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1화 〉 이시우(6)
* * *
야, 야! 너 이시우 님의 생물학적 동생이야? 진짜? 나 사인 하나만…….
“지랄.”
이하나는 전화를 끄면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누구 맘대로 사인받을 생각인가.
그래도 이걸로 오빠에게 사인을 받을 구실이 생겼다.
이하나는 단정하게 옷을 정리했다.
그리고 거울을 보면서 표정을 바꿨다. 차가운 소녀에서 조금 멍청한 표정으로 헤실거리는 소녀로.
오빠는 바보 같아서 모르지만, 여자는 내숭의 동물이다.
분명 저 사람도 자기 오빠의 외모를 노려서 여우 짓을 할 게 분명하다.
이지아.
그녀에 대해서 떠올려 봤다. 집안이 빵빵하다.
집안만큼이나 가슴도 빵빵하다.
외모 하나로 따지자면 이하나는 자신이 넘쳤다. 학교에서 귀찮을 때는 하루에 한 번 남학생들에게 고백을 받으니까. 연예인이나 모델로 들어와 달라고 제의를 받은 적도 수십 번이었다.
그러나 저 여자는 넘사벽이다. 무슨 가슴이 내 얼굴만 해? 가슴뿐만이 아니다. 엉덩이는 큰데다가 허리는 꽤 잘록했다. 살집은 조금 있지만, 포근해 보이면서 나긋나긋한 얼굴 덕에 오히려 매력 포인트로 다가왔다.
사기적인 몸매. 그리고 자신과 비견되는 얼굴.
‘확실히 오빠가 빠질만해.’
이하나는 생각했다.
이지아에게 빠진 것은 확실하다. 벌써 부모님에게 소개를 하려고 집에 들여보낸 것을 생각하면.
‘아직 어리면서 뭔 부모님한테 여자친구를 소개해줘?’
다시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었다.
적어도, 적어도 나한테는 미리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이하나는 뚱한 표정으로 머리를 뒤로 묶고는 생각했다.
“하나야 들어가도 될까?”
나긋나긋한 목소리. 이하나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들어오셔도 돼요!”
“그럼 들어갈게.”
이지아가 방으로 들어왔다.
우웅.
문자가 왔다는 진동이 울렸다. 사물함 위. 핸드폰 화면에는 이하나가 이시우의 별명으로 저장한 별명이 떠올랐다.
[사랑하는 내 오빠♡]
이하나는 재빠르게 사물함 위로 몸을 옮기며 핸드폰 화면을 몸으로 가렸다.
‘못 봤겠지?’
이하나는 조용히 이지아의 눈치를 봤다. 이지아는 여전히 나긋나긋한 웃음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종우가 하나에게 관심을 보인다며?”
“아, 그 사람이요?”
이하나는 호감형으로 생긴 얼굴을 떠올렸다. 각진 선, 뚜렷한 눈매. 굵은 눈썹. 그러나 이하나의 취향은 아니었다.
그 사람에게 관심을 받는 다는 것 자체는 뭐랄까, 관심은 없지만, 그만한 사람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내는 것에서 나오는 즐거움일 뿐이었다.
“그래? 사실 뒷담 같아서 좀 별로기는 한데, 걔가 인성이 좀 덜됐거든. 그리고 학기 초에 시우를 좀 괴롭혀서.”
“아, 그래요? 진짜 개 쓰레기였네.”
이하나는 드물게 화를 내면서 핸드폰으로 한종우를 차단했다.
***
“오늘 재밌었다.”
이지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가족에게 소개받고 그녀는 계속해서 웃는 표정이었다.
“동생이 너무 민폐였지?”
“아니, 난 동생이 없어서 동생이 새로 생긴 기분이어서 좋았어. 그리고 동생 너무 싫어하지는 마. 동생이랑 이야기 나눠보니까, 너를 너무 동경하고 있어서 이상한짓을 하고 있는 거니까.”
“……알고 있어.”
몰라도 알 수밖에 없다. 감각이라던가 그런 게 높아지면서, 걔가 내 사인을 받아가는 척하며 자기 방안에 보관한다든가.
나도 나쁜 쪽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것은 자각하고 있다. 다만, 혹시나 이상한 쪽으로 가지 않을까 과민반응을 하고 있었을 뿐.
이지아가 포근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만약에 승하가 봤으면, 승하가 싫어했을걸.”
“…승하가?”
“응, 채린이도 그렇기는 한데, 승하는 독점욕이 엄청 심하잖아.”
벌써 다른 여자들에게도 알려진 건가.
그렇게 이지아와 잡담을 나누며 걸으니, 어느새 이지아가 머물고 있는 호텔까지 왔다.
“바래다줘서, 고마워. 그럼 난 들어갈게.”
“응. 잘 들어가.”
나는 이지아를 호텔로 바래다주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오늘 오전과 오후를이지아랑 같이 보냈으니, 다른 여자와 만날 시간이다.
‘시간 조정이 슬슬 필요한데.’
그란데힐을 만나면 편하겠지만, 항상 내 뒤치다꺼리를 해주면서 헌신하는 여인에게 그러기는 쉽지 않다.
