는 연설같은 건 시키지 말아 달라고 강력하게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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