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화 〉 가면(4)
* * *
헬기 안, 그곳에서 이연아가 한쪽 손으로 턱을 괴며, 이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이 묘했다. 이시우는 그 눈빛에서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듯한 티타니아의 눈빛이 떠올랐다.
이연아는 그 광경을 보면서 웃었다.
‘한 번쯤은 괴롭혀보고 싶은데.’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자신이 이시우에게 얼마나 심하게 당했는가.
아무리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막, 막 심하게 다루지 않았던가.
물론 이연아는 이시우를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이 더 강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이시우는 그런 존재였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일 때, 그녀를 구원해준, 그런 존재.
‘포커페이스는 여전하네.’
이시우는 그의 능력 탓에 표정을 밖에 내보이는 법이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이시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고민이 있나요?”
“고민이요?”
“네, 시우 씨가 고민이 있는 표정을 짓길래요~.”
이시우는 그런 표정을 지은 적이 없다. 다만 이연아는 말했다.
“혹시 시우 씨가 가진 특성 때문인가요?”
“네, 조금 걸리는 게 생겨서요.”
“가면 한번 써봐요.”
“……가면이요?”
“네, 기린의 가면이 있잖아요.”
이시우가 아주 미세하게. 자신을 경계 어린 표정으로 자신을 봤다.
‘아, 이것도 좋네.’
경계한다는 것은 싫지만, 이시우의 신선한 표정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좋았다.
“어떻게 가면에 대해서?”
“글쎄요? 어떻게 알았을까?”
이연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가면’을 꺼냈다.
‘가면의 등급이…?’
가면을 꺼내다가 이연아는 당황했다. 가면의 등급이 올랐기 때문이다. 과연 이것 때문이었나. 이연아는 웃었다. S 등급으로 올라온 덕분에 꽤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저도 같은 특성이 있거든요.”
“천의 가면이요?”
“네, 뭐, 그래서 알고 있어요.”
사실은 모른다. 그녀는 다만 그가 말해준 대로 말하는 것일 뿐이니까.
“……기린의 가면.”
“한 번 써보세요. 정 위험할 것 같으면 제가 도와줄 테니까. 뭐, 그래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이연아는 그의 고유 능력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유아독존의 힘이면, 별문제는 없을 거다.
“고맙죠? 이런 조언을 해주는 사람한테 뭐 보답 같은 거 막 해주고 싶지 않아요?”
“뭐, 받고 싶은 거라도 있으세요?”
“그냥 밥 한번 해주세요.”
“……밥이요?”
“네, 사주는 거 말고. 시우 씨가 직접 한 밥이 먹고 싶네요.”
오랜만에 이연아는 그게 먹고 싶어졌다.
***
우리는 우선 협회로 이동했다. 마수왕이 중국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급보에 워프 게이트를 타고 움직이기로 합의를 봤다.
“이쯤이면 좋겠네요.”
워프게이트에 가기 전에 이연아가 나를 멈춰 세웠다.
“여기에서 가면을 써보도록 해요. 여기라면 그나마 안전하니까.”
싱글거리며 웃는 이연아. 나는 잠깐 그녀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아마도.
그녀는 나랑 연관이 깊을 것이다. 천의 가면이 통하지 않는 이유도 그 특성 때문일 거다.
상대에게 허락을 받고, 상대의 능력을 모방하는 삼라만상이라는 능력이 존재한다.
회귀자의 동료 중 하나가 가지고 있던 능력으로 그 능력은 전 세계에서 굉장히 유명한 능력이다.
그러나 삼라만상이란 능력 말고도 남의 능력을 쓸 수 있는 능력이 하나 더 있다.
‘일낙천금.’
상대방의 동의에 따라 특성을 공유하는 능력.
아마도 그녀는 모종의 이유로 탑에 의해서 과거로 날아간 나에게서 받았을 거다.
그렇다면 말이 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그녀가 던전 공략을 끝나자마자 나랑 만나러 온 것.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무위의 검도 간략화 하라고 한 것도.’
일월천뢰검을 굉장히 잘 다루는 것도.
그 모든 것이 말이 된다.
하지만 일낙천금의 패널티는…….
나는 조용히 심호흡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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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수 살해자
수 없이 많은 마수를 죽인 자의 정수가 깃들어 있다.
마수 살해 시, 모든 능력치 증폭.
마수 공격 시, 공격력 300% 증폭
100회 사용 시 자동으로 무기가 부서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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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마수가 떨구고 간 대검 형태의 무기.
마수 살해자를 이용해서 마수왕을 죽여야 한다.
이연아가 언급한 기린의 가면. 그것은 쓰기가 꺼려져서 봉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격에 오르면서 가면의 사념이 들리기 시작해서.’
가면을 만들면, 그 가면의 사념이 깃들고, 상격에 오른 지금은 그 사념이 이따금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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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가면 Lv.2
기린을 모방한 가면.
※주의, 기린에게 자아를 먹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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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면을 썼다.
“…………?”
그러기를 한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긴, 자아를 먹힐 수 있을 뿐이라고 적혀 있지, 바로 먹힌다는 이야기는 없었지.’
갑자기 김이 샜다.
큰 맘 먹고 쓰긴 했는데.
……무슨 일이지? 나는 분명 마왕에게 당해서 긴 잠이 들었어야 했는데.
기묘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념 형태의 목소리.
‘이봐.’
그대는 누군가?
마음속으로 부르자 기린으로 추정되는 자가 내 물음에 답했다.
사념이라서 마음속으로 부르는 것도 가능한 건가.
‘너는 누구지?’
나는 기린. 회귀자를 도와 마왕을 무찌른 사령(四?) 중 하나다.
