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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227화 (227/298)

〈 227화 〉 이시우(2)

* * *

세상이 갈라졌다.

마치 그런 착각이 일었다.

‘아니, 이건.’

윤채린은 당황하면서도 앞으로 나섰다. 푸확­! 뒤늦게 가슴부터 사타구니까지 일자로 피를 뿜으며 쓰러지고 있는 마수왕이 보였다. 그러나 아직 죽은 것은 아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죽어가고 있다. 만약 이대로 마수왕에게 제대로 한 방만 더 먹인다면.

그것을 깨달았는지 다들 안색이 바뀌었다.

“공격! 공겨어어어어억!”

수 많은 영웅이 마수왕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윤승하와 윤채린, 남다윤, 그 셋은 재빠르게 이시우에게 달려갔다.

“요, 용사님의 안색이 창백해요!”

“잠깐, 잠깐! 쟤 지금 입에서 피 토하고 있는데! 야, 윤승하! 빨리 그 구슬 줘봐!”

이미 이시우에게는 신성력의 세례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시우의 몸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어떻게, 어떻게…….”

엘리스가 성력을 불어넣음에도 몸상태는 심각한 상태였다. 성력을 불어넣어 이시우를 회복시키는 것보다, 능력을 쓴 반동 탓에 상처가 깊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이걸 올려봐.”

윤승하는 구슬을 이시우에게 넘겼다. 모든 것들을 회복시키는 이 물건이라면, 그래도 유용할 거다.

윤승하는 그렇게 믿었다.

웅웅!

어디선가 진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시우의 머리 쪽에서.

윤채린은 고개를 돌렸다.

“왕관이…….”

윤채린의 멍한 말에 윤승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시우의 머리 위에 쓰인 왕관.

그것이 불길한 검은색의 기류에 휩싸여 있었다.

동시에 이시우의 육체에도 변화가 있었다.

마치, 방금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붕괴하던 육체가 마치 시간을 되돌리는 듯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멀쩡한 육체로.

이적??이 일어났다.

***

으적으적으적.

무언가가 기린의 육체를 씹어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으적으적.

검은색의 무언가가 기린을 삼킬 때마다, 나는 미묘하게 무언가가 내 내면에서 성장하는 것을 느꼈다.

‘뭐지.’

굉장히 묘했다. 천수로 내 몸을 살펴야 겨우겨우 알 수 있는 그런, 성장률.

“그런 건 보기 좋은 게 아닌데.”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나른한 표정을 한 ‘내’가 가면을 비스듬하게 쓴 채로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보는 건 너에겐 처음인가?”

“너는 누구지?”

“가면.”

가면이 멀겋게 웃었다.

“궁금한 게 많은 표정이로군. 네가 왜 이 세상에 떨어졌던가­.”

“말해줄 수 있나?”

“아니, 없어. 나는 그 대답을 하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거든.”

가면이 킬킬거리면서 웃었다.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지만, 시간이 별로 없군.”

가면이 허공을 응시하며 말했다.

“곧 꿈에서 깨게 될 거다. 묻고 싶은 건 있나?”

“……마신과 영원을 꿈꾸는 자에 대해서 묻고 싶은데.”

“그 둘인가? 너는 알고 있잖아.”

가면이 히죽­웃으면서 말했다.

“윤채린과 윤승하. 그 둘이 그놈들과 관련이 있단 것을.”

“대적불가의 마신과 영원을 꿈꾸는 자가 ........인가?”

내 말에 가면이 나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가면은 내 말에 웃었다.

“그것도 대답 못하는 모양이군.”

“음, 맞아. 나는 아는 게 많지만, 대답할 수 있는 종류가 많지는 않거든.”

“그럼 천의 가면에 대해서 말해봐.”

“천의 가면은 간단해. 가면으로 너와 인연이 있는 상대의 재능을 복사하는 힘이지. 그리고 죽은 존재들은.”

가면은 천천히 기린을 향해서 걸어갔다. 비명을 지르는 기린의 목에 손을 대었다.

뎅겅.

그러자 무슨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린의 목이 그대로 잘렸다. 그리고 가면은 손에서 생성된 기린의 얼굴을 본떠 만든 가면을 기린에게 씌웠다.

“죽은 존재들의 령(?)을 이렇게 흡수해서 사용할 수 있지. 기린의 가면을 쓰면 알 수 있을 거다. 가면의 마수를 잡았으니, 사념이 들릴 테니 괘념치는 말고.”

“사념?”

“상격에 들면서, 가면을 작성할 때 들렸을 텐데? 뭐,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이건 넘어가고.”

그리고 가면은 까먹었다는 것을 떠올렸다는 듯이 말했다.

“아, 참. 그리고 기린의 가면은 이제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 거야. 아니면, 네 ‘수하’로 쓸 수도 있고.”

“…….”

“짐작했다는 표정이네. 재미없기는.”

“회귀자에 대해서 묻고 싶은데.”

“회귀자? 아, 컬렉터에 대해서 묻고 싶은 모양이군.”

가면은 드물게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컬렉터. 그에 나도 자세한 것은 잘 모른다. 다만, 이 세계에 있는 컬렉터는 본래 주인이 가졌던, 아주 조그만 조각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지.”

“조각?”

“그래. 만약 진짜로 그가 컬렉터였다면 마왕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마신이랑 영원을 꿈꾸는 자와 대적할 수 있는 전 우주에 몇 안 되는 존재니까.”

