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화 〉 가면(2)
* * *
“나랑?”
김시연이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김시연이랑 비염이라.
“한 번 붙어볼래요, 누나?”
“나, 나랑 네 정령이랑?”
김시연이 떨리는 눈으로 비염을 바라봤다. 천의 가면으로 감정을 살피니 그 감정은 두려움과 떨림이 있었다. 그리고 호승심도.
하운드.
김시연의 별명이다.
충실한 사냥개라는 별명답게 목숨을 구해주면, 주인공을 전적으로 따른다.
……나는 꽤 오랫동안 방치했지만, 그래도 목숨은 구해 줬으니 어느 정도 날 도와주지 않을까.
“한번 해볼래요? 누나가 싫으시면 어쩔 수 없기는 한데, 그래도 괜찮으시면 제가 심판을 봐줄게요.”
“시, 시우 네가 심판을 봐준다고?”
“네, 어렵지도 않은 거라.”
원래대로라면 다칠 수 있기 때문에 강한 사람들에게 맡겨야 한다. 근데 나는 강한데다가 비염의 주인이기도 하다. 비염의 공격쯤은 내 마나로 막을 수 있다.
‘문제는 김시연인데.’
김시연의 마나가 문제다.
펜릴의 힘인 존재부정이라 불리는 신살의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신묘한 힘, 성력. 그리고 부정한 힘, 마(?).
저 둘의 극단적인 상성을 가진 것이 존재부정의 마나다. 성력만큼은 아니지만, 순수한 자연의 마나를 머금는 비염의 마나는 김시연과 상성이 좋지 않다.
‘아니, 한 대만 잘못 맞아도 요양할지도.’
나는 슬쩍 비염을 바라봤다.
비염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럼 대련장으로 갈까?”
아까 훈련하던 데서?”
“어.”
우리는 훈련장으로 갔다. 중간에 강한남이 미련남은 눈길로 보길래 카니에를 시켜서 쫓아 냈다.
“그럼 대련은 어떤 방식으로 할까요?”
카니에가 나한테 물었다. 나는 카니에를 바라봤다. 카니에의 경지는 상격. 비염은 아슬아슬하게 상격에 걸쳐있고, 김시연은 중격이다.
다만, 비무라도 둘 다 공격적인 성격이 짙다. 잘못하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나에게 묻는 것이겠지.
“일단 먼저 피격당한 쪽으로 정하는 건 어때?”
“좋아.”
좋네.
김시연하고 비염이 담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갔다 올게.”
계약자, 차 한잔 준비해놔. 차가 식기 전에 돌아올게.
김시연하고 비염이 비무장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김시연이 팔다리를 쭉쭉 뻗으며 몸을 풀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유연해서 당황했다. 땅에 발을 디딘 채 그대로 뒤로 몸을 엎어서 땅으로 손을 잡았다.
“엄청 유연하네요.”
“……그란데힐 님이 많이 가르쳐 줬어. 저는 공격력 자체가 강해서 속도랑 유연함을 키우라고.”
천의 가면으로 살피지 않아도, 부정적인 감정을 잔뜩 담은 채, 김시연이 말했다. 그란데힐이 생각보다 심하게 굴렸나 보다.
그 악독한 여자라면 그렇고도 남지.
“맞습니다.”
비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고, 카니에가 맞장구쳤다.
다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그란데힐이 얼마나 착한데.
“……이시우 님은 잘 모르실 겁니다. 그란데힐 님은 항상 내숭을 떠니까요.”
카니에가 조금 꺼림칙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카니에 님, 인간한테 왜 존댓말 하세요?”
“……내가?”
“저도 처음 봤을 때, 하찮은 인간 주제에라고 하셨다가 그란데힐님한테…….”
“올라갔으면, 빨리 대결이나 하자.”
김시연의 말에 카니에가 내 눈치를 잠깐 보고는 빠르게 말을 잘랐다.
“그럼 대련 시작하세요.”
먼저 덤벼봐.
카니에의 말에 비염이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김시연이 손을 폈다.
