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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255화 (255/298)

〈 255화 〉 귀환

* * *

나와 이연아의 내기가 성사되는 일은 없었다.

그보다 먼저, 이연아가 제국에 볼일이 있다고 빠르게 사라졌기 때문이다.

“먼저 일 좀 보고 싶은데.”

“무슨 일?”

“복수 때문에요.”

복수.

이연아가 서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번에 말했었죠? 질투의 뱀을 죽였는데, 나중에 뒤통수 친 것들이 있다고요.”

“응.”

“그 이유가 이곳에 남아서 남은 생을 꾸리고 싶다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거든요. 기득권인 그들 처지에서는 굉장히 불안했겠죠.”

문자 그대로 산을 들어 올리고, 바다를 가르는 이들이었다.

다른 이들의 죽음을 밟고 올라가, 최상격에 도달했던 이들이 무려 다섯이 넘었다.

그러나 이연아는 이곳에 살아남기 원하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먹을것도 적고, 즐길 것도 없었다. 인구수는 고작 몇만 명 남짓한 곳. 그곳에서 살아가려면 평생을 개처럼 일만 해야 할 것이다.

이연아 입장에서는 그들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들을 존중해줬다.

“현실이 어려웠던 이들에게는, 혹은 이곳에서 가정을 꾸린 이들이 등장하면서 어느 정도 예상했었지만……. 아, 혹시 중국인들하고 친해진 사람이 있나요?”

“중국인들? 아니, 없는데.”

근처에만 가도 샤오메이가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어서, 일부러 거리를 뒀었다.

그러다가 빵즈­거리면서 자기들 무시한다고 화냈었지.

“그건 좋은 소식이네요.”

이연아가 서늘하게 웃었다.

“뭐, 아시다시피 여기 현지인들 엄청 약하죠?”

나는 이연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도왕국의 여왕이 가장 마법을 잘 다룬다고는 하지만, 제약당한 상태에서의 나도 이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비록 질투의 뱀이라는 존재가 이 탑에 머물러서 강해졌다고는 하나, 이미 토벌당했다 하면, 그와 비슷한 초월경이나 최상격의 인물들이 가득했는데, 그정도의 인원들이 심각한 다쳤다고 해도 진다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마도 내부의 배신자가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 짱깨 새끼들이…….”

이연아가 욕을 하다가 슬쩍 내 눈치를 보고는 말을 바꿨다.

“그놈들이 배신을 해서. 하여튼 중국 놈들은 믿으면 안 돼요.”

“그래?”

“아무튼, 그래서 그때는 진짜 위험했거든요. 특히 제국의 귀족들과 마도 왕국의 여왕이라 거들먹거리던 년…….”

그리고는 슬쩍 나를 바라봤다.

“요정족들은 내버려둘게요.”

“심각한 짓을 저질렀던 애들이라면 벌해도 돼.”

“으음, 그렇게 말하니 좀 끌리긴 하는데.”

이연아의 눈이 휘었다.

“시우 오빠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오빠라.

나는 낯선 호칭에 잠깐 고민했다. 이연아의 나이는 60이 넘는다. 그런 이에게 오빠라 불리는 것은…….

“그럼 기득권을 치우고 나서 뭘 할 건데?”

“후계 애들한테 자리 물려주게 해야죠. 이상하게 거기 기득권층은 정말 무능한데 정치하고, 사람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정말 최고인데, 후계자들은 정말 똑똑해서.”

이연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팔짱을 꼈다.

“한 일주일? 어디서 에 있다 오세요. 그럼 제가 다 알아서 해드릴게요.”

***

이연아가 그렇게 말해 놓은 한 달 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요정족을 제외한 두 세력은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있었고, 우리는 현재 9층의 등반을 앞두고 있었다.

“……이게 이렇게 빨리 오를 수 있는 건가.”

멍한 표정으로 이연아가 중얼거렸다. 탑은 총 11층이니까, 이제 남은 층은 3층밖에 없다.

……헷갈리니까, 원래 탑에 있는 존재를 작은 연아라고 하자.

