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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225화 (225/298)

〈 225화 〉 결전(5)

* * *

전쟁의 분위기는 한순간에 기울어졌다.

영웅들에게 굉장히 유리한 쪽으로.

마수왕은 강했다. 이연아를 위시한 최상급의 영웅들이 달라붙어도, 이연아를 제외한 이들을 몰아붙였으니까.

‘삼왕은 좀 다르지.’

마수왕의 팔이 부풀어 올랐다. 공간을 통째로 지워버릴 듯한 힘이 그의 팔에 깃들었다. 그리고 마수왕은 그 팔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가장 먼저, 그 힘에 대항한 것은 용왕이었다. 용왕, 하메르가 웃으면서 앞으로 달려갔다. 콰득! 주먹과 주먹이 부딪쳤다. 경파가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충격파를 일으켰다.

“크하하하하! 역시 네놈도 무식하게 쌔구나!”

하메르가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쟤는 진짜 무식하단 말이야.”

공허족의 왕인 에니스가 중얼거리면서 영창을 했다.

“괜찮으십니까?”

어느새 이시우 쪽으로 다가온 그란데힐이 포션을 꺼내면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버틸만하다.

“용사님, 어떻게…….”

“괜, 찮아. 호들갑을 떨 정도는…아니야, 쿨럭.”

안절부절해 하는 엘도르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말하다가 피를 토했다. 속이 매스껍다. 머리는 핑핑 돌고.

“우, 우선 바로 사, 상처부터 치유할게요.”

릴리의 소녀, 엘리스가 빠르게 신성주문을 외우더니 내 배 쪽에다가 손을 대었다. 엘리스는 이시우의 몸을 살피다가 경악했다.

“맙소사, 한 방 맞았는데, 온 몸이…….”

“치유 가능해? 최대한 바로 싸움에 합류할 수 있게.”

“……네? 더 싸우신다고요? 이미 삼왕분들이 와 계시는데.”

엘리스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부탁해. 느낌이 이상해서.”

나는 이연아를 생각했다. 동굴 속에서 마치 먼 곳을 떠나려고 했던 사람처럼 행동했던, 이연아의 태도를.

‘공상의 구슬을 쥐어 줬지만.’

느낌이 이상했다. 감각이라고 해야 될까.

굉장히 짙은 불안감이 느껴졌다.

“일단, 일단 응급처치는 완료했어요. 그래도 당장은 무리하지 마세요. 지금 저희가 확실하게 이기고 있어요. 압도적으로…….”

옆에서 엘리스가 내 상처를 보며 말했다. 눈이 조금 그렁그렁했다.

“이상한데.”

어느새,

한 여자가 내 옆에 다가와서 중얼거렸다.

여자의 외관은 특이했다. 마치 악마족처럼 검은색 바탕에 빨간 줄 하나가 그려진, 산양의 뿔같은 것이 그녀의 머리 위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흰색과 붉은색이 혼합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남색빛의 머리카락이 흔들거리며 남색빛의 눈동자로 나를 보았다.

──문득 소름이 돋았다. 감각이 그녀라는 존재를 전혀 캐치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눈앞에 있는데도,

감각은 그녀가 있는 위치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 누구지? 꽤 싱그러운 마력을 갖고 있는데……아하, 그 빌어먹을 놈의 후계인가?”

밤 하늘을 담은듯한 눈동자가 나를 바라봤다. 눈 앞에 있는 존재는, 나를 알고 있다. 그래서 내 감각이 혼선되는 이유도 알고 있다.

‘……어째서.’

머리가 굳었다.

가장 있으면 안 되는 존재가 눈 앞에 있기에.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요정왕의 장막을 써야 할까? 아니, 그건 좋지 않다. 요정들이 오히려 몰살당할지도 모른다.

가장 오만한 자.

이 세계에서 보스로 내정된 마왕은 강하다. 그리고 까다롭다. 절대 공명이라는 능력으로 모든 법칙을 뒤틀며, 컬렉터만큼은 아니지만, 자기 자신의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단순하게, 정말 단순하게 ‘전투’하나만을 따지자면, 마왕보다도 더 강한 존재가 하나 있다.

묵시록의 붉은 용.

용족의 배신자. 세상을 멸망시키고, 신살에 도전했던 용.

그녀가 선선히 입을 열었다.

“근데 그놈이랑은 달라. 생명력이 더 넘친다고 해야 되나? 그리고 뭔가 존재들을 홀리는 듯한 분위기는…….”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때문인가. 얼굴은 내 취향이 아니기는 한데, 그래서 더 가지고 싶어진다.”

흥미로운 표정으로 여자가 내 몸을 훑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붉은색의 눈이,

반달로 휘었다.

“너, 마음에 드네. 인간놈들에게 절망이라는 감정을 심고, 힘을 좀 회복하려고 나들이 온 기분으로 왔는데……. 굉장히 예쁜 보석을 주운 기분이야.”

히죽, 웃으면서.

그 순간.

화아아악!

동시에 용왕의 몸에서 빛이 났다. 강렬한 마력의 파동이 주위로 흩뿌려지더니, 100m에 이르는 거대한 용체로 화했다.

용족 중에서도 가장 강한 폭력성을 지닌 흉성룡(???). 그 본체로 돌아간 하메르가 내 쪽을 향해 질주했다.

­타아아아아아아아아안!!!

강대한 용언이 사방으로 울려 퍼지면서 세계의 법칙이 내 옆에 있는 존재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마수 왕조차도 잠깐은 움직이지 못하게 할 강대한 언령.

탄이 한 행동은 간단했다.