나는 히어로 아카데미에 들어섰다.
세계수 안에서 잠깐 쉬면서 체력을 회복하면 잠을 잘 필요가 없어져서 요즘 이곳을 애용하고 있다.
히어로 아카데미에 들어서자 수많은 기척들이 내 주위에 몰렸다. 상시 이곳에서 대기하는 요정들이 내 호위를 위해서 몰려오는 것이다.
“요정왕님이다! 빨리 길 비켜드려!”
“네가 막고 있다. 빨리 이쪽으로 와라.”
“아차!”
요정족들이 떠드는 것을 뒤로하며, 나는 생각했다. 마수왕을 잡으면서 기린검이 박살이 났다. 대체할 무기가 필요했다.
‘샛별의 영광은 창이라서 좋기는 한데, 동작이 너무 커. 엘도르는 비상시에 쓸 수 없으니까.’
최소한 대처할 수 있는 무기가 필요했다.
‘음?’
지나가는 길에, 교회가 보였다.
슬쩍 안을 보니 엘도르랑 사나에와 같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나는 호기심이 동해서 그들을 봤다.
“마?는 무엇인가요?”
“개새끼 같은 족속들입니다.”
엘도르가 고아한 어투로 말했다. 방긋방긋 웃으면서. 학생들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거침없게 말했다.
“짐승도 제 새끼는 소중한 줄 압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닙니다. 스스로의 인간성을 버리며, 본능을 키워, 힘에만 미친 족속들이죠.”
……그러고보니 엘도르도 엄청 과격했었다. 다만 내 앞에서만 내숭을 떨 뿐이었지.
“그러니까 마인들을 만나면 그들과 대화하면 안 됩니다. 그들이 온갖 유혹으로 여러분을 속이고, 끝내는 여러분을 타락시킬 것입니다.”
“저 질문이 있어요!”
“어떤 것이죠?”
“어째서 성력은 마기에 강한 건가요?”
학생의 질문에 엘도르가 푸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먼저 성력에 대해서 가르쳐 드리기 전에 간단하게 마법이나 주술에 대해서 설명을 하겠습니다.”
엘도르가 학생의 근처로 향하면서 말했다.
“마법. 그것은 이 세계의 물리 법칙을 제 뜻대로 마나로 구현해서 일그러트리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주술. 그것은 이 세계의 자연법칙을 자신의 뜻대로 일그러트리는 힘이지요.”
“이능은 세계의 법칙을 자신이 타고난 능력으로 자신에게 맞게 변형시키는 힘이고.”
“무공은 자연에 맞서고자, 무인들의 자신이 새운 개념으로 세상의 법칙을 뒤흔드는 힘입니다.”
“그리고 성력은 이 별의 탄생을 기리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별의 탄생이요?”
“신께서, 별을 지키고자 만든 힘이지요. 음, 학생분께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성력자체는 마기의 대척점이 되는 힘이 아닙니다.”
“그럼요?”
“외적, 외부에서 흘러나온 온갖 사특한 것들. 그것들은 이 세계에 힘을 근간으로 하고 있지 않지요. 성력은 별의 힘을 믿음으로 벼려서, 적을 쫓아내고, 별에서 탄생한 이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힘이지요.”
“으음…….”
“아직은 이 말을 이해하기 힘드실 겁니다.”
“그러니 마인들을 보시면 보자마자 머리통을 깨버리…….”
엘도르의 백금색 눈이 나랑 마주쳤다.
“지옥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조용히 기도하면서 말했다.
“잠시. 손님이 오셔서 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엘리스, 당장 이쪽으로 오셔서 나머지 부분을 강의해주세요.”
“예? 절제의 검님, 갑자기 어디를?”
근처에 있던 엘리스에게 자리를 넘기고 엘도르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내 쪽으로 왔다.
“오셨네요, 용사님. 몸은 괜찮으신가요?”
“응, 많이 괜찮아졌어.”
나는 몸을 툭툭 털며 말했다. 실제로 몸에 이상은 없다.
“다행이네요.”
엘도르가 미소를 짓고는.
“혹시 용사님이 가진 왕관에 대해서 물어봐도 될까요?”
“유아독존?”
“유아독존……오만한 이름이네요. 네, 제가 보기에는 좀 불길 해 보이는 힘이 담겨 있어서.”
“그래?”
나는 불길함을 못 느꼈지만, 엘도르의 의견은 달랐다. 그녀는 마에 대척점에 있는 존재니까.
나는 유아독존을 꺼냈다. 검은색의 왕관이 웅웅거렸다.
그러나 이지아가 있을 때처럼 반응하지 않았다. 엘도르가 나와 인연이 없지는 않을 거다.
아마도 지금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은 쿨타임일려나.
“으음…….”
“뭐, 이상한 것 같아?”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많은 능력들을 봐왔는데, 이건 진짜 모르겠네요.”
엘도르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연아는 알 것 같기는 한데.
어머, 지금 유부녀한테 작업 거시는 거에요?
라면서 거절했었지.
