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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239화 (239/298)

〈 239화 〉 준비(3)

* * *

상아탑주는 괴팍하다.

얼마나 괴팍하냐면 윤승하로 은수아 루트를 탈 때, 모든 루트에서 윤승하를 계속해서 시험을 해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도 심한 시험은 내지 않아서.’

그가 선 성향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수아가 다 말했나?”

“아뇨. 수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흐음…….”

금빛의 눈이 의뭉스럽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그래. 내가 바로 모든 마법사가 모이는 상아탑의 탑주(??)다. 이름은 김덕성. 미리 말해두자면 김덕성이라는 이름은 별로 내키지 않으니, 상아탑주라 불러라.”

“저는 이시우 입니다.”

“안다. 현재 한국에서 너를 모를 사람은 없을 거다. 아니, 있다고 해도, 관계자라면 외국에서도 너를 알 테지.”

협회에서 대놓고 홍보한 방송이 원인이었다.

상아탑주가 킬킬­거리면서 말했다.

"더 원. 미국의 영웅이 너를 극찬하더구나. 미지의 존재가 삼왕과 초월자, 절망의 귀환자 이연아가 그를 막을 때, 마수왕 토벌에서 가장 활약한 남자­라고 인터뷰를 했지. 아마 그 녀석 때문에 더 화제가 됐을 거다."

"그렇게 된 건가요."

"썩 내키지 않은 표정이구나."

내 표정에 김덕성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여기서는 이야기하기는 좀 그러니 올라가 볼까.”

“계산대 쪽에 수아가 있습니다.”

“……그래, 자기 여자라고 챙기기는 하는구나.”

못마땅한.

그러면서도 은수아를 챙겨서 나오는 묘한 안도감이 느껴졌다.

“걱정마라. 지금 언질해뒀으니까.”

딱.

상아탑주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묘한 연결이 느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 연결을 허뢰로 끊을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획.

시야가 뒤바뀐다. 어느새 나는 책장이나 실험 도구 같은 것들이 널브러진 연구소에 도착해 있었다.

“어떤가. 텔레포트를 처음 겪어 본 느낌이.”

“꽤 특별하네요. 워프 게이트 특유의 울렁거림도 없고.”

“이게 상용화 되면 어떨 것 같나?”

“울렁거림도 없고, 편하네요. 근데 상용화는 안 될 것 같은데요. 마나가 너무 많이 들고, 술식 자체가 복잡하니.”

“……그걸 한 번에 알았다고?”

나는 지식열람으로 술식을 관찰하면서 말했다.

“네, 뭐. 한 번 겪어보니까 대충 알겠는데요.”

“한 번 봤다고 그걸 알아?”

“……이래 봬도 아카데미 필기 1위인데.”

“히어로 아카데미 이론이 어려운 건 알고 있지. 근데 이건 그거와 다른 문제인데…….”

김덕성이 나를 아쉬운 눈으로 바라봤다.

“꽤 아쉽구나. 네가 마법사의 길을 걸었다면, 한 획을 그었을지도 몰랐겠군.”

김덕성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지식열람이 아까워서 마법에 손을 대기는 했지만, 아직은 미숙하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지. 우리 수아에 대해서.”

연구실에 배치된 한쪽 의자에 앉으며 김덕성이 말했다.

“우리 수아랑 헤어지라고 하면 헤어질 건가?”

“아니요.”

“하아.”

김덕성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잠시 눈을 감고는 입을 열었다.

“허락하겠네. 둘이 좋아 죽겠다고 하는 걸 내가 갈라놓고 싶지도 않고. 다만 울리지는 말게.”

나는 당황했다. 꽤 꼬장꼬장하게 나올 줄 알았는데.

“왜 바로 허락해서 그런가?”

“……감사합니다.”

“그래. 그리고 내가 수아의 보호자 노릇을 하고 있지만, 수아는 수아의 이모를 더 따르니 그녀에게도 한번 가보게.”

“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이거 소소하지만 선물입니다.”

“나는 그런 선물에 수아를 팔 사람이 아니네.”

“마수왕의 가죽하고 이빨을 소정 넣었…….”

“……하지만 성의는 거절할 수 없지.”

김덕성이 가방을 받았다.

***

밖으로 나오니, 바로 은수아가 보였다.

“시우야 괜찮아?! 영감이 혹시 이상한 짓 하지 않았어? 막 시험을 해본다면서 자기가 쓰는 최고의 마법을 막아보라던가.”

“그런건 안 했어.”

은수아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내 몸에 손을 대었다.

걱정어린 눈으로 내 몸을 만지다가 어느 순간부터 손이 음란하게 바뀌었다. 눈도 분홍빛을 띠고.

“……여기 보는 눈이 좀 많은데.”

“흠흠, 다, 단단해서 만지는 맛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은수아가 헛기침을 하며 내 몸에서 떨어졌다. 눈으로 힐끗힐끗­내 복부를 보면서.

“근데 영감이 뭐래.”

“이모님 한테도 인사하고 오라더라.”

“그래?”

나는 잠깐 은수아를 바라봤다. 은수아의 부모님은 그녀가 어렸을 적, 사고로 돌아갔다.

그래서 은수아의 이모는 은수아를 입양하는 형식으로 같이 살다가, 상아탑주의 눈에 띄어 상아탑의 후계자가 되었다.

은수아의 이모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나온 적이 없어서.

“응. 혹시 이모님 언제 뵐 수 있을까?”