가벼운 손짓으로 언령들을 흘리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마수왕을 살릴 겸 겸사겸사 널, 데려가야겠다.”

“엘도르!”

엘도르를 부르자 엘도르가 바로 성검으로 화했다. 나는 성검을 들었다.

검을 잡고, 휘두르려는 순간 나는 어느새 티타니아 옆에 있었다.

“여왕의 권능이다. 말할 시간이 많지는 않아.”

떨리는 목소리로 티타니아가 나한테 말했다.

“나와 삼왕, 이연아는 저 용을 묶어야 한다.”

어딘가 슬픈듯한 목소리로 티타니아가 말했다.

그렇게 되면, 지금 마수왕을 막을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나는 눈을 돌렸다.

전신이 타고, 썩고, 나무가 튀어나온 마수왕. 그럼에도 강대한 힘이 느껴졌다. 농밀한 기파가 그에게 있었다. 틈을 찾기 힘들 정도로.

“크흐흐.”

살았다는 듯이 웃음을 흘리는 마수왕.

주변의 최상격 영웅들의 안색도 굳어지고 있다.

“갔다 와요.”

“괜찮겠나?”

“괜찮으니까, 갔다와.”

나는 검을 움켜쥐었다.

한탄할 시간은 없다.

‘시간 벌이도 안돼.’

나는 마수왕을 바라봤다. 한 번에 끝내야 한다. 단기전으로 몰고 가서 마수왕을 조져야 한다.

이연아와 삼왕의 공격에 꽤 너덜너덜한 모습이지만, 어지간한 최상격 쯤은 한손으로 처리할 거다.

‘싸울 수 있는 인원이.’

다행히도 엘도르는 지금 여기에 있다. 기린검이 부서져서, 무기가 필요했는데. 최상격으로 이름 높은 이들이 있다. 상격의 이름값을 하는 검성이랑 봉관의 무녀도 있다.

상격의 남다윤하고 윤승하, 윤채린. 저 셋은 상격중에서도 끝자락하고 싸워도 이길 수 있는 존재들이다.

‘부족해.’

그럼에도 부족했다. 상대가 그만큼 강한 상대기 때문이다. 비록 빈사상태이지만, 마수왕은 분노할수록, 인류가 패배라는 상황에 놓여 절망할수록 그는 힘을 되찾을 거다.

“우리도 가겠다.”

용족으로 보이는 인원이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공허족도 뒤를 따라갔다.

“저희는 여기에 남겠습니다.”

요정족들은 잔류를 택했다. 용족이랑 공허족은 그들의 왕을 잃으면 안 되지만, 요정족은 선택지가 좀 다르다. 여왕은 잃어도 되지만, 나는 잃으면 안 되니까.

“삼 분의 일……아니다. 그란데힐만 남기고 모두 떠나.”

“……그건.”

“명령이야. 탄, 저놈이 풀리면 안 돼.”

마수왕은 이쪽에서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극복한다.

전력은 탄에게 보내면서.

“남편, 뒤로 물러나.”

윤채린이 굳은 표정을 하며 말했다.

“아까 일격에 맞고 많이 부상당했지? 그 일격 때문에 삼왕이 끼어든 것에 대해서 묻고 싶지만, 일단 안전부터 챙겨.”

윤승하가 드물게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란데힐, 물러나. 그냥 전장 바깥으로 보내. 이시우는 싸울 힘이 없어.”

“있어.”

나는 숨을 몰아쉬며 회복 마법을 썼다. 엘도르에게 인정받으면서 얻게 된 신성의 힘.

‘미약해.’

하지만 아주 조금 괜찮아졌다.

“한 방. 딱 한 방 날릴 수 있다.”

“……너.”

“조용히 해. 어차피 여기에 있으면 모두 위험해. 저놈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한방이 있으니까, 그걸 날리면 저놈을 죽이는 거야. 할 수 있지?”

“하겠다.”

여자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더 원이 말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영웅이며, 현상조작이라는 능력을 가진 영웅.

“젊은 놈이 목숨 걸고 한 방 먹이겠다는데 늙은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

광성자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나는 엘도르를 쥐었다.

일월은 정말 강한 각인이다.

평소에는 여성과 섹스를 하면, 상대의 잠재 능력을 개화해 준다.

태양과 달이 떠오를 때, 각기 다른 능력을 부여하면서도, 달의 마나와 태양의 마나를 쓸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면 나에게 일월이 가장 강한 시기는 어떨까.

나는 태양이 저무는 황혼을 바라보았다.

영원의 겨울을 상징하는 천영의 꽃.

지식 열람으로 임나연의 특성을 가져와서 사용하는 영천의 리는 강하다. 무위의 검이나 영허낙뢰검도 강하지만,

단순하게, 파괴력이라는 측면에서, 영천의 리는 압도적으로 강하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지.’

그러나 그것이 내가 달이 뜰 때 강하다는 이야기는 될 수 없다.

화르르륵.

태양의 마나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화악! 그와 동시에 달의 마나가 내게 기운을 돋구기 시작했다.

태양이 지고,

달이 떠오르는,

보랏빛으로 물든 세상인 황혼.

바로 황혼의 시간에 나는 가장 강했다.

나는 태양의 돌과 달의 돌을 움켜쥐었다. 동화. 두 개의 돌에 담긴 힘이 내 몸에 동화되기 시작한다.

­용사님……!

“괜찮아.”

어떻게든 될 거다. 나는 유아독존을 믿었다.

엘도르를 힘껏 쥐었다. 그리고 크게, 앞으로 한 걸음을 걸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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