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4화 〉 이시우(9)
* * *
다음 날.
새벽의 마나는 특별하다.
가장 정기가 맑은 때인지라 모든 영웅이 이 시기에는 몸에 마나를 들이는 시기이다.
그러나 나에게 새벽이란 좀 더 특별하다.
일월.
태양의 마나와 달의 마나가 공존하는 여명이기 때문이다.
마나를 호흡하며 뇌신에게 마나를 공급한다. 그러면서 천수로 면밀하게 뇌신을 살폈다. 뇌신은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기린이 준 번개의 정수, 허뢰. 그것과 거의 동화돼가고 있다.
손을 폈다.
파직! 파지직!
손에서 회색의 번개가 옅은 보랏빛의 번개로 화했다.
나는 문득 이 번개의 힘이 궁금해졌다. 번개를 검에 담는 것으로 최상격을 엿보던 상격마저 두 동강을 냈다.
‘어느정도 일까.’
공격력.
그것 하나만 따지자면, 나는 이미 상격을 넘어섰다. 최상격 중에서도 협회의 얼굴인 김은정만큼은 아니겠지만, 광성자 정도는 되지 않을까?
다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광성자를 이길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온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공격력이 광성자랑 비슷한 수준이니까.
‘뇌광을 얻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 것 같은데.’
김은정의 고유 능력인 뇌광.
자신의 번개가 있는 곳이라면 그녀는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최상격에 들었냐묻는다면 나는 그것에 의구심이 들었다.
상격이 되면 각인을 얻는다. 나는 일월이라는 각인을 얻었다.
그리고 최상격에 든다면 각인은 진화한다. 그리고 이것저것 부가 효과가 생기지만 능력치도 증가한다.
‘능력치도 사실 상격에 머무르고 있으니.’
최상격 쯤 되면 주요 능력치가 50이 넘는다.
그리고 최상격으로 승급을 하면 기본적으로 특성이 하나 더 생긴다.
‘이것저것 실험을 좀 해보고 싶은데.’
아쉽지만 지금은 안된다. 지금 집이기도 하고, 여자들을 부모님에게 소개해주는 기간이라서.
나는 조용히 상태창을 살폈다.
▼
이름 : 이시우
근력 : 44
민첩 : 44
체력 : 44
마력 : 48
고유능력 : 천상천하 유아독존(Ex)
특성 : 지식 열람(S+), 천수(S+), 천의 가면(S+), 하늘을 굽어보는 눈(S), 불가해한 감각(S), 오버로드(S), 태극지체(S), 변강쇠(A+), 성검의 주인(A), 견습 신관(B+), ■■(E)
마력이 기형적으로 오른 능력치가 눈에 띈다. 그리고 그 외에 마력이 하나 내려가고 체력과 근력이 올라간 모습도.
‘슬슬 그걸 얻을 때가 되었나.’
랭크 업.
내가 생각해둔 마지막 특성을 얻을 때가 왔다.
***
“그런데 오빠는 이명 같은 거 없어?”
“이명?”
밥을 먹던 도중에, 그런 말을 들었다.
이명.
영웅을 상징하는 별칭 같은 거다.
예를 들어서 ‘정령군주’ 윤승하 라던가, ‘파천의 마왕’이나 ‘천마’라고 불리는 윤채린. ‘검주’나 ‘검후’로 불리는 남다윤, ‘멸망의 번개’ 김은정 등.
‘게임 속에서는 그런 걸 찾기는 했는데.’
지금은 별로다.
‘새싹’ ‘절단기’ ‘마왕’ 윤승하같은 별명을 현실에서 들을 생각하니 속이 매슥거렸다.
“내 별명 같은 건 아직 못 들어봤는데. 근데 왜?”
“그냥. 세간에서 이런저런 별명으로 부르고 있어서.”
나는 좀 두려웠다.
누군가를 이명으로 부르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오글거리는 이명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만큼 끔찍한 게 없으니까.
“섬뢰같은 평범한 이명도 있고.”
섬뢰정도면 괜찮다.
