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화 〉 마법사가 근력을 숨김(2)
* * *
푸른 풀 내음이 가득한 들판. 그곳에서 오크의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 수는 약 수십. 한남훈은 오크 머리에 발을 올리고는 머리를 쓸며 말했다.
“후, 이 층도 이제 끝인가.”
느끼한 목소리로 한남훈이 말했다. 샤오메이는 시선을 돌렸다.
과연 히어로 아카데미의 학생들이라고 해야 할까.
그들은 재능이 모두 출중했다. 다른 일본인들이나 중국인들도 재능이 있지만, 히어로 아카데미의 인원들은 좀 더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한 사람 빼고.’
일전에 이시우에게 혼난 탓일까. 음침해 보이는 여성, 히가미 유리코는 잠잠했다.
‘아니, 잠잠하다기보다는…….’
샤오메이는 그녀의 특성, 탐욕의 시선으로 유리코를 훑었다. 황금빛으로 빛난다. 이건 일찍이, 한종우나, 임나연 정도의 존재에게서나 볼 수 있었던 빛.
그리고 그 아래에 잠재된 검고, 혼탁한, 꺼림칙한 기운도 느껴졌다.
샤오메이는 이와 비슷한 존재들을 알고 있었다.
광기.
자신의 몸을 불사르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무언가를 행하는, 그런 존재. 유리코를 바라보는 샤오메이의 눈이 어둑해졌다.
“근데 시우씨는 대체 언제 올까요?”
갑작스러운 아야네의 말에.
이연아와 유리코가 움찔했다.
“글쎄요. 슬슬 오지 않으면 성장차이가 심할 텐데.”
샤오메이는 부채를 흔들며 말했다. 물론, 그렇게 심각하지 않을 거다. 샤오메이랑 아야네, 그리고 정숙한 처녀, 이설화가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테니까.
“성장차이라니…….”
이연아는 어처구니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탑으로 떠나기 직전, 아직도 이시우의 일격이 떠오른다.
보랏빛의 눈동자로 검은색의 왕관을 쓴 채, 오연하게 지하를 바라보던 눈동자가.
마치 세상 전부를 아래로 내려다보던, 신과 같은 눈높이였다.
세상을 가를 것 같은 참격으로, 지상을 찢어발기는 뇌광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하겠지.
무엇보다 두려운 건, 한정적이지만, 그는 제약을 풀 힘을 가지고 있다. 어느정도 제약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닐 터.
“상관없지 않을까요.”
밝은 목소리.
그러나 무언가 흔들리지 않은 것이 목소리에 존재했다.
유리코는 무릎을 끌어 안은 채 말했다.
“어차피 ‘그분’이라면 어떻게든 되겠죠.”
“그……분?”
그것은 믿음이었다.
유리코는 아직도 기억한다. 신과 같은 눈으로 지상을 오연하게 쳐다보던, 그 존재를.
압도적인 힘이었다.
세간에 존재하는 이념이나, 신념, 선의도, 악의도 그 모든 것들을 짓밟을 수 있는 절대적인 힘.
유리코는 밝게 웃었다.
“그 분의 목표는 탑을 완전히 등반하는 것. 저희는 그저 그분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열심히 성장하는 수밖에 없지요.”
맹목적인 믿음.
샤오메이는 어처구니 없는 시선으로 유리코를 봤다. 잠깐, 아주 잠깐만에 여자를 저렇게 홀릴 수가 있나.
저건 흡사 광신도였다. 그란데힐의 눈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런 눈빛.
“……걔가, 그렇게 쎈가?”
질투섞인 목소리로 한남훈이 중얼거렸다.
“남훈아. 가장 능력치가 낮은 것도 그, 이시우 님…씨, 라는 분이었지? 우리는 제약을 고작 특성 몇 개 당했던 거 기억하지?”
“어…….”
“저기 계신 아야네 님이나, 샤오메이 님은 넘고 이야기하자.”
“…….”
한남훈은 조용히 했다.
단절을 이용해서 대인전에 무적이라고 불릴만한 아야네나, 호신술 하나로 윤승인에게 아슬아슬하게 졌던 샤오메이나.
둘 다 강했지만, 그 둘은 굉장히 겸손하게 말했다. 이시우라는 남자가 힘을 찾으면, 이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항상 입버릇처럼 말했다.
“근데 이시우라는 사람, 진짜 현실세계로…….”
“남훈씨.”
“네?”