나는 차분하게 가면을 바라봤다. 가면은 지나치게 호의적이었다. 내 질문에 하나하나 답해주는 것이, 이상했다.

“왜 호의적이냐는 시선이군. 그럴 수밖에 없다. 네가 성장할수록 나는 힘을 되찾으니.”

“힘을 되찾는다고?”

“그런 조건이다. 가면의 사도인 나는 혼돈에게 한 번 버려진 몸. 그러나 혼돈은 너를 좋게 봐주신다. 네놈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나는…….”

가면이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러나 들리지 않았다. 입모양으로도 유추할 수 없었다. 말은 보이는데 지식 열람도 먹통이었고.

“이건 아직도 안 되는 건가.”

가면이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한 가지 더 묻고 싶은 게 있다.”

“뭐지?”

“너는 누구지?”

가면의 눈이 반달로 휘었다. 마치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는 가면이다. 혼돈으로부터 사도를 명한, 대적불가의 마신과 영원을 꿈꾸는 자의 시선을 피해 혼돈을 퍼트리기 위한 첨병?兵.”

“첨병?”

“그렇다. 지금은 거의 버려진 지 오래지만.”

가면이 조금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기린의 주검을 바라봤다. 가면이 기린을 잡아먹는 것을 바라보았다.

가면은 지나치게 수상하다.

내가 질문을 할 때마다 모든 것을 답해주려고 노력한다.

‘나를 잡아먹으려는 건가?’

가능성은 있다. 가면은 죽은 자의 령을 잡아먹는다고 했으니.

“마지막으로 질문은 없나? 이제는 시간이 다 되었다.”

“천수, 지식열람, 천의 가면 중에서 나한테 해가 되는 게 있나?”

“감이 날카롭구나.”

가면이 히죽­웃었다. 불쾌하게.

“지식열람은 걱정할 것 없다. 네 몸에 부담을 조금 주는 수준이니까. 천의 가면은 조금 꺼림칙할지도 모르지만. 아, 천수는 너무 자주 쓰지 마.”

“왜?”

“그분은 널 너무 좋아하거든.”

가면이 처음으로 무표정하게 말했다. 목소리에 두려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좋아한다고 해서 방심하지 마라. 그들의 좋아함은 우리들 입장에서는 좋지 않으니까. 신적인 존재의 사랑을 받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비극을 초래한다.”

“그렇군.”

가면의 주의가 왠지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천수도 위험하지만, 마치 그전에 자기가 무언가를 하고 싶어하는 듯 했다.

우우웅!

그 순간 검은색의 왕관이 머리 위에 떠올랐다. 뜬금없지만, 검은색의 왕관이 노래하는 듯이 느껴졌다. 우웅거리면서.마치 지금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즐겁게.

“시간이 되었군.”

“시간?”

“그래……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끝났다.”

가면은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문자 그대로 사라졌다.

가면만을 덩그러니 남기고.

‘뭐지.’

나는 가면을 줍기 위해서 한 발짝 앞으로 걸었다.

그러자 수 많은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마치 영화의 필름을 넘기듯이 장면이 스쳐 갔다.

윤승하와 단둘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내가 보였다.

윤채린과 영원을 맺겠다는 약속을 맺는 내가 보였다.

용왕, 하메르 곁에서 집사복을 입은 채 뚱한 표정을 짓는 내가 보였다.

꽃다발로 김은정이 나에게 프로포즈 신청하는 듯한 장면이 보였다.

수 많은 장면들이 넘어갔다.

그들과 공통점은 언제나 하나였다. 나는 한 여자와 같이 있었고, 다른 여자들을 보지 않았다는 것.

‘어쩌면 평행세계의 이시우는 순애보였을까.’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가 최면 때문에 여자들과 난잡한 관계를 맺게 되었지만, 그 근본적인 이유는 그녀들의 능력을 내가 모방할 수 있어서 기도 하였다.

‘천의 가면이 없는 건가.’

그렇다면 지식열람이나 천수 역시 없었다는 걸지도 모르겠다.

쩌적쩌적쩌적.

어디선가 알이 깨지는듯한 소리가 들렸다. 왕관 쪽이었다.

‘드디어…….’

각성의 전조였다.

머리는 복잡했지만, 나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지금을 즐기자.

***

나는 눈을 떴다.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나무로 지어진 천장. 그리고 몸속으로 들어오는 생명의 마나.

‘세계수 안인가.’

방 안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없다. 다만, 문밖에는 인기척이 꽤 있었다. 아마 나를 호위하기 위한 요정족 인원이겠지.

나는 서랍 옆에 있는 핸드폰을 꺼냈다.

‘날짜가 별로 안 지났군.’

마수왕과 싸운 뒤로 이틀이 흘렀다. 나는 빠르게 뉴스란을 열었다. 삼왕이 건재한지, 오만한 용을 막았는지에 대해서 궁금했기 때문이다.

[마수왕 토벌! 그러나 중간에 나타난 미지의 존재는 해치우지 못해…….]

[미국의 영웅 더 원, 한국에는 인류의 미래가 있다. 그것도 세명이나. 라고 극찬.]

[미국의 최상격 영웅인 더 원이 눈치를 보고, 중국의 최상격 영웅인 천검이 구애하고, 일본의 상격 영웅인 검성이 전전긍긍하는 이시우는 누구?]

“……귀찮게 됐군.”

그리고 내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간이 된 것 같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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