“신조차 모독하는 사상 최강의 천재라는 것도 있고.”
“……….”
“그러고 보니 아들, 오늘은 누굴 소개해줄 거야?”
끔찍한 별명에 몸서리를 치고 있자니, 엄마가 사근사근한 어투로 물었다.
“오늘은…….”
“근데 아들, 괜찮아? 그렇게 한 명, 두 명 소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여자들 사이에서 서열정리 같은 거라도 하면…….”
“저도 그게 걱정되기는 해요. 그래도 부모님한테 소개해 드리는 거니까.”
“엄마랑 아빠는 괜찮아. 어젯밤에 다 얘기했어. 그래도 아들이 선택한 여자인데, 설마 이상한 여자는 아닐 거 아니야.”
이상한 여자는 아닐거라니. 아들에 대한 신뢰가 좋기는 했지만.
나는 잠깐 여자들의 성욕을 떠올렸다.
‘강제로 당하고 싶어’던가, ‘주인님이 돼주세요’라던가, ‘엄마가 되고 싶다’라던가, ‘아빠가 되어주세요.’라던가.
‘음…….’
세상에는 모르는 게 더 약인 법도 있다.
“……그럼 여기 말고 다른 장소를 빌릴까요?”
“……우리 집 엄청 넓은 건 알고 있지?”
중격에 든 부모님 덕에 돈이 문제는 되지 않는다. 서울에 있는 집들 중에서 40평이 넘어가는 아파트.
거실만해도 넓지만, 그래도 여자들을 소개해주기에는 장소가 협소하다.
‘근처에 있는 좀 작은 호텔을 빌릴까. 아니면 그냥 세계수 안으로 초대할까.’
둘 다 고민되는 문제다. 히어로 아카데미에 가는 게 가장 맞기는 하다.
근데 히어로 아카데미에는 요정족들이 잔뜩 있어서 껄끄럽다. 게네들은 볼 때마다 왕의 은총거려서.
그런 생각도 든다.
안 그래도 여자가 많은 아들인데 혹시 얘내들도 건드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살 수도 있고.
‘레스토랑을 하나 잡자.’
그게 맞는 것 같았다.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그래도 지아나 채린이도 일단 말해 놓을게요.”
“그래, 그게 좋겠다. 이런 데서 모이는 거 빼면 섭섭해 하는 게 또 사람이거든. 아니면 둘 다 불러도 좋고.”
나는 일단 이지아랑 윤채린에게 문자를 보냈다. 혹시 다른 여자들에게 이걸 말했냐고.
[이지아 : 나 아직 안 했는데 왜? 혹시 말 해야 해?]
[윤채린 : 아직 말 안 했지. 이거 말하는 날에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아무리 나라도 좀 힘들어]
윤채린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지아 : 근데 그거 말하는 거 보니 그냥 아예 다 모여서 소개하기로 했나 봐?]
[ㅇㅇ차라리 그게 더 좋다고 할 것 같아서. 지아랑 채린이도 같이 부를 건데 올래?]
[이지아 : 응, 갈게!]
이지아에게 문자를 보내고 윤채린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윤채린 : ㅇㅇ무조건 가지]
“지아랑 채린이도 온대요.”
“그래. 그럼 준비를 해야겠네.”
나는 심호흡을 했다.
톡을 쓰는데, 긴장된다.
혹시나 중간에서 여자가 너무 많다고 뭐라 할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최면 쪽은 어떻게든 컨트롤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뭐, 그래도 죽을 지경까지만 안 간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톡을 보냈다.
김하린, 남다윤, 엘도르, 임나연, 은수아, 윤승하, 그란데힐, 티타니아까지.
‘이연아는 어쩌지.’
문자를 보내다가 이연아에 대한 생각에 고민에 잠겼다.
이연아는 일단 윤승하와 윤채린의 보호자다. 비록 피가 안 이어졌다고 하니, 일단 보내는 게 맞지 않을까?
‘그리고 임나연하고 은수아.’
