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화 〉 이시우
* * *
솔직하게 말해서, 영웅들은 이시우의 말을 듣고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시우가 학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들은 살리자.’
설사 목숨을 버릴지라도, 그들을 살릴 생각을 했었다. 훗날, 어떻게 될지는 모르나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상격에 든 세 명이었다.
뭐가 되었든, 인류의 희망이라는 역할을 짊어질 수 있는 이들.
이곳에 우리들이 스러지더라도, 인류는 저들을 믿고 싸울 수 있으리라.
차르르르륵! 봉관의 무녀가 움직였다. 묵색의 사슬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마수왕을 압박했다.
빛의 칼날이 수백 개로 분열되며 마수왕에게 향했고, 더 원이 현실조작으로 공간을 조작해서 마수왕을 압박했다.
쿠르르릉!
멸망, 파괴력만을 극단적으로 올린, 검은색의 번개가 마수왕에게 작렬했다.
마수왕은 모든 공격을 몸으로 맞았다. 다만, 저 검은색의 번개만은 피했다.
저건 위험하다. 멀쩡했을 때, 저 번개는 자신의 주먹을 그을리게 할 정도였다. 약해진 지금은 잘못 맞으면 위험할 수 있다.
‘뭐지.’
서서히 육체가 회복되어간다. 마수왕은 분노했다. 일시적으로 육체가 더 강건해지며 근력이 올라갔다.
끼이이익! 팔이 부풀어 올랐다. 마수왕의 공격은 간단했다. 부풀어 오른팔을 그대로 후려친다.
콰아아아아앙!
마수왕의 반경 50m.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기면서 영웅들이 물러났다. 그 와중에 날카로운 감각은 영웅들의 움직임을 잡았다.
아주 늦게, 거추장스러운 사슬을 사용하는 이를 대피시키기 위해서 늦게 빠져나갔던 영웅의 다리를 잡았다.
“검성!”
“끄아아아아아아악!”
마수왕은 다리를 아주 쉽게 찢었다. 그리고 공격. 순간적인 움직임을 놓친 영웅 중 봉관의 무녀라 불리는 이의 앞에 나타났다. 김은정을 제외하면, 이 여자가 꽤 성가셨다.
그리고 가장 약해 보였다. 그것으로 이 여자가 죽을 이유는 충분했다.
콰아아아앙!
주먹을 날렸다. 봉관의 무녀가 비스듬하게 튕겼다. 피를 입에서 토해내며.
망치가 날아왔다. 아주 커다란 망치였다.
인간보다는 자신이 쓰기에 더 어울릴 법한 망치. 마수왕은 주먹을 쥐고,
콰아아앙!
그대로 부딪쳤다. 힘과 힘의 대결. 승자는 당연하게도.
“커헉!”
마수왕이었다. 여명 길드의 길드장 천추는 뒤로 날아갔다. 하지만 마수왕도 멀쩡하지는 못했다. 왼팔이 조금 전 일격으로 뒤틀렸다. 그래도 괜찮다. 머지않아 회복할 테니까.
겸손하는 자가 불꽃을 피웠다. 신성력이 담긴 새하얀 불꽃. 검은색의 번개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번개를 따라 김은정이 이동했다. 새하얀 불꽃과 검은색의 번개가 얽히며 마수왕을 노렸다.
‘뭐냐.’
마수왕은 크게 도약했다. 하늘을 날아서. 번개와 불꽃이 따라왔다. 그 사이에 팔 하나가 재생되었다. 마수왕은 다리를 꺾으며 회피했다.
육체가 회복되어간다. 감각이 날카로워진다. 힘이 더 강해지고 있다. 거악. 분노라는 감정을 가진 마수왕은 분노할수록 더 힘이 회복되며, 강해지는 특성이 있다.
“김은정 님! 지금은 물러나고 정비해야 합니……꺄아아악!”
마수왕은 회피했다. 그리고 공격했다.
‘뭐냔 말이다…….’
그럼에도,
날카로운 감각이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다.
‘도대체 이 불길함은 뭐지.’
마수왕이 감각에 경종을 울리는 존재를 눈으로 찾고 있을 때.
이시우가 한 발짝 앞으로 걸어갔다.
***
어느새부턴가.
나와 인연이 있는 이들이 스스로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굉장히 가팔랐다.
당장 주인공인 윤승하와 윤채린은 고인물들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강해질 수 없는 수준까지 올라왔으니까.