“원래대로라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빛은 이기니까요. 마족 같은 개 잡놈­쓰레기들은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험한말을 짓거리는 엘도르.

엘도르도 이연아와 같이 이 탑에 합류했다. 특이하게 그녀도, 이연아와 같은 과였다.

힘의 제약을 받지 않은 상태로 이 탑에 들어왔다는 뜻이다.

‘그런 것 치곤 성장이 빠른데.’

상격 하중위 권에서 슬슬 상격을 넘어 최상격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샤오메이는 완연한 중격에 들어섰다. 이채아나 윤승인 같은 존재도 중격에 들어섰고.

나는 시선을 돌렸다. 어깨가 훤히 드러나고, 허벅지는 다 드러나고, 윗가슴이 보이는, 속옷인지, 옷인지 모를 기모노를 입고 있는 아야네가 보였다.

신성의 혈통을 개화하면서, 아야네는 그녀가 원래 가졌던, 혈통에 따라 옷을 입었다.

“왜 그러세요?”

눈이 마주치자 아야네가 나를 보며 눈웃음을 쳤다.

나는 아야네에 대해서 생각했다. 단절이라는 고유 능력을 지녔던 아야네.

그리고 아야네는 지금 용사 파티 중에서 가장 강한 전력으로 알려졌다.

‘내가 숨기기는 했는데.’

의도적으로 전력을 숨기면서, 파티원들을 키운 데에 집중했다고는 하지만, 아야네의 성장력은 놀라웠다.

‘상격의 끝자락.’

윤승하와 싸운다면 상성 상 무조건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아야네가 승기를 잡을 것이다. 윤채린은 모르겠다. 한 달 동안 그녀가 얼마나 쌔졌는지 몰라서. 하지만 마수왕 때의 전력으로 보면, 윤채린도 승률 50%는 넘길 것 같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내 옆에서 석상처럼 묵묵하게 있는 유리코.

“……여기에서 호위해야 해?”

“예. 오히려 이런 곳이기에 제가 호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야네가 파티의 ‘검’을 담당하고 있다면, 유리코는 파티에서 ‘방패’를 담당한다. 그리고 유리코가 있는 경지는 바로 아야네 밑. 작은 연아가 그 밑에 있다.

‘외부적인 시선으로는.’

내부적인 시선으로 보면, 내가 가장 강하기는 한데.

나는 한숨을 쉬며 내면을 살폈다. 뇌신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등반자 상점에서 이것저것 사고, 이연아가 가르쳐 준 루트나, 지식 열람으로 얻은 히든 피스등을 이용해서 본신의 무력을 회복했다. 그리고 나는 상격의 끝자락에 있다.

‘뭐가 부족한 걸까.’

능력치나 특성 등은 이미 충분하다.

딱 한 가지. 한 가지가 부족해서 나는 최상격에 못 오르고 있다.

­계약자. 그러니까 그걸 하자니까.

비염이 옆에 나타나서 깐족거렸다.

“그거요?”

­그래, 그거. 그게 그거 말고 또 뭐가 있겠어?

비염의 화법에 아야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머에여?”

­그거라고 하면 당연히 그거잖아.

사람을 화나게 하는 방법이 보통 두 가지 있는데…….

“주인, 밥이 먹고 싶다.”

정수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베게를 옆구리에 끼고, 만화책 두 권을 들고 온 니트의 모습. 정수기가 말했다.

“죄송하지만, 용사님께서는 요리 담당이 아닙니다.”

“너는 빠져라. 이건 나와 주인의 이야기니까.”

어느새 내 어깨까지 자란 정수기가 귀찮은 표정으로 말했다.

처음에는 저 둘 사이가 가장 심했는데 이제는 꽤 융화된 모습이다. 아니, 어쩌면 내 앞에서만 저러는 것일 수도 있고.

­인간에게 붙어, 기생충처럼 삶을 연명하는 쓰레기…아니, 쓰레기라는 단어조차도 아까운 저 존재는 빨리 치우는 게 좋습니다.

­뭐라는 거야.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탕녀의 자식이. 입 더러운 건 유전인가?

