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화 〉 Re: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여행인줄 알았지만, 나 혼자 힘을 숨김(2)
* * *
이연아가 말해준 내용은 간단했다.
약 10년간의 세월 동안 선택받은 용사들은, 마왕을 처치하기 위해서 온갖 훈련을 받고, 개고생을 해가며 마왕을 죽인다.
근데 사실 마왕은 가짜.
진짜인 질투의 뱀은 세상을 혼자서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었고, 결국 질투의 뱀과 10년 이상을 싸워가며 개고생을 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같이 싸워왔던 용사들을 대부분 잃었다.
그리고 배신이 시작되었어요.
배신?
어처구니 없게도, 마왕을 정리하니, 기득권이라는 놈들이 용사들을 암살하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비 전투 인원들을 인질로 잡고, 용사들에게 죽음을 강요했다고.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용사는 이연아와 나뿐.
그리고 그의 언니였던 존재가 남긴 혈육윤승하와 윤채린.
그때의 이시우 씨는 뭔가 이상했어요. 환희랑 절망이 뒤섞인, 괴상망측한 표정이었어요. 그리고는 드디어 이 루프를 끝낼 수단이 생겼다고 했었는데.
……그래?
탑을 공략하려면 굉장히 많은 기간을 잡아먹는다. 그 덕이라고 해야 할지, 덕분이라고 해야할지, 능력의 향상치는 굉장히 높지만.
‘그렇지만 나는 그럴 생각은 없지.’
나는 길어야 1년을 보고 있다.
다행히도 시간적 여유는 있다. 이곳에서의 1년은 현실 시간으로 1개월이 좀 넘는다고 들었으니까.
내가 노리는 것은 탑의 부산물이다.
탑을 공략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영웅들이 일찍이 사용하여 영성(?)이 깃든 유물. 그리고 탑의 사용권.
나는 이 중에서 탑의 사용권을 원한다. 성장에 중점을 둔 이곳을 수련장으로 쓸 계획이다.
“와깟타. 그래서 저를 여기에 부른 거시군요.”
어설픈 한국어로 아야네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야네가 가진 단절.
이것은 끝없이 성장시킨다면, 훗날에는 개념이나 현상 따위 마저도 잘라버리는 무시무시한 절기가 된다.
“그리고 저는 그 미지의 세계에서 인재와 상품을 보는 눈이고요?”
샤오메이가 요염하게 눈웃음을 치며 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저 아이는……?”
샤오메이가 의아한 눈으로 정수기를 바라봤다.
“본녀는 몽마의 여왕이자 요정여왕의 호적수인 정숙한 처녀라고 한다. 본녀의 이름은 설화. 성은 이시우의 이 씨를 땄으니, 이설화 님이라고 부르도록.”
정수기의 말에 아야네랑 샤오메이가 굳었다.
“……진짜인가요?”
느릿하게 나를 바라보자 나는 그게 사실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래도 괜찮아. 정확하게는 말을 못하지만, 얘는 우리한테 해를 끼칠 수 없어. 그렇지?”
“……그렇다.”
정수기가 뾰롱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는 탑 안쪽으로 들어갔다.
[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신령스럽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탑의 관리자. 탑 속의 세계에서 여신이라 불리는 존재.
[탑에서 당신들은 선택된 용사로서 선정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당신들은 마왕을 물리치는 순간 탑은 등반을 완성한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
“네.”
[등반자들에게 등반할 의지를 확인했습니다. 등반자들의 능력에 따라서 제약을 합니다]
“제약?”
[능력치와 특성을 제약합니다.]
밸런스 패치의 시간이다. 강한 존재가 이 탑에 온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이 탑이 강자에게는 불합리할 정도로 온갖 제약을 걸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탑이 나에게 어느정도의 제약을 거는지는 모른다.
내가 해봤어야 알지.
[특성 판별……해당 대상에게 제약할 수 있는 특성은 오버로드, 변강쇠(A+), 성검의 주인(A), 견습 신관(B+)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늘을 굽어보는 눈(S), 불가해한 감각(S)은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있습니다]
“…….”
나는 제약된 특성의 목록들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제약된 특성이 클수록 성장치가 가증되는 이 탑의 특성상, 특성 쪽에서 이렇게까지 제약을 못 받는다면 특성을 얻기가 여간 까다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어, 어째서 가문의 비기인 신도무념류(??無??)가…….”
“……잠깐, 내 상재의 특성이랑 호신술 중 하나를 택하라는 건 너무 하잖아! 난 상인이라고!”
“아잇!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내 모든 특성 중에서 고작 하나만 택하라니! 난 안 그래도 지금 제약을 받고 있는 상태라고!”
아무래도 나만 그런 것 같다.
당장 정수기만해도 특성을 하나만 가져갈 수 있다고 하니까.
그나저나 눈이랑 감각 중 하나를 택하라는 건가.
‘당연히 눈이지.’
감각은 천수로 어느정도 대체가 가능하다. 그러나 눈은 안 그렇다.
대부분의 현상을 통찰하며, 마나의 흐름을 직접 볼 수 있는 하늘을 굽어보는 눈은 나에게 필요하다.
“하늘을 굽어보는 눈을 고르겠습니다.”
[확인했습니다. 등반자가 고른 제약은 탑에 등반하는 순간, 적용됩니다.]
“……손나 바카나. 저는 검사의 마음가짐을 고를게요.”