하지만 그와 비례해서 적들의 강함은 더 강해졌다. 아니, 더 정확히는 강적이라 부를 존재가 더 빠르게 나타나고 있었다.
여자들이 나를 말려 죽이기 전까지 쥐어짜 낼 때, 살기 위해서 체력을 올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그런 계산도 있었다.
‘어차피 칠색의 진화 능력인 공허를 다루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요해.’
하지만 내 생각 이상으로 칠색의 진화는 느렸고,
강한 적들이 오는 속도는 그보다 더 빨랐다.
당장 산양만해도 원래대로라면 그런 속도로 올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만든 것이 바로 일월천뢰검.
만약에, 정말 만약에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 내 육체를 한계까지 쥐어짜 낸 다음 극한의 딜을 넣기 위해서 만든것이 바로 일월천뢰검 황혼식이었다.
‘미안, 내 수준에서는 도저히 가늠이 안 되는데…….’
문득 남다윤이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 일월천뢰검의 오의인 황혼식을 연마하면서, 그녀의 조언을 듣기 위해서 나는 그녀에게 황혼식의 구조를 설명했다.
‘진짜로 모르겠어. 분명, 분명 터무니없이 강할 거야. 아마 시우, 네 일격이라면 그때 나타났던 산양을 상대로도 맞는다고 가정한다면 상처를 입혔을지도 몰라.’
남다윤의 답은 몰랐다였다. 힘이 너무 강해서, 도저히 측정이 안 된다고.
‘근데 그거 괜찮은 거 맞아?’
윤채린의 말이었다.
‘그거 파괴력 하나로는 그 칠색이란 것과 비견되는 것 같은데. 근데 부담은 더 심……하지는 않겠네. 그 때 산양을 잡았을 때, 마지막에 쓴 그 뭐냐, 시커먼 검. 마치 우주를 담은듯한 거. 그거랑 비교한다고 치면…….’
윤채린은 걱정어린 눈으로 나를 봤다.
‘그거 절대로 쓰지 마. 네 고유능력이 모조리 부담한다고 해도, 죽은 것을 살릴 정도냐고 묻는다면, 나는 의문 부호가 붙거든. 나 과부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그거 절대, 절대로 쓰지마.’
‘걱정하지 마.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유아독존은 더 사기거든.’
윤채린은 어떻게든 안심시켰다.
유아독존은 몸을 회복시키는 형태로 쓰지 않고, 사용하는 것으로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솔직하게 말해서.
나도 내가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다.
‘상격에서 상위권에 있는 것은 확실한데.’
공격력이 다르다.
각인과 특성, 고유능력의 시너지가 모두 합쳐진다면 최상격과 싸워도 나는 밀리지 않을 거다. 김은정은 조금 힘들겠지만.
그리고 그 상태에서 기린의 정수를 얻었다.
기린의 정수, 허뢰?雪. 나는 허뢰를 다루면서 한층 더 강해졌다.
‘그래서 모르겠어.’
내가 현재 얼마나 강한지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었다.
우웅.
주변의 마나가 요동친다. 기파가 농밀해졌다. 촘촘하게, 그것이 백금색 칼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동화를 모방한 가면을 썼다. 태양의 돌과 달의 돌과 동화한다.
오버로드. 능력치를 근력에 더했다. 뇌신이 번개를 내뿜었다. 백금색의 칼날의 뇌광이 뿜어졌다.
비염이 칼날에 불꽃과 번개를 불어넣고,
기린의 정수로 얻은 허뢰로 휘감았다.
붉은색.
태양의 마나.
푸른색.
달의 마나.
붉은 색과 푸른색이 교차한다.
자색빛의 황혼이 백금색의 성검에 내려앉는다.
─────────!!
빛이 급속도로 강해졌다. 마치 주변의 모든 빛을 삼키고 커져나가는 것처럼.
그와 동시에 주변의 안색이 바뀌기 시작했다. 경탄, 감탄, 놀람, 경악 등으로.
“놈……!”
무언가 심상찮음을 느낀 것인지 마수왕의 표정이 급하게 바뀌었다. 김은정을 경계하던 녀석이 나를 경계했다.
뭐가 되었든, 멸망의 번개를 뿌리는 김은정보다 내가 더 위험하단 소리였다.
콰득!
