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4화 〉 등반
* * *
“여기가 용사님의 방입니다.”
안내를 맡은 메이드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괜찮네.’
10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개인 방이라는 게 만족스럽다.
“혹시 필요한 게 있다면,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최대한 준비하겠습니다.”
최대한이라.
나는 이연아의 말이 떠올랐다. 아마 처음에 굉장히 힘들 거라고 했다.
용사들이 처음 소환되는 곳이, 급하게 만들어진 곳이라고 했으니.
나는 아공간에서 작은 사이즈의 침대를 꺼냈다. 그리고 알람 마법이 걸려있는 아티팩트 따위를 꺼내서 도둑이 드나들 것을 방지했다.
‘중세시대라고 했으니까.’
만약에 이상한 놈이 내 방에 침입해서 물건을 훔칠 수 있는 노릇이었다.
“상점 오픈.”
[등반자 상점]
특성 상점
고유능력 강화
장비 상점
소모품
특수 아이템
등반자 상점은 등반자를 강화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10층에서 마왕을 잡는다고 가정하고 11층에서 질투의 뱀이 나오니 아마 질투의 뱀을 잡을 때 즈음, 초월경에 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목록을 훑었다. 특성 상점은 문자 그대로 포인트를 살 수 있는 특성 상점이다. 고유 능력 강화는 고유 능력을 강화해 주는데, 저건 나한테 소용이 없다.
나는 이미 끝까지 올린 상태라서. 장비 상점도 괜찮은 물건들이 있고.
나는 특성 상점을 훑었다.
[용사의 혈통 100,000p]
[광전사의 혼 50,000p]
…
[마력 증강 1,000]
윤승하와 윤채린이 가지는 용사의 혈통도 있었다. 다만, 저건 고층에서 살 수 있는 특성이다.
나는 상점 품목들을 하나씩 훑었다.
그러나 눈에 띄는 것들은 없었다. 하긴, 눈에 띄었으면 이연아가 말을 해 줬…….
“어?”
나는 특성 품목에서 한가지 특성을 발견했다.
[낙윤의 혈통 500p]
“이게 왜?”
나는 멍하니 저 특성을 바라봤다. 낙윤.
저 특성은 로크에서 유일하게 중간에 삭제된 특성으로 유명하다.
저걸로 강화하기가 너무 말도 안 되게 좋아서.
낙윤(?)은 신적인 존재가 죄를 짓고 인간의 격을 지니게 된 존재를 일컫는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초월경에 이른 존재가 하급 영웅보다 못하게 되는 존재로 영락하게 된다.
그러나 초월경에 이를 정도로 어떤 힘이 혈통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얻어놓는다면 당첨이 확실한 복권이란 거다.
다만, 나는 아직 p가 부족하다.
‘튜토리얼을 탈주해야 되나.’
아무래도 등반 계획을 조금 앞당겨야겠다.
***
훈련실.
용사들을 모아서 따로 훈련을 시키는 공간에서, 이연아는 한 남자를 바라봤다.
“수상해.”
자신을 2학년이라고 소개한, 이시우라는 남자. 그는 시종일관 여유로워 보였다.
물론 여유로워 보이는 척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남자가 보여준 능력을 조금이나마 본 이연아는 그게 능력에서 오는 여유로움임을 알 수 있었다.
“근데 저 선배, 진짜 잘 생겼다.”
“얼굴 봐봐 미쳤어, 진짜.”
히어로 아카데미가 아니라, 다른 학교에서 온 여학생들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언어가 들리고 쓰는 것이 가능했다이 이시우를 쳐다보며 말한다.
확실히, 얼굴은 미쳤다. 저건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무언가 홀리는 듯한 분위기. 요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남자였다.
“근데 진짜 잘생기기는 했다.”
이연아는 자신의 친척인 이채하의 말에 입을 비죽이며 말했다.
“원래 저렇게 잘 생긴 애들이 대부분 본심이 사악한 법이야.”
“하긴, 여기에 대해서 뭘 알고 있긴 한 어투였지.”
이채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맞아맞아. 엄청 수상하다고. 원래 소설이나 만화에서 저런 사람이 가장 흑막 같은 사람이지.”