‘사령은 전부 전투에서 죽지 않았나?’
나는 아니다. 다만, 죽음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상처를 입었기에 잠에 빠져들었지. 그런데 그대는 누군가?
‘이시우.’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대 같은 비범한 번개의 소유주를 내가 모를 리가 없다.
사념임에도 내 힘을 느끼는 건가?
그러고 보니 지금이 몇 년도지? 마왕은 아직 봉인밖에 못 했다. 그가 부활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마왕의 봉인은 거의 다 풀렸어.’
……뭐?
‘그리고 지금 거악들이 활개치고 있지. 나는 지금 마수왕을 잡으러 가고 있다.’
…….
내 말에 기린이 침묵했다. 사령 정도쯤 되면 말에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니, 내 말에 충격을 받은 것이겠지.
진실이군. 그대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어. 그래, 지금 마수왕을 치러 가겠다고?
‘그렇다. 지금 마수왕이 중국으로 향하고 있어.’
중국. 그래, 성질 급한 그 성미라면 중국으로 향하려고 하겠지. 중국은 인구가 많으니, 진격하는 것만으로도 힘을 회복할 수 있으니.
‘한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무엇이지?
‘대적불가의 마신. 그리고 영원을 꿈꾸는 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있나?’
…….
내 물음에 기린이 침묵했다. 그러나 이 침묵은 무언가를 알고 있기에 나오는 침묵임을 확신했다.
회귀자에게 들은 적이 있다. 이 세계는 반복하고 있다고.
‘세계가 반복된다고?’
그렇다. 영원을 꿈꾸는 자는 이 세계를 지키면서 외계의 존재들을 추방한다. 그리고 대적불가의 마신은 일정한 기간을 넘으면 세계를 부순다. 그리고 영원을 꿈꾸는 자와 대적불가의 마신이 힘을 합하여 세계의 시간선을 ‘어떤 시간선’의 전으로 되돌린다고 하였다.
스케일이 너무 큰 대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회귀자는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 우리를 설득하면서도 그는 마왕은 단지 우리가 지나가야 할 어떤 선에 지나지 않고, 진정한 적은 대적불가의 마신과 영원을 꿈꾸는 자라고 말했다.
‘그래?’
그렇다.
기린의 말에서 거짓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나는 의아했다.
대체 뭘 믿고 나에게 이런 정보들을 주는 거지?
‘가면……때문인가.’
나는 혹시나 싶어서 기린에게 말했다.
‘기린이라고 했지? 너의 몸은 어디에 있지?’
마수왕과의 싸움에서 내 도움을 받고 싶어하는 건가? 미안하지만, 나는 그대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 생각보다 마왕에게 당한 상처가 크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살리기 힘들 거다.
체념어린 말투였다.
그대라면……내 시체를 유용하게 써줄지도 모르겠군. 그대, 혹시 내 내단을 취할 생각이 있나?
‘내단?’
그래. 그대의 번개는 정순하지만, 내 번개만큼은 아니다. 만약 그대가 내 내단을 취한다면 그대가 지닌 번개는 한 단계 더 진화할 것이다.
그 말에 나는 가면을 쓰면서 조용히 있었다.
무언가 원하는 게 있어서 이런 행동을 했던 거군.
기린의 내단은 좋다. 내가 섭취한다면 뇌신이 강해질 테고, 비염에게 먹이면 더 강한 번개도 뿜을 수 있겠지.
하지만 기린의 내단은 이질적이다. 그의 사념이 깃들어 있기에, 동료들에게 잘못 먹이면 기린의 사념에 잡혀먹히기 때문이다.
‘좋다.’
하지만 나는 예외다. 유아독존이 있기 때문이다.
훌륭한 선택이다. 내가 있는 위치는…….
기린의 자신의 위치를 말해줬다. 마침 목표랑 가까운 곳에 있군.
나는 가면을 풀고 일어났다.
“끝났어요?”
“예, 생각보다 잘 풀렸네요.”
“다행이네요. 그럼 출발할까요?”
나는 이연아를 따라서 바깥으로 나가는 도중에 다른 인기척이 잡혔다.
“저분 협회장님의 따님이네요.”
“협회장님이요?”
다르게 말하자면 인맥 끈이라는 건가. 신경을 쓰고 싶지만, 지금은 시간이 별로 없다. 그러나 협회장의 딸이라는 사람은 내 쪽으로 다급하게 달려왔다.
“호, 혹시 이시우 님이세요?”
“네, 그런데요.”
“호, 혹시, 시, 실례가, 아, 안된다면, 사, 사인 한 장만 해, 해주실 수 있나요?”
“사인이요?”
“네네, 여기에다 해주실 수 있나요?”
여인이 종이하고 펜을 가져와서 말했다.
뭐, 어려울 것도 없다. 나는 펜을 들고 종이에 사인했다. 천수를 십분 활용해서.
유려한 필체가 내 이름을 그었다.
“이름도 써드릴까요?”
“네! 이시우 발 닦게…가 아니라.”
“…….”
“그…팬 네임이에요.”
“……네, 그렇군요.”
“……………이은영이라고 적어주세요.”
“네.”
나와 이연아는 이름을 적어주고는 워프게이트로 향했다.
“인기 많아서 좋으시겠네요~.”
“별로요. 생각보다 귀찮고.”
“우와, 재수 없어.”
“…….”
“농담인 거 아시죠?”
이연아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거 아세요? 협회장의 딸이라는 신분보다 제가 더 뛰어나고 대단한 거?"
"네, 압니다."
"그러니까 잘 해주세요. 아니면 시우 씨는 어장에 있는 여자는 무심한 타입?"
"아닙니다."
"막 이래~."
이연아가 히죽웃으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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