“그런데 이곳에 어쩐 일로?”
기대감이 가득한 눈이 나를 향했다. 백금색의 눈이 핑크빛으로 물들을 것 같았다.
“잠깐 검을 구하려고. 일전에 마수왕이랑 싸울 때, 검이 부러져서 말이야.”
“아, 검을 구하시는 거군요.”
엘도르가 시무룩한 얼굴을 잠시 하고는.
“그, 그러면 제가 항상 용사님을 따라다녀도 될까요?”
“……뭐?”
“용사님도 제 힘에 대해서는 아시잖아요.”
매력적인 제안이다. 기린이 남기고 간 정수, 허뢰. 뇌신과 서서히 융합하기 시작하면서 번개가 진화하기 시작했다.
그 강도는 어지간한 검이나 무기는 버티지 못할 정도로.
엘도르가 항상 내 곁에 있다면 큰 힘이 될거다. 급할때는 무기로 변할수도 있고, 평소에는 상격에 전력이 그대로 있는거니까.
그렇지만, 그건 싫었다.
“그치만, 엘도르도 엘도르의 삶이 있잖아.”
나는 내 여자들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굉장히.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다른 남자를 만나겠다고 하면, 다른 남자 생각이 들지 않게 괴롭힐 정도로 사랑해주겠지만.
아무튼 그런 거다.
나는 내 여자들이 바람이나 다른 남자를 보는 거 아니면 그들의 의사를 존중해주고 싶다.
‘다른 남자를 만날 애들은 없을 것 같은데.’
솔직하게 말해서, 나랑 있는 시간을 좀 더 늘리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이 세계의 남자들은 뭔가 정력이 부실하다.
영웅임에도 하루에 3번 이상 할 수 있다고 하면 정력가로 이름을 떨칠 수 있다 하니까.
“그렇군요.”
엘도르가 조용히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저도 알아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저희 바티칸도 협회에 마수왕의 시체는 용사님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래? 고마워.”
“다만, 검을 구하는 것은 제가 도움을 못 드릴 것 같습니다.”
엘도르가 조금 미안해하며 말했다.
“아냐, 괜찮아.”
진짜로 괜찮다. 안 그래도 상격에 전력인데다가 용사의 성검인 엘도르를 바티칸에서 빼앗았는데 좀 미안해서.
“그럼 난 가볼게.”
“예.”
***
검은 못 구했다. 그란데힐이랑 티타니아가 안 보여서.
나는 걸음을 옮겼다.
달빛 아래.
금빛의 포니테일의 형태로 머리를 뒤로 묶고, 자신의 눈동자를 떠올리게 만드는 붉은색 저지에 돌핀 팬츠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여성이 보였다.
윤채린이 나를 보며 화사하게 웃었다.
“뭐야뭐야.”
히죽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윤채린이 말했다.
“요, 우리 시우 뭐 하고 있었어? 설마 염탐? 아니면 나처럼 예쁜 여친 보려고?”
우하고 입술을 내밀면서 섹시한 척을 했다. 이건 뽀뽀해 달라는 표시겠지?
쪽.
그래서 뽀뽀했다.
“하, 이시우.”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짓지만, 입꼬리가 실실 올라갔다.
“보자마자 뽀뽀하는 거냐? 키스 정도는 해야지.”
그리고는 내 목을 팔로 감싸며.
“쪼옥, 츕, 츄릅. 하아”
붉은색의 눈동자가 몽롱하게 풀렸다. 열락이 담겨 있었다.
“본방 고?”
무드 없기는.
“할 말이 있는데.”
“응, 뭔데?”
내 품에 쏙 안겨서, 나를 껴안고는 코로 냄새를 들이 맡으며 윤채린이 말했다.
“냄세 안나?”
“좋은 향기만 나는데 뭘. 그래서 할 말이 뭔데.”
“내일, 우리 집에 올래?”
순간 윤채린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는 느릿하게 말했다.
“……내일?”
“응, 우리 부모님한테 소개하고 싶은데, 올래?”
“후, 이시우. 드디어 나한테 시집이 올 맘이 생긴 거야?”
눈이 싱글거렸다. 그러나 그 안에는 여러가지 감정이 뒤섞였다.
“근데 어쩌지. 나 망령들 때문에 자존심만 높아서, 고집 진짜 센데.”
“괜찮아, 우리 부모님은 엄청 관대하시거든.”
“막, 인사 같은 거는 되는데, 고개를 아예 숙이거나 그런 건 못해서. 못한다기보다는, 아직 내가 망령들한테 완전히 풀려난 게 아니라.”
“괜찮아. 미리 말해둘게. 어렸을 때, 조금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그래? 그럼 가지 뭐. 근데 그 전에.”
쪽.
윤채린이 내 복부 쪽에 키스 마크를 남기고는.
“네가 내 거라는 증거를 좀 남기고 가자.”
***
다음 날.
윤채린이 심호흡했다. 그리고는 부모님을 향해 절을 하고는.
“아버님, 어머님! 저에게 아드님을 주십시오!”
머리 못 박는다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