라면서 살벌하게 싸웠지.

“그런데 시우 씨는 더 강해지고 싶은 건가요?”

“응.”

아야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야네가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렇게 강하신데요?”

“절대적으로 강한 것은 아니니까.”

아직 적은 많다.

단일 개체로는 가장 강한 오만한 용도 남아 있고, 무신 혁월도 있다.

탐욕의 벌레­전대 요정왕 오베론하고, 무력은 오만한 용에게 지더라도 성가신 마왕이 있다.

‘그리고…….’

대적불가의 마신이라는 존재와 영원을 꿈꾸는 자도.

혹은 외계의 신이라 불리는, 내 특성의 근원인 존재들도 있을지 모른다.

나는 정수기를 바라봤다. 그리고 검은양을 떠올렸다.

거악들조차도 능력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나에게 종속되었다.

‘상태창.’

이름 : 이시우

근력 : 55

민첩 : 55

체력 : 55

마력 : 55

고유능력 : 천상천하 유아독존(Ex­)

특성 : 지식 열람(S+), 천수(S+), 천의 가면(S+), 오버로드·개(S+), 태극지체·극(S+), 하늘을 굽어보는 눈(S), 불가해한 감각(S), 대신관(S­), 변강쇠(A+), 성검의 주인(A+), ■■(D)

힘은 되찾았다.

그것을 넘어 더 강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지아의 경우처럼 한 번 어떤 세계선의 나를 만나면서, ■■특성이 한 등급 더 올랐다.

다만, 그것이 샤오메이라서 스텟 상승량은 좀 컸는데, 재화의 값어치를 측정하는 능력이라 필요가 덜했다.

­그리고 앞으로 저를 부를 때 여왕님이라고 부르세요.

­네?

……샤오메이의 성욕도 뭔지 알 것 같았고.

‘그런데 변강쇠는 도대체 언제 진화하는 거지.’

변강쇠는 색즉시공이란 특성으로 진화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변강쇠의 능력은 정력의 증가. 변강쇠에서 색즉시공으로 진화하는 조건은 매우 간단하다.

‘성욕을 참는 건데.’

나라면 그 조건을 한참 전에 맞췄을 텐데, 왜 진화하지 않는 것일까.

특성을 진화시키는 약(S급 이하만 올릴 수 있다)이 있지만, 어지간하면 하늘을 굽어보는 눈이나 불가해한 감각을 올리고 싶다.

“여기 계셨어요?”

이연아가 손을 털며 왔다. 손을 털자 피가 땅으로 떨어졌다. 아야네가 움찔했다.

“히끅.”

아야네는 정말 강해졌다.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강해진 그녀는 어느새 오만해진 상태에서.

­네가 그렇게 싸움을 잘한다고?

싱긋 웃는 이연아에게 영혼까지 털렸다.

그 뒤로는 저 상태다. 큰연아가 근처에 있거나, 피를 묻히는 광경을 보면 그 때 털린 생각이 나서 몸이 절로 떨린다고.

“아, 그리고 잠깐 밖에 좀 갔다 와야 할지도 몰라.”

“밖이요? 아, 밖은 시간이 좀 지났으니……혹시 타오에게 저는 잘 있다고 말해주실 수 있나요?”

“응, 그리고 뭐 더 필요한 거 있어?”

“저는 없어요.”

“저도 생각나지 않네요.”

샤오메이나 아야네가 부정했다.

“주인, 나는 이번에 신간으로 나오는 만화책이 필요하다.”

정수기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가서 사고치는 것보다야, 얌전히 만화책이나 보면서 노는 게 낫지.

“그런데 이상하네요. 저희는 티켓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데, 왜 시우 님만…….”

“이시우 님은 여신님께서 주시하시는 분이니까요.”

“여신님이요?”

“네.”

엘도르는 거기까지 말하고 복잡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저희 여신님은 언제나……언제나 시우님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언제나를 강조하는 엘도르.

나는 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알았다고 답했다.

요정족들을 불러서 세계수의 나뭇가지가 잘 자라고 있는 지를 확인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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