“조용히 하세요.”
차가운 목소리로 아야네가 담담하게 말했다.
***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그러자, 마나가 내 의지에 따르며 손아귀에 모이는 것이 보였다.
‘말이 안 되는 특성이군.’
마나가 내 의지에 따라 마법식을 그린다. 마도황제의 특성.
“후우.”
낮게 숨을 내쉬었다. 몸속의 마나가 쑥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쿠오오오오오!
비명을 지르며 오우거가 내 쪽을 향해 달려왔다.
마법식을 그리며 발을 움직였다. 한 발 자국. 몸을 돌리면서 풍압을 동반한 주먹을 피하고, 두 발자국으로 오우거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비염을 소환한다. 몸속에 새겨진 불꽃을 소환한다.
신염.
이건…….
비염이 당황하지만, 마법식에 불꽃의 힘을 넣었다.
콰아아아앙!
오우거의 배에 푸른색의 불꽃이 터지듯이 폭발했다. 푸른색의 불꽃은 오우거의 배를 관통하고, 그 뒤에 있는 나무나 바위등을 관통하기를 한참. 100m의 거리를 질주하고 사그라졌다.
상급 마법, 연옥의 창염(??)이 가진 파괴력이었다.
‘생각보다 효율이 높은데.’
쿠웅!
거대한 육체가 쓰러졌다. 아파트 크기로 2층 남짓한 괴물, 오우거.
계약자,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어이없어 하는 말투.
그러나 그 말투 속에는 희열이 깃들었다.
“어때? 꽤 쓸만해?”
낙윤의 혈통에서 얻은, 신염. 그 효과를 보기 위해서 이번에 보스 스테이지를 골랐다.
쓸만한 정도가 아닌데. 이 정도면 내 힘이 절반 이상……아니, 그 이상의 효율을 자랑할 것 같은데.
비염이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이런 걸 도대체 어디서 획하고 얻어온 거야?
“다신 얻을 수 없어. 그래도 쓸만하지?”
이정도면 쓸만한 정도가 아닌데. 정령왕 급의 핏줄이 하나 더 늘은 정도라…….
비염이 중얼거리다가 멈칫하고는 나를 곁눈질로 바라봤다. 숨기고 싶어하는 모양이라 나는 못 들은 척, 앞을 바라봤다.
[놀라운 업적! 2층에 존재하는 오우거를 쓰러트렸습니다!]
놀라운 업적이기는 하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애들 앞에 오우거를 데려다 놓다니.
[5,000p를 획득…….]
[오우거의 머리, 오우거 가죽x30, 오우거 힘줄x25…….]
[근력과 민첩 스텟이 5…….]
포인트를 획득했다는 창과 아이템 획득 창, 스텟이 올랐다는 창을 획획 넘겼다.
내가 탑에 납치당한 상태라면, 좋은 보상들이지만, 요정왕의 장막에는 마수왕의 가죽들이 잠들어있다. 저런 것에 눈이 갈 리가.
“후아.”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무력으로 해결하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겠지만, 마법을 써서 괜히 더 힘을 썼다.
‘근데 오우거의 머리는 뭐야.’
나는 인벤토리를 열어 오우거의 머리를 꺼냈다. 오우거의 머리는 진짜로 오우거의 머리였다.
‘자랑하는 용도인가.’
잠깐의 휴식 후, 나는 몸을 일으켜서 움직였다.
[다음 층 입장 조건 확인. 다음 층으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진입하시겠습니까?]
“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내 눈앞에 포탈이 하나 만들어졌다. 마나가 회오리치는 형상.
나는 포탈 속으로 들어갔다.
***
포탈에서 나오자, 보이는 것은 하나의 마을이었다.
‘드디어 3층인가.’
1층이나 2층은 이연아에게 별로 들은 것이 없지만, 3층은 달랐다. 3층은 전쟁 전, 마물들과의 싸움으로 스스로를 단련하는 테마다.
‘4층에서 연합군이 집결하고, 소소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5층에서는 마물들과의 전쟁이 일어나지.’
그러나 이 사건은 조금 많이 틀어질지도 모르겠다. 요정족들이 내분으로 싸워야 하는데, 이번에는 나 때문에 규합이 되어서.
어쨌든.
3층은 중요한 층이다. 왜냐하면, 여기서부터 이연아가 말해주는 히든 피스라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 열람도 반응이 없었으니.’