김시연의 손위의 청명한 연둣빛의 마나가 응축되었다. 응축된 기가 조(?) 형태의 모양으로 변했다.
……저건 반칙이지!
김시연의 마나에서 무언갈 느낀 듯, 비염이 비명 지르듯이 말했다.
김시연이 자세를 낮추고,
한 번에 쏘아지듯이 날아갔다.
그에 맞서는 비염이 한 행동은 간단했다.
화르르륵!
불꽃과 번개를 사방으로 쏘아 보내는 것.
불꽃과 번개가 혼합된 것이 폭풍으로 변했다. 경기장 전체를 집어삼키는 폭풍.
“장난 아니네.”
카니에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내 곁으로 와서 꽃을 소환했다. 연꽃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반투명한 보호막들이 불꽃과 번개가 혼합한 폭풍을 막았다.
이것이 바로 비염님의 힘! 염뢰폭의 맛이 어떠냐!
비염이 건방을 떨고 있지만, 비염의 눈은 집중한 채로 김시연의 움직임을 주시했다.먼저 피격되는 쪽이 진다. 그러나 김시연의 주변은 연둣빛의 마나로 보호되고 있었다.
기갑.
상격에 이르러, 호신강기를 배우지 못한 이들이 쓰는 방어기술. 원래대로라면, 한참 전에 뚫려야 했다. 하지만 김시연의 기갑은 멀쩡했다.
‘존재부정.’
신을 먹어치운 늑대.
그것의 마나는 비염의 염뢰폭의 마나를 집어삼키고 있다.
조용히,
한 순간의 틈을 노리는 맹수의 눈빛으로 비염을 바라봤다.
좋아, 두 개 더!
비염은 염뢰폭이라 불리는 기술을 두 개 더 꺼냈다.
대해의 마나를 모방한 가면을 쓰고 있는데도 마나가 소모되는 게 확 느껴질 정도였다.
“멈출까요?”
“아니, 좀만 두고 보자.”
비염이 호들갑을 떨며 염뢰폭을 두 개 꺼내는 그 시간.
김시연은 아주 작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도약.
김시연은 순식간에 도약했다. 사냥감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는 맹수처럼.
한 순간에 거리를 좁히고 바람의 손톱을 휘둘렀다.
“……아!”
이겼다!
단 한 순간에 승패는 결정이 났다. 염뢰폭을 준비하는 척하면서, 불꽃과 번개를 폭발시키듯 배출해 카니에가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꽤 훌륭하네, 이 비염님의 근처까지 오다니.
비염이 우쭐거리며 말했다. 나도 꽤 놀랐다. 도약하는 자세와 속도가 굉장히 재빨라서.
나는 잠깐 비염을 바라봤다.
‘괜찮네.’
기본적으로 나는 무사라서 대인전에 특화되어 있다. 비염은 내게 부족한 범위 공격을 채워 넣어줄 것이다.
“아직 몸 덜 풀렸지?”
어? 큰 기술만 써서 그렇기는 한데.
“그럼 다음은 던전가서 알아보자.”
나는 비염을 이끌고 던전으로 향했다.
***
나는 느긋하게 주변을 바라보았다. 습기가 가득한 이 동굴은 마수들이 가득한 장소다. 감회가 새로웠다.
중격 혼자로는 어림도 없고, 주인공 조차도 2학년 2학기에 들어서야 올 수 있는 장소. 이 장소를 벌써 들어올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여기 축축해서 싫은데.
“좀만 참아. 금방 끝날 테니까.
비염이 불만을 토했다. 나는 비염을 적당히 달래면서 앞으로 향했다.
“쿠오오오오오!”
앞에서 곰 형태의 마수가 보였다. 마수의 생김새는 독특했다. 보랏빛의 털에 이마 부분에 눈동자가 달려 있었고, 입은 양옆으로 찢어져 있었다.
염뢰맛 좀 볼래?
비염이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불꽃 번개가 창의 형태로 만들어지더니,
콰앙!