김하린은 괜찮다. 김하린의 부모님이 워낙 막장이라서 김호동과 같이 그란데힐에게 말해서 따로 아카데미 내에 거주지를 마련했으니까.
남다윤은 부모님과 동생을 마인에게 잃었고, 엘도르는 천애 고아다. 굳이 보호자라고 한다면 빛의 신이 있고. 그란데힐이나 티타니아도 보호자는 따로 필요가 없지만.
임나연은 다르다. 대한민국에서 재계 1위인 임가의 외동 딸.
그리고 은수아는 전 세계에 있는 모든 마법사가 속해있는 상아탑의 예비탑주기 때문이다.
‘날짜를 조금 연기하고, 부모님을 뵈어야겠네.’
은수아의 보호자인 상아탑의 탑주는 선 성향의 인물이니 어떻게든 될것 같다. 다만, 임나연의 부모님은 잘 모르겠다.
[나연아.]
[임나연 : 응? 왜?]
임나연을 부르자 바로 답변했다.
[부모님 좀 뵈어도 괜찮을까?]
[임나연 : ??????]
***
은수아에게도 비슷한 반응을 받고.
나는 협회로 향하고 있다.
[그란데힐 : 마수왕의 시체와 정수에 대한 협상을 끝냈습니다.]
라는 그란데힐의 문자가 왔기 때문이다.
나태의 시체는 공허검에 의해서 흔적도 없이 갈렸지만, 마수왕은 다르다. 황혼식 종언은 강한 기술이지만, 마수왕의 시체나 정수를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기술은 아니다.
‘시체로 뭐 하지.’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경 갑옷. 그리고 뼈나 이빨로 만든 무기다.
거기에 정수를 이용하면 꽤 강한 무기를 만들 수도 있고.
‘세계수의 나뭇가지도 있다.’
세계수의 나뭇가지. 영약취급이면서 동시에 장비 재료템으로도 쓸 수 있는 특수한 재료이다.
즐거운 고민을 하면서 걷자니 문득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앞에.
은색의 머리와 붉은색의 눈동자를 가진 소녀가 보였다.
나이는 대충 12살 정도 쯤 되어 보이는 소녀.
“안녕.”
반갑다는 듯이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소녀.
나는 이 존재의 정체를 알고 있다. 정숙한 처녀.
한 때 티타니아와 경쟁티타니아나 다른 요정족들도 전혀 생각하지는 않았지만하여 안타깝게 티타니아에게 져서, 반역하려다가 요정왕에게 쫓겨난 추방자.
지금은 그 요정왕과 같은 선상에 있는 거악의 일좌(一?).
나는 정숙의 처녀를 처음 보자마자 안도했다.
12살 처럼 보인다.
정숙의 처녀는 정기를 흡수해서 나이를 먹는다. 나태의 산양 정도나 마수왕의 힘을 발휘하려면 최소 20살 중반으로 보이는 나이로 변해야 한다.
정숙의 처녀는 아직 ‘정기’를 흡수하지 않았다.
아마도 오랜만에 일어난데다가, 처음은 진미를 먹어야 한다는 이유로 나를 노렸겠지.
다행이다.
처음이 나라서.
그리고 아직 정기를 흡수하지 않아서.
“오빠, 내가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그래? 나도 똑같이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진짜야? 나랑 마음이 통했네?”
나는 조용히 의복으로 착용하고 있던 요정왕의 장막을 발동시켰다.
꿈꾸는 요정의 화원.
화아악─!
꽃 향기가 물씬 풍겼다.
주변의 풍경이 뒤바뀐다. 꽃으로 가득찬 화원. 그 끝에는 세계수가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모여들고 있는 수백의 요정족이 보였다.
“이건, 이건 요정왕만 쓸 수 있는데……너 어떻게 그걸!”
표정이 바뀌었다.
순진무구한 표정에서 흉악한 표정으로.
“운이 좋네. 설마 거악을 이렇게 한 명 더 잡을 줄 몰랐는데.”
샛별의 영광. 그리고 검 한 자루를 꺼내면서.
“죽을 준비는 하고 왔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