“……우리 연아, 소설을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아니야, 수상하다고.”
내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라고 중얼거리는 이연아의 말에 이채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뭐 해?”
“아, 승인아!”
이채하는 그녀들에게 다가오는 소년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윤승인.”
“안녕.”
이채하와 윤승인은 연인이다. 비록 히어로 아카데미에서 연애금지라는 낡은 풍습 탓에 숨어서 사귀는 사이이지만.
그래서 이연아는 윤승인이 어색했다. 차가워 보이지만, 이채하에게 따뜻한 소년.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이채하를 가져간 남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웅, 연아가 저 남자가 수상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그렇군.”
윤승인은 그 말에 동의했다. 저 남자는 수상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어지간하면 저 남자와 연관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무엇보다……나는 저 남자를 히어로 아카데미에서 본 적이 없어.”
“나도. 한 학년 위의 선배라도 저 정도로 얼굴이 뛰어나면 소문이라도 나야 하는데, 그런 건 없었잖아.”
“알았어, 알았어. 그럼 우리 이제 밥이나 먹으러 갈까?”
“……밥.”
이연아는 자신도 모르게 슬퍼졌다.
이곳으로 끌려온 다음, 왕국이나 제국들은 자신들에게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고 있기는 했다.
‘근데 더럽게 맛이 없지.’
기본적으로 조미료가 부족하다. 설탕이 들어가는 요리는 일주일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고, 소금이나 후추 같은 것도 보기가 힘들다.
“밥 먹으러 가시게요?”
굉장히 기분 좋은 목소리였다. 생기가 가득한 목소리. 이시우의 목소리에 이연아는 경계 어린 눈으로 이시우를 바라보았다.
“네. 저희 셋이서 먹으러 가려고요.”
“그래요? 그럼…….”
이시우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무언가를 건넸다.
붉은색의 포장지로 감싸진──초코바 세 개.
“어?”
“아공간에 좀 꿍쳐둔 건데 셋이서 드세요. 몰래.”
이연아의 귀에 속삭일 듯이 말한 다음 이시우는 이채하와 윤승인에게 목으로 살짝 숙여 인사했다.
그 모습이 묘하게 깍듯해서 이채하와 윤승인은 갸웃거렸다. 저건 마치 웃어른한테 하는 행동이지 않은가.
“꺅! 어떡해! 연아야. 아무래도 저 남자가 너한테 관심이 있나 봐.”
“……이연아. 조심해라.”
상반된 반응.
이채하와 윤승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연아는 초코바 하나를 봤다.
지난 1주일 동안 겪어보지 못한 문명의 정수가 담긴 음식. 달달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이연아는 자신도 모르게 코를 킁킁거렸다.
“……냠.”
홀린듯이 포장지를 까고 초코바를 한 입 했다.
***
죽겠다.
체력 2로 아득바득 운동하니까, 뒤질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숨을 쉬면서 명상을 시작했다. 마나를 연공하기 위해서다.
뇌명신공으로 호흡하자, 뇌신이 주변의 마나를 한껏 삼키면서 몸집을 부풀었다.
10일.
지난 시간동안 나는 최대한 스텟을 올리는 쪽으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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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시우
근력 : 5(47)
민첩 : 5(47)
체력 : 3(46)
마력 :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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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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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내 스텟은 꽤 많이 올랐다. 체력을 제외하고는.
‘생각보다 너무 힘든데.’
하지만 재밌었다. 초심으로 가서 캐릭터를 다시 키우는 기분이 드니까.
‘아예 힘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일시적이지만,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본래의 힘을 되찾을 수 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땀이 조금 났다. 세계수가 가진 생명의 마나 때문에 노폐물 같은 것은 전혀 나지 않지만 불쾌해서 마법으로 몸을 대충 씻었다.
훈련장을 나서니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이연아와 이채하.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채하가 반갑게 인사했다. 이연아가 조금 뚱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나는 웃는 얼굴을 하면서 초코바 3개를 꺼냈다. 3일 전에 초코바를 건네준 뒤로, 이연아는 이채하를 대동하고 나한테 왔다.