“금방 볼 수 있어. 어차피 근처에서 쇼핑하고 있을 테니까.”

은수아가 그렇게 말하며 내 팔짱을 끼며 나를 방으로 안내했다.

“여기에 이모가 있어. 들어가자.”

은수아가 나를 이끌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여긴…….”

방 안은 특이했다.

마치 고성처럼 스산한 분위기. 안에는 여러 가지 중세에서 볼법한 그림들이 있었고, 바닥에는 검은색의 구름이 드라이아이스 처럼 뭉게뭉게 나오고 있었다.

“어서 오렴.”

실내건만, 검은색의 양산을 펴고 스산한 눈을 한 여성이 보였다. 여성의 복장은 특이했다. 옛날 공주풍으로 보이는 고스룩 원피스.

‘……은수아가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알겠군.’

눈도 특이했다. 금색으로 빛나는 데 조금 탁했다. 마치 컬러렌즈처럼…….

‘……진짜 컬러렌즈였네.’

조금 어지럽다. 아무래도 은수아의 이모는 나랑 맞을 것 같지 않았다.

“……그대는?”

“내 나, 남자친구. 그리고 오늘 이모한테 인사하려고 왔대.”

“뭐, 뭣! 진짜로?……어머, 그렇구나.”

우아하게.

아무것도 없었던 일처럼 부채로 입을 가리고는 눈으로 웃었다.

나도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마주 보며 웃었다.

***

은수아의 이모와 인사하고 나서 나는 은수아와 헤어졌다. 바깥으로 나오니 익숙한 사람이 보였다.

길쭉한 팔과 다리. 새하얀 색의 탱크 톱과 연파랑 색의 반바지를 입은 이연아가 보였다.

이연아는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손을 깍지로 끼고 팔을 위로 뻗으면서.

새하얀 겨드랑이가 보였다.

“어머, 어딜 그렇게 뚫어져라 보시는 거에요.”

입꼬리 한쪽을 올리며 이연아가 겨드랑이를 슬쩍 가렸다.

“유부녀의 은밀한 곳은 그렇게 뚫어지라 쳐다보면 실례랍니다.”

“…….”

“막이래.”

이연아가 나를 보며 잠깐 웃고는 말했다.

“음, 어떻게 제가 여기에 딱 맞춰 왔냐는 표정을 지으시네요. 아직 그건 비밀. 대신 가르쳐 드릴게 몇 가지 있어서요.”

“가르쳐 줄꺼?”

이연아가 내 쪽으로 다가오며 내 귓가에 소곤거렸다.

“사실 저 유부녀 아니에요.”

“알고 있어.”

“진짜요? 채린이가 말해줬나?”

이연아가 고개를 조금 갸웃거리고는 말했다.

“뭐, 그 아이가 조금 그런 경향이 있기는 해요. 한 번 마음을 준 애한테 간도 쓸개도 다 준다는 느낌? 어쩜 그렇게 언니랑 똑같은지.”

“언니라면.”

“네, 승하랑 채린이의 진짜 엄마요.”

아련한 눈빛으로 이연아가 달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제가 여기에 온 진짜 이유. 그건 탑에 대해서 시우 씨에게 가르쳐 주려고 왔어요.”

“그렇군.”

“근데 그전에 장소를 좀 바꿀까요? 기막이나 그런 걸 쳐서 할 수 있지만, 원래 이런 건 분위기를 좀 잡고 해야죠.”

이연아가 내 손을 잡고는 어디론가 향했다. 번화가를 지나서 안쪽으로. 안쪽에는 허름해보이는 건물 하나가 있었다.

[이슬집]

“아는 지인이 하는 가게에요. 룸 잡고 먹는 게 거기에서 더 편하죠?”

“……술집이라고?”

“뭐, 기분이라고 해야 되나? 그쪽한테 하고 싶은 말이 엄청나게~쌓여있어서..”

나와 이연아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쪽은 꽤 고풍스러운 공간이었다. 사람들을 보니 20대들이 주로 있었다. 남자와 여자의 성별은 거의 3:7 비율. 어마어마하네.

“흐음.”

이연아가 마음에 들지 않는듯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선글라스를 꺼냈다. 그리고는 나에게 씌워줬다.

“그쪽은 너무 잘~났으니까, 얼굴 가리는 게 맞아요. 함부로 웃어주면 저 같은 피해자가 생기니까요.”

“피해자?”

“둔한척하기는.”

흥­하고는 이연아가 계산대에서 사장하고 말을 나누더니 내 쪽으로 왔다.

“마침 공간이 하나 있네요. 따라와요.”

이연아가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안쪽으로 끌고 갔다.

“아, 맞다. 사장님 이거 안에 들어가기 전에 가져갈 테니까, 계산대에 넣어주세요.”

이연아가 그렇게 말하고는 소주 두 개랑 잔 하나를 꺼냈다.

“안마실거죠? 이시우 씨는 술 입에도 안댔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연아가 나를 룸 안으로 끌고 가고 능숙하게 소주 뚜껑을 땄다.

그리고는 병나발을 불며 반절 정도 마시더니.

“후. 그리고 말하기 전에 호칭 정리부터 하죠.”

“호칭이요?”

“네, 제가 이시우 씨를 이시우 씨라고 부르는 게 익숙하지 않아 가지고. 제 편한 대로 부르고 싶어요.”

“네, 그러세요.”

나는 떨떠름하게 말했다.

“이시우 오빠."

그리고는 폭탄을 투하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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