“……나는 상재를 고를게. 저 호신술이 없으니까, 잘 부탁해요.”
“……….”
정수기는 죽은 눈으로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다가 다시 말했다.
“나, 진짜 온갖 제약을 당한 상태인데 여기서 더 제약할 거야?”
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탑의 등반 목표는 마왕을 죽이는 건데 정수기는 마왕이 될 자질이 있으니.
“알았어. 보, 본녀는 고귀한 혈통을 고르겠다.”
눈물이 그렁그렁하면서 정수기가 말했다.
[모든 등반자가 등반에 필요한 준비가 끝남을 확인했습니다]
[1분 뒤, 다른 세계에 진입합니다]
그리고 직후, 굉장히 따스한 목소리가 내 귓가에 스며들었다.
[당신의 앞날이, 축복이 깃들기를]
***
눈 앞에서 새하얀 빛이 일어난 뒤, 내 몸이 어디론가 전이되는 감각.
그러나 그것보다는 극심한 탈력감이 덮쳤다.
동네 뒷산쯤이야 들 수 있을법한 근력과 무한한 생명력, 그리고 음속 따위는 우습게 돌파할 수 있는 속도와 감각, 바다를 떠올릴법한 마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상태창.
▼
이름 : 이시우
근력 : 2(46)
민첩 : 2(46)
체력 : 2(46)
마력 : 2(47)
고유능력 : 천상천하 유아독존(Ex)
특성 : 지식 열람(S+), 천수(S+), 천의 가면(S+), 하늘을 굽어보는 눈(S), 태극지체(S), ■■(E)
………실환가.
나는 흔들리는 눈으로 내 상태창을 바라봤다. 이거 맞나? 진짜 맞아?
그러나 상태창은 변하지 않고 내 상황을 직시하게 하여줬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숲속 한가운데였다. 태양이 높게 떠있었고, 온갖 나무들이 울창하게 나 있는 공간.
번쩍!
사방에서 빛 무리가 넘쳤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었다.
“여, 여긴 뭐야?”
“히어로 아카데미는 이렇게 실기를 보는 건가?”
히어로 아카데미란 말에 고개를 돌렸다.
어딘가 요망하게 보이던 표정과는 달리 순진한 표정을 가지고, 그녀보다 어려 보이는 이연아가 보였다. 그리고 그녀와 닮은 여성 한명과 남학생으로 보이는 3명도.
그리고 그 근처에 있는 20명가량 되는 학생들. 아마 저들이 일본하고 중국에서 끌려온 마나가 없는 시대의 학생들이겠지.
“상태차아아아아앙!”
어딘가 절박한 표정으로 외치는 학생이 눈에 띄었다.
“지, 진짜로 상태창이 있어. 이, 이거면…….”
나는 조용히 음침해 보이는 여성을 경계했다. 저런 놈은 사고를 잘 치거든.
[현재 상황은 튜토리얼 입니다. 고블린을 잡아서 전투력을 측정하십시오]
“고블린? 하, 그까짓 저급한 몬스터로 이 몸의 전투력을 측정하겠다고?”
코웃음을 치며 오만한 말투로 말하는 학생이 보였다. 히어로 아카데미의 교복.
그런데 익숙한 생김새였다. 마치 강한남을 데려다 두고, 좀 더 피부가 어두우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은 그렇지 않았다. 고블린이 뭐지? 하는 눈빛이거나 눈을 반짝이는 시선들이 보였다. 혹은 두려워하거나.
“남훈아. 가만히 있어봐. 뭔가 이상해.”
어딘가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의 소년이 남훈이라 불린 남학생을 막았다.
“히어로 아카데미의 실기 시험이지 않은가?”
“이런 대규모 전이를 이용해서 히어로 아카데미가 시험을 할 리가 없지. 그건 자원 소모가 너무 심하거든.”
짝!
누군가가 손뼉을 크게 쳤다. 그러자 주의가 그쪽으로 돌려졌다.
“일단 통성명부터 할까?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장소는 아닌 것 같은데. 내 이름부터 밝히지. 내 이름은…….”
날카로워 보이는 소년이 자기소개를 하자 그 옆에 수상할 정도로 강한남을 닮은 소년이 말했다.
“내 이름은 한남훈이다. 히어로 아카데미의 차석이지. 잘 부탁한다.”
“히어로 아카데미? 거기가 어디지?”
“어떻게 학교 이름이 히어로 아카데미, 풉.”
긍정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그러나 히어로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당황했다. 도대체 쟤 내는 어디 촌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온 애들이지하는 눈빛으로 학생들을 바라봤다.
한남훈이 뭐라 하기도 전에. 저 멀리에서 고블린 무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엑!”
불쾌한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리니 거기에는 고블린 떼가 있었다.
갑옷을 두른 고블린 워리어와 나무 몽둥이를 들고 있는 고블린들.
나는 요정왕의 장막에서 철검 두 개를 꺼냈다.
“뭐, 뭐야! 어디서 무기가 나타난 거야?”
음침해보이는 여자가 말했다. 나는 무시하면서 아야네에게 철검을 넘겼다.
“어때, 할만해?”
“모찌롱 데스.”
아야네가 검을 들면서 가장 먼저 달려오는 고블린을 향해 절도있게 검을 휘둘렀다.
서걱.
일검에 고블린의 목이 하늘로 떠올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