그나마 지식 열람이 반응한 게 1층 필드에 있었던 동굴 하나뿐이었으니까.
나는 이연아가 준 지식과 지식 열람을 이용해서 정보를 탐색했다.
‘우선 서점부터 가볼까.’
“그거 들었나? 왠 젊어 보이는 모험가들이 ‘용사’의 칭호를 받은 것을.”
“아, 나도 들었네. 이번에 용사들은 30명이 넘는다고 들었는데, 마왕을 물리칠 수 있으려나?”
‘아직 3층에 있는 건가.’
한달이나 있었는데, 생각보다 더디다.
그렇게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 나는 익숙한 인물을 볼 수 있었다.
“어, 이시우 씨?”
“어머, 빨리 오셨네요.”
이연아와 샤오메이.
“아, 안녕하세요!”
얼굴을 붉히며, 나에게 깍듯하게 인사하는 일본인 A가 보였다.
“여기는 어쩐 일로?”
“아, 잠깐 임무를 끝내고 마을에 들려서요. 시우씨는?”
샤오메이가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저는 이곳에서 얻을 게 있어서요.”
“얻을거요?”
“네, 좋은 거에요.”
나는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사서로 보이는 인물이 나를 멀뚱히 바라보다가 뒤에 샤오메이를 보고는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나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신화 목록이 여기에 있을 텐데.
‘찾았다.’
나는 책 하나를 꺼냈다. [신화의 시작]이란 이름의 책. 그러나 이것은 사실 스킬 북이다.
감정.
[헤카테의 비서(S)]
스킬, 헤카테의 마법식이 생겨납니다.
그림자 마법 효율이 100%, 마법 효율이 50% 늘어납니다.
마력이 영구적으로 10 증가합니다.
헤카테의 축복하고 중첩 시, 성능 50% 향상됩니다.
감자튀김의 여신의 마법식. 나는 이것을 고르고 다른 곳도 둘러보았다.
아야네가 쓰면 좋을 [명경지수(A)] 스킬북과 호신 능력이 부족한 샤오메이에게 일정 수준의 경비병을 소환할 수 있는 [소환식(B)] 스킬북을. 이연아가 이용하면 좋을 것 같은 [백병전(B+)] 스킬북까지 챙긴 다음 뒤를 돌아봤다.
‘일본인 A도 챙겨줄까.’
천의 가면으로 훑어보는 감정은 기이했다. 질척질척하지만, 곧은 감정이 느껴졌다.
‘일단 키워볼까.’
설사 중간에 딴생각을 먹어도, 제어할 수 있게끔, 목줄 같은 것을 달아 주면 상관없겠지.
나는 지식열람으로 상태창을 바라봤다.
‘방어 쪽에 더 치중되어 있나.’
[충의의 갑옷(A)]
스킬, 충의의 갑옷이 생깁니다.
자신이 충의를 받칠 상대를 고릅니다.
그 상대에 대한 자신의 충의가 높아질수록,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나는 스킬북을 골랐다.
레이드할때는 역시 탱커가 필요하지.
***
1층 필드 지역.
그림자에서 거무스름한 형체가 불쑥 솟아나더니, 그것이 점점 인간의 형체를 갖추었다.
귀찮게 하는군.
검은색의 존재는 짜증을 냈다. 상층에서 하층으로 내려오려면 포인트가 굉장히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는 주인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아래로 내려왔다. 시간이 지나도 하층에서 소식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그리고 동굴을 향해 1시간을 걸은 그는 떨리는 눈으로 동굴을 바라봤다.
이건…….
검은색의 존재는 두려운 눈으로 동글을 베어낸 흔적을 살폈다.
……설마 일검에 베어낸 건가.
이만한 공격력을 지닌 괴물이 있다고? 그것도 1층에?
이정도면 못해도 10층에서 스스로 마왕이라 자처한 놈과 싸워도 그놈의 목을 단숨에 날려버릴 힘을 가지고 있다.
어떤 방식인가.
자신의 위대한 아버지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 존재도 제약을 받았을 것이다.
제약을 풀 수 있는 어떤 능력인가……?
그거라면 괜찮다. 제약을 풀 수 있는 능력들은 대부분 페널티가 심하다.
세간에는 몸을 원상태로 돌리고 모든 환상이 안 먹힌다는 말도안되는 능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말이 안되는 능력이다.
‘그래도 일단 보고해야겠지.’
검은 존재는 그림자로 빨려 들어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