아마 그때의 저는 단 걸 주면 정신을 못 차릴걸요.
미래의 이연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냥 단걸로 유혹해요. 그리고 자기한테 관심 없다는 듯이 무심하게 행동해요. 그때 제가 남성 혐오증이 좀 있어서…….
“마카롱 좋아하세요?”
“마카롱이요? 없어서 못 먹어요!”
“그럼 여기…….”
나는 마카롱 한 박스를 넘겼다. 6개짜리 묶음.
나는 이채하를 슬쩍 바라봤다. 그리고 윤승인이란 소년을 떠올렸다.
‘이름을 섞어서 쌍둥이 이름을 지었군.’
미래의 장인어른들이다. 최대한 좋은 이상을 남겨야지. 대부분의 인원을 살리고 데려가야 하니까.
“아니면 저희랑 같이 식사하실래요? 제가 맛있게 밥 해드릴 수 있는데.”
“진짜요?”
이채하가 눈을 번쩍거렸다.
이연아는 불신한 눈으로 나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방으로 가는 길.
“배가 고프다.”
정수기가 말했다.
이곳에서도 밥은 나온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조미료가 없어서.’
있다고 해도 후추를 조금 넣은 정도. 설탕은 기대할수도 없고, 소금이나 후추가 조금씩밖에 나오지 않는다. 마요네즈나 케첩은 당연히 기대하기 힘들고.
“그래그래, 밥 먹자.”
다 먹고 살고자 하는 일인데, 밥은 먹여야지. 나는 요정왕의 장막에서 체력 회복 포션을 써낸 다음 들이켰다.
‘오늘은 생선 요리를 할까.’
가자미 요리를 하자.
“생선 좋아하세요?”
“음, 가리는 건 없어요. 연아도 없고.”
이채아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자미를 꺼냈다.
가자미를 손질한다.
하늘을 굽어보는 눈으로 뼈를 보면서 천수를 한껏 활용한다. 내장과 뼈 등을 모두 제거하고 순살로 만든 가자미.
여기에 밀가루를 바르고, 프라이팬에 버터를 넣었다. 원래대로라면 약불로 은은하게 익혀야 하지만, 바삭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 강불로 올렸다.
한국인은 겉바속촉의 나라니까.
소스를 만들기 위해서 간장하고 설탕을 꺼냈다. 설탕이 녹을 때까지 그릇에 담은 간장을 숟가락으로 젓고, 그것을 달군 프라이팬에 투하. 데리야끼 소스를 만들었다.
데리야끼 소스가 생각보다 많아서 참치마요 재료도 해놓고.
그리고 디저트로 먹을 것들도 준비했다. 디저트라고 해봤자, 얼음을 갈고 그 위에 망고토핑이랑 팥, 연유같은것을 올릴 뿐이니까.
“엄청……나네요.”
이연아가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채아는 눈을 반짝이며 식단을 바라봤다. 데리야끼 소스를 얹은 가자미구이랑 참치 데리야끼 덮밥, 후식으로 먹을 망고와 멜론을 얹은 팥빙수.
음, 장인어른과 이연아에게 먹이려고 힘을 좀 주기는 했다. 반찬 통에서 김치나 밑반찬을 꺼내고 식탁 위에 올렸다.
“먹어.”
이연아가 가자미 살을 젓가락으로 잘라 한입 넣었다. 냠하고 몇 번 씹더니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음식을 빠르게 입에 넣기 시작했다.
저런 모습을 보니 보기는 좋네.
나도 밥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다가 멈칫했다.
‘……체력이.’
체력이 거의 방전되었다.
그 때, 아야네가 내 옆에 앉았다.
“아 참. 시우씨는 아직 제약이 심하시져? 방금 전에 운동하고 오셨으니, 피곤하실 테니까, 제가 됴와드릴게요.”
방긋웃으며 아야네가 젓가락으로 생선 살점을 한입 크기로 먹기 좋게 발랐다.
그리고는 내 입 근처로 가져가며 아했다.
“아.”
나는 얌전히 입을 벌려서 받아먹었다.
가자미는 꽤 맛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