마수왕이 도약했다. 느리다. 삼왕과 이연아가 준 부상 덕도 있지만, 성검으로 화한 엘도르가 마수왕의 특성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잡아!”
누군가의 외침에 수 많은 공격이 마수왕에게 향했다. 윤채린이 가장 선두에서 막았다.
윤채린은 내 말에 가장 많은 힘을 모아두고 있었다.
천마신공
파천격
진각을 밟고, 마수왕을 내리쳤다. 동시에 수천 줄기의 빛의 칼날이, 수십 개의 검은색 사슬이, 수 줄기의 검은색의 번개가 마수왕을 내리쳤다.
“죽어라!”
지금까지 멸망의 번개만을 피하던 마왕이 모든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수십 줄기가 마수왕의 가죽을 뚫고 꽂혔다. 검은색의 사슬이 마수왕의 왼쪽 다리를 칭칭 감았다. 검은색의 번개가 마수왕의 오른쪽 팔을 멸망시키고 있다.
마수왕은 멈추지 않았다.
저런 것들보다도 내 일검이 위험하다는 듯이 행동했다.
마수왕이 내 지척에 도달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아…….”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제 죽음을 직감한듯한, 무언가 포기한듯한 목소리.
일월천뢰검
오의황혼식???
종언??
***
세상이 갈라졌다.
마치 그런 착각이 일었다.
‘아니, 이건.’
윤채린은 당황하면서도 앞으로 나섰다. 아니, 이건 나태의 산양에서 봤던 기술보다 명백하게 아래였다. 그 기술은 나태의 산양이라는 존재를 시체조차도 찾지 못할 정도의 강한 공격이었으니까.
푸확! 뒤늦게 가슴부터 사타구니까지 일자로 피를 뿜으며 쓰러지고 있는 마수왕이 보였다. 그러나 아직 죽은 것은 아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죽어가고 있다. 만약 이대로 마수왕에게 제대로 한 방만 더 먹인다면.
그것을 깨달았는지 다들 안색이 바뀌었다.
“공격! 공겨어어어어억!”
수 많은 최상격의 영웅들이 마수왕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윤승하와 윤채린, 남다윤.
그 셋은 재빠르게 이시우에게 달려갔다.
“요, 용사님의 안색이 창백해요!”
“잠깐, 잠깐! 쟤 지금 입에서 피를 토하고 있는데! 야, 윤승하! 빨리 그 구슬 줘봐!”
이미 이시우에게는 신성력의 세례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시우의 몸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어떻게, 어떻게…….”
엘리스가 성력을 불어넣음에도 몸 상태는 심각한 상태였다. 성력을 불어넣어 이시우를 회복시키는 것보다, 능력을 쓴 반동 탓에 상처가 깊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이걸 올려봐.”
윤승하는 구슬을 이시우에게 넘겼다. 모든 것들을 회복시키는 이 물건이라면, 그래도 유용할 거다.
윤승하는 그렇게 믿었다. 믿고 싶었다.
윤채린은 윤승하를 보면서 이시우를 바라봤다. 안색이 창백했다.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육체가 죽어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완벽하다고 느꼈던 육체가 붕괴하고 있었다.
'씨발, 괜찮다며.'
당장이라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시우를 뜯어말리고 싶었다.
“왕관이…….”
윤승하의 멍한 말에 윤채린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시우의 머리 위에 쓰인 왕관.
그것이 불길한 검은색의 기류에 휩싸여 있었다.
***
나는 눈을 떴다.
“여기는…….”
몸을 일으키면서 당황했다. 나는 당연히 내가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병원일 줄 알았는데…….
검은색의 배경이 보였다.
그렇다.
배경이다.
나는 시꺼먼 장소에서 서 있었다. 위도 아래도, 그저 시꺼멓기만 한 꺼림칙한 공간.
그리고 내 앞에는 회색의 왕좌가 있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이 들렸다. 굉장히 익숙한 영언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기린.
그곳에는 회색빛의 비늘이 보였다. 이곳저곳 ‘무언가’에 씹어 삼켜진 듯한 모습으로.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자세히 보니, 다른 것들도 보였다. 하늘을 향해 뻗은 무수히 많은 손과 무수히 많은 가면이.
그리고 그 위에 주홍빛의 눈동자 같은 것이 떠 있었다.
“여기는…….”
직감적으로 나는 깨달았다.
이곳이 바로 내 심상이라는 것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