한순간에 쏘아지듯 날아가서 꿰뚫었다.
후, 이 비염님의 손에 걸리면 이 정도 쯤이야.
나는 곰 형태의 마수를 집중해서 봤다.
“……귀찮게 됐네.”
응? 뭐가 귀찮아? 이 비염님의 손에 걸리면 전부 아무것도 아닌데.
나는 마수의 머리 위에 찍힌 낙인을 바라봤다. 노란빛의 룬어로 그려진 낙인.
“분노하는 마수의 낙인이야.”
분노하는 마수의 낙인?
마수는 낙인을 남긴다. 그리고 낙인을 받은 마수들은 마수에게 복종한다.
그렇기에 분노하는 마수의 다른 이름은 마수왕.
이미 낙인이 찍힌 마수들은 무슨 수를 쓴다 하더라도, 마수왕을 거역할 수 없다.
“어, 이미 이곳에 갔다 온 것 같은데.”
그러면 여길 완전히 청소하는 게 좋겠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검을 꺼냈다.
“쿠아아악!”
“쿠어어억!”
베고, 베고, 벤다. 약한 마수들이 나오는 곳은 비염으로 처리했다.
그러기를 삼십 분. 나는 마침내 던전 끝자락에 도착했다.
***
마수.
마에서 태어난 짐승들이다. 그것들은 이지가 없다. 난폭하고, 흉악하고, 포악하다. 오로지 본능만을 우선시해서 키운 존재들.
마수들과 마인들은 마에서 태어났다는 점에서 비슷한 존재들이지만, 그들은 손을 잡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마수들은 오로지 본능을 우선시하고, 마에 속하지 않는 이들에게 강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인은 위에서 내려진 어떤 명령 때문에 이곳에 왔다.
얌전하게 있어라.
무신, 혁월의 말이었다. 무신의 추종자인 마인은 그 말을 전하러 이곳에 왔다.
‘……살이 떨리는군.’
수 천 단위의 마수들이 도열해 있는 광경은 상격을 바라보고 있는 마인 조차도 담담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늘에는 비행형 마수들이 떠다니고 그 지상에는 짐승형 마수들이 한 곳을 주시하며 도열하고 있었다.
마수가 저렇게 질서를 잡고 도열한 광경은 한평생 본적이 없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오롯이 분노하는 마수가 마수들을 절대적으로 통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앞에는 마수왕이 보였다.
마수왕.
그는 컸다. 거대했다. 어지간한 산만한 크기의 그는 또렷하게 마인을 내려다보았다.
혁월의 서신인가?
“예, 그렇습니다.”
뭐라고 했지?
“얌전하게 있으라 했습니다.”
히죽.
수십 m에 달하는 노란빛의 눈동자가 반달을 그렸다.
그리고.
콰득.
발로 밟아 서신을 죽였다. 베히모스는 담담하게 앞을 바라봤다.
내가 그놈의 명령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지.
베히모스는 즐겁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곳에 오기 전에 제법 재밌는 놈을 봤다. 가면을 둘러쓴 마수. 본신의 힘도 강했지만 특이한 것은 그의 능력이었다. 가면을 바꿀 때마다 능력이 바뀌는, 굉장히 특이한 능력을 갖췄다.
낙인은 찍었지만, 아직 동굴에서 발악하고 있다. 하지만 조만간 제 발로 굴러 올 것이다.
마수왕의 낙인은 그러했다. 마수라는 존재에게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다.
우선은 그전에 힘을 회복해야겠지.
마수왕, 베히모스는 중국을 바라보았다. 거악, 그들은 인간의 감정을 먹고 자라난다.
인간이 가진 부정적인 감정은 베히모스를 키워줄 것이다.
베히모스는 가장 인구가 많은 곳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가자, 아이들아.
쿠르릉.
일어서는 것으로도, 주변의 지형을 바꾸는 거대한 몸짓. 베히모스는 발을 돌렸다. 중국쪽으로.
백두산을 점령한, 마수들도 일제히 그를 따라갔다.
* * *